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情)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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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테이블이 입식으로 바뀐 이유
식당 테이블이 입식으로 바뀐 이유 예전엔 식당에 좌식 테이블이 많았다. 고깃집이나 한식당은 특히 좌식이 많았다. 그런데 최근엔 좌식 테이블 식당을 찾기 힘들다.왜 바뀌었을까? 우선 생활습관(라이프 스타일)이 바뀌었다.국민들이 집에서부터 소파 식탁 침대로 이어지는 입식 생활에 적응하면서, 바닥에 앉을 일이 없어졌다. 그래서인지 젊을수록 양반다리나 쪼그려 앉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좌식 테이블 사용에 불편한 점이 많다.나이 좀 먹을 사람들은 앉았다 일어날 때 다리가 저려, ‘에고고... ’란 소리가 자동으로 나온다. 신발을 벗어야 하는데, 발에서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오기도 한다. 오늘처럼 비 오는 날이면 신발도 젖어서, 벗고 신는 것 자체도 괴롭고 냄새도 더 심하다. 어떤 사람은 발 냄새가 메주 비슷하게 아주 고약한 경우도 있어, 밥맛 떨어지게 하는 주범이 되기도 한다. 또한 오래 앉아 있으면 피가 안 통하고, 바지와 치마가 구겨지는 것도 문제다.특히 식당 바닥이 미끄러운 경우가 많은데, 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로 지나다가 넘어지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종업원들에겐 더 문제다.무거운 뚝배기나 뜨거운 국물이 담긴 쟁반을 들고 이동하다가, 쏟거나 넘어지는 사고 위험도 훨씬 높다. (필자의 후배도 식사하다가 큰 화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는데, 종업원 아주머니는 치료비를 물어야 했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불판을 갈거나 상을 닦고 치우고, 방에 오르내리는 작업은 신체 피로도가 훨씬 높다. 종업원 입장에선 같은 값이면 피하고 싶다. 그런데 최근 좌식에서 입식 테이블로 급속히 바뀐 이유가 또 있단다.바로 식당 좌식 테이블을 입식으로 바꾸는 지원 사업이 지방자치단체(시·군·구)별로 도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2017년부터 일부 지자체에서 시작해, 코로나 전후에 모든 지자체에서 적극 실시해 왔다. 식당마다 소요 비용의 50%에서 최대 90%까지 지원하는데, 보통 업소당 100만 원 ~ 300만 원 정도에서 지자체 재정 여건이나 대규모 위생환경 개선 사업과 맞물릴 때는 최대 2,000만 원까지 통 크게 지원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지자체가 나서서 지원하는 이유는 앞에서 언급한 이유에 더해, 외국인 관광객의 증가와 장애인 문제 해결 등의 이유가 있다.생각해보니 좌식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과 좌식이면 정말 불편할 장애인들을 고려하면, 참 잘하는 지원과 변화라 생각된다. 지자체가 예산을 들여 이런 민간 지원사업까지 하는 걸 보면, 사회가 점점 타인을 배려하며 성숙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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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 대(對) 환경 ② - 연산군
유전 대(對) 환경 ② - 연산군 역대 최악의 폭군이라고 하는 연산군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일단 생김새부터 일반적 예상과 다르다.조선 후기 문신 이덕형의 ‘죽창한화’에는 어린 시절 연산군을 직접 본 노인의 회상이 실려 있는데, "얼굴빛은 백옥처럼 희고 수염이 적었으며, 키가 크고 마른 체형에 눈가에 붉은 기운이 있었다"라고 나온다. ‘연산군일기’에는 한양에 올라온 시위군(호위병)이 연산군을 보고 "임금이 허리와 몸이 가늘어서 위엄이 없다"고 사석에서 뒷말을 했다가, 의금부에 잡혀간 기록이 있다고 한다. 