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씨의 높아진 위상(?)
배씨의 높아진 위상(?) 미국 워싱턴에서 27일 한국전 추모의 벽 준공식이 열렸는데, 앞서 한미동맹협회는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배지성'이란 우리 이름을 선물했다. ‘지구의 별’이란 뜻이라고 한다.굳이 ‘배’씨 성을 선물한데 대해 ‘배’씨인 필자도 괜시리 흐뭇해졌다.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이상하게 배씨가 드물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다니는 내내, 한 반에 배씨는 늘 혼자였다. 게다가 필자가 어렸을 땐 배씨에 대한 이미지가 그리 좋지 않았다. 코미디언들 중에 배씨가 많았기 때문이다. 배삼룡 배일집 배연정 등 당시 인기 있는 코미디언들 중 배씨가 상대적으로 많았는데, 특히 배삼룡은 어리석은 연기로 사람들을 웃겼다. 그러다 보니 당시엔 코미디언은 ‘덜 떨어진 사람’ 같은 인식이 생겼다. 그래서인지 필자가 이름을 대면 ‘배삼룡 하고 무슨 관계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놀리는 식이어서 불쾌했다. 게다가 교과서에도 배씨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일반 역사 교과서를 보면 고려시대 ‘삼별초의 난’을 일으킨 배중손 정도가 나올 뿐이다. 조금 더 자세한 한국사를 보면 고려 개국공신 배현경, 그리고 좀 더 자세한 한국사에는 조선시대 개국공신 배극렴 정도가 나온다. 그러다 보니 배씨는 성씨 순위로는 26위지만, 배씨들은 희성(희귀한 성) 또는 웃기는 성 정도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배씨로서 이름을 날린 첫 인물은 가수 배호였다. 하지만 그는 요절한 데다, 이후 배씨 코미디언들이 이름을 날리며 묻혀버렸다. 그러던 중 배씨의 이미지가 좋게 변하는 계기가 왔다.바로 배용준의 등장이었다. 이어 배두나 등 인기 연예인들이 등장하면서, 배씨는 더 이상 희성이 아니고 ‘웃기는’ 또는 ‘모자란’ 사람도 아니게 이미지가 변했다. 필자가 고둥학교 때 처음 한 반에 배씨가 두 명이 되었다.그러더니 대학에선 같은 과 44명 중 배씨가 3명이나 되었다. 갑자기 배씨가 늘어난 것이다. 지금은 어디가나 배씨가 많아졌다. 특히 프로야구 선수들 중엔 배정대 배영섭 등 배씨 선수들이 많다. 배씨의 인구 비율이 늘어난 것도 아닌데 어쩌다 이렇게 변했는지 모르겠다. 아뭏든 배씨의 한 사람으로서, 어릴 때 비해 배씨의 위상이 높아져 다행으로 생각한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아베 is Gone
아베 is Gone지난 8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가 어이없는 경호 속에 엉성한 괴한의 피격을 받고 숨졌다. 아베는 전통적인 우익 정치인 가문 출신이다. 고조부 오시마 요시마사는 1894년 약 1만명의 병력을 동원해 고종이 기거하는 경복궁을 장악한 후 조선 정부 내각을 강제로 친일내각으로 바꾼 인물이다.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는 56 57대 총리를 지냈고, A급 전범이다. 집안 전체가 이런 사람들 속에서 자란 아베이니, 우익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아베가 총리가 된 후 힘을 쏟은 게 ‘강한 일본’ ‘전쟁할 수 있는 일본’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가 보는 한국은 한 때 식민지였던 조선의 후예 정도였을 수 있다. 어쨌든 아베는 우리나라에 강경책을 고수했다.그런데 이 시점에 우리나라 정부와 대통령들의 외교적 미숙함이 한일 관계에 찬물을 끼얹었다.박근혜 전 대통령시절, 역사와 위안부 문제 등으로 한일관계가 악화되자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화해를 위한 3자 회담을 가졌다.일본 아베 총리는 당시 박근혜 대통령에게 우리말로 ‘반갑습니다’라며 인사했지만, 박 대통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운데서 오바마 대통령만 억지 웃음을 지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 먹는 표정을 하고 딴 데만 보고 있었다. 끝나자마자 박근혜 대통령은 인사도 제대로 안 하고, 마치 ‘정말 있기 싫은 자리에서 벗어나듯’ 후다닥 자리를 떴다.오바마 대통령의 부탁에 ‘할 수 없이 자리를 했더라도’, 최소한의 인사와 예의를 갖추는 게 외교적 관례이자 예의다.