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엔 왜 검은색 옷을 입을까?
겨울엔 왜 검은색 옷을 입을까?어느 날 출근하는 지하철에서 필자는 새로운 걸 느꼈다. 객차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입은 외투 대부분이 검은색이거나 짙은 색이었다. 불현듯 왜 그럴까를 곰곰히 생각해보게 되었다. 오늘도 이 글을 쓰기 위해 승객들의 외투색을 유심히 관찰을 했다. 승객이 계속 내리고 타서 숫자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대충 70~80% 사람들이 검은 색 외투를 입고 있었다. 남녀노소가 따로 없었고, 필자 역시 검은색 패딩을 입고 있었다. 밝은 색 옷을 입은 사람은 요즘 유행하는 흰색 플리스(양모 양털) 점퍼를 입은 젊은이가 유일했다.사람들은 왜 겨울에 검은색(또는 어두운 색) 옷을 입을까?(이하는 전문가가 아닌 필자의 사견임)우선 계절과 관계가 있을지 모른다.겨울은 꽃이나 푸른 잎(소나무나 사철나무 제외) 또는 단풍도 없다. 흑백에 가깝다. 눈이라도 내리면 수묵화나 흑백사진이 된다. 인간의 감정도 그래서일까? 특히 모든 동물이 먹고 살기 힘들어지는 상황이라 감성도 움츠려들면서, 화려한 게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어떤 이는 검은색 옷이 다른 색의 옷과도 무난하기 때문에 깔맞춤(칼라 매칭)에 신경을 덜 쓰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코트를 입을 때 얘기고, 요즘은 목까지 덮는 패딩이나 파카 종류를 입기 때문에 깔맞춤 때문은 아닌 것 같다.그러면 경제적인 이유일까?필자도 현직에 있을 땐 자켓을 입어야 했으므로, (반)코트를 주로 입었다.(생각해보니 두 벌이었는데 둘 다 검은색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신경 쓰지 않고 패딩 하나만 입고 다닌다. 단벌신사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부자나 연예인 같은 사람들 말고, 지하철 타는 서민들에게 외투가 여러 벌인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즉 외투 한 벌이나 잘해야 두 벌로 겨울을 나는데, 눈에 띄는 색의 옷을 입으면 단벌임이 확연히 드러나게 된다. 특히 흰색 또는 밝은 색 옷은 중간에 세탁을 해야 하므로, 겨울 중간에 세탁이 필요 없고 무난한 검은색 옷을 입지 않을까 싶다.특히 코로나19로 인해 경제적 상황이 극도로 악화된 상태에서 이런 추세는 더 심해지는 게 아닐까?독자들 그리고 특히 의상 또는 심리전문가들에게 묻고 싶다.“겨울엔 왜 검은색 옷을 입을까?”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지하철 조조열차 풍경
‘새벽 기차’라고 하기엔 늦고 ‘아침 열차’라고 하기엔 이른 시각. 바로 오전 6시 30분 이전 지하철이다.필자가 9시 출근시간을 엄수하던 직장을 다닐 때엔 굳이 일찍 출근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일찍 깨면 일찍 출근한다. 지금 하는 일은 ‘해외구매대행 쇼핑몰(애스크몰)’ 운영인데, 꼭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일하는 것과 비례해 수입이 발생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늘은 5시 40분쯤 잠에서 깨어, 6시 27분에 지하철역에 도착했다.조조열차가 좋은 점이 몇 가지 있다.우선 오전 6시 30분 전엔 조조할인이 된다. 1,250원이던 지하철 요금이 1,000원으로, 250원 할인된다. 큰돈은 아니지만 아침부터 기분이 좋다.또한 조조열차는 구간에 따라 다르지만 승객이 적어, 앉아서 편하게 갈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사람들이 적다 보니, 다투거나 부딪힐 일도 없다.게다가 조조열차는 아주 조용하다.전화하는 사람도, 대화하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적막하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다. 승객들은 휴대폰을 보거나 잠을 청한다.대부분의 승객들이 아마도 아침에 일찌감치 일터로 향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선입견이 있어서 그런지, 승객들 인상이 모두 성실해 보인다.특히 요즘은 해가 짧아서 열차 밖이 출근하는 내내 어둡고, 차 안은 밝다. 게다가 너무나 조용한 열차 안. 그래서 마치 ‘은하철도 999’를 탄 느낌도 든다.2021년 12월 7일 조조열차를 탄 소감이다.<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미태그시“가 뭔 말인고?
