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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의 시대상 ② – 여권 신장

가요의 시대상 ② – 여권 신장   가요는 그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는데, 예전 노래들 중엔 지금 같으면 여성들이 들고 일어날 노래들이 꽤 있었다.   남진의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1967년)도 그중 하나다.   새까만 눈동자의 아가씨 겉으론 거만한 것 같아도마음이 비단같이 고와서 정말로 나는 반했네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한번만 마음주면 변치않는 여자가 정말 여자지(이하 생략)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라는 건 당시에도 외모 지상주의가 있었다는 의미다.그런데 ‘한번만 마음 주면 변치 않는 여자가 정말 여자지’라고 말한다. 당시만 해도 여성들에세 일방적으로 순결과 정조관념을 강요할 때다. 하지만 지금 여성들 입장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여자라고 해서 어떻게 한번 마음 줬다고 변치 말아야 하는가?   봉봉 사중창단의 <사랑을 하면은 예뻐져요>(1967년)도 비슷한 경우다   사랑을 하면은 예뻐져요 사랑을 하면은 예뻐져요아무리 못생긴 아가씨도 사랑을 하면은 예뻐져요사랑을 하면은 꽃이 피네 사랑을 하면은 꽃이 피네아무리 호박꽃 아가씨도 사랑을 하면은 꽃이 피네못 생긴 여자들은 모두 다 사랑하소사랑을 하면은 모두 다 미인되네(이하 생략)   지금 여성들 입장에선 전형적인 외모 지상주의라고 평가할 수 있다. 호박꽃 아가씨나 못 생긴 아가씨 모두, 여성들을 외모로 판단한다고 해서 싫어하는 단어들이다. 물론 본래 의미는 사랑을 하다보면 좀더 꾸미게 되고 표정이나 안색도 좋아져 예뻐진다는 의미다. 하지만 시대가 바뀐 요즘 여성들 입장에선 불쾌할 수도 있다.   쉐그린의 <얼간이 짝사랑>(1971년)은 심지어 성추행 성폭행이다.   옛날에 한 옛날에 얼간이가 살았는데동네 아가씨를 짝사랑 했더레요어느날 그 아가씨 우물가에 앉았는데얼간이가 다가와서 손목을 잡았더래요어머 어머 이러지 마세요우리 엄마 보시면 큰일이 나요(어 왜 이러세요 이 손 놓으세요)   (앞 생략)어느날 그 얼간이 있는 용기 다하여서그 아가씨 귀를 잡고뽀뽀를 했더래요(중략)(어 왜 자꾸만 이러세요 정말 뽀뽀까지 하고 야단이야 엄마)   여름은 지나가고 가을이 다가왔네곡식이 무르익 듯 사랑도 있었대요그래서 둘이는 저 푸른 초원 위에그림 같은 집을 짓고 행복하게 살았더래요   ‘옛날에 한 옛날에’라고 했지만, 지금 같으면 싸대기를 맞고 경찰에 끌려가 교도소로 들어갈 수도 있는 무시무시한 성추행 내지 성폭행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여자 없다’고 ‘스토킹’을 하거나, 심지어 성폭행을 당하고 강제로 결혼하는 경우도 있었다.노래가 해피엔딩으로 끝나긴 하지만, 지금 여성들 입장에선 끔찍한 노래일 수도 있다.   위 노래들이 유행하던 게 60~70년대 초였으니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가요의 시대상 ① – 빈대떡 신사

