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뼈를 부러트려 보험금을 타는 부모도 있다
자식 뼈를 부러트려 보험금을 타는 부모도 있다이런 아동 학대도 있다.3살과 1살인 어린 자녀들에게 둔기를 휘둘러 대퇴부와 두개골 골절상을 입히고 의료 실비를 청구해 보험금을 수령한 30대 부부에게 검찰이 중형을 구형했다.대전지검은 14일 대전지법 형사11단독 장민주 판사 심리로 열린 30대 A씨 부부의 아동복지법 위반 등 혐의 사건 결심 공판에서, 친부에게 징역 9년과 의붓엄마에게 징역 5년을 각각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또한 어린이 보험사에 거짓으로 의료 실비를 청구해 300여만원을 수령한 혐의(보험사기방지 특별법 위반)도 받는다.자신에게 고의로 상해를 입혀 보험금을 타는 경우는 있었다. 이런 경우 보통 다리나 팔처럼 생명에 지장이 없고 쉽게 낫는 부위를 선택(?)한다.하지만 이 부모는 자기 자식, 그것도 겨우 3살과 한 살짜리 아기에게 고의로 대퇴부와 두개골 골절상을 입힌 것이다.하~말이 안나온다.겨우 300여만원을 받아내려고, 자식들의 매우 중요한 부위의 뼈를 부러트렸다. 사망에 이를 수도 있고, 쉽게 낫지도 않고, 고통도 심한 부위다.그렇게 보험금 사기를 치고 싶으면 자신에게 상해를 입히지, 어떻게 어린 자식들에게 둔기를 휘둘렀을까? 자신은 아플까봐 못하겠고, 어린 자식들은 말을 못 하니 괜찮다?이런 부모는 만약 자식이 사고를 당하면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합의금을 많이 뜯어내려고 혈안이 될 사람들이다.그러면서도 이 아버지는 최후 진술에서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몸과 마음에 상처를 남겼다"면서 "저 자신을 원망하고 후회하고 있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거짓이 아니다. 염치없지만 다시 아빠로 설 기회를 달라"며 선처를 구했다고 한다.하지만 전혀 믿을 수 없다. 중형을 받아야 한다.짐승들의 자식 사랑을 보면 배울 점이 많다고 한다.이런 부모를 바로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고 할 수 있다.살다살다 가슴아픈 별의 별 아동학대를 다 보게 된다.나쁜 부모에게서 태어나 이유도 모른 채 둔기로 맞아 골절을 입은 아이들이 안타깝고 불쌍하다.<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죽을 각오로 일을 하지...
죽을 각오로 일을 하지... 사람들이 쉽게 돈을 벌려는 유혹에 빠지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것도 있지만, 노력하지 않고 쉽게 돈을 얻으려는 발상이 문제다. 가장 흔한 게 보험 사기다. 몇 사람이 작당해서 사고를 꾸미고, 보험금을 타내는 방식이다.요즘은 지나는 길에 고의로 살짝 부딪혀 합의금을 뜯어 내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일명 ‘손목치기’가 대표적이다. 지나는 차에 뛰어 들어 살짝 닿고서 합의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가끔은 닿지도 않았는데 어설프게 쓰러지는 연기를 하기도 한다. 얼마 전엔 지방 어느 노선 버스에서 중년의 여성이 버스가 막 출발하려는 순간 철퍼덕 넘어지고, 오빠라는 사람이 나타나 합의금을 요구하는 사건이 여러 차례 발생했었다. 그런데 같은 버스 안의 목격자들은 버스가 아주 천천히 출발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온몸을 던져 넘어질 일은 아니라 말했다. 지난 2월 경기도 수원시의 버스 정류장에서 한 여성이 정차한 버스 뒷바퀴에 고의로 발을 집어넣다가 발각되자 총총히 사라졌다. 지난해 7월에는 경기도 용인에서 또 다른 여성이 버스 뒷바퀴 쪽에 발을 밀어 넣고 있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왜들 이럴까 하는 순간, 지난 22일 오후 9시 20분께 서울 송파구 문정동의 한 버스 정류장에서 남성이 정차한 버스의 뒷바퀴 쪽으로 머리를 밀어 넣는 일이 벌어졌다. 버스 기사가 출발하기 전 사이드미러를 통해 남성을 발견하고, "뭐 하는 거냐"고 외치자 남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쳤다.정말 해외토픽 감이다. 버스 뒷바퀴에 머리를 밀어 넣은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버스가 사람의 머리를 밟고 지나가면 사람이 죽지 않나?사고 보상금을 노린 건지, 사망 보상금을 노린 건지 모르겠다.혹시 자살을 할 겸 남은 가족들을 위해 보상금도 받을 겸, 겸사겸사 일석이조를 노린 걸까?죽거나 크게 다쳐 고통받을 각오로, 차라리 일을 하면 안되나? 요즘 버스기사들은 출발할 때 반드시 뒷바퀴를 살펴야 한다. 버스 기사들은 이래저래 할 일이 많아진다. 일반 운전자들도 언제 자해 공갈단이 들이닥칠지 조심해야 한다.만약 수상한 느낌이 들면 겁 먹지 말고 무조건 경찰에 신고하는 수밖에 없다. 벌점이나 벌금 맞을 각오를 하고... 세상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단순히 경기가 나쁘거나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해서는 아닌 것 같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천재’도 인생 앞에선...