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이번엔 박근혜 정부 때의 ‘위안부 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그 과정에서 문 정부는 협상 과정 등 외교적 기밀까지 까발리며 국제 관례를 개무시하며, 친일청산이라고 기뻐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를 믿을 수 없는 상대라고 한심하게 생각했다.나아가 평창올림픽에는 아베 총리가 축하사절로 직접 방한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북한에서 온 사절단에만 온 신경을 썼지, 아베 총리에게 점심 한 끼 대접도 안 하고 그냥 돌려 보냈다. 돌아가는 아베 총리의 심정이 어땠을까?누구라도 ‘뭐 이런 나라나 정부 또는 대통령이 있나’ 하는 불쾌감을 충분히 가질 만 하다.필자가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아베 전 총리를 아주 싫어하지만, 우리나라 정부나 대통령의 외교적 미숙함이나 결례가 어느 정도 원인 제공을 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함이다.아베가 최연소에 최장수 총리를 지냈다는 건 일본 입장에서 그만큼 일본을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일했다는 방증이다. 필자는 아베 전 총리가 우리나라에 대해 여러가지 반감을 갖게 한 경우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를 ‘이토 히로부미’ 급으로 생각하면 안된다고 말하고 싶다.중국이나 북한과 대적하기 위해선 이웃나라 일본의 협력이 필수다.7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과거 청산에만 매달려, 죽창가를 부르며 무조건 반일하는 게 애국이고 실익일까?<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총리는 뭘 하고 있나?
총리는 뭘 하고 있나? 얼마 전 새 정부가 세제개편안을 발표했다.그 중 하나가 다주택자 종부세 감세였다. 문재인 정부 이전으로 되돌린다고 했다. 하지만 많은 국민들은 부자 감세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물론 주택 수 보다 가격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바뀐다고 했다. 하지만 예를 들어 강남에 세 채를 가진 다주택자 세금이 내년에 3억 6500만원으로 책정될 계획이었지만, 9,025만원만 내면 되게 된다고 한다. 무려 63.5%가 줄어드는 것이다.너무 심한 것 아닌가? 그런데 지난 주 교육부는 너무나 갑작스럽고 황당한 계획을 발표했다.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6세에서 5세로 낮추겠다는 것이다. 관련된 학부모들은 난리가 났다. 어린 나이엔 한 두 달 차이로 신체와 학습능력 지능 등의 차이가 큰데, 그 차이를 억지로 더 벌리게 되기 때문이다. (교사의 문제나 추가 재원 확보 등은 차지한다) 게다가 대학 입학과 취업 땐 더 심한 경쟁을 하게 된다.그런데도 박순애 교육부 장관은 사전에 어떤 조사나 연구도 없이, 일방적으로 일정까지 발표하고 나서 이제부터 논의를 시작하겠단다.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인가?교육이야말로 ‘100년 지 대계’인데, 하루 아침에 안을 뚝딱 만들어 대통령 임기 내에 시작하겠다니, 이러니 ‘윤 정부 지지율이 폭락하지’라는 생각이 든다. 대학교 총학생회 운영도 이보단 낫겠다. 그런데 이런 일련의 사태에서 너무나 조용한 인물이 있다.바로 한덕수 총리다.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한덕수 총리를 내정하고, 책임 총리제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선인 자신은 경륜이 짧으니, 비록 호남 출신의 과거 진보 정부 총리였지만 자신의 약점을 커버해줄 적임자라고 추켜세웠다. 한덕수 총리가 사실상 내각을 조각할 것처럼 얘기도 했다. 이때만 해도 국민적 반응이 좋았다. 하지만 말뿐, 어떤 장관들을 한덕수 총리가 추천해 임명됐는지 모르겠다. 오리려 지금은 장관이 대통령을 독대하고 업무 보고를 하고 있다.책임 총리라고 했던 한덕수 총리의 역할을 어디로 갔나? 윤 정부는 경험 많은 분을 총리에 '바지총리'로 앉혀 놓고, 그 총리를 패싱하며 아마추어 선무당들끼리 노닥거리고 있다. 만약 한덕수 총리가 정말 책임총리처럼 일했으면, 지금 같은 엉성한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총리가 국정을 챙기기 보단, 국회 등에서 방패막이만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무슨 생각일까? 윤핵관 탓일까?그리고 한덕수 총리는 늘그막에 총리 자리에 연연하고 싶을까?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젊은 정치인들은 토사구팽의 대상인가?
