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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스칸의 운

칭기스칸의 운   필자가 어렸을 땐 ‘노력은 성공의 어머니’라고 생각했다. 좀 커서는 ‘운7, 기3’으로 바뀌었다. 이제 인생을 사실상 거의 다 살고 나니, 인생은 ‘운9, 기1‘ 또는 ’운7, 복3‘이란 결론을 내렸다. 노력과 성실도 타고난 운이나 복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세계사를 봐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세계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이 있었던 인물을 꼽으라면 1위가 칭기스칸이다. 거꾸로 칭기스칸은 세계 최고로 운이 좋았던 인물이란 의미이기도 하다.   칭기스칸은 어릴 때 아버지(예수게이)가 타타르족에게 독살당해 노예로 살다가,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극적‘으로 탈출해 목숨을 건졌고, 이후에도 몇 번이나 암살이나 기습 위기를 ’극적‘으로 모면했다. 그랬던 그가 몽골을 통일한 것 자체가, ’극적‘이고 운빨이었다. 그 과정에서 정말 ’극적‘으로 우수한 장수들을 품게 된다. (칭기스칸의 탁월한 리더십도 한몫했지만, 그것만으론 설명이 되지 않는다)   몽골을 통일한 칭기스칸은 리더로서 뭔가 보여줘야 했다. 일본이 전국시대를 끝내고 통일하자 강력해진 군대로 조선을 침범했듯, 통일 몽골 역시 그동안 단련된 군사력으로 성과를 보이며 리더십을 강화하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첫 대상이 평소에 몽골을 괴롭히던 티베트계의 '서하'였다. 몽골이 자신들도 모르게 급발진한 전투력으로 서하를 공격하자, 이에 놀란 서하는 스스로 속국이 되겠다며 공주와 많은 물자를 바쳤다. 몽골인들은 예상 밖의 첫 성공에서 전리품과 영웅 등장에 열광했고, 칭기스칸의 아래로 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그러자 칭기스칸은 자신의 자리와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전쟁과 전리품이 또 필요해 졌다.   이번엔 그동안 몽골을 괴롭혀 왔던 금나라로 복수의 칼을 뻗었다. 칭기스칸은 초기엔 금나라의 북쪽을 공략하여, 요동과 화북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전리품과 인구를 얻었다. 하지만 금나라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여서, 더이상 진전이 어려웠다.   한편 당시 칭기스칸은 중앙아시아 강국인 호라즘에 사신을 보내 교역을 청했다. 이때만 해도 칭기스칸은 호라즘과의 교역을 통해 국가 경제를 안정시키는 것까지가 그의 목표였던 것 같다. (세계 정복은 아예 계획에 없었다)   하지만 병력의 수만 믿고 자만했던 호라즘은, 그만 몽골 사신 수 백 명을 죽여버리는 대실수를 해버렸다. 마침 금나라와의 전쟁에서 더이상 진척이 없어 곤란해진 칭기스칸은, 실추한 자신의 명예를 만회하기 위해 호라즘으로 병력을 돌렸다. (울고 싶을 때 따귀를 때려준 격인데, 이것도 운이다) 몽골군의 전투력이 최고로 빛을 발하며, 지금도 자주 회자되는, 세계 정복의 발단이 된, 바로 그 전쟁이었다.   엄청난 속도로 몰려오는 몽골군의 침략에, 성들은 순식간에 무너지거나 스스로 문을 열었다. 그동안 쓸데없이 객기를 부렸던 호라즘의 술탄(황제) 무하마드는 변변한 저항도 못하고, 계속 서쪽으로 도망쳤다. 칭기스칸은 제베와 수부타이 장군에게 그를 끝까지 추격하라는 명을 내렸다. 이에 두 장군은 2만의 기병을 이끌고 중앙아시아를 가로질러, 도망치는 술탄을 끝까지 뒤쫓았다. (결국 술탄 무하마드는 카스피해의 작은 섬에서 병사했다) 제베와 수부타이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러시아 남부와 흑해 북쪽의 킵차크 초원까지 휩쓸고 돌아왔다. (유럽 원정은 그 다음의 일이다)   한편 몽골은 금나라와 호라즘을 치러 갈 때 서하에게 "병력을 보내달라"고 요구했으나, 서하는 이를 거절했고 오히려 몽골의 뒤통수를 치려 했다. 