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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더 매너있다?

부자가 더 매너있다?   최근 인터넷에 올라온 한 유튜버 택배기사의 증언이 주목을 받고 있다."고가 아파트나 단독주택 단지에 가면 간식을 챙겨주거나, 문 앞에서 '고생하신다'는 인사를 건네는 분들이 많다. 반면 주거 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하거나 노후한 곳에 가면 '왜 늦었냐'며 소리를 지르거나, 사소한 오배송에도 인격적인 모독을 퍼붓는 빈도가 확실히 높다.“   예전엔 영화나 드라마에 부자를 ‘돈만 알거나, 갑질을 하거나, 가난한 사람을 무시하고 차별하거나, 인격 자체가 나쁜 사람들’로 설정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실제 돈 좀 있다 싶으면 고개에 힘 주고 잘난 척하면서, 사람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많이 바뀌었다. 요즘 부자들은 더욱 겸손하고 친절하려 노력하는 것 같다. 영화 ‘기생충’에 등장하는 부자도 좋은 사람들이다. "부자니까 착한 게 아니라, 부자라서 착한 거야. 돈이 다리미라고, 구김살을 쫙 펴줘."라는 대사는 이런 현상을 대변한다.   이렇게 최근 한국 사회에서 ‘부자는 여유 있고 매너 좋다’고 하고, ‘가난한 사람은 무례하고 각박하다’고 하는 인식이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처럼, ‘있는 사람의 여유’에서 기인한다. 부유한 이들은 돈으로 '불편함을 제거한 상태'이기 때문에 친절할 여유가 있고, 삶이 팍팍한 이들은 작은 지연이나 실수에도 생존을 위협받는 듯한 '극도의 예민함'을 보인다는 분석이다.특히 우리 사회가 ‘경쟁이 심하고 스트레스가 많은 사회라, 사람들이 더욱 예민하고 각박해져서’일 수 있다.   또한 사회학자와 심리학자들은 이를 '자본의 도덕화'와 '능력주의의 변질'로 설명한다.과거에는 가난을 '사회가 보듬어야 할 불운'으로 여겼으나, 이제는 '게으름이나 능력 부족의 결과'로 바뀌었다. 또한 돈이 많은 걸 '성실하고 합리적인 삶의 보상'으로 정당화하면서, 부자의 매너는 '배운 사람의 품격'으로 가난한 자의 분노는 '못 배운 자의 무례'로 낙인찍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선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서로를 급을 나누며 공격하는 '수평적 폭력'도 등장한다. 갑질을 당한 점원이 다른 매장에 가서 똑같은 갑질로 스트레스를 푸는 게 바로 이런 현상 중 하나다.   물론 부자 중에도 예의라곤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난하지만 예의 바른 사람도 많다. 하지만 부자가 갑질을 하면 "저 사람 인성이 나쁘다"고 개인의 문제로 보지만, 가난한 사람이 화를 내면 "가난한 사람들은 원래 저렇다"며 집단 전체를 혐오하기도 한다.   내가 오늘 누군가를 주거 형태나 소득으로 차별한다면, 나 또한 나보다 더 가진 누군가에게 언제든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사회가 각박하고 힘들어도, 갑과 을로 나누어, 남을 정서적으로 괴롭히거나 스트레스 주는 건 참으로 비겁한 행위다.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사회야말로. 구성원 모두에게 있어 행복의 시작이다. 필자는 이런 인성은 어릴 적에 형성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릴 적 가정 교육과 부모들의 본보기가 중요한 이유다.많은 재산은 못 물려주더라도, 좋은 인성은 대물림될 수 있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한국인의 체형 ① - 키