가요의 시대상 ① – 빈대떡 신사   대중가요는 그 시대상을 반영한다. 따라서 예전의 노래를 살피면, 그 시대가 어떠했는 지 알 수 있다.   우선 ‘빈대떡 신사’(1943년, 한복남)를 보자.필자 이상의 나이가 든 분들이 지금도 즐겁고 재미있게 부르는 노래다.   양복 입은 신사가 요릿집 문 앞에서 매를 맞는데왜 맞을까 왜 맞을까 원인은 한가지 돈이 없어들어갈 땐 뽐을 내며 들어가더니나올 적엔 돈이 없어 쩔쩔매다가뒷문으로 도망가다 붙잡히어서매를 맞누나 매를 맞는구나으하하하 우습다 우헤헤헤 우습다...(이하 생략)   요즘이야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캐주얼 차림으로 출근하지만, 필자가 회사 생활하던 초기만 해도 웬만한 회사에선 양복과 넥타이는 필수였다. 오죽하면 1986년 6월항쟁 시 ‘넥타이 부대’가 등장했을 정도다.하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그 당시만 해도 양복이 귀했고 양복을 입으면 신사 대접을 받았나 보다. 양복을 입는 자체로 폼을 잡고 으스대며, 남을 깔보던 시절이 아닌가 싶다. 그런 신사가 요릿집에서 무전취식하고 도망가다 붙잡혔다. 그러고는 요릿집 문 앞에서 주인이나 종업원에게 매를 맞는다. 지금 같으면 큰일 날 일이다. 무전취식을 했으면 경찰에 신고해야지, 매질을 하면 폭행죄가 되어 오히려 치료비 등 합의금을 줘야 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어느 정도 ‘사적제재’가 허용됐던 사회인가보다. 한 대에 얼마씩 때렸을 것 같다.   그런데 더 놀랄만한 상황이 벌어진다. 사람들이 이를 보며 재미있다고 웃는다는 점이다.‘신사’는 매질을 당해 피 터지고 쓰러지는데, 지나던 남녀노소 사람들은 꼴 좋다고 손가락질 하며 깔깔대고 웃어댄다. 아무도 말리는 사람 없이 모두 박장대소를 한다면, 얻어맞는 사람은 얼마나 치욕스럽고 괴로울까? 지금 같으면 웃는 사람도 없고 누군가 경찰에 신고하겠지만, 만약 노래 같았다면 ‘시민의식 부족’ 또는 ‘잔인한 사람들’이라고 지적할 것이다.하지만 당시 양복 입고 똥폼 잡고 일반 서민을 개무시 하던 ‘신사’가, 요릿집에서 요리 먹고 도망가다 붙잡혀 맞는 꼴을 보니 일반 서민들은 속이 시원했나 보다. 즉 ‘맞아도 싸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지금도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부르지만, 현재의 시각에서 보면 참 ‘잔인한 노래’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보행용) 지하상가의 몰락

(보행용) 지하상가의 몰락   얼마 전 참 오랜만에 명동을 나갔는데, “응, 지금까지도?“ 한 경우가 있었다.신세계 본점에서 롯데백화점 본점에 이르는 남대문로에 횡단보도가 없고, 오로지 지하보도만 있었기 때문이다. 불편해도 지하보도로 건널 수밖에 없었다. 또 예전 생각이 났다.   우리나라가 한창 개발을 시기에는 차가 우선이었다.차가 귀하게도 했고 길이 좁기도 했지만, 당시엔 사람보다 차가 우선이었다. 보행권이란 말 자체가 없었다. 차가 오면 사람이 피하는 게 정상처럼 생각했다. 길을 건널 수 있는 횡단보도가 차량의 흐름을 막는다고 생각해서였는지, 교차로 같이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에만 설치했다. 그렇지 않은 곳엔 육교를 세웠는데, 육교에는 꼭 잡상인이나 거지들이 있었다. 오르내리기 불편했고, 겨울에 눈이 오거나 얼음이 얼면 정말 위험했다.   한편 1974년 지하철이 개통되면서 우리나라 특히 서울은 본격적인 지하 시대를 맞이했다. 이전에도 지하상가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더 많은 지하상가가 생기면서 고급화되었다. 대표적인 상가가 1979년 롯데쇼핑 지하 롯데일번가였다. 롯데쇼핑은 일본 롯데의 모든 것을 그대로 베껴와, 당시로선 상당히 세련되고 현대적 느낌이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 당시로선 깨끗하고 고급스러운 지하상가가 계속 생겨났다. 대표적인 곳이 소공동 지하상가와 지하철 2~4호선 상가 그리고 강남고속터미널 지하상가였다. 특히 을지로 지하상가는 을지로입구역(롯데백화점)에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까지 무려 2.4km나 됐다.   당시엔 지하보도에 보행자도 많고, 지하상가 역시 중고급 수준의 상가였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보행권이 중시되면서 지상에 횡단보도를 많이 설치하기 시작했다. 