뚜껑이 열린 칭기스칸은 호라즘을 박살 낸 직후, 내친김에 서하로 향했다. 이미 내부에서 편이 갈리며 스스로 무너져 있던 서하는 게임이 되지 못했다. 칭기스칸은 서하를 손쉽게 유린하며, 본의 아니게 마지막 원정(1226~1227년)을 마쳤다. (사망) 이렇게 어찌어찌 하다보니, 또 많은 영토와 전리품과 인구를 차지하게 되었다.   칭기스칸이 직간접으로 차지했던 영토와 휩쓸고 돌아왔던 영향권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은 위 그림과 같다. 세계 최대의 영토를 가졌던 몽골제국(아래 그림)과 비교하면 훨씬 작다. 나머지 영토는 칭기스칸 사후 그의 후손들(오고타이, 바투, 쿠빌라이 등)이 동유럽, 바그다드, 금과 남송까지 정벌한 결과다. 사실 칭기스칸 사후의 정벌 대상이 훨씬 강국들이었고, 더 힘든 전쟁이었다.   하지만 칭기스칸의 후손들은 칭기스칸이 닦아 놓은 자산을 기반으로, 나머지 강국들을 정벌했고, 후손들 역시 칭기스칸의 자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칭기스칸을 내세웠다. 이렇게 하여 우리가 ’세계 정복자‘라고 생각하는 칭기스칸의 이미지가 형성된 것이다.   이것도 다 칭기스칸의 운(명예운+자식운)이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프로만큼 인기있던 고교야구

프로만큼 인기있던 고교야구   제54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가 진행 중이다. (사진) 예선이 없이 모든 팀이 참가하는 대회라, 무려 104개팀이나 참가했다.필자가 어렸을 땐 고교야구가 정말 인기였다. 생각해보면 각 지역을 응원하는 마음들이 모여 인기를 끌게 된 것 아닌가 싶다. 지금의 프로야구가 담당하던 것을, 당시엔 고교야구가 대신했다는 생각이다.   예전엔 신문사의 역할이 컸다.당시 신문은 지성의 표현이었고, 사회 리더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신춘문예를 비롯해 음악 콩쿠르 등 많은 문화행사를 개최했다. 그 일환으로 고교야구 발전을 위해, 유력 신문사들이 고교야구대회를 주최했다.   중앙일보의 대통령배, 조선일보의 청룡기, 동아일보의 황금사자기, 한국일보의 봉황대기 등이 서울에서 열리는 전국대회였다. 특히 과거 봉황대기에는 재일교포팀이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한편 고교야구가 인기를 끌면서, 유력 지방신문사도 이에 동참했다. 매일신문이 대구에서 개최한 대붕기, 부산일보가 부산에서 주최한 화랑대기 등이 대표적이었다. (두 대회 모두 2011년 폐지됨)   고교야구가 인기가 워낙 높다 보니, TV와 라디오로도 생중계했다. 특히 야구장에서 라디오를 동시에 들으면서 경기를 관람하면 더 재미있었다. 필자도 국민학생 시절, 동대문 운동장에 옆에 앉은 아저씨가 트랜지스터 라디오로 듣는 중계를, 몸의 반쯤 기울이고 귀를 쫑긋 세우며 훔쳐 듣곤 했다. 대붕기와 화랑대기는 TV 중계가 없어, 가끔 라디오 중계로 들을 수 있었다.밤에도 경기를 했는데, 경기장 조명이 전기 낭비라며 밤(저녁) 경기를 금지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낮에 경기를 중계하면, 그걸 보려는 TV 전기 소비가 더 크다는 비판도 있었다)   고교야구 인기가 치솟다보니, 고교선수 일부는 지금 아이돌 이상의 인기를 구가했다.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여학생들은 비명을 질렀고, 팬레터가 쏟아졌다. 하지만 아무리 인기가 있던 선수여도, 인기는 고교야구에서 끝났다. 인기 고교야구 선수들이 대학을 가고 실업팀을 가도, 과거의 인기는 고교에서 너무 짧게 끝나 있었다. 게다가 투수의 경우 고교시절 혹사를 당해, 안타깝게도 선수 생명이 그걸로 끝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요즘 고교야구 중계는 가끔 보려 해도, 차마 보질 못 하겠다.너무 앳된 얼굴과 체격에, 프로와 MLB로 높아진 눈으로 보니, 과거에 저런 걸 왜 좋아했나 싶을 정도다.   ‘그때였으니까’ 하며, 채널을 돌리게 된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주몽은 고(高)씨였을까?

