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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안 태어난 게 다행이다

옛날에 안 태어난 게 다행이다   과거의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는 대개 화려한 영웅담을 많이 담는다. 하지만 병사들이나 백성들이 칼에 찔리거나 베이거나 목이 잘려 죽는 장면들을 보면, 정말 잔인하고 끔찍하다. 살아도 포로나 노예가 되어 짐승만도 못한 삶을 살게 된다. 게다가 약탈당하고 겁탈당하고...지금은 전쟁에서 총이나 대포로 깔끔하게(?) 죽지만, 과거의 전쟁에선 칼이나 활을 비롯해 돌에 맞거나 불에 타서 죽었다. 특히 예전엔 살상력을 높이기 위해 화살에 독이나 오물을 묻혀 공격했다. 스치기만 해도 상처가 덧나, 고통 속에서 죽거나 수족을 잘라내야 했다. 군대가 진을 치고 장기전에 돌입하면 특히 먹는 게 문제였다. 깨끗한 식수와 먹거리가 부족하다 보니 전염병이 쉽게 돌았다. 불쌍한 병사들은 객지에 나와, 고통 속에 의미없이 죽어갔다.이렇게 1차대전 이전의 전쟁에선 병으로 죽는 병사들이 더 많았다.   1차대전에선 대포와 기관총의 활약(?)으로, 전투나 전투 부상으로 인한 사망이 크게 늘었다. 그래도 병으로 사망하는 병사들의 수는 30%가 훨씬 넘었다.1차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참호장면이 많이 나온다. 참호를 파고, 그 안에서 먹고 자고 대기하는 시간이 길었다. 문제는 그 참호가 그냥 땅만 판 거라, 배수 시설 같은 게 없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비가 오면 오랫동안 참호에 흙탕물이 차 있었다. (사진)특히 화장실용으로 구덩이를 따로 파긴 하지만, 참호의 특성상 거리를 멀리 두기 힘들었다. 참호 안에서 사망자가 발생하면, 멀리 가서 묻을 수도 없었다. 그런데 비가 많이 오면 넘치기 일쑤여서, 참호에 고인물은 더럽기 그지없었다. 병사들은 ‘온갖 병균 덩어리’ 물 속에서 생활하고, 발은 그 물에 늘 젖어 있었다. 그러니 병사들은 참호 속에서 전염병으로 죽거나, 발이 썩어 발가락과 다리 등을 절단해야 했다. (페니실린 발견 전이다)   한편 ‘대항해 시대’라고 하는 시기가 있었다. 탐험에 나서고 신대륙과 신항로을 발견하던 역동적인 시대였다. 역사적으로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영화나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하지만 선원들 입장에선 목숨을 건 일이었다.여기서도 먹는 게 가장 문제였다. 나무통에 담아온 물은 며칠만 지나도 상하고 썩었다. 딱딱한 말린 빵엔 벌레가 우글거렸고, 소금에 저린 고기는 너무 딱딱해서 씹기 힘들었다. 그래도 살기 위해선 매일 똑같은 것만 먹어야 했다. 이렇게 한 달 정도 참아내면, 이번엔 괴혈병이 찾아왔다. 잇몸에서 피가 나고 이가 빠지며 피부가 까맣게 변했다. 괴혈병 증상으로도 죽었지만, 이가 빠지니 딱딱한 음식을 먹을 수 없어 굶어 죽기도 했다. 습기 속에 쥐와 빈대 등이 창궐한 배 안의 환경은 극악이었다. 항해 도중 사망률이 90% 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생지옥과 다름없었다.   영화와 드라마엔 기사들이 멋있게 활약하던 중세시대에, 백성들은 살아도 산 게 아니었다.여성들은 걸핏하면 마녀로 몰려, 갖은 고문을 당한 후 불에 태워졌다. 하늘이 그 죄를 묻듯, 유럽에선 페스트가 창궐해 전체 인구의 40% 이상 죽었다. 하지만 이는 평균 수치일 뿐, 심한 지역은 80~90%의 인구가 죽었다. 가족이나 친구 동네 사람들까지, 사실상 나만 빼고 거의 다 죽은 셈이다. 간신히 살아남은 몇몇 사람들은 가족과 친구들의 시체를 치워가며, 공포 속에서 버텨야 했다. 그런데 페스트가 창궐한 이유 중 하나가 더러운 환경 탓이었다. 특히 기독교에선 목욕 등 씻는 걸 금기시하면서 전염성을 더 키웠다. 어떻게 평생 씻지 않고 살 수 있지? 매일 샤워하고 머리 감고 수시로 손 씻는 우리에겐, 너무나 더럽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라고 하며, 개척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와 드라마가 낭만적이다. 하지만 그것도 이민 초기시절 얘기다.