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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명소 | 퇴폐의 시대

23-05-02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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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폐의 시대

 

파주시가 금년 내에 집창촌인 용주골을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퇴폐의 시대라 할 만큼 지극히 퇴폐적 문화가 지배했다. 시골 도시 할 것 없이 기차역 인근엔 집창촌 또는 그와 비슷한 지역이 있었다. 서울만 해도 청량리역 서울역 용산역 영등포역이 대표적이었다. 역이 아니더라도 웬만한 동네 특히 대학이 있는 동네엔 소위 방석집이 모여 있었다. 필자가 어릴 때 살던 흑석동 중앙대 근처엔 연못시장이란 곳이 있었다.

 

하긴 정부가 나서 매춘에 앞장서기도 했으니, 일반 국민들에게 뭐라 할 수도 없었다. 미군을 상대로 한 기지촌 여성들은 매주 성병 검사를 받고 보건증을 소지해야 했고, 일본인을 상대로 한 기생관광접객녀들에겐 매춘 허가증과 다름없는 접객원 증명서를 발급했다. 정부는 이들에게 외화 벌이 애국자라며 선동하기도 했다.

 

당시 대학생들은 공부를 정말 안 했다. ‘왕대포라고 써 있는 대폿집에선 유행가를 열창하는 대학생들로 붐볐다. 그 틈 한가운데엔 니나노 아가씨가 젓가락 반주로 노래를 선창했고, 대학생들은 그 노래를 따라 불렀다. 쉬지 않고 노래를 이어가야 실력 있는 니나노 아가씨였다.

특히 지역 유지 자식인 지방 학생들은 이런저런 핑계로 돈을 받아내 술집에서 탕진하기도 했다. 그런 니나노집은 흑석동에선 70년대 초반쯤 사라졌다. 반정부 시위가 한창 심할 때였다.

 

80년대에는 포르노 영화가 급속도로 퍼졌다. 비디오 가게마다 빌려주고 여관(모텔)마다 틀어줬다. 하지만 80년대 말 단속이 심해지자 갑자기 사라졌다.

 

필자가 생각할 때 가장 퇴폐적인 시기는 1990년 전후다.

88올림픽 직후 우리나라 경제는 큰 호황을 맞았다. 고깃집마다 미친듯이 고기를 먹어대는사람들로 붐볐고, 유흥업소가 난립했다. ‘즉석 불고기집도 있었고, 스탠드바도 우후죽순처럼 늘었다. 일부 업소에선 심지어 홀딱쇼까지 했다.

당시엔 또는 묘기하는 방석집도 있었는데, ‘붓글씨계란포같은 신기한(?) 쇼나 묘기를 선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묘기의 내용은 민망해서 올리지 못함)

당시엔 술 마시고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택시 잡기가 힘들었다. 택시 기사들은 따블 정도 불러야 태워줬고, 심지어 따따(따따블)’을 부르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흥청망청하던 시대는 결국 IMF로 향했다.

 

다시 돌아가, 집창촌이 사라진 건 이 시기(IMF) 이후다.

사회적 인식도 높아지고 정부의 단속도 있지만, 사실 결정적인 건 개발때문이었다. 집창촌 건물주들은 개발되는 게 훨씬 더 이익이었기 때문에 스스로 문을 닫았다. 이렇게 청량리(588)나 영등포 집창촌은 완전히 다른 지역으로 바뀌었다.

 

이런 얘기들은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그동안 못 먹고 못 놀았던 한풀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IMF를 계기로 국민들이 정신 차리면서 퇴폐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지금은 먹을 것도 많고 즐길 것도 많다 보니, 그 시대엔 어쩌다 그러고 살았나 싶기도 하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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