맨 처음 광고의 카피를 쓸 때 타겟 즉 그 광고를 접하는 사람이 ‘중학생 정도’라고 생각하라고 배운다. 그만큼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카피를 쓰라는 말이다. 필자는 기자가 아니라 카피라이터 출신이라고 하는 게 맞다. 10년 이상 광고 기획 겸 카피라이터를 겸하며, 본격적으로 글을 썼기 때문이다.굳이 광고가 아니더라도 공공의 목적으로 글이나 말을 할 때엔,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 쉽게 써야 한다. 그런데 요즘 시내버스를 타면 카드 단말기에서 언뜻 이해할 수 없는 말이 나온다.정확한 건 아니지만 대충 이런 말이다.“환승 시 카드를 태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미태그 시 추가요금이 발생합니다”아, 어렵다. 처음에 언뜻 들었을 때 정확히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우선 ‘태그’란 말이다. 태그(tag)란 말은 영어인데, tag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맨 위에 “꼬리표(를 붙이다)”라고 나온다. 그 아래 “술래잡기” 그리고 그 아래 야구에서의 “터치아웃”이라고 나온다. 즉 야구에서 사용하는 접촉이란 의미의 ‘태그’란 단어를 버스 단말기에 카드를 대라는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이어서 ‘미태그시’란 말이 나온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한참을 고민한 끝에 “미(未) 태그(tag) 시(時)”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한자와 영어의 짬뽕이다. 세종대왕이 울고 갈 노릇이다. 우리말을 사랑하자고 주장하지 않더라도, 이건 너무했다.태그 대신에 우리말로 ‘대다’라는 쉽고 좋은 말이 있다. 한자(漢字)지만 ‘접촉’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단어다.그래서 “환승하시려면 카드를 단말기에 대(접촉하)시기 바랍니다. 대(접촉하)지 않으시면 추가 요금을 내실 수 있습니다.” 라고 안내한다면 훨씬 알아듣기 편할 것이다.그러면 왜 어려운 말로 안내를 할까?뭔가 있어 보이려고?유식해 보이려고?공공의 안내라면 대중이 알아듣기 쉽게 가장 쉬운 말로 하는 게 맞다.그게 안내의 목적에 맞는 것이고, 정말로 유식한 것이다.<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정자 기증을 성관계로 한다?
정자 기증을 성관계로 한다? 우리나라에서 불임부부에게 정자를 기증하여 임신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직접 성관계로 정자를 주는 게 아니라, 기증받은 정액을 성관계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시술한다. 그리고 정자를 기증한 사람이 누군지는 비밀에 붙인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의과 대학생들이 주로 기증한다고 한다. 해외에선 노벨상을 받은 사람의 정자를 받아 보관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런데 일본에선 직접 성관계로 정자를 기증(?)하는 ‘타이밍법’을 사용하기도 한단다.지난 2019년 일본 도쿄에 거주하는 30대 기혼 여성 A씨는 둘째 아이를 갖기 위해 정자기증자를 모집했다. 남편에게 유전성 난치병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고민 끝에 정자 기증을 결심했다고 한다.A씨는 지원자 15명 중 까다롭게 심사(?)하여 자격 요건을 갖춘 20대 남성 B씨를 선정했다. B씨는 자신이 대형 금융기관에서 일하는 교토대 출신이라고 했다.‘타이밍법’에 따라 10차레 성관계를 했고, 결국 6월 임신에 성공했다. 그런데 문제가 터졌다. 임신 후반에 다가가고 있을 무렵, 정자를 기증한 B씨가 중국인이고 유부남이며 다른 대학을 나온 것이었다. 충격에 빠진 A씨는 2020년에 출산했지만 도저히 아이를 키울 수 없어 복지기관에 맡겼다. 그리고 지난해 말 A씨 부부는 "성적 쾌락의 목적으로 허위 정보 냈다"며 B씨를 상대로 3억3200만엔(약 34억6000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한편 일본에선 해마다 1만 여건의 정자기증이 이루어 진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비공식적으로라도 이런 일이 있을까?필자가 남편이라면 차라리 자식을 안 만들고 말지, 아내에게 다른 남자와 10번씩 성관계를 하면서까지 자식을 갖고 싶지 않을 것 같다.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그 아이가 자란 후 친부가 나타나서 “내가 네 애비다!”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물론 우리나라도 예전엔 ‘씨받이’나 ‘후궁’ 또는 ‘첩’도 있었고, ‘씨도둑‘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옛날 일이기도 하고, 일본의 정자 기증 ’타이밍법‘과는 차이가 있다. 한국인과 일본인 간 사고 방식의 차이겠지만. 한국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방법이다.어쨌든 지금 그 가족과 태어난 아기는 어떻게 될지 걱정된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사람이나 원숭이나