주몽은 고(高)씨였을까?   과거 드라마 ‘주몽’이 한창 인기였을 때, 길 가다 얼핏 이런 얘길 들었다. 어린 아들이 아버지에게 “주몽은 고씨야?”라고 물으니, 아버지가 ‘고구려니까 고씨지“라고 대답한 장면이다. 당시엔 그냥 흘려 들었는데, 최근 다시 생각나면서 ”그럼 왜 주몽의 후예인 백제 왕족은 부여씨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갑자기 궁금해져서, 여기저기 조사를 해봤다.(이하는 필자가 수집한 자료와 필자의 상상력으로 짜집기한 내용이니, 토 달지 마시길)   우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에 따르면, 주몽은 자칭 ’천제의 아들‘ 해모수(解慕漱)의 후손인 부여 금와왕의 아들이다. 하지만 새로 나라를 세우면서, 하늘/태양과 같이 높고 존귀하다는 뜻에서 스스로 ‘고(高)’씨를 성으로 정했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2대 ~ 5대 왕의 성으로 해(解)자가 쓰인 걸 보면, 주몽의 성만 고씨라는 건 이상하다. 주몽은 ‘해모수’의 후손이므로 원래 해씨, 즉 ‘해주몽’이었는데 후대에 고씨로 바뀌었을 가능성이 크다.   한편 중국의 사서에 의하면 고구려 건국 전에 이미 구려(句麗 또는 구리/고리)라는 지역이 있었다고 한다. (성이나 마을을 뜻한다고 한다. 고을이라는 뜻일 수도 있다) 중국 사서에 기록될 정도이니 꽤 큰 지역이나 부족이었을 것이다.이는 주몽이 그 지역에 나라를 세울 때 이름을 구려(구리)라고 만든 게 아니라, 그 지역의 원래 이름인 구려(구리, 고리)을 그대로 국호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어느날 국호가 갑자기 구려에서 고구려로 바뀌었는데, 그 이유가 중요하다.제5대 모본왕(해우 解憂)이 암살당한 뒤 (쿠데타로 추정), 제6대 태조대왕(고궁 高宮)이 즉위하면서 왕족이 바뀌었다. 즉 초기에는 부여계 해씨 집단(연노부/소노부)이 왕족이었는데, 제6대 태조대왕 때부터 계루부 고씨(高氏)로 왕족이 바뀐 것이다. 보통 국가를 새로 창업한 군주에게 붙는 '태조'라는 호칭이 6대 왕에게 붙은 것도, 사실상 계루부 고씨 왕조의 실질적 시작점이 이때였음을 암시한다. 이때부터 왕족의 성인 고(高)를 나라 이름이었던 ‘구려’ 앞에 붙여, 나라 이름이 ‘고구려’가 되었다.   요약하면 부여 왕족(해씨) 출신 주몽이 소노부(연노부)의 소서노와 결혼해 그들의 세력을 바탕으로 구려라는 지역에서 ‘구려’라는 이름으로 나라를 세웠는데, 5대 임금 때 계루부(고씨)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으며, 이후부턴 새로운 나라를 세운다는 의미로 6대 태조왕으로 명명하고 국호를 ‘고구려’로 바꿨다.하지만 소노부가 사라진 것도 아니고 기존 세력을 무시할 수 없었다. 또한 정통성과 부여의 후손이란 것을 내세울 필요가 있어, 추모왕(주몽)의 혈통을 이어받은 정통 후계자로 포장한 것이다. 따라서 주몽의 성도 고씨로 바꿔야 했다.   그러다 5세기 장수왕 대에 이르러 가운데 자인 '구(句)'를 빼고 ‘고려(高麗)’로 개칭했다. 다만 우리는 왕건이 세운 고려와 구별하기 위해 굳이 고구려라고 부른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후 찍어낸 ‘동국정운’이나 ‘용비어천가’의 주석에는, "麗를 나라 이름일 땐 '리'로 발음한다"고 명시되어 있어, 당시에는 '고리' 또는 '고구리'라 읽었다고 한다. 