아일랜드에선 1845년부터 1852년 사이에 발생한 대기근으로, 인구가 약 830만 중 약 10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아일랜드인들은 살기 위해 100만 이상이 미국 등으로 탈출했다. 하지만 탈출선에 타도, 15% ~ 30%가 병으로 배 안에서 목숨을 잃었다. 오죽하면 배를 관함(Coffin Ships - 배 자체가 시신을 나르는 관이라는 의미)이라고 불렀다. 한꺼번에 많은 승객들이 몰리자, 화물선까지 동원해 정원을 훨씬 넘는 사람들을 짐짝처럼 태운 탓에 질병이 만연했다.운이 좋게 살아남아 미국 등에 도착했어도, 기다리는 건 삶을 위한 투쟁뿐이었다. 정해진 일자리를 놓고 기존 현지인들과 목숨 걸고 싸워야 했고, 심지어 어린 아이들조차 중노동에 시달리며 목숨을 연명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앓다가 죽었다.‘이민자의 나라’라는 낭만은 없었다.   그래서 옛날이 아닌 지금 태어난 것만으로도 다행이고,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식당 테이블이 입식으로 바뀐 이유

식당 테이블이 입식으로 바뀐 이유   예전엔 식당에 좌식 테이블이 많았다. 고깃집이나 한식당은 특히 좌식이 많았다. 그런데 최근엔 좌식 테이블 식당을 찾기 힘들다.왜 바뀌었을까?   우선 생활습관(라이프 스타일)이 바뀌었다.국민들이 집에서부터 소파 식탁 침대로 이어지는 입식 생활에 적응하면서, 바닥에 앉을 일이 없어졌다. 그래서인지 젊을수록 양반다리나 쪼그려 앉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좌식 테이블 사용에 불편한 점이 많다.나이 좀 먹을 사람들은 앉았다 일어날 때 다리가 저려, ‘에고고... ’란 소리가 자동으로 나온다. 신발을 벗어야 하는데, 발에서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오기도 한다. 오늘처럼 비 오는 날이면 신발도 젖어서, 벗고 신는 것 자체도 괴롭고 냄새도 더 심하다. 어떤 사람은 발 냄새가 메주 비슷하게 아주 고약한 경우도 있어, 밥맛 떨어지게 하는 주범이 되기도 한다. 또한 오래 앉아 있으면 피가 안 통하고, 바지와 치마가 구겨지는 것도 문제다.특히 식당 바닥이 미끄러운 경우가 많은데, 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로 지나다가 넘어지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종업원들에겐 더 문제다.무거운 뚝배기나 뜨거운 국물이 담긴 쟁반을 들고 이동하다가, 쏟거나 넘어지는 사고 위험도 훨씬 높다. (필자의 후배도 식사하다가 큰 화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는데, 종업원 아주머니는 치료비를 물어야 했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불판을 갈거나 상을 닦고 치우고, 방에 오르내리는 작업은 신체 피로도가 훨씬 높다. 종업원 입장에선 같은 값이면 피하고 싶다.   그런데 최근 좌식에서 입식 테이블로 급속히 바뀐 이유가 또 있단다.바로 식당 좌식 테이블을 입식으로 바꾸는 지원 사업이 지방자치단체(시·군·구)별로 도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2017년부터 일부 지자체에서 시작해, 코로나 전후에 모든 지자체에서 적극 실시해 왔다. 식당마다 소요 비용의 50%에서 최대 90%까지 지원하는데, 보통 업소당 100만 원 ~ 300만 원 정도에서 지자체 재정 여건이나 대규모 위생환경 개선 사업과 맞물릴 때는 최대 2,000만 원까지 통 크게 지원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지자체가 나서서 지원하는 이유는 앞에서 언급한 이유에 더해, 외국인 관광객의 증가와 장애인 문제 해결 등의 이유가 있다.생각해보니 좌식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과 좌식이면 정말 불편할 장애인들을 고려하면, 참 잘하는 지원과 변화라 생각된다.   지자체가 예산을 들여 이런 민간 지원사업까지 하는 걸 보면, 사회가 점점 타인을 배려하며 성숙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코끼리가 가장 무서워하는 동물은?

