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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가 가장 무서워하는 동물은?

코끼리가 가장 무서워하는 동물은?   육상에서 가장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코끼리가 가장 무서워하는 동물, 코끼리가 보거나 느끼기만 하면 기겁하고 도망가는 동물은 무엇일까?(힌트: 아주 작은 동물이다)   쥐?아니다. (필자도 쥐인 줄 알았다)더 작은 동물이다.바로바로...벌이다.   “코끼리 가죽이 얼마나 두꺼운데, 그까짓 벌을 무서워 해?”라고 생각하겠지만, 코끼리에게도 아주 약한 부분이 있다. 바로 코 안과 귀 뒤, 눈 주위, 입안 등이란다. 이 부위는 피부가 얇고 민감해서, 벌에 쏘이면 극심한 통증을 느낀다. 특히 벌이 코 안으로 들어가 쏘게 되면, 통증은 물론이고 호흡 장애까지 생길 수 있다.   최근 인간이 농장을 만들어 코끼리 서식지를 파괴하면서, 코끼리와 인간들 간에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영악한’ 인간들이 코끼리가 벌을 무서워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농장 주변에 벌집을 매달아 철사로 연결하기 시작했다. (왼쪽 사진)효과는 아주 좋았다. 코끼리가 농장의 벌집이나 연결된 철사를 건드리면, 벌떼가 뛰쳐나와 코끼리를 공격했다. 코끼리는 기겁하며 도망치기 바빴다. 2017년 케냐에선 이 방법으로 코끼리의 침입을 80%나 막아냈다고 한다.게다가 농민이 벌을 키우는건 자연스럽게 양봉으로 이어졌고, 꿀이 생산되었다. 보츠나와에선 이렇게 생산된 꿀을 모아 팔면서, 여성 농부 1,500명 이상이 일자리를 얻었다고 한다.그야말로 일석이조에 일거양득(一擧兩得), ‘도랑 치고, 가재 잡고’다.   그러면 코끼리는 쥐를 무서워하지 않을까?그렇다,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즉 그동안 우리는 어릴 적 잘못된 지식으로 세뇌를 당해, ‘코끼리가 쥐만 보면 펄쩍 뛰면서 달아난다’고 잘못 배웠다.왜 잘못 배웠을까?아마도 어릴 적 읽었던 〈쥐의 신랑 감 찾기〉또는 〈쥐 양반의 사위 찾기〉라는 동화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위를 얻고 싶었던 쥐 아버지가 돌고 돌아, 결국 가장 훌륭한 신랑감은 같은 쥐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이야기다. 거기에 코끼리가 등장한다. (아주 다양한 버전이 있는데, 코끼리가 등장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코끼리는 쥐에게 "나는 몸집이 크고 힘이 세지만, 작은 쥐가 내 코 속으로 들어오거나 발가락 사이를 갉아먹으면 아파서 견딜 수가 없다. 그러니 나보다 쥐가 더 무섭고 센 존재다."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이 동화의 영향인지, 코끼리가 쥐를 가장 무서워한다는 이야기와 그림(오른쪽 그림)이 많았고, 그렇게 알고 있었다.   사실 덩치가 산 만한 코끼리가 겁이 많은 쥐를 무서워할 리 없다. 하지만 동화나 잘못된 주장은 ‘약자도 강자를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 위한 교훈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다.   잘못된 사실에 입각해 동화를 지어내지 말고, 차라리 과학적 사실에 근거해 벌이 주인공이면 어떨까? 쥐보다도 작은 벌을 코끼리가 무서워한다는 건, 사실이면서도 더 극적이지 않을까?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당구장은 ➀ - 예전엔

당구장은 ➀ - 예전엔   필자가 고등학교 졸업할 당시, 당구는 성인의 상징과 같았다. 미성년자(고등학생까지) 출입금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성인이 되는 관문을 통과하는 것처럼, 거의 모든 졸업생들은 담배와 술과 함께 당구를 시작했다. (이전부터 했어도, 공개적으로 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임)   당구장도 정말 많았다. 대로변이면 어디서나 2층의 당구장을 찾을 수 있었다. (지하엔 습기가 차서 공이 잘 굴러가지 않는다며 피했다) 누구나 워낙 흔하게 보다 보니, ※를 아예 당구장 표시라 칭하기도 했다.   