따라서 지금 ‘고구려’ 또는 ‘고려’라고 읽는 것은 잘못이란 지적이 타당해 보인다.)   그러면 백제 왕족은 왜 성으로 부여(扶餘)씨를 사용했을까?온조로 시작한 초기 백제는 해씨(解氏)와 진씨(眞氏) 등의 귀족 연합 정권이었고, 왕족은 해씨였다. 즉 온조의 이름은 ‘해온조’였다. 특히 3세기 백제의 기틀을 잡은 해씨(解氏) 고이왕계는 고대국가로 기틀을 잡았는데, 이 시기 백제의 실권자이자 재상들도 왕족인 해씨(해구, 해충 등)였다.344년 해씨의 계왕(契王)이 즉위했지만 불과 2년 만에 사망하자, 초고왕계인 근초고왕이 정권을 잡았다. (아마도 쿠데타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들은 고이왕계인 해씨 세력을 추방 또는 숙청(?)하고, 새로운 왕실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국가 정통성의 뿌리인 ‘부여’ 자체를 왕실의 성씨로 채택했다.   (당시에는 이렇게 부여라는 나라가 고구려와 백제 모두에게 ‘자랑스러운 조상의 나라’로서, 위상이 상당히 높았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부여에 대해 알려진 바가 별로 없는 게 참으로 안타깝다)   이렇게 고구려와 백제 모두 사실상 쿠데타로 왕족이 바뀌면서 왕족의 성도 바뀌었고, 고구려는 나라의 이름까지 바뀌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옛날에 안 태어난 게 다행이다

옛날에 안 태어난 게 다행이다   과거의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는 대개 화려한 영웅담을 많이 담는다. 하지만 병사들이나 백성들이 칼에 찔리거나 베이거나 목이 잘려 죽는 장면들을 보면, 정말 잔인하고 끔찍하다. 살아도 포로나 노예가 되어 짐승만도 못한 삶을 살게 된다. 게다가 약탈당하고 겁탈당하고...지금은 전쟁에서 총이나 대포로 깔끔하게(?) 죽지만, 과거의 전쟁에선 칼이나 활을 비롯해 돌에 맞거나 불에 타서 죽었다. 특히 예전엔 살상력을 높이기 위해 화살에 독이나 오물을 묻혀 공격했다. 스치기만 해도 상처가 덧나, 고통 속에서 죽거나 수족을 잘라내야 했다. 군대가 진을 치고 장기전에 돌입하면 특히 먹는 게 문제였다. 깨끗한 식수와 먹거리가 부족하다 보니 전염병이 쉽게 돌았다. 불쌍한 병사들은 객지에 나와, 고통 속에 의미없이 죽어갔다.이렇게 1차대전 이전의 전쟁에선 병으로 죽는 병사들이 더 많았다.   1차대전에선 대포와 기관총의 활약(?)으로, 전투나 전투 부상으로 인한 사망이 크게 늘었다. 그래도 병으로 사망하는 병사들의 수는 30%가 훨씬 넘었다.1차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참호장면이 많이 나온다. 참호를 파고, 그 안에서 먹고 자고 대기하는 시간이 길었다. 문제는 그 참호가 그냥 땅만 판 거라, 배수 시설 같은 게 없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비가 오면 오랫동안 참호에 흙탕물이 차 있었다. (사진)특히 화장실용으로 구덩이를 따로 파긴 하지만, 참호의 특성상 거리를 멀리 두기 힘들었다. 참호 안에서 사망자가 발생하면, 멀리 가서 묻을 수도 없었다. 그런데 비가 많이 오면 넘치기 일쑤여서, 참호에 고인물은 더럽기 그지없었다. 병사들은 ‘온갖 병균 덩어리’ 물 속에서 생활하고, 발은 그 물에 늘 젖어 있었다. 