지하보도나 육교를 이용하기 불편하고, 특히 노인들의 경우 사고가 종종 발생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지상의 상가도 발전하고 인터넷 쇼핑이 크게 늘면서, 사람들이 굳이 공기도 나쁘고 불편한 지하상가를 찾지 않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거의 대부분의 지하상가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지금의 지하상가는 저렴한 물건 파는 곳으로 바뀌었고, 그나마 파리 날리고 있다. 그런 와중에 필자가 놀란 곳이 바로 명동입구 지하보도였다. 보행자가 많은 곳인데, 횡단보도가 없다니... 서울에서 가장 사람들로 붐비는 대로에 아직까지도 횡단보도가 없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불편해도 할 수 없이 롯데영플라자와 명동입구 사이의 지하보도를 통해 길을 건너야 하고(에스컬레이터가 있는 게이트는 있다), 따라서 지하보도가 붐비니 상가는 나름 유지하고 있었다.   지하철과 관계없이, 아직 남아 있는 보행용 지하상가가 서울에도 꽤 있다.(사진)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는다. 한때는 잘 나갔던 지하상가였겠지만, 지금은 흉물처럼 변해버렸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그림자

그림자   지금은 정전이 드물고, 큰 사고가 아닌 한 한두 시간 안에 복구된다. 하지만 필자가 어렸을 때엔 정전이 잦았다. 그리고 한번 정전되면 복구되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따라서 가정마다 양초가 필수품이었다.   양초를 켜면 늘 하던 게 있었다. 바로 ‘그림자놀이’다.양초 앞에서 손으로 개나 여우 비둘기(새) 토끼 등을 벽에 비춰 만들었다. 자주 하는데도 재미있고 신기했다. 학교 가기 전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배웠다.   그림자야 지금이나 예전이나 똑같지만, 예전엔 그림자가 더 흔하고 친근한 생각이 들었다.특히 해질 무렵에 운동장에서 놀거나 시골 들녁을 지나면 그림자가 길게 늘어나 따라다니는데, 그걸 보며 키가 이렇게 커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게 길어진 그림자가 따라오는 모습을 제대로 보기가 예전만 못하다. 가장 큰 이유는 실내 생활이 길어지고 건축물과 나무가 많아져서다,실내에 있으면 당연히 그림자가 없다. 퇴근 시간대에 해질 무렵 길어진 그림자를 온전히 보기란 쉽지 않다. 일단 시간대가 안 맞는 경우가 많다, 요즘 같은 겨울엔 퇴근 시간엔 해가 이미 졌다. 시간대가 맞아도 건물과 나무가 많아 그림자를 가리고, 벽 같은 건축물에 그림자가 꺾인다. 결국 온전하게 길어진 그림자가 따라오는 모습을 보려면 운동장이나 바닷가 또는 한강공원 같이 탁 트인 곳이어야 한다. (물론 건물 사이 또는 길에서 잠깐씩 볼 수 있지만 따라오는 모습을 보긴 어렵다)   어릴 적엔 늘 따라 다니는 그림자를 무심하고 당연하게 보았다.그리고 그림이나 만화에도 그림자가 자주 등장했다.   하지만 지금은 해질 무렵 길어진 온전한 그림자를 딱히 고려하지 않으면 보기도 쉽지 않은 세상이다.그래서인지 그림이나 만화에서도 그림자가 줄어든 것 같다.   요즘 아이들은 ‘그림자놀이’를 알까? 길게 늘어진 온전한 그림자가 따라 오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까?본 적은 있더라도 관심이 없어서 기억하지 못할 것 같다.   <묻는다칼럼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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