젊은 정치인들은 토사구팽의 대상인가?며칠 전 박지현 전 민주당 비대위원장의 당대표 출마가 무산됐다. 이에 대해 박 전 위원장은 ‘토사구팽’이라고 주장했다. 선거 때 젊은 층의 표가 필요하니까 본인을 데려다 비대위원장으로 앉혀 놓고, 선거가 끝나니 당대표 출마도 막는다고 분통을 터트렸다.한편 7일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당윤리위원회로부터 ‘6개월 당원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이 대표는 이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제3자 입장에선 대선과 지선 두 차례 승리를 이끈 이 대표를 토사구팽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물론 박 전 위원장과 이준석 대표는 격이 다르고 불거진 문제도 다르다.하지만 이준석 대표의 경우 아직 확인되지 않고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윤리위가 앞서 결정을 내릴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필자가 전에도 올린 바 있지만, 이준석 대표가 성상납을 받았다면 당연히 물러나야 할 일이다. 하지만 윤리위의 성급한(?) 결정에 다른 의도나 작당이 없는가가 문제다. JTBC는 이를 충분히 의심할만한 녹취파일까지 공개한 바 있다.이준석 대표는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 측과 부딪히며 척을 진 바 있다. 이 때문에 ‘윤핵관’들의 눈 밖에 났고, 그들은 ‘선거만 끝나면 두고 보자’라며 벼르고 있었을 수 있다. 하지만 필자는 당시 윤석열 후보가 ‘윤핵관’ 말만 듣고 당을 멀리하다 보니, 답답한 이준석 대표 입장에선 어쩔 수 없이 배수진을 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어쨌든 이 대표는 젊은 층의 표를 모을 뿐만 아니라 선거기술자가 되어, 두 번의 선거를 모두 승리로 이끈 일등 공신이다. 그리고 당의 쇄신을 위해 나름대로 힘을 쏟고 있는 상황이다.하지만 이 대표가 주도하는 꼴을 보기 싫은 ‘윤핵관’들이, 다음 총선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지금 이 대표를 쫓아내려 하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든다.여당이나 야당이나 젊은 정치인들을 쫓아내는데 혈안이 되고 있다.이래 가지고 어떻게 거대 두 정당이 젊어지고 쇄신될 지 알 수가 없다.젊은 정치인들을은 보호하고 키워줘야 하는 대상이지, 세력이 없다고 쉽게 토사구팽하는 대상이 아니다.말로만 나라와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기득권 세력들이 오로지 ‘내가 한 번이라도 더 해 먹어야 한다’는 게 우리나라 정치의 현 주소이자 정치인들의 철학이다.‘정치판’이라는데가 젊어지고 쇄신하기가 이렇게 어렵다.<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대통령의 휴가에 관심이 있었나?
