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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M송 전성시대

CM송 전성시대얼마 전 식사 자리에서 누군가 ‘줄줄이사탕으로 엮어 들어간다’는 얘길 했다. 순간 줄줄이사탕 CM송과 함께 과거 CM송들이 생각났다. (또 라떼 얘기임)    사실 줄줄이사탕의 인기는 짧았다. 하지만 ‘줄줄이사탕’이란 단어와 CM송은 워낙 강력하게 사람들 뇌리에 박혔다, 줄줄이사탕 광고는 단순했다. 당시 필자 또래의 초등학생이 기타 치며 노래를 부르고, 노래에 맞춘 화면이 등장하는 형식이다. “아빠 오실 때 줄줄이, 엄마 오실 때 줄줄이, 우리들은 오리온 줄줄이 가족~”   우리나라 최초의 CM송은 1959년 제작된 진로소주 CM송이다. “야야야 야야야 차차차.... 너도 진로 나도 진로...”라는 노래와 함께, 당시로선 파격적인 애니메이션 광고가 등장했다. 당시엔 국내엔 변변한 일자리가 없어 외국의 배를 타는 ‘마도로스’가 선망의 직업이었는데(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 뱃사람들이 등장한다.   사실 CM송의 황금기는 70~80년대였다. 역사에 남을 만 한 주옥같은 CM송들이 등장했다. 지금까지 필자가 꼽는 최고의 CM송은 오란씨다. “하늘에서 별을 따다 하늘에서 달을 따다 두 손에 담아드려요~ 아름다운 날들이여 사랑스런 눈동자여 오오오 오란씨” 이에 경쟁 제품들이 등장했는데 그중 하나가 써니텐이다. “태양의 정열을 마시자 써니텐~”로 시작하는 CM송이 기억난다.당시엔 CM송을 히트시키는가가 광고의 주요 포인트가 되기도 했었다. 가장 치열했던 게 롯데껌과 해태껌의 대결이었다. “주시후레시 후레시민트 스피아민트 롯데껌, 좋은 사람 만나면 나눠 주고 싶어요, 껌이라면 역시 롯데껌”에 대한 맞불로 “해태껌 부드러운 맛 해태껌 상쾌한 기분 해태 해태 해태껌”으로 대항했다.아카시아껌 CM송도 인기였다. “아름다운~ 아가씨~ 어찌 그리 예쁜가요~ 아가씨 그~윽한 그 향기는 뭔가요, 아~아~ 아카시아 껌”흔히 빨아 먹는 빙과의 시초를 ‘쭈쭈바’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전에 나온 ‘아이차’다. “입안이 얼얼~ 삼립 아이차”라는 CM송이 있었다.송창식이 부른 “엄마 아빠도 함께 투게더, 온가족이 함께 투게더~”도 인기였다.   당시 CM송은 특히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이유가 뭘까?필자의 생각으론 1975년 12월 터진 ‘대마초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내로라할 가수들이 모조리 연루되면서 우리나라 가요계는 쑥대밭이 되었다. 게다가 군부 독재로 인해, 자유로운 창작보다 사랑 타령이나 하는 음울한 가요들만 살아남게 되었다. 그럴 때 짧지만 발랄하고 상쾌한 멜로디 그리고 가슴에 와닿는 가사로 호소하는 CM송은 단순한 광고가 아닌 노래로 다가왔다. 특히 대마초 파동으로 방송출연이 금지되었던 뮤지션들은 생계를 위해 CM송 제작에 뛰어들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김도향과 윤형주다. 