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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팔자가 상팔자

개팔자가 상팔자   ‘개팔자가 상팔자’라는 속담이 있다. 사전을 찾아보니 ‘하는 일 없이 놀고먹는 사람이 부럽다는 뜻’이라고 한다. 옛날에도 개는 하는 일 없이 놀고 먹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개 입장에선 밥 챙겨주고 딱히 뭘 해야 하는 것도 없으니 좋은 팔자이긴 하다. 물론 개를 잡아먹기도 했지만,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최소한 서울에서는 집에서 키우는 개를 잡아먹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개장수에게 파는 경우는 있었다)   필자가 어렸을 때엔 대개 집에 마당이 있었다. 그리고 그 마당에서 개 한 마리 키우는 집도 많았다. 집 문에는 ‘개조심’이라고 붙였다. 개가 사나우면 ‘맹견주의’라고도 붙였다. 당시 개들은 영역을 지킨다는 본능에 충실하여, 집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달려들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당시엔 개 키우는데 돈이 거의 들지 않았다. 주로 남는 음식을 개에게 줬고, 심지어 간을 맞춘다고 국이나 찌개에 말아 줬다. 개는 살기 위해서 그 짠 음식을 먹어야 했다. 차라리 맨밥이나 국물이라도 따라버리고 주지, 지금 생각하면 참 무식한 행동이었다. 예방접종이란 건 상상도 못했다. 그래서 심장사상충 같은 병에 걸려 갑자기 죽는 경우도 많았다.간식이나 장난감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소뼈다귀 같은 거라도 하나 있으면 하루종일 빨고 핥으며 애지중지했다. 버려진 신발이라도 던져주면 최고의 장난감이었다.   지금은 개팔자가 ‘극’상팔자다. 마당이 없으니 집에서 키우는데, 한 마리 당 월 수십만 원이 들어간다. 사료에 예방접종 그리고 간식과 장난감은 기본이다. 웬만한 사람보다 낫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거기에 미용이나 액세서리까지 합하면, 돈 없는 사람은 개를 키울 엄두도 못낸다.나아가 요즘 ‘애완견’이라고 하면 큰일난다. 애견인들은 애완견(愛玩犬)의 완(玩)자가 ‘희롱할 완’자로, 완구(玩具)처럼 ‘가지고 논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드시 반려동물이라고 표현해야 한다. 그렇게 사랑을 쏟던 개가 죽으면, 펫로스 증후군(가족처럼 사랑하는 반려동물이 죽은 뒤에 경험하는 상실감과 우울 증상)을 심하게 앓기도 한다. 며칠 전 방송인 은지원이 반려견을 떠나보내고 3일동안 울었다고 해서, ‘사람이 죽었냐’ 하는 반응이 있었던 적도 있었다.   필자도 동물 특히 개를 아주 좋아한다.그런데 돈이 꽤 드는데다 심각한 병에 걸렸을 때 병원비도 걱정이고, 특히 죽었을 때 상실감이 우려되어 아예 키우지 않기로 결심했다. 애견인 입장에서 필자는 개를 키울 자격이 안되는 사람이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치과 공포

치과 공포   요즘 필자는 임플란트하러 치과에 다닌다. 평생 치과에 자주 다녔지만, 치과라는 병원은 갈 때마다 공포다.   필자가 어렸을 때 치과에 가면 특유의 소독약품 냄새가 진동했다. 치과에서 사용하는 도구들도 소독약에 담갔다 사용하므로, 소독약의 맛을 보면서 치료를 받았다. 당시 치과 장비 모터 소리도 ‘왱~~~’ 하면서 지금보다 훨씬 컸다. 그래서 치과에 들어가자마자 냄새와 소리에 주눅이 들었다.게다가 석션 기계가 없어서, 솜 뭉치를 이와 볼 사이 등에 여기저기 박아 놓고 치료를 했다. 끝나고 나면 피가 흥건한 솜이 한보따리였다.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요즘은 천으로 얼굴을 가리지만, 예전엔 그런 것도 없었다.   요즘도 치과에는 가기가 싫다. 평소에 치아 관리를 잘하는 몇몇 사람들을 빼면, 웬만하면 안 가고 싶다. 분위기도 공포스럽고, 마취 바늘 들어갈 때나 막상 마취를 해도 정말 아플 때가 종종 있다.   치과 치료는 뭐든, 통증 즉 아픈 것부터 시작해 한참 아픈 걸 견뎌내야 비로소 끝난다. 누워서 온 신경이 이빨로 곤두서 있다. 뭐 하나 싶다가, 이제 끝나나 싶으면 또 다른 걸 시작한다. 치료 시간이 끝도 없이 길게 느껴진다. 치료 중간중간에 두 손을 꾹 붙잡거나, 눈물이 찔끔 나는 경우가 있다. 치료가 끝나도 고통을 참은 후유증과 마취가 풀리지 않은 입술 때문에 뒤끝이 영 찝찝하다.   치과에 안 가서 죽는 경우가 없다 보니 사람들은 치과 가는 걸 자꾸 미루게 된다. 그래서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 게 다반사다. 필자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ㅠㅠ   그래도 요즘엔 치과에 사용할 기구들을 아예 소독해 내놓고, 모터소리도 줄었다.공포심도 많이 줄었다. 하지만 아픈 건 아픈 거다.치과에 빨리 가고 싶은 경우는, 실밥 뽑거나 만들어 놓은 이빨 씌우러 갈 때다. 아프지 않고, 편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라나 하여간, 아~ 정말 치과는 가기 싫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사라진 소아마비