대통령의 휴가에 관심이 있었나?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80일만에 지지율 28%짜리 성적표를 받고 5일간 휴가를 갔다. 원래는 서울을 떠나려 했으나, 여론이 싸늘하자 서울 자택에서 쉬는 것으로 바꿨다고 한다. 할 일이 태산인데 사방에서 쓸데 없는 문제들만 일으키는 상황에서 취임한 지 겨우 80일 만에 5일간 휴가를 사용한다는 건, 국민들 입장에선 바람직하지 않은 모양새다.하지만 정치를 해보지도 않은 윤 대통령이 거의 1년간 쉬지 않고 달려왔고, 게다가 지지율 폭락에 욕만 바가지로 먹고 있으니, 잠시 쉬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싶을 것이다. 윤 대통령이 아무리 지지율에 관심 없는 척하고 ‘묵묵히 열심히 일하다 보면 언젠간 국민들이 알아주겠지’라고 생각한다고 해도, 지금은 마음이 착잡하고 ‘뭐가 문제이고 뭘 어떻게 해야 하나’ 괴로운 마음일 것이다. 어쨌든 취임한지 겨우 세 달도 지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이번 휴가기간 동안 시간의 여유를 갖고, ‘뭘 잘못하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구해야 한다. 이건 나라와 국민을 위한 책무다. 그동안 대통령이 휴가를 가는 데 대해 국민들이 이번처럼 관심을 보인 적이 없다.이는 5일간의 휴가 뒤엔 확 달라진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하는 국민들의 간절한 소망이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공부 멋‘만 부리던 철부지 시절
’공부 멋‘만 부리던 철부지 시절올해 수능은 11월 17일로 정해졌다.수능이란 말이 나올 때마다 필자의 철없던 고교시절이 떠오른다.(또 ‘라떼’ 얘기임)필자는 중학교 때까지는 그런대로 공부를 좀 했다.그런데 중3에 올라가며 사춘기가 찾아왔다. 고등학교 진학하면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노는 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었다. 공부는 해야겠는데 능률이 안 올랐다. ‘공부 맛’은 못 느끼고, ‘공부 멋’만 부렸다.당시엔 ‘밤을 잊은 그대에게’나 ‘별이 빛나는 밤에’ 같은 음악방송이 인기였다. 책상머리에 라디오를 켜놓고 들으며 공부한답시고 앉아 있었다. 공부 못하는 학생들은 ‘음악을 들어야 공부가 잘된다’고 강변했다. 가끔은 사연(편지)이나 요청곡(엽서)를 보내 방송에 소개되기도 했다. 이러니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다.그때엔 엽서를 예쁘게 꾸며 보내는 게 유행이었는데, MBC에서는 매년 말 ‘예쁜 엽서 전시회’도 열었다. 필자도 한 번 가봤는데, 엽서 여러 장을 이어 붙여 ‘작품’을 만든 솜씨와 정성에 탄복했다.한때 단과 학원 새벽반을 수강하기도 했다.새벽 6시에 종로에 있는 학원까지 가면, 커다란 교실에 2~300명의 학생들이 다닥다닥 앉아 있었다. 앞에서 선생님은 녹음기처럼 중얼중얼 설명을 하는데 열정이나 감정은 전혀 없었다. 게다가 새벽에 나왔으니 강의는 귀에 들어오지 않고 잠만 쏟아졌다. 하지만 강의가 끝나면 수 많은 학생들이 동시에 여기저기 학원에서 쏟아져 나왔다. 나도 이들 중 하나라는 부뜻함을 느꼈다. 공부한 건 없지만 공부한 척은 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돈 버리고 시간 버리고, 참 한심한 짓이었다.더욱 가관은 ‘정독도서관에서 공부하기’였다.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친구들끼리 새벽부터 정독도서관에 모여서 공부하는 것이었다.하지만 학생들이 얼마나 많이 모이는지, 새벽 5시에 도착해도 대기번호표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 웃기는 건, 대기를 하다보면 불과 6~7시만 되어도 입장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누군지 몰라도 새벽에 와서 일찌감치 나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어렵사리 입장해서 책을 펼치면 10분도 안돼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버티다가 대개 2~3시쯤 도서관을 나섰다. ‘정독도서관에 가서 공부하게 성공’이란 뿌듯함만 안고서, 친구들과 놀았다.공부를 안 하면 걱정되고, 하자니 잘 못하고... 공부 못하는 학생들의 전형이었다.그러니 그해 수능 결과가 좋을 리 없었다.“재수는 필수, 삼수는 선택‘이란 말처럼, 필자도 재수 학원으로 향해야 했다.재수하는 동안 많은 반성과 노력으로 어느 정도 공부는 만회했지만, 그 재수 1년은 필자의 인생을 바꿔 놓는 아까운 한 해가 되고 말았다.<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