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이 없으면?
에어컨이 없으면? 요즘 같은 이상 더위 즉 폭염인 여름에 에어컨 없이 산다는 건 상상하기 싫다. 하지만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에어컨은 구경하기도 힘들었다.그나마 쉽게 볼 수 있는 곳이 은행이었다. 대형 에어컨에서 시원한 바람이 쏟아져 나오는데, 그렇게 시원하고 신기할 수 없었다.버스에도 에어컨은 없었다. 그러다보니 여름엔 (비가 오면 못하지만) 창문을 모두 열고, 천장에 있는 환풍구도 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터널을 지날 때면 모두 닫아야 했다. 만약 터널이 막히기라도 하면 찜통 더위와 냄새 속에서 신음해야 했다. 특히 비가 오면 창문도 못 열고 습한 기운에 찜질방이 따로 없었다.지하철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지하철 천장엔 돌아가는 선풍기라도 있었지만 큰 소용이 없었다.버스나 지하철에서 내리면 옷이 다 젖고 땀으로 목욕하다시피 했다. 일반 사무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최신식 빌딩이 아니면 에어컨이 없었고, 그나마 선풍기라고 있으면 다행이었다. 그런데 사무실에 선풍기가 돌아가면, 서류가 날아다니고 심지어 (당시엔 사무실에서 담배를 피웠으므로) 담뱃재와 먼지들도 허공에 날아다녔다. 식당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여름엔 펄펄 끓는 뜨거운 음식 먹기가 힘들었다. 가끔은 이열치열이라고 일부러 땀을 줄줄 흘리며 굳이 뜨거운 음식을 먹는 경우도 있긴 했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학교엔 방학이 있어 좀 덜하긴 하지만, 필자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무더위에 꽤 고생했다. 하지만 요즘 학생들은 무조건 에어컨을 찾는다. 그래서 더위에 약하다. 하지만 지금은 에어컨 없는 건물이나 사무실은 사실상 없다. 집에서도 에어컨은 필수 가전이다. 그러니 전기 사용량이 급증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서울 시내 한복판에 에어컨이나 난방이 안 되는 상가가 있다. 대표적인게 낙원상가다.특히 낙원상가 지하는 식당가인데 냉난방이 모두 안된다. 지하라 좀 덜 춥거나 덜 덥긴 하지만, 음식을 조리하는데 발생하는 열 때문에 아주 시원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니 한여름에 선풍기에 의지해 음식을 먹어야 한다. 따라서 가격은 싸다.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들은 더워도 그곳을 찾는다. 만약 에어컨이 사라진다면?그동안 에어컨에 익숙해져서 더위를 많이 타게 된 사람들에겐 지옥이 따로 없을 것 같다. 선풍기로도 충분한데도 특히 젊은이들은 더운 걸 더 못 참는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집에서라도 에어컨을 켜지 않고 선풍기나 사워로 버티며 살아가는 보는 게 건강이나 환경 보호에 좋지 않을까?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남성들만 가능했던 목물
남성들만 가능했던 목물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대부분 가정엔 목욕 시설이 없었다.그래서 남성들은 여름에 더울 땐 수돗가나 우물가에서 목물(등물 또는 등목이라고도 함)을 하고 머리도 감았다. 상의를 벗고 엎드려 등에 찬물을 부으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사실 더울 때 땀과 열이 가장 많이 나는 곳이 목과 등 그리고 머리다. 그런데 목물은 남성들에게나 해당되는 일이다.그러면 여성들은 그 더운 여름에 어떻게 씻었을까? 대부분 여성들은 남성보다 의상을 더 많이 걸친다. 그리고 과거엔 노출을 심하게 입을 수도 없었다. 