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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여성들

백화점 여성들   필자가 젊었을 때만해도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여성들은 하나 같이 예뻤다. 지금과 달리 당시만 해도 성형수술이 일반화되지 않았던 시기여서, 자연미인으로 예뻤기에 더욱 기억에 남는다. 백화점 직원들이 모두 예뻤던 건 제복(유니폼)과 화장의 힘으로 생각된다.   가장 예쁜 직원은 백화점 입구 안내데스크에 앉았다. 화장을 잘한 것도 있겠지만, 정말 배우 빰 치게 예뻤다. 소문에 의하면 마담뚜들이 그녀들에게 접근해 좋은 혼처로 시집간다는 말이 있었다. 따라서 그 자리는 미스코리아 되는 것만큼이나 인기가 좋고, 자리 잡기도 어려웠다고 했다.   엘리베이터걸들도 예뻤다. 지금은 사라진 직업이지만, 한땐 큰 건물에도 엘리베이터걸들이 있었다. 당시엔 엘리베이터가 그리 흔하지 않았었기 때문인가 보다. 어쨌든 예쁜 유니폼을 입고 곱게 화장한 늘씬한 아가씨들이 운행과 안내를 했다.엘리베이터걸들은 일단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어서오십시오’ 손짓을 하며 손님을 맞는다. 탑승한 손님들이 엘리베이터에서 원하는 층을 얘기하면, 받아서 ‘0층’이라고 복창하며 버튼을 누른다. 해당 층에 도착해 문이 열리면 엘리베이터걸들은 ‘0층입니다’하며 내려서, ‘안녕히 가십시오’ 공손히 인사했다. 그런 언행이 어디가나 기계처럼 똑같아, 코미디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화장품 직원들은 물론, 일반 매장 직원들도 예뻤다. 같은 값(?)이면 미모순으로 채용한다는 얘기가 있었다.   과거의 백화점은 한마디로 ‘미인들의 집합소’였다. 여성이 백화점에서 일한다는 건 곧 ‘미인’임을 뜻하기도 할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직원들의 얼굴 수준이 확 빠졌다. 평범한 수준으로 격하(?)되었다. 데스크나 엘리베이터걸들도 마찬가지였다.왜냐하면 백화점에서 너무 예쁜 직원을 안 뽑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손님들이 자신보다 예쁜 직원에게 눌려서, 오히려 불편해한다는 얘기다. 남성 고객들이야 직원이 예쁠수록 좋겠지만, 당시만 해도 중년 여성 고객이 대다수인 상황에선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리고 기계 인형같던 엘리베이터걸들도 사라졌다.   남성의 한 사람으로서 백화점 가는 낙이 확 줄어버렸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여자들의 수다

여자들의 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연령에 관계없이 ‘수다’ 하면 ‘여자’다. 수다는 모든 여자들의 전유물처럼 되어 있다. (물론 남성들도 가끔 수다쟁이가 있지만, 맨정신에 수다를 떠는 남자들은 극소수이고 별로 환영받지 못한다)   어느 날 저녁 여느 때와 같이 호프집에 있었는데, 젊은 여성 세 사람이 들어와 옆자리에 앉았다. 앉자마자부터 얼마나 시끄럽게 웃고 박수 치고 떠드는지, 주인이 주의를 줬다. 하지만 일 분도 안 가서, 굴러가는 잎만 봐도 웃는 것처럼 박장대소의 연속이었다. 견딜 수 없었던 필자 일행이 자리를 떴다.   지하철을 타면, 가는 내내 이어폰을 끼고 쉴 새 없이 전화하는 젊은 여성들도 있다. 옆자리에서 그러면 정말 짜증이 난다. 얘길 들어 보면 별 게 없다. 남자들은 전화할 때 대개 용건만 얘기하고 끊지만, 이런 여성들은 그냥 떠든다. 그렇다면 누군가 상대가 있다는 얘기다. 그 옆자리 사람도 얼마나 짜증이 날까? 뭐라 한마디 했다간 봉변을 당할 것 같아, 마음 속에 ‘참을 인’자를 수도 없이 새기며 목적지까지 갔다.   연령에 관계없이 여자들이 모이면 왕수다다. 그렇게 몇 시간을 떠들다 헤어질 땐, “이따가 전화 해”하면서 간다. 그렇게 떠들고도 또 할 얘기가 남았나? 반대의 경우도 있다. 한 시간이 넘게 전화하다가 “내일 만나서 얘기해”라며 끊는다. 헐~   대부분의 남자들과 달리 여자들끼리는 정말 금방 친해진다. 아주 친한 사이로 보이고 오래 만난 사이 같은데, 정작 만난 지 얼마 안 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이런 현상은 나이에 관계없지만, 특히 지하철 할머니들을 보면 쉽게 볼 수 있다. 옆에 앉은 할머니끼리 “언니 동생” 하면서 친해 보이는데, 헤어질 땐 “덕분에 재미있게 잘 왔다”며 쿨하게 가버린다. 알고 보니 방금 만난 사이다.   지하철에 할머니끼리 앉으면 한 할머니가 옆 할머니에게 물어 본다.“올해 어떻게 되시유?(또는 몇이시유?)”나이를 알고나면 금세 언니 동생이 정해지고,“어디가는 길이유?”하면서 얘기가 시작된다. 자식이나 손주 자랑이 주된 소재다. “어머머머” 또는 “얼마나 좋우”하며, 추임새 또는 리액션으로 앉은 내내 이야기를 이어 간다. 그렇게 친하게 얘기하다가 연락처 교환도 없이 깔끔(?)하게 헤어진다.   남자들은 늙어가며 대인관계가 좁아지고 외로워 지는데, 여자들은 수다 덕에 대인관계도 넓어지고 행복 지수가 더 높아지는 것 같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독어 불어를 왜 가르쳤을까?