그러니 병사들은 참호 속에서 전염병으로 죽거나, 발이 썩어 발가락과 다리 등을 절단해야 했다. (페니실린 발견 전이다)   한편 ‘대항해 시대’라고 하는 시기가 있었다. 탐험에 나서고 신대륙과 신항로을 발견하던 역동적인 시대였다. 역사적으로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영화나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하지만 선원들 입장에선 목숨을 건 일이었다.여기서도 먹는 게 가장 문제였다. 나무통에 담아온 물은 며칠만 지나도 상하고 썩었다. 딱딱한 말린 빵엔 벌레가 우글거렸고, 소금에 저린 고기는 너무 딱딱해서 씹기 힘들었다. 그래도 살기 위해선 매일 똑같은 것만 먹어야 했다. 이렇게 한 달 정도 참아내면, 이번엔 괴혈병이 찾아왔다. 잇몸에서 피가 나고 이가 빠지며 피부가 까맣게 변했다. 괴혈병 증상으로도 죽었지만, 이가 빠지니 딱딱한 음식을 먹을 수 없어 굶어 죽기도 했다. 습기 속에 쥐와 빈대 등이 창궐한 배 안의 환경은 극악이었다. 항해 도중 사망률이 90% 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생지옥과 다름없었다.   영화와 드라마엔 기사들이 멋있게 활약하던 중세시대에, 백성들은 살아도 산 게 아니었다.여성들은 걸핏하면 마녀로 몰려, 갖은 고문을 당한 후 불에 태워졌다. 하늘이 그 죄를 묻듯, 유럽에선 페스트가 창궐해 전체 인구의 40% 이상 죽었다. 하지만 이는 평균 수치일 뿐, 심한 지역은 80~90%의 인구가 죽었다. 가족이나 친구 동네 사람들까지, 사실상 나만 빼고 거의 다 죽은 셈이다. 간신히 살아남은 몇몇 사람들은 가족과 친구들의 시체를 치워가며, 공포 속에서 버텨야 했다. 그런데 페스트가 창궐한 이유 중 하나가 더러운 환경 탓이었다. 특히 기독교에선 목욕 등 씻는 걸 금기시하면서 전염성을 더 키웠다. 어떻게 평생 씻지 않고 살 수 있지? 매일 샤워하고 머리 감고 수시로 손 씻는 우리에겐, 너무나 더럽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라고 하며, 개척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와 드라마가 낭만적이다. 하지만 그것도 이민 초기시절 얘기다.아일랜드에선 1845년부터 1852년 사이에 발생한 대기근으로, 인구가 약 830만 중 약 10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아일랜드인들은 살기 위해 100만 이상이 미국 등으로 탈출했다. 하지만 탈출선에 타도, 15% ~ 30%가 병으로 배 안에서 목숨을 잃었다. 오죽하면 배를 관함(Coffin Ships - 배 자체가 시신을 나르는 관이라는 의미)이라고 불렀다. 한꺼번에 많은 승객들이 몰리자, 화물선까지 동원해 정원을 훨씬 넘는 사람들을 짐짝처럼 태운 탓에 질병이 만연했다.운이 좋게 살아남아 미국 등에 도착했어도, 기다리는 건 삶을 위한 투쟁뿐이었다. 정해진 일자리를 놓고 기존 현지인들과 목숨 걸고 싸워야 했고, 심지어 어린 아이들조차 중노동에 시달리며 목숨을 연명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앓다가 죽었다.‘이민자의 나라’라는 낭만은 없었다.   그래서 옛날이 아닌 지금 태어난 것만으로도 다행이고,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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