즉 덩치가 크고 듬직한 체구를 선호했던 당시 조선 기준에서는 연산군이 너무 마르고 하얗다는 이유로 위엄이 적다고 여겼고, 붉은 눈가와 미끈한 체형 그리고 뽀얀 피부가 요즘 아이돌급 외모였음이 여러 기록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난다.즉 키는 아버지 성종을 닮아 컸는데, 얼굴이나 체격은 어머니 윤씨를 닮아 희고 가늘었다는 얘기다. 폭군이라 해서 무지막지한 외모를 생각했지만, 실제론 여성스러운 외모의 완벽한 사이코패스 스타일이었다. 19세에 즉위한 연산군은 초기엔 유교적 성군의 모습을 갖추려 애썼다고 전한다. ‘연려실기술’에는 "즉위 초에는 모두 영명(英明)한 임금이라 칭송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다. 아침마다 신하들과 정사를 논하는 조회에 성실히 참석했고, 유학을 공부하는 경연에도 착실히 임했으며, 세종·성종 대의 유산인 각종 서적 편찬 사업을 이어받아 마무리했다.또한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그의 시문(詩文)을 보면, 시적 감수성과 문학적 재능이 뛰어났다고도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지 성종으로부터 물려받은 기질이 슬슬 나오기 시작한다.우선 ‘호색한(好色漢)’ 성종의 피를 물려받아, 즉위 초기부터 후궁을 두거나 궁궐 안에서 연회를 열고 기생을 불러 즐겼다. 여기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성종이 밤마다 술 마시고 여자를 밝히던 모습을 봐온 ‘가정교육’도 한몫했을 것이다.게다가 늘 어머니의 사랑이 부족했던 ‘애정 결핍’의 연산군이었다. 노비 출신에 여러 번 시집을 가고 자식까지 둔 기생 장녹수에 눈이 멀어 버린다. 장녹수는 연산군보다 10살 정도 연상이었는데, 연산군의 결핍을 아이처럼 달래주기도 하고 때로는 응석을 받아주며 독점적인 총애를 얻었다. 이에 더해 연산군은 내시 몇 명만 데리고 비구니들의 거처인 정업원에 몰래 들어가 음행을 저지르기에 이른다. 한편 연산군은 왕권을 견제하려는 언관(사간원·사헌부·홍문관 3사) 및 사림파와의 갈등이 지속적으로 누적되었다. 연산군은 남의 간섭을 받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이는 어머니 윤 씨의 ‘참지 못 하는’ 성품을 물려받은 게 아닌가 싶다. 결국 쌓이고 쌓이던 불만은 무오사화(1498년)라는 불리는 대대적으로 숙청사건을 일으킨다. 나아가 연산군이 어머니 폐비 윤씨에 대한 전말을 알고 난 이후엔 완전히 정신줄을 놓으며 미치광이가 된다. 갑자사화(1504년)라는 무자비한 복수극을 벌이는가 하면, 채홍사를 만들어 흥청망청 놀다가 결국 중종반정(1506년)으로 폐위되고 만다. 연산군은 강화도로 유배되어서도 못돼먹은 성질을 다스리지 못하다가, 불과 두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31세였다. 고작 31년 동안 참으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 요약하면 연산군은 외모에 있어, 키는 아버지를 닮고 체형과 얼굴은 어머니를 닯았다. 여색을 밝힌 건 아버지 성종의 유전과 가정환경 모두의 영향을 받았으며, 참지 못하는 기질은 어머니 윤 씨로부터의 유전이었다. 장녹수에게 빠진 건, 어머니가 없었던 환경 탓이라고 본다.전체적으로 볼 때 연산군은 유전적 기질이 약간 더 많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 광해군의 경우엔 환경적 요인이 더 커 보인다.광해군은 후궁의 아들로 태어나, 임진왜란 발발 후 갑자기 세자에 책봉된 후 목숨을 걸고 전국을 돌며 분조를 이끌었다. 이후 선조로부터의 엄청난 핍박을 견딘 후 보위에 오르지만, ‘적자’ 영창대군과의 갈등으로 압박을 받는다. 영창대군을 죽인 후에는 역모와 암살의 위협속에서 살았다. 이렇게 평생 다져진 마음(?)때문에, 폐위 후에도 18년이나 더 살았다.(향년 만 66세로 장수했다) 그동안 아들 부부와 아내가 먼저 사망하고, 온갖 멸시를 받으며, 병자호란을 지켜봤다. 적장자로 태어나 온실에서만 자랐던 연산군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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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 대(對) 환경 ① - 연산군의 부모