여름에도 속옷과 속치마 등을 입고 또 겉옷을 입었다. 그 상태에서 한여름 땡볕에 밭일이나 길쌈 등 노동까지 했다.남성들이야 마당에서 목물을 하든 (밤에) 벌거벗거나 팬티 바람에 씻기라도 했지만, 필자의 어머니 세대만 해도 드러내고 씻을 수도 없었다. 고작 밤에 광 같은 곳에 물 조금 떠다가 숨어서 요기조기 씻으면 그나마 다행인 경우도 많았다. 물론 시골에선 여성들끼리 밤에 냇가에 가서 씻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밤까지 참고 기다려야 그나마 가능했다.그래서 조악하더라도 여름에 물을 끼얹을 수 있는 공간이면 땡큐였다. 지금 여성들은 여름이면 어디서나 에어컨 틀고, 짧은 옷을 입고, 언제든 샤워를 할 수 있다.하지만 예전 여성들은 더위에 못 이겨 땀 줄줄 흘리다 땀띠가 나도, 치마를 함부로 걷지 못했다. 남성들처럼 목물도 못하던 예전 여성들의 여름나기는 정말 힘들었다. 한여름 어머니 이전 세대 여성들은 무더위를 어떻게 버텼을지, 새삼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외국 관광객의 변화
외국 관광객의 변화 지난 2016년 방한 외국인 관광객 수가 1,700만명을 넘었다. 그중 많은 수가 중국 단체 관광객이었다. 필자가 당시 명동을 나갔다가 정말 당황스러운 경험을 했었다. 정말 많은 인파가 떠밀리듯 길을 가는데, 온통 중국인들이었고 공용어가 중국어라고 할 정도였다. 사방에 중국어로 호객하고 중국어로 써 붙였다. 그러다 메르스 사태와 사드 여파로 중국인 관광객은 크게 줄고, 그 자리를 동남아 여행객들이 메웠다. 하지만 그도 잠시, 코로나 사태로 한동안 외국인 관광객은 사실상 사라졌다. 코로나 사태 이후인 며칠 전, 필자는 오전 11시 경 지하철 2호선을 탔다가 깜짝 놀랐다. 그 칸 안의 승객 중 절반 이상이 외국인이었기 때문이다. 여럿이 같이 탄 사람들은 모두 외국인들이었고, 필자처럼 혼자 탄 사람들만 한국인이었다. 언어도 영어 중국어 등 참 다양했다. 필자가 어렸을 때만해도, 외국인 특히 서양인을 보는 게 쉽지 않았다. 언젠가 동네에서 서양사람을 보고는 집에 가서 어머니께 ”방금 미국 사람(당시 서양인은 실제 국적에 관계없이 모두 ‘미국인’이라고 칭했다) 봤다“며 신기해 했다. TV에서만 보던 서양인을 직접 봤기 때문이다. 요즘 관광객들은 코로나 이전에 비해 서양인들이 참 많아져서, 신기할 일도 없다, 과거엔 중국인이 대부분이었다면, 지금은 동남아나 서양인을 비롯해 인도 또는 아랍계 사람들도 눈에 자주 띈다. 그러면 지난 1년간 (2023.7~2024.6) 방한 외국인 관광객 중 가장 많이 온 나라는 어디일까?한국관광공사 자료에 의하면 1위가 예상대로 중국(25.8%), 2위가 일본(20.2%)이다. 3위 대만(8.7%), 4위 미국(8.5%) 등이다. 2016년 중국 관광객 비중이 46.8%로 거의 절반을 차지한 것이 비하면, 지금은 국가별 관광객이 크게 달라진 걸 알 수 있다. 중국 관광객들도 단체가 아닌 개별 가족 여행이 많아졌다. 우리나라 입장에선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현상은 필자가 자주 가는 석촌호수를 봐도 알 수 있다.그런데 좀 특이한 변화가 하나 있다. 코로나 이전만 해도 서양인 남성과 한국인 여성 커플이 많았는데, 요즘은 한국인 남성과 서양인 여성 커플들이 훨씬 더 자주 보인다.어떻게 설명해야 할까?한류 등의 덕에, 한국인 남성들의 매력이 더 커졌나?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괴담시리즈 ‘계엄’편
괴담시리즈 ‘계엄’편 십여년 전 일이다.당시 중학생이었던 아들이 갑자기 필자에게 물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일본에 넘긴대요?“ 필자는 아들에게 ”어디에서 들었냐?“고 물었더니, ”다들 알아요“라고 답했다. 필자는 ”이명박 대통령이 아니라 그 할아버지라도 독도는 못 넘기니, 그런 얘기를 믿지 말라“라며 ”독도는 우리나라의 자존심이야, 대통령이라도 독도를 넘기면 무사하지 못해“라고 강조해 줬다. 역시 유언비어 내지 괴담에 불과했다. 십 여 년 후 또 독도 괴담이 나돌았다. 이번엔 ‘독도 지우기’란다. 흐지부지 되었다.