사라진 소아마비   필자는 얼마 전 오랜만에 다리는 저는 아주머니를 봤다. 소아마비 장애인이다. 필자가 국민학교 다닐 때만 해도 같은 학년에 3~4명 정도 소아마비 장애 학생이 있었다. 목발을 짚어야 하는, 증상이 심한 학생도 있었다. 당시 성인들 중엔 소아마비 장애로 다리는 절거나 목발을 짚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당시엔 장애인에 대한 배려나 인권 개념이 없었다. 좋게 표현하면 ‘OO가 아프다’ 또는 ‘OO가 좋지 않다’라고 하고, 그냥 ‘*신’이라고도 했다. 철없는 사람들의 놀림감이기도 했다. 심지어 소아마비 장애인이 다리는 절며 걸어가면, 철없는 아이들은 그 옆에서 다리를 저는 흉내를 내며 낄낄거렸다. 대놓고 ‘다리*신’이라고 놀리기도 했다.   어느 아버지가 소아마비 장애인인데 그 아들은 아버지가 부끄러워 옆에 가지도 않고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친구들이 놀리기 때문이었다.참 철없고 부끄러운 시절이었다.   소아마비 장애는 눈에 잘 띄기 때문에 금방 알아볼 수 있어서, 다른 장애보다 더 많은 것처럼 느껴졌었다.지금은 소아마비 장애인들 다수가 전동휠체어를 이용하기 때문에, 다리를 절거나 목발을 짚는 경우는 드물다. 소아마비 보조기도 있어, 다리 저는 걸 보완해준다.   언젠가부터 소아마비 접종은 의무화되면서 지금은 소아마비 장애인이 크게 줄었도, 지금의 소아마비 장애인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다.   요즘은 누가 장애가 있으면 ‘OO에 장애가 있다’라고 얘기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에 대해 이해하고 배려하려 한다. 만약 누구한테 ‘*신’이라고 하면, 그 사람은 ‘인격 파탄자’ 취급을 당한다. 그래서 그런지 ‘*신’이란 욕도 사라졌다.   어쨌든 소아마비 백신은 예방 접종으로 장애를 방지하고, 한 사람 또는 그 가족의 인생을 살릴 수 있게 된 위대한 발명이다. 아울러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배려가 나아지고 있는 것도 다행스럽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삥땅과 안내양

삥땅과 안내양   ‘삥땅’이란 말이 있다. 사전에서 찾아보니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어야 할 돈의 일부를 중간에서 가로채는 일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나와 있다. 일본어나 일본어에서 파생된 단어인 줄 알았는데, 속된 말이긴 하지만 순우리말이다.삥땅이란 단어가 일반화된 건 수십년 전 버스 여차장(당시엔 안내양이라고 하지 않고, 차장이라고 불렀다)들이 버스 요금을 삥땅친 데에서 시작되었다. 버스회사에서 이를 눈치채고 남성 간부들이 여차장들을 속옷상태에서 몸수색하자, 국민들이 너무 심한 처사(당시엔 인권 개념이 없어서 이렇게 말했다)라며 비판한데서 비롯되었다.   사실 여차장들이 위험하고 힘든 일로 개고생하면서 쥐꼬리 월급을 받는데, 현금을 만지니 돈욕심이 났을 법하다. 버스 회사 입장도 이해가 가지만, 남성 직원들이 여성을 속옷만 입혀놓고 몸수색했다는 건 분명 문제다. 이 사건이 공론화되면서 꽤 오랫동안 인구에 회자되자, 한편에선 잽싸게 버스 안내양 몸수색을 소재로 한 영화도 등장했다.이렇게 ‘삥땅친다’는 말이 일반화되었다.   60년대엔 버스에 문이 두 개여서 버스마다 여차장이 두 명이었고, 70년대엔 앞으로 타고 뒤로 내리는 방식으로 바뀌면서 여차장이 한 명으로 줄었다.그렇더라도 전국 대도시의 버스엔 차장들이 꽤 많았다. 그런데 젊은 여성이 돈 벌어 보겠다고 서울로 상경해 버스 차장을 한다고 가족들이 들었는데, ‘서울 간 언니’가 속옷 바람에 몸수색을 당한다는 소식을 들은 가족들 마음은 어땠을까 싶다.   어쨌든 이 사건을 계기로 차장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커졌다. 속옷 몸수색도 사라졌다.아울러 '차장'보다는 '안내양'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등장했다. 차장이란 말이 안내양보다 나쁜 이미지라는 건 아닌 거 같은데, 차장이라고 하면 몸수색 이미지가 남아 있어 그런 지 모르겠다. 이후 버스 차장은 안내양으로 불리게 되었다.   하지만 안내양을 했던 사람들은 삥땅과 몸수색이라는 기억 때문에, 과거 안내양을 했었다는 말을 하지 않을 지 모르겠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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