그 두 뮤지션은 CM송계에서 양대산맥을 이루며 각각 1천여곡씩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민주화와 한국 가요의 발전을 이루면서 CM송의 위력은 이전만 못해졌다. 그 자리엔 짧고 강력한 카피 또는 슬로건이 채워졌다. ‘순간의 선택이 십 년을 좌우합니다’ 또는 ‘여자의 변신은 무죄’ 같은 게 그 사례다.   어쨌든 옛날 즐겨 듣고 부르던 CM송을 생각하고 속으로 부르고 나니 즐겁다.필자는 역시 꼰대가 맞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버리는 게 없었던 귤

버리는 게 없었던 귤   어제 저녁에 귤을 하나 까먹었다. (사과나 배를 굳이 ‘깎아 먹었다’고 하진 않지만, 이상하게 귤이나 바나나의 경우 굳이 ‘까먹는다’라는 표현을 종종 사용한다) 천혜향 품종인데 탱탱하면서도 겉껍질이나 속껍질 모두 얇고, 달콤새콤하면서 과즙도 많아 정말 맛있는 과일이라고 생각한다)그런데 까 놓은 껍질을 보니 또 어릴 적 생각이 났다.   필자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해도, 귤은 사과나 배에 비해 귀한 과일이었다. 당시 일본에서 귤나무 종자를 들여왔다는 얘기가 있었다.(사실인지는 모르겠다) 국산 귤은 제주도 일부 지역에서만 났는데, ‘귤나무 하나면 자식 대학교 보낸다’라고 할 정도로 비쌌다. 하지만 맛은 별로였다. 지금에 비교하면 아주 시고 단맛은 적었다.당시엔 또 ‘미깡(아마 밀감의 일본식 발음이 아닐까 싶다)’이란 게 있었는데, 귤보다 크고 지금의 한라봉처럼 투박하게 생겼다. 하지만 껄질도 두껍고 맛은 귤보다도 더 셨다. 당시엔 피부가 좋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는데, ‘얼굴이 미깡 껍질 같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어쨌든 귀한 귤을 먹고 나면 그 껍질도 그냥 버리지 않았다.귤꼅질엔 작은 알갱이들이 박혀 있는데, 껍질을 접으면 알갱이들이 톡톡 터지며 즙이 나왔다. 그러면 그걸 ‘비타민C’라면서 손이나 얼굴에 문지르고 발랐다. 향도 좋았다.또 귤껍질을 모아 차를 끓여 마시기도 했다. 귤껍질차는 귤향이 은은하면서 풍미가 있어, 귤 대신에 좋아라 마셨다. 이렇게 귤은 버리는 게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귤껍질을 모아 차로 마시는 경우는 별로 없다. 워낙 마실 차 종류가 많은데다, 농약이 걱정되기도 해서다. 언젠가 전문가가 방송에 출연해 귤껍질차가 아주 좋은 것이라며 농약이 수용성이어서 흐르는 물에 잘 씻으면 괜찮다고 했지만, 왠지 찝찝해서 귤껍질차 인기는 최근 크게 줄었다. 하지만 지금도 귤껍질로 만든 차를 판다.   어제 먹고 남은 귤껍질을 버리려고 하니 옛 생각이 나서, 오랜만에 껍질을 톡톡 터트려 손과 얼굴에 발라 보았다. 평소에 귤을 먹고 나면 아무 생각없이 귤 껍질을 버리온 걸 생각하니, 아까우면서도 괜히 죄짓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아저씨가 ‘이놈’ 한다!