한동안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으로 수산물 업자들에게 큰 피해를 줬다.독도와 후쿠시마 오염수가 사그라들만 하니까 이번엔 ‘계엄’이란 단어가 야당 당대표 입에서 나왔다. 갑자기 계엄이라니?계엄시대를 살아봤던 사람으로서 깜짝 놀랄만한 단어다. 대통령실은 야권을 중심으로 ‘계엄령 준비’ 의혹 제기가 계속되는 상황을 단순한 정쟁 차원을 넘어, 대한민국의 시스템에 대한 도전으로 판단하여 강경 대응하고 있다. 한편 지난 2일 김용현 국방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야당으로부터 '계엄령 준비 의혹' 질문이 쏟아졌다. 김 후보자가 최근 방첩사령관과 수방사령관, 특전사령관을 서울 한남동 대통령경호처장 공관으로 호출한 것을 가지고 계엄 준비 운운한 것이다.더불어민주당 부승찬 의원의 관련 질의에 김 후보자는 "지금 대한민국 상황에서 과연 계엄을 한다고 하면 어떤 국민이 이를 용납하겠나. 우리 군에서도 따르겠나"라고 반문하며 "저는 안 따를 것 같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아무리 막나간다지만, 야당은 갑자기 왜 계엄을 운운할까? 계엄을 한다면, 국방부장관 후보자 말처럼 국민이 용납할까? 필자라도 거리로 뛰쳐나갈 것이다. 그러더니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3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윤 대통령이) 계엄할 의지도 없고 의사도 없고 그럴 상황도 아니다라고 얘기하면 되는 겁니다. 제보가 있다 그런 얘기도 있는데 (당내) 제보라는 게 대개 그런 상상력인 것 아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아니면 아니라고 하면 끝이고 상상력 제보란다. 참으로 허탈하고 기가 막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24일 페이스북을 통해 "'미국산 소고기 먹느니 청산가리 먹겠다'던 그 개념 연예인은 개명하고 아직도 버젓이 활동하고 있다"라며 ”사드 괴담으로 노랑머리 가발 쓰고 '내 몸 타들어 간다'고 하고, 심지어 성주 참외도 사드 참외라서 못 먹는다고 선동했던 사람들은 다 어디 갔냐"고 규탄했다. 광우병 사드 후쿠시마 독도 계엄 ...이쯤되면 ‘여고괴담’ 시리즈처럼 ‘야당괴담’ 시리즈라 할만하다.괴담은 사람들에게 참 쉽게 먹히고, 선동하기 딱 좋다. 거짓이 틀림없어도 지지자들은 막무가내로 믿고 본다. 하지만 책임감은 없다. ‘아니면 말고’식이다. 정치는 책임지는 게 우선이다.그런 괴담을 걸러 듣는 게 성숙한 민주시민이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여름이 다가오면 예방주사 ㅠㅠ
여름이 다가오면 예방주사 ㅠㅠ 필자가 국민(초등)학교 다닐 때 수업 시간 중, 학생들이 갑자기 ‘오고야 말 것이 왔다’는 탄식의 비명을 지르는 순간이 있다. 양호선생님이 커다란 주사와 함께 들어오시는 경우다. 어린 눈엔 주사와 바늘이 정말 커 보였다. 정말 공포 그 자체였다. 특히 당시엔 위생개념이 적어 주사기 하나로 모든 학생들에게 동시에 접종했다. 지금처럼 작은 주사기를 사람마다 바꿔 사용하는 것과는 달랐다. 그러니 주사기와 바늘도 클 수밖에... 예방주사는 6월경에 집중되었던 것 같다.주로 뇌염과 콜레라 그리고 장티푸스를 접종했다. 아이들은 어떻게 핑계 대고 안 맞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 담임선생님에게 먹히지 않았다. 주사 맞은 부위는 다음 날 아침에 가장 아팠다. 그런데 예방주사 중 최고는 ‘불주사’였다. (결핵 예방용 피내용 BCG라고 한다)필자 기억으론 초등학교 2학년으로 기억된다. 당시엔 통과의례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필자의 형이나 누나는 흉터를 보여주며 겁을 주기도 했다.불주사는 접종할 때마다 주사 바늘을 일일이 알콜램프 불에 달궈 소독했다. 본 적이 없었던 그 광경 자체가 무시무시한 공포였다. 게다가 뜨거워서 그랬는지 정말 너무나 아팠고, 맞는 순간 이내 부풀어 올랐다. 