코끼리가 가장 무서워하는 동물은?   육상에서 가장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코끼리가 가장 무서워하는 동물, 코끼리가 보거나 느끼기만 하면 기겁하고 도망가는 동물은 무엇일까?(힌트: 아주 작은 동물이다)   쥐?아니다. (필자도 쥐인 줄 알았다)더 작은 동물이다.바로바로...벌이다.   “코끼리 가죽이 얼마나 두꺼운데, 그까짓 벌을 무서워 해?”라고 생각하겠지만, 코끼리에게도 아주 약한 부분이 있다. 바로 코 안과 귀 뒤, 눈 주위, 입안 등이란다. 이 부위는 피부가 얇고 민감해서, 벌에 쏘이면 극심한 통증을 느낀다. 특히 벌이 코 안으로 들어가 쏘게 되면, 통증은 물론이고 호흡 장애까지 생길 수 있다.   최근 인간이 농장을 만들어 코끼리 서식지를 파괴하면서, 코끼리와 인간들 간에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영악한’ 인간들이 코끼리가 벌을 무서워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농장 주변에 벌집을 매달아 철사로 연결하기 시작했다. (왼쪽 사진)효과는 아주 좋았다. 코끼리가 농장의 벌집이나 연결된 철사를 건드리면, 벌떼가 뛰쳐나와 코끼리를 공격했다. 코끼리는 기겁하며 도망치기 바빴다. 2017년 케냐에선 이 방법으로 코끼리의 침입을 80%나 막아냈다고 한다.게다가 농민이 벌을 키우는건 자연스럽게 양봉으로 이어졌고, 꿀이 생산되었다. 보츠나와에선 이렇게 생산된 꿀을 모아 팔면서, 여성 농부 1,500명 이상이 일자리를 얻었다고 한다.그야말로 일석이조에 일거양득(一擧兩得), ‘도랑 치고, 가재 잡고’다.   그러면 코끼리는 쥐를 무서워하지 않을까?그렇다,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즉 그동안 우리는 어릴 적 잘못된 지식으로 세뇌를 당해, ‘코끼리가 쥐만 보면 펄쩍 뛰면서 달아난다’고 잘못 배웠다.왜 잘못 배웠을까?아마도 어릴 적 읽었던 〈쥐의 신랑 감 찾기〉또는 〈쥐 양반의 사위 찾기〉라는 동화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위를 얻고 싶었던 쥐 아버지가 돌고 돌아, 결국 가장 훌륭한 신랑감은 같은 쥐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이야기다. 거기에 코끼리가 등장한다. (아주 다양한 버전이 있는데, 코끼리가 등장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코끼리는 쥐에게 "나는 몸집이 크고 힘이 세지만, 작은 쥐가 내 코 속으로 들어오거나 발가락 사이를 갉아먹으면 아파서 견딜 수가 없다. 그러니 나보다 쥐가 더 무섭고 센 존재다."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이 동화의 영향인지, 코끼리가 쥐를 가장 무서워한다는 이야기와 그림(오른쪽 그림)이 많았고, 그렇게 알고 있었다.   사실 덩치가 산 만한 코끼리가 겁이 많은 쥐를 무서워할 리 없다. 하지만 동화나 잘못된 주장은 ‘약자도 강자를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 위한 교훈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다.   잘못된 사실에 입각해 동화를 지어내지 말고, 차라리 과학적 사실에 근거해 벌이 주인공이면 어떨까? 쥐보다도 작은 벌을 코끼리가 무서워한다는 건, 사실이면서도 더 극적이지 않을까?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유전 대(對) 환경 ① - 연산군의 부모

유전 대(對) 환경 ① - 연산군의 부모   사람에게 유전이 중요한지, 아니면 환경이 중요한지에 대한 논쟁은 끝이 없다. 다만 유전과 환경 모두 사람을 결정짓는 데 중요한 요소임은 틀림없다는 생각이다. 유전과 환경의 영향에 대해 얘기하게 된 계기는, 다름아닌 폭군 ‘연산군’에서 비롯됐다. (이하 내용은 역사적 사실과 필자의 사견을 혼합한 것이니, 토 달지 마시길...)   예종이 즉위 1년 2개월 만에 불과 20세 젊은 나이로 요절한 후, 조카인 성종이 13세(1469년)에 왕위에 올랐다. 당시 성종의 나이가 너무 어려, 할머니 정희왕후가 수렴청정을 했다.