유전 대(對) 환경 ① - 연산군의 부모 사람에게 유전이 중요한지, 아니면 환경이 중요한지에 대한 논쟁은 끝이 없다. 다만 유전과 환경 모두 사람을 결정짓는 데 중요한 요소임은 틀림없다는 생각이다. 유전과 환경의 영향에 대해 얘기하게 된 계기는, 다름아닌 폭군 ‘연산군’에서 비롯됐다. (이하 내용은 역사적 사실과 필자의 사견을 혼합한 것이니, 토 달지 마시길...) 예종이 즉위 1년 2개월 만에 불과 20세 젊은 나이로 요절한 후, 조카인 성종이 13세(1469년)에 왕위에 올랐다. 당시 성종의 나이가 너무 어려, 할머니 정희왕후가 수렴청정을 했다.성종에겐 이미 첫 부인인 공혜왕후가 있었는데, 한명회의 딸이었다. (성종은 원래 3순위였으나, 권력자였던 장인 한명회와 정희왕후의 합작으로 보위에 올렸다는 설이 있다) 공혜왕후는 어린 나이에 왕비가 되었음에도 아버지 한명회와 달리(?), 시어머니와 할머니 등 왕실 어른들을 극진히 모셨다. 후궁들에게도 질투를 하지 않고 옷감을 나눠주는 등, 인자한 성품으로 궁중의 칭송을 받았다. 하지만 성종이 즉위 후 수년이 지나도 공혜왕후에게서 아이가 생기지 않자, 왕실의 후사를 잇는다는 명목으로 1473년(성종 4년, 17세) 후궁들을 간택해 입궁시켰다. 이때 후궁(숙의)으로 들어온 인물 중 한 명이, 바로 훗날 연산군의 어머니가 되는 (폐비) 윤씨였다. 우선 성종의 외모에 대해 실록에서는 '미풍의(美風儀) 준정(峻整)'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용모가 아름답고 풍채가 훤칠하며 당당하다"는 뜻이다. 성종은 관대하고 온화한 성품에 어울리는 훤칠한 호남형 외모로, 조선 양반 사회에서 생각하는 '덕을 갖춘 군주의 용모'에 딱 맞았다.실록에 따르면, (폐비) 윤씨는 성종에게 "전하의 용모가 아름다우시니, 훗날 나이 들어 늙으시면 반드시 여색을 탐하고 후궁을 바치려는 자들이 몰려들 것입니다"라고 직접 말할 정도였다. 한편 성종은 밤과 낮이 완전히 다른 인물이었다.낮에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경연에 참석하며 유교적 삶을 살았다. 하지만 밤만 되면 술과 여색으로 밤을 지샜다. 18세가 되던 해 할머니 정희왕후의 수렴청정이 끝나고 친정을 시작하면서, 성종은 왕으로서 권력을 행사함과 동시에 벌써부터 후궁을 적극적으로 늘려갔다. 오죽하면 실록에는 성종이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거나 후궁의 처소에만 머무르는 것을 두고, 신하들이 "전하께서 여색을 너무 가까이하여 건강을 해치실까 두렵다"라며 간언하는 기록이 수차례 등장한다고 한다. 성종은 결국 12명의 부인(왕비 및 후궁)에게서 28명의 자녀(16남 12녀)를 두었을 만큼, 역대 조선 국왕 중 손에 꼽힐 정도로 여색을 많이 밝힌 임금이었다. 성종은 재위 25년간 ‘유교적 모범 군주(도학군주)’를 지향하여 매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경연(학문 토론)과 학문과 정사에 매달렸지만, ‘왕실의 후사를 잇는다’는 명목으로 술과 여색을 매우 즐겼다. 이는 과도한 정사 스트레스와 더불어 몸의 면역력을 떨어뜨리고 만성 피로와 종기를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어, 결국 만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그럼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의 외모는 어땠을까?성종실록에는 윤 씨의 외모에 대해 "용모가 아름다워(미색, 美色) 왕의 은총을 독점했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또한 성종이 반대를 무릅쓰고 후궁이었던 윤 씨를 두 번째 왕비(계비)로 맞아들인 것을 볼 때, 상당한 미모와 매력의 소유자였음을 알 수 있다. (만약 주변의 의견에 따라 정식으로 다른 계비를 맞이했으면, 조선의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윤씨는 중전이 됐으면, 임금이 만날 다른 후궁들과 주색잡기를 해도 모르는 척 했어야 했다. 기록에 따르면 폐비 윤씨는 다른 후궁들을 극도로 질투하고 감정의 기복이 매우 컸는데, 성종과 다투다 그만 용안(왕의 얼굴)에 손톱자국을 내는 엄청난 사건을 일으키게 된다. 이로써 윤 씨는 졸지에 폐비된다. 이렇게 윤 씨의 아들 연산군이 불과 생후 4개월 만에 어머니와 격리되고, 4세 때 어머니가 사약을 받고 죽는 비극을 맞으며 역사의 풍랑을 예고했다.(생후 4개월이라면, ‘윤 씨는 산후 우울증을 겪고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참 아까운 일이다.) <다음에 계속>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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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중성과를 너무 자화자찬 하는 거 아닙니까?답한다일보