‘천재’도 인생 앞에선...필자가 어렸을 때 세계적인 천재 어린이가 우리나라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온 국민이 흥분한 적이 있었다. 그 어린이의 이름은 김웅용. 지금도 기억나지만 IQ가 210이라고 했었다. 1978년 기네스북에 세계 최고의 IQ로 등재됐다. 특히 필자와 동갑내기라 부럽기도 했었다.그는 생후 80일에 걸어 다니고 생후 6개월에 간단한 문장을 말했다 한다. 또한 네 살 때 우리말은 물론 영어와 독일어, 일본어를 읽었으며, 5세 때 미분 적분 문제를 풀었다. 일본 방송에도 출연했었다. 그리고 미국에서 데려갔다고 들었다. 애국심에 불타던 당시 국민들은 김웅용이 엄청난 업적을 이루다가, 나중엔 노벨상도 받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더 이상의 소식은 없었고, 천재 김응용은 사람들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져갔다.약 20년 후 뜻밖의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잘나가고 있을 줄 알았던 김웅용이 우리나라 충북대에 재학 중이라는 것이다.세계적인 천재가 어쩌다가 충북대를 다니고 있을까?천재가 아니었나? 과대포장이었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면서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그 김웅용이 지난 29일 KBS2TV '여유만만'에 출연해 지난 얘기를 풀어놨다고 한다.그는 5세 때에 한양대학교 과학교육과에 입학하고 8세 때에 건국대학교 이공대학 물리학과를 수료하여 11세 때인 1973년부터 1978년 까지 미항공우주국(NASA) 선임연구원과 책임연구원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김웅용은 행복을 위해 NASA를 탈출했다고 한다.너무 어린 나이에 타지에서 활동하는 게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너무 어린 그에게 너무 큰 기대와 업무가 감당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다.어쨌든 그는 방송에서 "천재라 불리는 게 싫다. 사람들은 천재라고 하면 모든 걸 다 잘하다고 생각한다"며 "다 잘하지는 않고 특출난 분야가 있다. 수학을 일찍 배웠다"고 말했다.응? 모지?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천재’면 편한 거 아닌가?남들보다 암기력도 좋고, 어려운 문제도 척척 풀고, 그러다 보면 좋은 위치나 자리에서 일하게 되고, 존경도 받고....필자는 천재가 아니라 모르겠지만, 천재도 인생 사는 건 힘든 모양이다.특히 김웅용 같은 천재가 때를 잘못 만나서 우등생 정도(신한대 교수)로 사는 건 국가와 인류의 손해다. 만약 그가 미국에서 태어났거나 지금의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훨씬 엄청난 인물이 되었을 것이다.천재도 때와 장소가 맞아야 제대로 꽃 피울 수 있다는 걸 새삼 느낀다.<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용주골 집창촌을 반드시 연내 폐쇄하라
용주골 집창촌을 반드시 연내 폐쇄하라 파주시가 관내 용주골 성매매집결지(집창촌)을 올해 안에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성매매 종사자들은 3년의 유예 시간을 달라며 맞섰다. 그런데 파주시가 제안한 내용을 보니 기가 막힌다. 성매매 종사자들이 다른 직업으로 바꿀 경우 생활비와 주거비용으로 2년간 최대 4,400만원까지 지원하겠다고 한다. 당사자들은 그것도 싫단다. 배가 부른지, 참으로 어이가 없다. 독립운동가나 보훈대상도 아니고, 불법을 자행해온 사람에게 그 큰 돈을 지원하는 것도 황당하지만 그걸 거부하는 것도 당황스럽다. 