얼마나 아픈지 우는 아이도 꽤 있었다. 그 자국은 흉터가 되어 평생을 따라다녔다. 필자도 환갑 진갑 지나고 나니, 이제서야 흉터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군대에서도 예방주사를 맞았다.훈련소에 입소하면 파상풍 같은 예방주사를 맞고, 여름이 시작하기 전엔 위 3종 세트 예방주사를 동시에 맞았다. 맞는 방식도 참 무식했다. 훈련병(필자는 이 때 맞았음)들이 침상 위에 줄지어 서서 어깨를 내밀고 서 있으면, 위생병 셋이서 각자 하나씩 커다란 주사기를 들고 쿡쿡 찌르고 지나갔다. 주사액의 소량을 조금씩 주입하는 방식이다. 아프다고 할 수도 없다. 그 다음 날도 똑같이 훈련을 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주사기 하나로 많은 사람에게 계속 접종한다는 게 얼마나 위험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당시엔 몰라서 그랬는지 어쨌는지, 문제가 되는 경우는 없었다. 그래도 불주사의 경우는 알콜불로 소독을 하긴 했다. 어쨌든 지금도 예방주사는 싫다.그래서 독감이나 대상포진처럼, 나이 먹으면 꼭 해야 한다는 접종도 피하고 있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사라진 낭만 캠퍼스
사라진 낭만 캠퍼스 필자가 고교시절, 대학생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대학생이 되면 뭐 하고 놀까’를 늘 생각했었다. 당시 대학가요제 여파로 그룹사운드(밴드)가 유행이었는데 이를 꿈꾸기도 했었다. 이를 두고 좋게 ‘낭만’이라고 했고, 그래서 대학 캠퍼스를 ‘낭만이 가득한 캠퍼스’라고도 칭했다. 당시엔 실제로 대학생이 되면 공부를 안 했다. 만날 술 마시고 기타 치며 놀러 다녔다. 돈이 어디서 났는지, 방석집이나 대폿집은 늘 대학생들로 붐볐다.특히 1980년 전까지만 해도 학점이 절대평가라 학점 걱정 없고, 따라서 졸업 걱정도 없었다. 심지어 어떤 교수는 시험 답안지를 선풍기로 날려서, 가까운데 떨어진 시험지부터 좋은 점수를 줬다고 했다. 시험지에 답을 많이 적으면 무겁기 때문에, 바람에 멀리 날아가지 못한다는 우스개소리였다.하지만 선진국에선 대학 입학은 쉬워도 졸업은 어렵기 때문에, 대학 가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거꾸로 간다는 비판이 늘 있었다. 대학 교육이 엉터리라는 지적이다. 바로 이때 ‘대학교육 정상화 방안’가 등장했으니, 바로 1980년 신군부에 의해서였다.이들은 대학생들이 너무 공부를 안 하기 때문에, 대학에서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등장한 방안이 ‘졸업정원제’와 ‘상대평가제’다. 입학 인원을 30% 늘이되, 졸업할 땐 30%를 탈락시킨다는 것이다. 또한 상대평가제를 도입해 철저한 성적 관리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사교육의 원흉인 대학 본고사를 폐지하고 학력고사와 내신으로만 전형하면서, 모든 사교육을 금지시켰다. 너무나 급작스런 조치에 학교와 학생 모두 당황했고, 재수 학원을 제외한 모든 학원은 문을 닫아야 했다. 지금 같으면 난리가 났겠지만, 무시무시한 군부 독재라 가능했다. 당시 대학생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대학생들이 ‘데모’하는 걸 막으려 이런 정책을 도입했다고 비난했다. ‘대학교육 정상화 방안’과 관계없이 민주화운동(데모)은 늘어만 갔고, 졸업정원제나 상대평가제와 관계없이 모두 무사히(?) 졸업했다. 과거에 비하면 지금 대학 캠퍼스 분위기는 살벌(?)하다. 이념이나 총학생회엔 관심이 없고, 데모도 낭만도 없다. 혼자 점심을 먹는 학생들이 절반이다.2학년 되면 벌써 취업 준비를 한다. 좋은 곳에 취업하려면 성적이 중요하니, 평소 학과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한다. 이곳은 40여년 전만 해도 공부와 담 쌓고, ‘낭만’을 노래하던 대학 캠퍼스였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