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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고리 존재의 가치

열쇠고리 존재의 가치   며칠 전 지인으로부터 열쇠고리를 선물받았다.그런데 쓸데가 없다.열쇠고리는 어느 순간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이유는 간단하다. 요즘은 열쇠가 필요한 자물쇠보다, 번호키나 카드키를 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열쇠가 필요 없으니 열쇠고리도 필요가 없어졌다. 열쇠를 복사하는 가게도 일이 없어졌다.   한때 열쇠고리는 간단한 선물로 많이 애용되었다. 여행을 가도 기념으로 열쇠고리를 잔뜩 구매해, 주변에 나눠주기도 했다. 사은품으로 열쇠고리를 주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받아도 애물단지다.   필자가 20대 쯤엔 남성들이 열쇠고리에 열쇠를 여러 개 꽂아서 허리춤에 차는 게 유행인 적도 있었다. 거기엔 아파트 열쇠 두세 개에 사무실 등 열쇠를 꽂았다, (당시엔 아파트에 산다는 것도 중산층 이상이라는 표시였다) 백미는 차열쇠(차키)였다. 차가 없어도 폼으로 차키를 꽂아서 자랑스럽게 허리춤에 차고 다녔다. (그만큼 아무나 차를 소유하기 어려웠다) 지금은 굳이 차키가 필요 없는 차도 많다. 아파트나 연립주택은 물론 웬만한 사무실도 거의 번호키나 카드키다. 즉 예전에 비해 열쇠의 용도가 크게 줄었다. 게다가 남성들은 백이나 가방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경우가 많아, 커다란 열쇠고리는 더더욱 불필요한 존재다.   열쇠고리는 열쇠가 필요해야 존재의 가치가 있다.세상이 디지털로 바뀌면서 사라져가는 열쇠와 열쇠고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디지털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면, 사람의 가치도 떨어질까?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단속해준 경찰관에게 고마워 해야

단속해준 경찰관에게 고마워 해야   어제 어떤 방송사 뉴스에 재미있는 소식을 소개하는 코너에서 방송한 동영상을 보다 깜짝 놀랐다.처음엔 눈속임이나 장난 또는 마술인가 싶었다. 그런데 실제 상황이었다.인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 파테푸르에서 지난 10일(현지시간) 과속으로 달리던 삼륜택시가 경찰에 적발됐다. 그런데 삼륜차에서 승객이 끝도 없이 내렸다. 무려 27명이나 그 작은 삼륜차에 타고 있었다. 오토바이를 개조한 삼륜차 ‘오토릭샤’는 보통 3명이 타고, 최대 6명까지 탈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27명이라니? 도대체 어떻게 타고 있었을까? 바닥에 깔리고, 구석에 처박히고, 공중에 떠 있고... 게다가 과속까지?기네스북에 올라도 될 것 같다. 평소에 많이 해 본 솜씨일 것 같다. 아무나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하여간 이런 무지막지한 시도를 한 인도사람들의 발상에 기가 찰 뿐이다.   필자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우리나라에 삼륜차가 많았다. 하지만 인도와 달리 화물차로 사용했다.삼륜차가 1톤 트럭보다 더 많았던 것 같다. 당시에 웬만한 짐은 삼륜차 몫이었다.당시 삼륜차도 인도의 경우처럼 오토바이 엔진을 사용했다. 따라서 힘이 달릴 것 같은데, 그래도 짐을 한껏 싣고 잘 달렸다.   그런데 삼륜차의 가장 큰 약점은 안정성이다.바퀴가 세 개이다 보니 과속을 하거나 급커브를 돌 때 전복이 잘됐다. 그리고 화물칸 크기도 작았다.1톤트럭이 보급되면서, 위험하고 작고 힘이 모자란 삼륜차는 퇴출되었다.   어쨌든 인도의 삼륜차 사건을 보면, 운전자는 재수 없어 경찰에 단속되었다고 푸념할 지 모른다. 하지만 27명이나 태운 상태로 과속 운전하다가 사고라도 나면, ‘대형’ 인명사고가 난다. 따라서 운전자와 탑승객들은 단속을 해 준 경찰관에게 오히려 생명의 은인처럼 고마워해야 한다. 사고라는 게 미리 예고하고 오는 게 아니지 않은가?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2022년 신체적 표현의 자유