독어 불어를 왜 가르쳤을까?   세계적으로 한국어 열풍이다.한류에 힘입어 일반인이 자발적으로 배우는 것은 물론, 학교에서 제2외국어로 배우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태국에선 대학입시 제2외국어 과목으로 중국어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학생들이 응시한다고 한다.   필자가 고둥학교 다닐 때 제2외국어 과목이 있었다.대부분 남고는 독일어를, 여고는 프랑스어를 선택했다. 학교에서 정하는 것이므로 학생들의 선택권은 없었다. 그런데 그때 애써 배운 독일어를 60 넘어 평생 단 한 번도 써먹어 본 적이 없다. (지나면서 다 잊어버렸지만)프랑스어를 배운 학생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아까운 시간 낭비한 것 밖에 안된다.그럼 왜 배운 걸까?   사실 당시엔 일본어를 배웠어야 했다.일본이 가깝기도 하고 교류도 많으며, 당시 일본은 무서운 기세로 세계 경제를 잠식해 나가던 신흥 경제 강국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만약 고등학교 때 일본어를 배웠으면 일본 가나 문자라도 익히고, 일본에 가서라도 최소한의 기본적인 대화라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엔 반일감정이 남아 있어서, 학교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는 걸 꺼려했다. 또한 당시엔 중국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있어서, 중국어를 배우긴 힘들었다. 이도 저도 아니면 차라리 스페인어를 가르치는 게 훨씬 나았을 것이다.하지만 귀한 시간에 아무 쓸데없는(?) 독일어나 프랑스어를 가르친다는 발상 자체가 한심스럽다.   교육은 백년대계란 말이 있듯, 잘못된 교육 정책으로 쓸데없는 제2외국어를 배워서 60 넘어 지금도 아까워하고 있다.태국처럼 교육당국의 전향적이고 실용적인 자세가 필요했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생존의 기술

생존의 기술   필자는 요즘 ‘기러기 할아버지’ 신세다. 이런저런 이유로 혼자 살고 있다. 태어나서 처음(?) 혼자 살다 보니 할 게 참 많다. 밥 해먹고 치우고 설겆이는 기본, 청소에 빨래까지 혼자 다 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해야 할 일이나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걸 터득하게 되었다.   물컵을 여러 번 사용하는 건 기본이다. 사과를 깎으면서도, 껍질을 바로 음식물 쓰레기 모으는데 투하한다. 행주 대신 사용하는 1회용 행주티슈도, 밥 먹기 전에 한번 식탁을 닦고 식사 후에 뒤집어 식탁을 닦은 후 전기렌지까지 닦고 버린다. 저녁에 샤워하고 난 수건을 세탁기에 넣기 전에, 설겆이 할 때 가슴 가리개(행주치마 대용)로 사용한 후 세탁기에 넣는다. (행주치마가 있긴 한데 찾지 못하고 있음)식사의 경우 예를 들어 김치찌개를 사서 양파와 두부를 넣고 끓이면, 양이 늘어나고 맛도 좋아지면서 두 끼를 먹게 된다.설겆이도 기름기가 없어 그냥 수세미로만 닦는 것과 세제를 사용해 닦는 것을 분리해 닦는다.세탁기로 옷을 빨래를 해서 건조대에 널면, 마른 후에도 굳이 빨래를 걷어 개지 않는다. 빨래한 옷들을 그냥 건조대에 놔두고 하나씩 입는다. 누가 와서 볼 것도 아니고 혼자 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저분하게 살진 않는다. 설겆이나 청소도 제때 한다. 만약 누군가 불시에 와도, 빨래를 널어놓은 것 이외엔 깨끗하다.   이렇게 하다보니 어릴 적 생각이 난다.당시엔 따뜻한 물이 귀했다. 따뜻한 물을 얻기 위해선, 물을 받아다 연탄불에 데워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겨울엔 대야에 따뜻한 물을 대야에 담아, 세수하고 발 씻고 그 물에 걸레까지 빨아야 따뜻한 물이 수명을 다했다.   이런 식의 생활은 환경보호와 자원 절감 그리고 절약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생활의 지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기러기 할아버지’인 필자에게는 거창하게 ‘생활의 지혜’라고 하기 보다. 조금이라도 덜 움직이고 편하게 살려는 ‘생존의 기술’이 아닐까 싶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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