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탁칼럼 | 사라진 ’이리‘
23-01-31 09:52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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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이리‘
우리나라에서 호랑이나 표범이 멸종된 것에 대해 안타까워 한다.
그런데 멸종됐지만 사람들의 인식 속에 깊이 남아 있고 자주 호명되는 동물이 있다. 바로 이리 즉 늑대다.
필자가 어렸을 땐 ‘늑대’보다 ‘이리’란 단어를 주로 사용했다. ‘이리떼가 나타나...’ 라는 식이었다. 이런 유머가 있었다. <과거 시험을 보러 산길을 가던 과객이 밤이 되자 어느 기와집을 발견했다. 하루 머물까 해서 ‘이리 오너라’라고 외쳤더니, 이리가 뛰쳐나와 과객을 물어뜯었다...> 이렇게 우리 동화나 전설에는 이리가 나온다.
이리와 늑대는 어떻게 다를까? 국어사전에 동의어라고 나와 있고, 영어로도 똑같이 Wolf로 번역한다.
그런데 요즘 왜 이리는 사라지고 늑대만 남았을까?
인터넷을 찾아보니 성경을 번역할 때 Wolf를 늑대라고 번역했다는 말이 나온다.
생각해보니 서양에서 들어온 동화 속에선 모두 늑대가 등장한다. <빨간 모자> <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 양> <늑대와 돼지 삼 형제> 등이다. 또한 서양 영화에 보면 늑대 인간도 종종 등장한다. 그러니 서양 문물이 들어온 순간부터 이리는 사라지고 늑대가 득세한 셈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전통 동화에서는 ‘이리’, 서양식 이야기나 영화에서는 ‘늑대’가 된 것 같다. 하지만 실생활에선 이리란 단어는 사실상 사라지고, 늑대로 통일되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전통의 이리든 서양의 늑대든, 좋은 역할로 등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비슷한 동물로 승냥이가 있다.
승냥이는 이리 즉 늑대보다 좀 작지만, 더 사납고 포악한 것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승냥이도 이리와 같이 사실상 사라진 단어가 되었다.
익산시의 이전 이름이 ‘이리’였다. 이래저래 ‘이리’는 사라져 버렸다.
얼마 전 손녀가 부르는 동요에 “늑~대가 나타나 어흥‘하는 걸 들었다.
왠지 전통의 이리가 서양의 늑대에 밀려난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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