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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공원에 가면 **도 있고 ***도 있고...

한강공원에 가면 **도 있고 ***도 있고...   한강공원은 필자가 외국인에게 추천하는 서울 제일의 명소다. 큰 강을 따라 수 십km에 깨끗한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자전거와 보행로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엔 늘 가던 석촌호수에 벚꽃 구경 인파가 몰려서, 대신 한강공원을 나갔다. 잠실 집에서 탄천이 한강과 합류하는 지점까지 편도 약 3km를 걷는 운동이다. 작년에 가보고 처음이라 그런지, 바뀌거나 못 보던 게 있었다.   우선 한강 선착장을 지나 500m정도 지나면 중국의 해외 비밀경찰로 의심받던 동방명주가 문을 닫았다.(사진) 3층짜리 대형 수상 건물인데, 평소에 음식과 서비스가 너무 형편없는데도 계속 영업을 해서 뭐 하는 덴가 생각했었다.   한강공원 주자창엔 SUV차를 이용해 한강을 보면서 쉬는 사람들이 있다. (사진) 꽤 괜찮아 보인다. 주차비가 좀 나오겠지만...   조금 더 지나면 굽은 자전거 도로가 나온다. 그런데 ‘강설 우천 시 미끄럼 주의’(사진)이란 표지판이 나온다. 우리가 ‘강우(降雨)라는 표현은 자주 사용한다. 강우량 또는 강우 콜드 게임 등으로 익숙한 단어다. 그런데 ’강설(降雪)은 흔히 사용하지 않는 단어다. 그냥 ‘눈 비 올 때 미끄럼 주의’라고 하면 될 걸, 왜 어렵게 ‘강설 우천 시’라는 단어를 썼을까? 유식해 보이기 위함인가? 표지판은 쉽게 써야 하는 것 아닌가?   몇 걸음만 지나면 탄천 건너 모래톱이 보인다.(사진) 사진만 보면 유원지나 백사장으로 보인다. 서울 한복판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몇 걸음 옮기니 놀라운 게 생겼다. 억새와 나무 숲이 있는데, ‘뱀조심’이란 글과 함께 망이 쳐져 있다. 강서구 한강공원에 뱀이 나타났다는 말은 들었어도, 잠실에도 뱀이 있다는 얘긴 금시초문이다. 정말 뱀이 있는 걸까? 주변에 산도 없고, 사방이 큰 길과 천(川)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뱀이 접근하기엔 쉽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망도 전체를 다 둘러싼 것도 아니다. 그럼 뭐지?   불과 3km 안에서 별 걸 다 본다.   <묻는다일보 밸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홀랑 벗긴 아기 사진을 왜 찍었을까?

홀랑 벗긴 아기 사진을 왜 찍었을까?   필자가 어렸을 땐 사진관이 많았다. 당시만 해도 카메라가 귀하고, 증명(명함판)사진 백일 또는 돌 사진 등을 많이 찍었기 때문에 동네마다 한두 군데씩은 있었다. ‘허바허바사장’이란 유명 사진관이 있었는데, TV광고를 할 정도였다. 돈 있는 집에선 약혼 가족 돌 사진 등을 그곳에서 찍었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가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70년까지만 해도 동네 사진관 창에는 어김없이 민망한 사진들이 뺴곡히 진열되어 있었다. 바로 홀랑 벗겨 놓은 남자 아이들의 백일 또는 돌 사진이었다. 특히 주요 부위가 잘 보이도록 다리를 떡 하니 벌리고 찍었다. (가끔은 여자 어린이들도 있었다)   당시에더 필자는 그런 사진을 보면서 도대체 왜 이런 사진을 찍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필자나 형제들 가까운 친구들은 이런 사진을 찍지 않았기 때문이다.남아선호사상이 뿌리 깊었기 때문일까?귀한 아들의 귀한 부분을 자랑하고 싶었을까?남들이 하니까 그냥 따라한 걸까?   문제는 가족들만 이 사진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고, 누구나 볼 수 있게 사진관 창에 진열이 된다는 점이다. 사진관에서 자기들 맘대로 진열한 걸까?부모가 자랑하고 싶어서 승낙한 걸까?   그런데 또하나의 문제는 그 사진이 몇 년 또는 수십 년간 두고두고 걸려있다는 점이다.아이가 커서 그 사진을 보면 부끄럽지 않을까?외국인들이 보면 얼마나 놀랬들까 싶기도 하다.   이런 현상은 80년대에 사라진 것 같다. 만약 지금 그런 사진을 내건다면 당장 문제가 될 것이다.   부모가 악의로 그런 사진을 찍은 건 아니었으므로, 당시 일부 사람들의 문화 정도로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세계 각지에 있었던 남근숭배 사상의 영향이었는지도 모른다. 특히 어린 남자아이의 성기를 ‘고추’라고 하면서 예쁘다는 말도 했었다.하지만 부모들의 욕심(?) 때문에 아기가 홀랑 벗겨져서 소중한 것을 내보이며 웃고 있었던 걸 생각해보면, 아기의 인권이 억압받는 것 같아 불쌍하고 안타깝게 생각된다.   과거에 그런 사진을 찍었던 사람들이 당시 사진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해 진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어떻게 그러고 살았을까?