한국인의 체형 ① - 키   요즘 젊은(19 또는 20세 기준) 남성 평균 신장이 174.5~175.5cm라고 한다. (자료에 따라 차이가 있음) 아시아에서 이스라엘과 함께 가장 큰 편이다. 키도 크지만, 다리도 길어졌다. 체형이 서구형으로 바뀌었다.   예전 노인들을 보면 키가 아주 작고 다리는 짧은데, 한국인들은 어쩌다 이렇게 바뀌었을까?   사실 한국인들은 원래 키가 크고 체격이 건장한 서구형이었다,영국의 지리학자이자 여행가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 여사는 1894년부터 1897년까지 네 차례 한국을 방문하고 쓴 저서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rs)』에서, 한국인의 외모와 기질에 대해서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명성황후의 시의(侍醫)였던 릴리어스 언더우드(Lillias Underwood)는 한국인들이 매우 정중하고 예의 바르며, 특히 지배층뿐만 아니라 일반 민중들도 체격이 좋고 인상이 밝다고 말했다.윌리엄 그리피스(William Griffis)는 저서 『은둔의 나라 한국』에서 한국인의 외모를 인종학적으로 분석했다. 그는 한국인을 보고 "동양인이라기보다 오히려 유럽인의 골격에 가깝다"고 평했다. "일본인은 작고 민첩하며, 중국인은 육중하고 둔해 보이지만, 한국인은 그 중간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훨씬 더 잘생겼다."고 기술했다.   한국인의 체격이 좋았던 건 ‘많이 먹어서’였다. 밥을 고봉으로 먹었는데, 외국인들은 그 엄청난 식사량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당시 서양인 남성의 평균 신장이 168cm정도 였으니, 한국인들의 신장도 비슷했을 것이란 추측이 든다. 하지만 이후 한국인들의 키는 사정없이 작아졌다.   그러면 한국인들은 어쩌다 그렇게 쪼그라들었을까?한마디로 ‘잘 못 먹어서’다.구한말 ‘삼정의 문란’ 등으로 굶는 게 일상이 되고, 이후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으로 경제가 피폐해졌다. 키나 체격은 영양상태와 비례하는데, 수 십 년 지속되면서 키는 작아지고 체형은 볼품없어졌다.   하지만 경제가 살아나고 영양상태가 좋아지면서 다시 키가 커졌다. 즉 원래 서구인들과 비슷한 체격이었는데, 잘 먹다 보니 원래의 유전적인 큰 키와 건장한 체형 그리고 롱다리로 대표되는 서구형 체형이 되살아 난 것이다.   서양을 무조건 흠모하는 게 아니라, 체형으로 볼 때 서구인들이 좋은 건 사실이다. 젊은이들의 체형이 좋아져서 흐뭇하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한국인의 체형 ② - 얼굴 크기

한국인의 체형 ② - 얼굴 크기   예전 노인들은 키는 작고 다리도 짧지만, 얼굴은 컸다. 어제 키에 대한 글을 올렸는데, 해당 수 십 년 간 키는 점점 작아졌지만 머리 크기는 그대로였던 모양이다.   약 20 여 년 전 배우 고 남궁원 씨를 봤는데, 정말 얼굴이 커서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영화나 사진으로만 보던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하긴 최근 모델 출신 배우인 이정재 씨가 스타워즈에 출연했을 때, 서양인 상대 배우들과 키는 비슷해도 얼굴이 훨씬 커서 충격을 받기도 했다. (이정재 씨가 72년 생이니, 요즘 젊은이들과는 차이가 있다)어쨌든 동양인들이 서양인들에 비해 얼굴이 상대적으로 큰 건 사실이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한국인의 얼굴은 상당히 작아졌다.과거에는 질기고 딱딱한 거친 음식(조, 수수, 뿌리채소, 마른 반찬 등)을 많이 섭취했지만, 현대에 들어서며 부드러운 음식 위주의 식단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턱 근육을 덜 쓰게 되면서 턱뼈와 근육이 덜 발달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하관이 갸름해지는 경향이 생겼다. 나아가 턱뼈 자체도 작아지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또한 딱딱한 음식을 먹을 때 발생하는 힘은 턱뿐만 아니라, 이를 지탱하는 광대뼈(관골)의 발달에도 영향을 준다. 부드러운 음식을 먹으면서 광대뼈 주변의 골격 발달이 억제되어, 얼굴의 가장 넓은 부위가 매끈해진 것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원인은 머리형의 변화다.과거에는 아이를 키울 때 베개에 똑바로 재우는 경우가 많았지만(이 과정에서 뒤통수가 납작해지며 얼굴이 옆으로 퍼짐), 요즘은 옆으로 재우거나 두상 관리에 신경을 쓰는 부모들이 많아진 것도 두상 변화에 한몫한다. 즉 과거 한국인은 앞뒤가 납작하고 옆으로 넓은 단두형(Brachycephalic) 두상이 많았지만, 최근 세대로 갈수록 앞뒤 짱구 형태인 장두형(Dolichocephalic) 혹은 그 중간 형태가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앞에서 보면 과거에 비해 얼굴이 작아 보인다.   상대적 요인도 있다.키가 커지다 보니, 상대적으로 얼굴이 작아 보이는 것도 있다.   이렇게 해서 한국인들은 점점 서구화된 체형과 얼굴 형태를 가지게 되었다.그래서 남성은 1979년 평균 6.8등신에서 현재 약 7.4등신으로, 여성은 1979년 평균 6.7등신에서 현재 약 7.3등신 바뀌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다들 훤칠하고 늘씬하니, 보기가 참 좋다.잘 먹고 잘 사니, 인물도 살아난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종기와 고약 ① - 종기