성매매 여성 즉 매춘부 또는 창녀들은 어쩌다 그렇게 됐을까?1980년 경에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이동철 작 소설 ‘꼬방동네 사람들’에 관련된 얘기가 나온다. (작가가 보고 겪은 일을 소설로 썼다고 했다) 소설의 배경은 60년대 중후반에서 70년대 초반까지 무작정 상경이 유행이었던 시절이다. 시골에서 살던 젊은이들이 더 이상 희망이 없는 농촌에서 탈출해 서울로 무작정 상경을 했다. 많은 젊은들은 주로 공장으로 향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저임금 노동으로 국가 경제 발전에 이바지한, 반대로 노동 착취로 자본가들의 배를 불리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일부 젊은 여성들은 서울역에 무작정 내린 후 갈 곳이 없어 어쩔 줄 몰라 했는데, 사창가 주인(포주)들에겐 그런 여성들이 먹잇감이 되었다. ‘잘 먹고 편하게 돈도 많이 벌 수 있다’는 감인이설로 꼬드겨 사창가로 데려갔다. 하지만 포주들은 일단 속은 여성의 몸을 짓밟은 후, 둥기(기둥서방)을 붙여 줬다. 둥기는 착취자 겸 보호 겸 감시 역할을 했다. 이런 식으로 많은 여성들이 처음엔 괴롭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는 자포자기 심정이 되었고, 그 생활이 나름 익숙해졌다. 심지어 나갔다가 제 발로 다시 돌아오는 여성들도 있었다. 지금이야 이런 경우는 없을 것이다.지금의 집창촌 매춘 여성들은 자신의 의사에 의해 일(?)을 하고 있다. 그럼 왜 다른 일을 하지 않고, 몸을 팔까? 바로 ‘쉽게 돈을 벌기 때문’이라고 한다. 힘들게 출퇴근도 안 하면서 누구의 간섭이나 지시받을 일도 없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고 있다고 한다. 그들에게 2년간 4,400만원 지원금은 한낱 ‘껌값’일 뿐이다. 돈을 잘 버는 업주들과 매춘부들은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새로운 일을 힘들게 배우거나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필자가 볼 때 매춘부들이 다른 직업을 선택하면 지원을 해 준다는 것도 너무 크다. 그녀들이 배가 불러 이를 거부한다면, 더 이상 자비를 베풀 필요가 없다. 파주시는 약속대로 성매매 집결지 즉 집창촌을 반드시 폐쇄하기 바란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북한군 수 ‘세계 4위’라지만
북한군 수 ‘세계 4위’라지만세계 지도와 지역 통계를 제공하는 월드아틀라스(World Atlas)가 지난 7일 발표한 각국의 병력 규모에 따르면, 중국이 현역 군인 200만 명으로 1위, 인도(145만명), 미국(139만명), 북한(120만명), 러시아(85만명) 등 순이었고, 한국(55만5천명)은 8위였다고 자유아시아방송(RFA)이 10일 보도했다.이어 군사 전문가들은 "군 규모와 전투력은 다르다"면서 "북한의 군사력 순위는 20∼30위 정도로 아래"이지만 "핵무기를 포함해 따진다면 북한의 전투력 순위는 이보다 올라간다"는 의견을 밝혔다.하지만 인구수 대비로 보면 북한군 수는 단연 세계 1위다.왜 이렇게 군인이 많을까?부족한 무기를 머릿수로 채우려는 걸까?가난한 나라가 이렇게 많은 군인을 유지하려면 돈도 많이 들텐데, 차라리 그 돈으로 첨단 무기를 구입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즘 전쟁을 머릿수로 하나?필자는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바로 노동력이다.북한은 사실상 기업이 없다. 국가가 모든 걸 해야 한다.이때 가장 동원하기 쉬운 집단이 바로 군대다.우리나라에서도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복구에 제일 먼저 동원되는 게 군인 아저씨들이다. 이재민들은 군인 아저씨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워 한다.하지만 북한군의 경우는 항상 동원된다. 아니 일부 군인들은 노력 동원이 주임무다.도시 개발 등 대규모 토목공사도 군인들이 한다.