어떻게 그러고 살았을까?   필자가 어렸을 땐 지금에 비해 위생관념이 크게 떨어졌다.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70년대 까지만 해도 리어카에서 멍게와 해삼을 파는 장사들이 있었다. 주문을 하면 즉석에서 멍게나 해삼을 손질해 접시에 담은 후 초고추장을 뿌려줬다. 그런데 그걸 찍어 먹는 게 나무젓가락이나 포크가 아니라 옷핀이었다. 옷핀을 펴서 그걸로 찍어 먹은 후, 반으로 자른 사과에 꽂아 놓고 갔다. 그럼 다음 손님이 그걸로 또.... 돈도 아끼고 씻기 귀찮아서 닿는 면적이 접은 옷핀을 사용한 아닌가 싶다. 사과가 살균도 해주고? ㅠㅠ (사진 참조)   번데기는 잡지나 신문으로 봉투를 말아 담아줬다. 몸에 해로운 잉크가 묻어 날텐데, 안에 남아있는 국물까지 쪽쪽 핥아 먹었다.   필자가 10살 쯤 됐을까?당시 떡볶이 1개에 5원이었다. 어머니한테 10원짜리 동전 하나 받아 들고 떡볶이 리어카에 갔다. 떡볶이는 양념 맛이다. 떡은 조금만 베어 먹고 양념을 잔뜩 묻혀가며 여러 번 빨아먹었다. 너무 많이 하면 주인한테 야단맞았다. 하지만 주인은 끓이는 거라 문제없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대로 두고 물을 부어가며 계속 팔았다. 오뎅(어묵)도 간장에 찍어 먹었는데, 간장 그릇 하나에 손님 모두가 찍어 먹었다. 간장도 맛있어서 오뎅(어묵)은 조금씩 먹고 간장을 자주 찍어 먹었다.하지만 80년대 언젠가부턴 떡볶이 한 개씩 판매는 사라지고 접시에 담아 팔았다. 간장도 조금 부어 주거나 솔이 등장했다.   여기까지야 필자가 어렸을 때 얘기지만, 담배는 90년대까지도 이런 행위를 했다.그 당시엔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면 으레 담배를 한 대씩 피웠다. 흡연률이 높았기 때문에 당연한 루틴이었다. 재털이가 있으면 거기에 털었지만, 없거나 혹은 재털이가 있어도 습관적으로 자기가 먹고 난 밥그릇 뚜껑에 담뱃재를 털고 담배를 끄는 사람들이 있었다. 심지어 밥그릇에도 버렸는데, 심한 경우엔 거기에 침까지 뱉었다. 대학까지 나오고 좋은 대기업에 다니는 일부 사람들도 그랬다. 결국 자기들이 다시 그 그릇에 밥을 담아먹을텐데... 섬뜩한 일을 당시엔 아무렇지도 않게 저질렀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이런 얘길 해주면 기함을 한다. ㅎㅎㅎ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남아 성적 학대가 문화라고?

남아 성적 학대가 문화라고?   우리는 흔히 서양인들은 한국인에 비해 성적으로 훨씬 개방적라고 생각한다. 포르노 산업이나 성인클럽 등을 보면 그럴 수 있겠다 싶다. 하지만 서양인들이 절대 용서하지 않는 게 있다. 바로 소아성범죄다. 어린이들을 대상 또는 이용한 성범죄의 경우 엄청난 중형을 선고한다. 즉 성에 대해서만은 어린이들을 철저히 보호하겠다는 의지다. 예를 들면 소아 포르노를 제작할 경우 징역 30년, 가지고만 있어도 몇 년간의 징역을 선고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요즘 강화되긴 했지만, 옛날엔 이런 개념이 적었다. 특히 남자 어린이들은 성적 학대를 몇 번씩 안 당해본 사람이 없다. 가장 흔한 게 ‘불알 만지기’다. 남성 어른들(대개 젊은 남성이지만 가끔 중년 여성도 있다)이 “불알이 얼마나 익었나 보자”라며 남의 귀한 아들의 불알을 잡는다. 저지르는 어른들은 짓궂은 장난이라고 하지만, 당하는 남아들은 아파 죽겠고 정말 싫었다.   그때 그들은 왜 그런 짓을 했을까?필자는 당시 그들이 일종의 ‘남아성애자’들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어른들이 다 그런 게 아니고, 꼭 소수의 몇 사람들이 이 아이 저 아이에게 그 짓을 저질렀다. 왜 그랬냐고 물어보면 아마 ‘장난으로’ ‘귀여워서’ 등으로 대답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대답들은 모두 스스로가 ‘남아성애자’임을 인정하는 일이다.‘장난’을 할 때엔 뭔가 ‘즐거움’이 있으니 하는 것이다. 즉 귀여운 남자 어린이의 불알을 쥐고, 아프다고 하는데서 즐거움을 느낀다는 의미다. 바로 변태이자 남아성애자이다.   90년 경이었나? 어떤 한국 남성이 미국에 이민 가서 미국 어린이 불알을 만졌다가 철창 신세를 지는 일이 발생했다. 그 남성은 ‘한국에선 일상적 문화’라고 주장했지만, 미국에선 소아성적학대였다. 당시 필자는 ‘한국의 일상적 문화’라는데 반감을 가지며, 그런 놈들은 미국 감옥에서 고생 좀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필자의 가까운 주변엔 그런 문화나 변태가 없었기 때문이다.   필자의 기억으론 80년대 쯤 우리나라에서도 남아 불알 만지는 성적 학대가 사라졌다.하지만 필자는 아직도 어릴 적 필자 불알을 쥐며 실실 웃던 청년이 기억난다. 정말 불쾌하고 수치스럽다. 그 변태**는 지금 뭐 하고 살고 있을까? 아마 그는 아직도 본인이 남아성애자 즉 변태였음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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