종기와 고약 ① - 종기   필자가 어렸을 적엔 종기가 흔했다. 필자도 여러 번 고생했다. 당시 가장 손쉬운 치료법은 충분히 곪을 때까지 기다렸다 손으로 짜는 것이었다. 아프긴 해도, 대개 이렇게 낫고 끝났다.   옛날엔 종기가 정말 많았는데, 우선 깨끗하지 못한 환경 탓이 컸다. 목욕도 자주 안 하고, 옷도 자주 갈아입지 않았다, 더구나 영양상태도 지금만 못하여서, 면역력이 떨어진 것도 한몫했다.   종기는 신분의 고하를 가리지 않았다.아니 어찌 보면 임금님들이 더 고생을 많이 했고, 종기로 죽기도 했다. 그 이유로 과중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와 복장 때문이었다. 일은 많은데, 비단과 무명 등으로 옷을 겹겹이 입었다. 하지만 더워서 땀이 비 오듯 해도, 한 나라의 왕이 옷을 벗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목욕을 자주 한 것도 아니다. 그러니 세균이 증식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 만들어졌다. 특히 당시 왕들은 잘 먹지만 운동은 하지 않아, 당뇨도 많고 면역력이 형편없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항생제도 없고, 발달된 외과적 수술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조선의 역대 임금 중 네 명이 종기로 인해 사망에 이르기도 했다. 제5대 문종은 즉위 전부터 종기로 고생했는데, 세종의 삼년상을 치르며 몸이 약해진 상태에서 등에 난 거대한 종기(등창)가 악화되어 재위 2년 만에 승하했다. 종기만 치료했어도, ‘왕과 사는 남자’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제9대 성종은 배와 등에 난 종기가 원인이 되어 38세의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 성종이 종기만 잘 치료했어도, 연산군이란 폭군은 없었을 수도 있다.제17대 효종은 얼굴에 난 종기를 침으로 찔러 고름을 뽑아내려다, 혈관을 건드리는 의료 사고로 인해 과다출혈로 급서했다. 당시 치료를 맡았던 어의 신가귀는 노안으로 눈이 침침하고 수전증으로 손이 떨렸다고 한다. 결국 침을 잘못 찔러 침 끝이 혈관을 깊게 찔렀고, 효종은 쏟아지는 피를 멈추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과다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이 사건으로 신가귀는 교수형에 처해졌다.제22대 정조는 평소 다혈질적인 성격과 과로로 인해 등에 종기가 자주 났다. 결국 이 종기가 전신으로 퍼지고 혼수 상태에 빠지면서 세상을 떠났다. 정조가 종기를 잘 스렸다면, 조선 후기 세도정치도 없었고 우리나라의 역사가 바뀌었을 수도 있다.   이외에도 제7대 세조는 피부병으로 아주 고생하다가 기적적으로 치유되긴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야사에 의하면 세조의 꿈에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가 나타나 "내 아들(단종)을 죽였으니 네 놈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며 세조의 몸에 침을 뱉었고, 그 자리에 종기가 생겨 온몸으로 퍼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면 고약을 사용하면 되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종기가 흔했던 옛날에 고약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효과있는' 고약은 이 당시의 약이 아니라 의외로 근세에 들어와 만들어진 약이다.   고약에 대해선 다음 편에...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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