당구장엔 늘 젊은 남성들로 늘 붐볐고, 담배 연기가 가득 자욱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당구에 미치는 경우도 많았다. 자려고 누우면 천장에 당구공이 왔다갔다 하며, 삼각함수를 공부한다는 농담을 했다. 하지만 공부에 매진해야 하는 재수생들까지 당구에 빠져, 재수를 망치는 경우도 흔했다.   당시에도 일본식 용어가 많았다. 마세이 오시 히까끼 무시 가라꾸 등 발음이 맞는지도 모르고 엉터리라도, 그런 단어를 말하면 마치 뭐라도 된 듯 여겼다. 지금은 쓰리 쿠션을 많이 하지만, 예전엔 주로 사구를 쳤는데 마지막은 쓰리 쿠션 또는 뱅크샷(가라꾸)으로 마무리해야 게임을 이길 수 있었다.   당구장 한쪽에는 꼭 도박을 하는 사람들이 한 테이블 정도 있었다. 무슨 용도인지는 모르겠지만 화투패까지 들었다 놨다하는데, 눈빛이 다른 손님과는 확연히 달랐다. 돈이 걸리면 그렇게 되나 보다.   당구장에서 주문해 먹는 짜장면은 참 맛있었다. 여의도 같은 오피스 타운의 당구장에서는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에 당구장에서 짜장면으로 점심을 해결하며 겸사겸사 당구하는 모습도 많았다.   당시엔 당구 전용 장갑이 없어서, 작업용 목장갑을 끼거나 석회가루를 묻혔야 했다. 석회가루도 처음엔 석회가루가 들어 있는 주머니가 많았는데, 어느 순간 석회 덩어리가 등장해 그걸 만지면 석회가루가 손에 묻어나며 가루 날림을 줄여줬다. 당구를 하고 나면 당연히 석회 가루가 옷에도 묻었다. 초크 가루까지 합쳐져, 본의 아니게 당구를 쳤다는 표시를 냈다.   필자가 처음 당구장을 갔을 때만 해도 당구공이 두 가지였다. 국산공(코스모스공/막공)과 고급 벨기공이다. 게임 가격도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벨기공이란 건 ’벨기에공‘ 즉 벨기에에서 제작되어 수입한 공이란 뜻이었다. 제미나이에게 물어보니, 벨기에의 당구공 제조 전문 기업인 아라미스(Aramith / Saluc 사)에서 제작한 고품질 당구공을 의미한단다. (지금도 전세계 대표 당구공이라고 한다) 이후 빠른 속도로 모든 당구공이 벨기공으로 바뀌며, 굳이 구분을 하지 않아도 벨기공이 당연한 것이 됐다.   <다음에 계속>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세계 최고속 이사

세계 최고속 이사   요즘 우리나라에서 이사할 때 대부분 사다리차를 이용한다. 게다가 포장이사를 하면 전문가들이 척척 일을 해주니, 정말 편하고 빠르다. 아침에 시작하면 오후에 끝나고, 저녁에 청소하면 끝이다. (자리 잡는 시간은 빼고) 사다리차를 사용하는 세계 유일한 나라이고, 이사 역시 세계 최고 속도다. ‘빨리빨리의 민족’ 답다. 외국인들은 한국인들의 이사 모습을 보고 ‘경악’한다. 자기 나라에선 대부분 이삿짐을 직접 나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엘리베이터가 없는 집도 많다. 그래서 외국인들의 이사는 한국처럼 하루에 끝나는 게 아니라, 짐을 싸고 나르고 올리고 풀고 ... 기본이 며칠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아침에 짐을 빼면, 오후에 다른 집의 짐이 들어오는 순환 구조다.(그 틈에 재빨리 도배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쪽 집에서 돈을 받아서 나가고, 저쪽 집에 돈을 줘야 들어갈 수 있다. 따라서 ‘빨리빨리 이사’는 우리나라 특유의 주택 거래 구조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사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역시 이사를 직접 했다. (트럭 운전기사가 일부 날라줬지만)그래서 “이사한다” 하면, 친지들을 불러 다 같이 짐을 이고 지고 날랐다. 당시엔 장독(항아리)이 많았는데, 가끔 깨져서 난리가 나는 사고를 치기도 했다. 하지만 도와주러 왔다가 사고가 난 것이므로, 뭐라 할 수도 없었다. 이삿짐을 도와주면 특별히 탕수육까지 사줬다. 그래도 이사를 도와주는 건 서로에게 ‘민폐’이자 ‘신세 지는 일’이었다.   1990년대부터 ‘남들에게 신세 지는 걸 꺼려 하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일꾼을 동원하기 시작했다.저층 아파트나 빌라 같은 주택에선 장롱을 계단으로 올리지 못해 로프에 묶어 창문을 통해 들어 올렸는데, 일꾼들은 이를 ‘로프 작업’이라며 웃돈을 받았다. 고층 아파트엔 곤돌라가 있었다. 곤돌라에 이삿짐을 실어 올렸는데, 창문에 닿지 않도록 외부에서 양쪽으로 한 사람씩 잡아줘야 했다. 