즉 북한군은 단순히 전투를 하기 위함도 있지만, 상당수는 사실상 무료 노동공무원이다. 여기엔 남녀 구별이 없다. 게다가 군인 수를 줄인들, 잉여 인력이 취업할 자리도 없다. 실업자가 넘쳐나느니 차라리 군인으로 묶어 놓고, 노동력을 착취하는 게 국가 입장에선 이익이고 마음 편하다.따라서 만약 북한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많은 만큼의 북한 군인들이 죽거나 다칠 것이다.이래저래 북한 병사들이 안되 보인다.<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퇴폐의 시대
퇴폐의 시대 파주시가 금년 내에 집창촌인 용주골을 폐쇄한다고 발표했다.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퇴폐의 시대’라 할 만큼 지극히 퇴폐적 문화가 지배했다. 시골 도시 할 것 없이 기차역 인근엔 집창촌 또는 그와 비슷한 지역이 있었다. 서울만 해도 청량리역 서울역 용산역 영등포역이 대표적이었다. 역이 아니더라도 웬만한 동네 특히 대학이 있는 동네엔 소위 ‘방석집’이 모여 있었다. 필자가 어릴 때 살던 흑석동 중앙대 근처엔 ‘연못시장’이란 곳이 있었다. 하긴 정부가 나서 매춘에 앞장서기도 했으니, 일반 국민들에게 뭐라 할 수도 없었다. 미군을 상대로 한 기지촌 여성들은 매주 성병 검사를 받고 ‘보건증’을 소지해야 했고, 일본인을 상대로 한 ‘기생관광’ 접객녀들에겐 매춘 허가증과 다름없는 ‘접객원 증명서’를 발급했다. 정부는 이들에게 ‘외화 벌이 애국자’라며 선동하기도 했다. 당시 대학생들은 공부를 정말 안 했다. ‘왕대포’라고 써 있는 대폿집에선 유행가를 열창하는 대학생들로 붐볐다. 그 틈 한가운데엔 ‘니나노 아가씨’가 젓가락 반주로 노래를 선창했고, 대학생들은 그 노래를 따라 불렀다. 쉬지 않고 노래를 이어가야 실력 있는 ‘니나노 아가씨’였다. 특히 지역 유지 자식인 지방 학생들은 이런저런 핑계로 돈을 받아내 술집에서 탕진하기도 했다. 그런 ‘니나노집’은 흑석동에선 70년대 초반쯤 사라졌다. 반정부 시위가 한창 심할 때였다. 80년대에는 포르노 영화가 급속도로 퍼졌다. 비디오 가게마다 빌려주고 여관(모텔)마다 틀어줬다. 하지만 80년대 말 단속이 심해지자 갑자기 사라졌다. 필자가 생각할 때 가장 퇴폐적인 시기는 1990년 전후다.88올림픽 직후 우리나라 경제는 큰 호황을 맞았다. 고깃집마다 ‘미친듯이 고기를 먹어대는’ 사람들로 붐볐고, 유흥업소가 난립했다. ‘즉석 불고기’집도 있었고, 스탠드바도 우후죽순처럼 늘었다. 일부 업소에선 심지어 ‘홀딱쇼’ 까지 했다. 당시엔 ‘쇼’ 또는 ‘묘기’ 하는 방석집도 있었는데, ‘붓글씨’나 ‘계란포’ 같은 신기한(?) 쇼나 묘기를 선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묘기의 내용은 민망해서 올리지 못함) 당시엔 술 마시고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택시 잡기가 힘들었다. 택시 기사들은 따블 정도 불러야 태워줬고, 심지어 ‘따따(따따블)’을 부르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흥청망청’하던 시대는 결국 IMF로 향했다. 다시 돌아가, 집창촌이 사라진 건 이 시기(IMF) 이후다.사회적 인식도 높아지고 정부의 단속도 있지만, 사실 결정적인 건 ‘개발’ 때문이었다. 집창촌 건물주들은 개발되는 게 훨씬 더 이익이었기 때문에 스스로 문을 닫았다. 이렇게 청량리(588)나 영등포 집창촌은 완전히 다른 지역으로 바뀌었다. 이런 얘기들은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그동안 못 먹고 못 놀았던 한풀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IMF를 계기로 국민들이 정신 차리면서 ‘퇴폐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지금은 먹을 것도 많고 즐길 것도 많다 보니, 그 시대엔 어쩌다 그러고 살았나 싶기도 하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