성종에겐 이미 첫 부인인 공혜왕후가 있었는데, 한명회의 딸이었다. (성종은 원래 3순위였으나, 권력자였던 장인 한명회와 정희왕후의 합작으로 보위에 올렸다는 설이 있다) 공혜왕후는 어린 나이에 왕비가 되었음에도 아버지 한명회와 달리(?), 시어머니와 할머니 등 왕실 어른들을 극진히 모셨다. 후궁들에게도 질투를 하지 않고 옷감을 나눠주는 등, 인자한 성품으로 궁중의 칭송을 받았다. 하지만 성종이 즉위 후 수년이 지나도 공혜왕후에게서 아이가 생기지 않자, 왕실의 후사를 잇는다는 명목으로 1473년(성종 4년, 17세) 후궁들을 간택해 입궁시켰다. 이때 후궁(숙의)으로 들어온 인물 중 한 명이, 바로 훗날 연산군의 어머니가 되는 (폐비) 윤씨였다.   우선 성종의 외모에 대해 실록에서는 '미풍의(美風儀) 준정(峻整)'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용모가 아름답고 풍채가 훤칠하며 당당하다"는 뜻이다. 성종은 관대하고 온화한 성품에 어울리는 훤칠한 호남형 외모로, 조선 양반 사회에서 생각하는 '덕을 갖춘 군주의 용모'에 딱 맞았다.실록에 따르면, (폐비) 윤씨는 성종에게 "전하의 용모가 아름다우시니, 훗날 나이 들어 늙으시면 반드시 여색을 탐하고 후궁을 바치려는 자들이 몰려들 것입니다"라고 직접 말할 정도였다.   한편 성종은 밤과 낮이 완전히 다른 인물이었다.낮에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경연에 참석하며 유교적 삶을 살았다. 하지만 밤만 되면 술과 여색으로 밤을 지샜다. 18세가 되던 해 할머니 정희왕후의 수렴청정이 끝나고 친정을 시작하면서, 성종은 왕으로서 권력을 행사함과 동시에 벌써부터 후궁을 적극적으로 늘려갔다.   오죽하면 실록에는 성종이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거나 후궁의 처소에만 머무르는 것을 두고, 신하들이 "전하께서 여색을 너무 가까이하여 건강을 해치실까 두렵다"라며 간언하는 기록이 수차례 등장한다고 한다. 성종은 결국 12명의 부인(왕비 및 후궁)에게서 28명의 자녀(16남 12녀)를 두었을 만큼, 역대 조선 국왕 중 손에 꼽힐 정도로 여색을 많이 밝힌 임금이었다. 성종은 재위 25년간 ‘유교적 모범 군주(도학군주)’를 지향하여 매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경연(학문 토론)과 학문과 정사에 매달렸지만, ‘왕실의 후사를 잇는다’는 명목으로 술과 여색을 매우 즐겼다. 이는 과도한 정사 스트레스와 더불어 몸의 면역력을 떨어뜨리고 만성 피로와 종기를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어, 결국 만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그럼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의 외모는 어땠을까?성종실록에는 윤 씨의 외모에 대해 "용모가 아름다워(미색, 美色) 왕의 은총을 독점했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또한 성종이 반대를 무릅쓰고 후궁이었던 윤 씨를 두 번째 왕비(계비)로 맞아들인 것을 볼 때, 상당한 미모와 매력의 소유자였음을 알 수 있다. (만약 주변의 의견에 따라 정식으로 다른 계비를 맞이했으면, 조선의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윤씨는 중전이 됐으면, 임금이 만날 다른 후궁들과 주색잡기를 해도 모르는 척 했어야 했다. 기록에 따르면 폐비 윤씨는 다른 후궁들을 극도로 질투하고 감정의 기복이 매우 컸는데, 성종과 다투다 그만 용안(왕의 얼굴)에 손톱자국을 내는 엄청난 사건을 일으키게 된다. 이로써 윤 씨는 졸지에 폐비된다. 이렇게 윤 씨의 아들 연산군이 불과 생후 4개월 만에 어머니와 격리되고, 4세 때 어머니가 사약을 받고 죽는 비극을 맞으며 역사의 풍랑을 예고했다.(생후 4개월이라면, ‘윤 씨는 산후 우울증을 겪고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참 아까운 일이다.)   <다음에 계속>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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