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에 흔했던 복조리도 안 보인다
설날에 흔했던 복조리도 안 보인다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친근했던 필수품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그중 하나가 ‘조리’다. 도시에 사는 대부분의 가정에 조리가 아예 없거나, 사용한 지 오래되어서 어느 구석에 처박혀 있다. 지금 청소년들은 조리를 본 적이 없어, 아예 모를 수도 있다. 한 십 여 년 전까지만 해도 설날엔 복조리를 판매하곤 했는데, 지금은 이마저도 크게 줄었다. 조리 자체가 사라져서인가 보다.(아마 요즘 청소년들에게 ‘조리’가 뭐 하는 물건이냐고 물으면, 거의 대부분 ‘슬리퍼 조리’라고 답할 것이다)한 십여년 전쯤만 해도 밥을 먹다 돌을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돌이 꼭 가장의 밥 안에서 나온다더니, 우리 네 식구 중 유일하게 필자 밥에서만 돌이 나왔다. 아내는 ‘분명히 쌀을 한 번 일었는데...’하면서 처음엔 미안해하더니, 나중엔 ‘왜 혼자만 돌을 먹고 그래?’라는 식의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기도 했었다.하지만 요즘 쌀에선 돌이 안 나온다. 그만큼 포장하기 전에 돌을 잘 골라낸다는 의미일 것이다.필자가 어렸을 때 방앗간에 가면 ‘석발기’라는 기계가 있었다. 달달 떨면서 돌을 골라냈다. 아마 지금은 성능이 더욱 향상된 석발기를 여러 단계에 걸쳐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돌이 안 나오는 것 같다.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어머니는 밥을 하기 전에 조리로 쌀을 두 번은 일으신 것 같다. (‘조리’를 알아도, 쌀을 ‘일다’라는 표현을 모르는 젊은이들도 많다) 귀한 분이나 손님께는 여러 번 일은 쌀을, 다시 눈으로 손으로 보면서 돌을 고르기도 했다.어쨌든 설날이 됐는데, 흔했던 조리나 복조리 생각이 난다.추억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게 좀 안타깝기도 하지만, 용도가 없어진 걸 어쩌겠나 싶다.<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국물과 육수
국물과 육수한 20년 전만 해도 ‘육수’보다는 ‘국물’이란 단어를 많이 사용한 것 같다. 고깃국물 멸칫국물 오뎅국물 김칫국물 라면국물 등등...‘냉면’이란 노래에도 국물이 등장한다.‘한 촌사람 하루는 성내 와서 구경을 하는데 (중략)맛 좋은 냉면이 여기 있소값싸고 달콤한 냉면이오냉면 국물 더 주시오 아이구나 맛 좋다’그런데 요즘은 육수(肉水)가 대세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육수’란 ‘고기를 삶아 낸 물’이라고 되어 있다. 육수도 분명 표준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국물 대신 육수를 더 자주 사용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부대찌개를 먹다가도 “여기 국물 좀 더 붜 주세요”라고 하면, “예, 육수 더 드릴게요”라고 한다.국물이 왜 육수로 변했을까?‘국물’보다 ‘육수’가 더 비싼 느낌이 날까?‘고깃국물’보다 ‘육수’가 더 짧아서일까?‘고기’를 삶아 낸 물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함일까?라면 국물을 육수라고 하진 않는 걸 보면 맞는 것 같기도 하다.하지만 굳이 ‘멸치 육수’ 또는 ‘소고기 육수’라고 하는 걸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더구나 수퍼에서 파는 물냉면 안에 ‘동치미 육수’라고 적혀있는 걸 보면 황당하기 그지없다. 동치기에 들어간 무가 고기인가, 육수라고 하게... 이젠 그냥 습관적으로 국물을 육수라고 표기하는 것 같다.국물은 순우리말이고 육수는 한자어다.필자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멸치 육수’나 ‘소고기 육수’는 의미가 중복되므로, ‘멸칫국물’과 ‘소고깃국물’로 표기하는 게 맞을 것 같다. 굳이 우리말을 사용하자는 얘기가 아니더라도, 쉽고 올바른 말을 사용하는 게 맞다고 본다.‘냉면’ 노래에서 ‘냉면 ’육수‘ 더 주시오’라고 한다면 뭔가 어색하지 않은가?‘국물’이란 좋은 우리만을 두고, 경우에 따라서는 맞지도 않는 ‘육수’라는 단어는 이제 가급적 지양하면 어떨까 싶다.오늘 점심엔 뜨끈한 멸칫국물을 사용하는 멸치국수를 먹어야겠다.<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CM송 전성시대