하지만 위에서 들어 올리는 곤돌라는 흔들리고, 바람의 영향도 커서 위험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중반부터 건설 현장에서 자재 운반용으로 쓰이던 사다리차 장비를 이삿짐 현장에 도입하기 시작했다. (누가 맨 처음 했는지 몰라도, 참 아이디어가 좋다) 또한 ‘통인익스프레스’로 시작된 포장이사 문화가 확산되면서, 사다리차는 탑차와 함께 대한민국 이사의 독특한 필수장비로 자리 잡았다. (요즘 고가 주택에는 이사 전용 엘리베이터가 따로 있다) 외국인들은 사다리차를 보고 처음엔 소방차(굴절사다리차)로 착각해, 불이 자주 난 줄 알았다고 한다.   아무리 이사가 편해졌다 해도, 이사는 참 힘든 일이다. 이사하기 전에 짐 정리도 해야 하고, 가스 차단과 통신 또는 관리비 등 이사 전후에 해야 할 것도 많다. 이사가 편해진 만큼, 이사 비용도 크게 올랐다.   필자는 이사 자체가 싫어, 가급적 한 집에 오래 살려 한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한강, 예전과 지금

한강, 예전과 지금   필자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강 근처에서 살아왔다. 한강이 좋아서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군대 있을 때와 신혼 초기 잠깐을 제외하면 늘 한강 근처에 살아왔다. 지금도 출퇴근을 위해 하루에 두 번씩 한강을 건너며 한강을 보는데, 한강은 언제나 아름답고 멋지다. (사실은 휴대폰 들여다보느라, 언제나 한강을 보는 건 아니지만...)   서울처럼 큰 도시에 있는 강 중엔, 아마 세계에서 손꼽힐 만큼 큰 강일 게다. 외국인들은 한강을 보면 “바다가 아니냐”며 크기에 놀라곤 한다. 게다가 깨끗하고 재미있는 게 참 많은 강이다. 특히 한강 공원은 외국인에게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가 되었는데, 한강 공원은 필자가 외국인에게 추천하는 첫번째 관광코스다.   그런데 사실 예전의 한강은 지금처럼 아름답고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한강은 서울을 가로지르며 두 쪽 낸 원흉(?)이자, 공포의 대상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한강 다리를 폭파한 사건을 봐도, 옛날엔 한강을 건너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필자가 어렸을 때엔 한강에 다리가 몇 개 없었다. 당시 서울의 한강은 교통과 발전을 막는 ‘장애물’이란 인식이 컸다. 또한 필자가 사는 동네 근처는 상습 침수지역이기도 했다. 비가 많이 오면 홍수가 자주 났고, 주민들이 물을 퍼내는 장면에 익숙했다. 한강변 역시 자연상태에 가까워, 뚝섬 등 일부 유원지를 제외하면 놀러 가는 게 위험한 일이었다. 수질도 좋지 않아 낚시로 잡은 물고기조차 먹을 수 없었다.이렇게 서울 사람들은 ‘커다란 한강’을 국가와 사회의 ‘장애와 위협’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한강이 없었으면 또는 템즈강처럼 좁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정도다. 지금은 한강을 따라 도로를 놓는다. 사유지가 아니라 돈도 적게 들고, 신호등도 없어서 동서 방향의 기간 도로가 됐다.게다가 넓은 한강은 탄소와 공해 물질을 흡수한다. 특히 대규모 수면이 바람길 역할을 하여 도심 열섬 현상을 완화하고 공기를 순환시킨다.넓은 강변은 시민공원으로 탈바꿈해, 대규모의 아름다운 휴식처를 제공한다.큰 강 자체가 주는 아름다운 풍광 자체로도 훌륭한 볼거리다. 특히 해질녁의 노을은 대체불가다.물도 깨끗해, 낚시도 즐기고 수달이 살고 있다.그래서 이제 서울에선 ‘커다란 한강’이 국가와 사회의 ‘자원과 축복’으로 생각한다.   예전과 지금의 차이가 발생한 원인은 딱 하나다.‘치수’ 즉 강을 통제하는 기술과 능력이다.과거에는 자연을 통제하지 못해 발생하는 비용과 위험이 더 컸다면, 기술 발전과 자본 증대로 인해 현재는 혜택과 가치라는 장점이 훨씬 커졌다.   이렇게 같은 한강이라도, 시대에 따라 다른 취급(?)을 받고 있다.실제 한강 근처에서 거의 평생을 살아온 필자의 생각도 그렇게 변해왔다.앞으로도 아름다운 한강 근처에서 살고 싶다. (사진)   “(한)강변 살자♬“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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