문대통령을 중국 공항에 영접나온 사람이 왕이 외교부장이 아니라 그 아래 사람이 나왔다면뭔가 찝찝한 구석이 있는 것이고(필리핀 대통령이 왔을 때에는 왕이 외교부장이 영접을 나왔다던데)사드 갈등도 완전히 끝난 게 아니라 봉합 수준 같고3박4일동안 문대통령이 10번을 식사를 했는데 그중 8번을 혼밥을 했다면이건 뭔가가 문제가 있는 겁니다.대통령이 외국을 그것도 국빈 방문을 할 때 식사 한번 하는 게 얼마나 주요한 건데...뭔가가 시원하거나 깔끔하지 않은 방중 결과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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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의회 강감창 의원에게 물어 보겠습니다답한다일보
몇 달 전에 서울시림대 문제에 대해 제기하신 적이 있습니다.전체 학생 중 지방 학생 (비 서울지역 학생) 수가 3/4를 넘는데왜 서울시 세금으로 그들의 등록금을 지원해주는가?아주 공감이 가고 옳으신 말씀입니다.그런데 그후에 어떻게 되었나요?지방학생이라면 최소한 국립대 수준으로는 등록금을 내야하는 거 아닙니까?이 사안에 대해 후속 조치 상황과 계획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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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앞 고가공원 없애면 안됩니까?배재탁
가뜩이나 막히는 구간인데 고가도로를 공원으로 만들고 나서만리동쪽에서 명동쪽으로 가는 데평일 오후에 전에보다 20~30분이 더 걸립니다.이게 뭡니까?게다가 고가 공원이라고 가보면 정말 볼 것도 없고 사람도 없고그거 왜 한겁니까?서울시민들이 그것때문에 얼마나 불편한데요시간낭비, 연료낭비, 환경오염.............차차리 돈이 좀 들더라도 전에 고가 그대로 좀 놔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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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청장님께 여쭤보겠습니다묻는다일보
잠실 주공5단지에 사는 주민입니다.내년에 지방 선거가 있는데 이번에도 출마하십니까?물론 공천을 받아야 하겠지만... 임기중에 특별한 공적이 있으신가요?아무리 생각해도 별로 눈에 띄는 게 없는 거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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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시끄러운데 해결방안 없습니까?묻는다일보
중구청 바로 맞은 편에 있는 동림비즈센터에 사무실이 있습니다.아시다시피 허구헌 날 중구청 핲에서 시위를 하는 데 정말 시끄러워서 일을 못하겠어요.분명 소음 기준을 포과하는 거 같은데도 경찰은 보고만 있고...노점상들이 먹고살자고 집회하는 건 좋은데남한테 이렇게 피해를 주면 되나요무슨 해결방안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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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시제도 너무 복잡한 거 아닙니까?진주아줌마
전형 방식을 다양화하고 기회를 여러번 주는 건 좋지만아무리 그래도너무 복잡하니 이젠 대학입시를 위한 컨설팅을 돈 내고 받는 일이 비일비재입니다.대학입시 전문기관에서 개최하는 대입설명회는 사람들이 넘치고............학교마다 전형마다 너무나 다양하고 조건이 다르다보니애들한테 뭘 시켜야 할지 몰라 이거저거 더시키게 되고...웬만한 사람들 머리로는 작전이 안짜져요교육 정상화를 하려면 대입 부터 좀 단순화 시켜야 하는 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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