지난 17일(현지시각) 인도의 보도에 따르면 지방 도시인 비드에 있는 마을 라불에서 최근 원숭이 무리가 강아지를 잡아다 죽이는 일이 잇따르고 있는데, 그 이유는 들개 몇 마리가 새끼 원숭이를 죽였기 때문이라고 전했다.원숭이 무리는 강아지를 감싸 안아 높은 곳으로 데려간 뒤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복수하는데, 죽은 강아지 수가 최소 250마리라고 보도했다. 그래서 마을의 개가 씨가 말랐다고 한다. 이 정도 수준이면 복수를 넘어 ‘학살’이다. 갑자기 몇 년 전 KBS TV ‘동물의 왕국’에서 원숭이 어미가 죽은 새끼를 계속 안고 다니며, 젖을 물리는 등 떠나 보내지 못하는 장면이 생각난다. 이런 현상은 육아까지 포함할 경우, 집단생활을 하는 동물일수록 더 강한가 보다.이런 장면을 보면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그런데 사람이나 원숭이나 유사한 것이 ‘자식에 대한 사랑’ 말고 또 있다.바로 매춘과 불륜이다.원숭이는 과일 같은 먹을 것을 주고 매춘을 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원숭이와 인간이 분리되기 전인, 인류가 탄생한 순간부터 매춘이 존재했을 것일 가능성도 높다고 한다. 지능이 높은 돌고래 종류도 이런 행위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한편 유인원과 원숭이의 암컷은 번식과 관련이 없는 교미를 자주 한다고 한다. 예컨대 침팬지 암컷은 발정기가 되면 아들을 제외한 주변의 모든 수컷들과 교접한다. 그래서 한 암컷의 자식들의 아빠가 서로 다르다고 한다. ‘홀디’라는 학자는 침팬지가 번식과 무관한 성행위에 열중하는 이유로 두 가지를 들었다. 첫째 앞으로 태어날 새끼를 살해할지 모르는 수컷들과 우호적으로 지낼 필요가 있고, 둘째 가능한 한 많은 수컷들이 암컷의 아이를 자신들의 새끼로 여기도록 속이기 위해서 라고 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맞는지, 아니면 원래 원숭이들이 그런 건지는 정확하지 않다.하여간 인류 역사상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매춘과 불륜이 없는 적이 있었을까 싶다. (모든 사람들이 매춘과 불륜을 한다는 건 아니다)이슬람권에선 이들을 강력하게 막고 있지만, 가끔 보도가 되는 걸 보면 전혀 없다고 할 순 없다고 본다. 북한에서는 법규상으론 안되지만, 실제론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어쩌면 매춘이나 불륜은 인류 즉 호모사피엔스가 태어나기 전부터, 본능 저 깊은 곳에 존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인간은 도덕이란 명분으로 억누르고 있을 뿐일 수도 있다.(그렇다고 필자가 매춘과 불륜을 당연시하거나 조장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사람이나 원숭이나 동물적 본성이나 본능은 비슷한가 보다.<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너무나 조용해진 성탄절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라떼 얘기임) 서양 문물은 무조건 좋은 것이고, 따라 해야 시대에 뒤쳐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그중 하나가 크리스마스 즉 성탄절이다.당시엔 음악을 마음대로 듣기 어려웠다. 그래서 라디오에 많이 의존했다. 라디오에선 거의 팝송을 틀어줬다. 그런데 성탄절이 한 달이나 남은 11월 말부터 캐롤을 방송하기 시작한다. 갈수록 캐롤의 비중이 높아지다, 12월 20일 정도면 하루종일 캐롤이다. 대형 매장은 물론 다방이나 분식집(당시엔 다방이나 대형 분식집에 DJ가 있었다)에서도 오로지 캐롤이다.크리스마스 이브의 명동거리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엔 통행금지가 없었다. 밤늦게까지 청춘남녀들은 끼리끼리 사람에 치이고 밀려다니면서도 마냥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유는 단 하나 ‘크리스마스’이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가 자기나 부모님 생일도 아니지만, 그걸 핑계 삼아 노는 것이다. 그래서 방송에선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라는 말을 자주 했다.필자가 대학 다닐 땐 친구들끼리 모여 밤새 술을 퍼마셨다. 이유는 단 하나 ‘크리스마스’이기 때문이다. 그 핑계로 오랜만에 외박하며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그런데 요즘 크리스마스는 정말 한산하다. 특히 코로나 때문에 더하다.명동이나 어디에도 몰려 가지 않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여럿이 모이거나 늦게까지 어디에 있을 수도 없다. 일부 청춘남녀들은 호텔이나 모텔에 모여서 파티를 하거나 술 마시며 논다고 한다. 그러니 길거리는 조용할 수밖에 없다. 상가에서 캐롤도 거의 안 들리고 (저작권 때문이라고 한다), 하다못해 구세군의 종소리조차 사라졌다. 방송에서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라는 말도 사라졌다.필자가 어렸을 때와는 너무나 다른 크리스마스 풍경.어렸을 땐 쓸데없이 이게 뭔가 했지만, 지금은 왠지 쓸쓸하고 적막한 느낌도 든다.<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