아저씨가 ‘이놈’ 한다!   어제 석촌호수를 걷다가 귀에 확 들어오는 말이 있었다.앞에 70대 할머니와 손자로 보이는 어린 아이가 가도 있었다. 아이가 말을 안 듣거나 떼를 썼는지, 할머니가 갑자기 “(너 자꾸 말 안 들으면 또는 떼를 쓰면) 아저씨가 ‘이놈’ 한다”짜증이 나면서도, 순간 어릴 적 생각이 떠올랐다.   당시에 엄마나 할머니들은 위와 같은 경우에 이런 말을 자주 썼다.엄마나 할머니가 아이에게 “너 말 안 들어서 엄마는 같이 못 살겠다”라며, 지나가는 아저씨에게 “아저씨 얘 좀 데려가세요”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면 가끔 친절한(?) 아저씨는 “그래 나랑 같이 가서 살자”라며 아이의 손을 잡기도 했다. 그러면 아이는 겁에 질려 울면서 엄마나 할머니 뒤에 숨곤 했다.그러면 아저씨는 “엄마 말 잘들어야 돼”라고 교훈(?)을 주곤 지나갔다.심지어 지나가던 경찰관에게 “경찰 아저씨, 얘 좀 잡아가 주세요, 말을 너무 안 들어서 안 되겠어요”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이들은 경찰이 무서운 사람이란 건 안다. 가끔 친절한(?) 경찰관이 아이에게 “너 자꾸 엄마 말 안 들으면 경찰서 데려간다”라고 호응해 주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면 아이는 당연히 기겁했다.   필자도 이런 경우를 당했는지 기억은 없다. 그런 경우가 없었는지, 있었는데 기억을 못 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런 가족의 협박을 볼 때마다 정말 불쾌하게 느꼈다.필자가 대학생 때 교련복을 입고 길을 가는데 어떤 할머니가 나에게 어떤 아이를 가리키며, “아저씨 얘한테 ‘이놈’ 하고 야단 좀 쳐주세요”하는 게 아닌가? 필자는 그렇지 않아도 이런 걸 싫어하는데다, 하도 당황스럽고 황당해서 “제가 왜요?” 하며 자리를 급히 피해 간 적이 있다.이런 경우는 지나던 사람이 엿장수나 군인이나 가리질 않았다. 집에 찾아 온 엿장수에게 “얘 강냉이랑 바꿔줄테니 데려가세요”라고 말하는 것도 봤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서적 아동 학대다.그런데 당시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웬만한 아동 학대는 그러려니 했기 때문이다. 키우는 자녀 수가 많기도 했고 경제적으로 힘들다 보니, 애들이 원하는 걸 해줄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하지만 위와 같은 방식은 효과는 빠를지언정, 아이들의 가슴에 깊이 남을 수 있는 상처를 줄 수 있다.   언젠가부터 아이들이 줄다 보니, 이런 학대(?)는 없다고 생각했었다.요즘도 아무런 생각 없이 이런 협박을 쉽게 하는 할머니를 보니, 기분이 영 찜찜했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고위공직자와 국회의원 신고재산을 보니...

고위공직자와 국회의원 신고재산을 보니...   어제와 오늘 고위공직자와 국회의원 재산 신고 내역이 발표되었다. 신고 재산이 고위공직자는 평균 19억원대 국회의원은 25억원대였다. 신고 내역이 그러하니 실제론 그보다 더 많을 것이다. 이래저래 누락되었거나 부동산의 경우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를 보니 필자는 그동안 뭘 하고 살았나 싶다.그동안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았다. 아내는 ‘파란만장’하다고 말한다. 물론 고위공직자나 국회의원이면 나름대로 성공한 사람들인데, 평생을 ‘성공’하고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아온 필자가 그들보다 재산이 더 많기를 바랄 순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얼마 전 사회에서 알게 된 후배와 저녁을 같이 했다.그는 필자에게 정말 부럽다고 했다. ‘아내와 가족이 있고, 다들 잘살고 있고, 게다가 예쁜 손녀까지 있으니 다 갖춘 거 아니냐’고 말했다. 생각해보니 그 말도 맞다. 별 걱정거리가 없고 손녀 얘기할 때마다 웃음이 넘치니, 나름 행복한 게 맞는 것 같다. 다만 스스로 자주 못 느낄 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출근하는 길에 아파트 담 밑에 핀 잡초들을 보게 되었다. (사진)한 줌도 채 안 되는 흙에서도 잡초들은 저렇게 악착같이 생을 유지하며 자라고 있다. 저들에게 더 많은 흙이 있으면 좋긴 하겠지만, 오히려 지금에 만족하면서 그대로 유지하길 바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필자에게 재산이 더 많으면 좋겠지만, 환갑이 넘은 나이에 남에게 손 안 벌리고 최소한의 품위 유지라도 한다면 된 거 아닌가 싶다.그래,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오늘은 ‘작은 것에 만족하며, 큰 걱정거리 없음에 행복하자’라고 생각하며 씩씩하게 발걸음을 재촉했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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