2022년 신체적 표현의 자유   필자가 어렸을 떄인 1970년대 중반엔 경찰이 ‘풍기문란’이란 이유로 남성의 장발과 여성의 미니스커트 단속을 했다.장발은 옆머리가 귀를 덮거나 뒷머리가 옷깃을 덮으면 단속대상이다. 걸리면 근처 이발소에 데러가서 가위로 뭉텅 잘라냈다. 또한 경찰은 자를 가지고 다니며 여성들 치마가 무릎에서 10cm 이상인지를 재기도 했다.   그래서 나온 노래가 있었다.“어머님의 말씀 안 듣고 머리 긴 채로 명동 나갔죠내 머리가 유난히 멋있는지 모두들 나만 쳐다봐바로 그때 이것 참 큰일 났군요 (경찰)아저씨가 오라고 해요왠일인가 하며 따라갔더니 이발소에 데려가 내 머리 싹둑......”당시엔 전세계적으로 장발이 유행이었다.모든 사상을 통제하던 독재정부에선 신체적 표현의 자유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머리 길이를 가지고 뭐라하지 않는다. 남성이 머리를 빡빡 밀든 허리까지 머리를 기르든, 자기 마음이며 표현의 자유다. 여성들도 똥꼬치마를 입든 핫팬티를 입든 배꼽티를 입든 마찬가지다.   그런데 지난달 31일 서울 강남 일대에서 바이크 유튜버 남성 A씨와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 여성 B씨가 비를 맞으며 오토바이를 탔다. 당시 남성 A씨는 상의를 벗고 여성 B씨는 비키니만 입은 상태로, 3시간 동안 오토바이로 강남 곳곳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두 사람은 사고의 위험 때문에 헬멧을 착용하고 20~30km의 속도를 유지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에 대해 경찰은 경범죄처벌법상 과다노출 혐의를 적용할 지를 검토 중이다.경범죄처벌법에 따르면 공개된 장소에서 공공연하게 성기·엉덩이 등 신체의 주요한 부위를 노출하여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을 주는 경우 경범죄처벌법상 과다노출죄가 적용돼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에 처할 수 있다.   필자는 법 전문가는 아니지만 필자의 생각을 정리해 봤다.우선 남성 A씨는 별 문제가 없을 것 같고, 여성 B씨가 논란의 대상인 것 같다. 하지만 B씨가 비록 비키니 수영복을 입긴 했지만,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아 앞에서 운전하는 A씨를 꼭 안고 있었다. 즉 엉덩이나 가슴 부위가 노출된 것도 아니다.따라서 이 정도 퍼포먼스를 법으로 처벌한다는 건 사회의 성숙도로 볼 때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법의 잣대로만 억지로 꿰어맞춘다면, 이는 결국 사상과 예술과 문화의 발전을 가로막는 일이다.우리나라도 이제 이 정도의 신체적 표현은 관대하게 넘어갈 만하지 않을까?   <묻는다일보 발행ㄹ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책가방 받아주던 시절

책가방 받아주던 시절   어제 사무실에 출근하고 의자에 앉았는데 바지의 허벅지 부분에 먼지 같은 게 묻었다. 물티슈로 닦아도 잘 안 지워졌다. 이게 뭔가 하고 생각해봤더니, 필자의 배낭을 무릎 위에 올려 놓은데서 묻은 것 같았다.순간 필자 어렸을 때 가방 받아주던 장면이 생각났다. (또 ‘라떼’ 얘기임)   필자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사물함같은 게 없었고, 급식도 없었다.따라서 등교할 때 필요한 모든 짐을 다 싸 가지고 다녀야 했다.공부에 필요한 교과서와 공책은 물론 참고서와 연습장, 그리고 도시락이 들어갔다. (그때만 해도 ‘벤또’라는 일본말을 더 많이 썼다) 게다가 체육시간이 있으면 체육복과 운동화 그리고 실내화까지 모두 싸가지고 다녔다. 그러니 얼마나 무거웠을까? 체구가 비교적 작은 중학교 1~2학년 여학생들은 자기 몸 만한 가방을 낑낑거리며 간신히 들고 다니기도 했다. 좀 무거울 땐 아마도 7~8kg 정도는 나가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고3쯤 되면 그 무거운 걸 들고 뛰어다니기도 했으니, 당시 학생들 체력이 지금 학생보다 더 좋았던 것 같다.   많은 학생들이 등하교를 위해 버스를 이용했다. 당시엔 학생들은 버스에 빈 자리가 나도 감히 앉을 생각을 못했다. 어려서부터 어른께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대신 자리에 앉은 어른들은 학생의 가방을 받아 자신의 무릎 위 (정확하게는 허벅지)에 놀려놔 줬다. 그게 당시의 아름다운(?) 문화였다. 남자 어른들은 때론 두 개도 받아 줬다. 그런데 말이 쉽지, 가방 두 개를 올려놓으면 차라리 서서 가고 싶을 정도로 무거웠다.   문제는 가방 밑에 묻는 때나 먼지 같은 것이었다.꼼꼼한 여학생은 휴지나 손수건으로 닦아 건네기도 했지만, 필자는 비롯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냥 맡겼다. 가방이 떠나고 난 허벅지엔 영락없이 지저분한 자국이 남았다.아주 간혹 도시락이나 김치병에서 국물이 흐르는 최악의 경우도 있었다.그래도 그걸 나무라는 어른은 없었던 것 같다. 다들 그러려니 하고 살던, 인정 많은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여름이면 에어컨도 없는 만원 버스 내부에 유일한 냉방시설은 천장의 환기구였다. 머리 위에서 바람이 불어 그나마 더위를 식혀 줬다. 하지만 비 오는 날엔 그도 못 열어서 냄새와 습기와 열기가 꽉 찼다. 그 속에서도 친구끼리 낄낄거리며 떠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장난치더라도, 내릴 때면 ‘고맙습니다’ 인사하며 맡겨 놓은 가방을 들고 내리던 중고교시절이었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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