CM송 전성시대얼마 전 식사 자리에서 누군가 ‘줄줄이사탕으로 엮어 들어간다’는 얘길 했다. 순간 줄줄이사탕 CM송과 함께 과거 CM송들이 생각났다. (또 라떼 얘기임) 사실 줄줄이사탕의 인기는 짧았다. 하지만 ‘줄줄이사탕’이란 단어와 CM송은 워낙 강력하게 사람들 뇌리에 박혔다, 줄줄이사탕 광고는 단순했다. 당시 필자 또래의 초등학생이 기타 치며 노래를 부르고, 노래에 맞춘 화면이 등장하는 형식이다. “아빠 오실 때 줄줄이, 엄마 오실 때 줄줄이, 우리들은 오리온 줄줄이 가족~”우리나라 최초의 CM송은 1959년 제작된 진로소주 CM송이다. “야야야 야야야 차차차.... 너도 진로 나도 진로...”라는 노래와 함께, 당시로선 파격적인 애니메이션 광고가 등장했다. 당시엔 국내엔 변변한 일자리가 없어 외국의 배를 타는 ‘마도로스’가 선망의 직업이었는데(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 뱃사람들이 등장한다.사실 CM송의 황금기는 70~80년대였다. 역사에 남을 만 한 주옥같은 CM송들이 등장했다.지금까지 필자가 꼽는 최고의 CM송은 오란씨다. “하늘에서 별을 따다 하늘에서 달을 따다 두 손에 담아드려요~ 아름다운 날들이여 사랑스런 눈동자여 오오오 오란씨”이에 경쟁 제품들이 등장했는데 그중 하나가 써니텐이다. “태양의 정열을 마시자 써니텐~”로 시작하는 CM송이 기억난다.당시엔 CM송을 히트시키는가가 광고의 주요 포인트가 되기도 했었다. 가장 치열했던 게 롯데껌과 해태껌의 대결이었다. “주시후레시 후레시민트 스피아민트 롯데껌, 좋은 사람 만나면 나눠 주고 싶어요, 껌이라면 역시 롯데껌”에 대한 맞불로 “해태껌 부드러운 맛 해태껌 상쾌한 기분 해태 해태 해태껌”으로 대항했다.아카시아껌 CM송도 인기였다. “아름다운~ 아가씨~ 어찌 그리 예쁜가요~ 아가씨 그~윽한 그 향기는 뭔가요, 아~아~ 아카시아 껌”흔히 빨아 먹는 빙과의 시초를 ‘쭈쭈바’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전에 나온 ‘아이차’다. “입안이 얼얼~ 삼립 아이차”라는 CM송이 있었다.송창식이 부른 “엄마 아빠도 함께 투게더, 온가족이 함께 투게더~”도 인기였다.당시 CM송은 특히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이유가 뭘까?필자의 생각으론 1975년 12월 터진 ‘대마초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내로라할 가수들이 모조리 연루되면서 우리나라 가요계는 쑥대밭이 되었다. 게다가 군부 독재로 인해, 자유로운 창작보다 사랑 타령이나 하는 음울한 가요들만 살아남게 되었다. 그럴 때 짧지만 발랄하고 상쾌한 멜로디 그리고 가슴에 와닿는 가사로 호소하는 CM송은 단순한 광고가 아닌 노래로 다가왔다.특히 대마초 파동으로 방송출연이 금지되었던 뮤지션들은 생계를 위해 CM송 제작에 뛰어들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김도향과 윤형주다. 그 두 뮤지션은 CM송계에서 양대산맥을 이루며 각각 1천여곡씩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하지만 민주화와 한국 가요의 발전을 이루면서 CM송의 위력은 이전만 못해졌다. 그 자리엔 짧고 강력한 카피 또는 슬로건이 채워졌다. ‘순간의 선택이 십 년을 좌우합니다’ 또는 ‘여자의 변신은 무죄’ 같은 게 그 사례다.어쨌든 옛날 즐겨 듣고 부르던 CM송을 생각하고 속으로 부르고 나니 즐겁다.필자는 역시 꼰대가 맞다.<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재소자 인권만 있고, 교도관 인권은 없다
재소자 인권만 있고, 교도관 인권은 없다우리나라가 급속히 민주화되면서 인권의식도 높아졌고 인권 보호를 위한 제도도 많이 생겼다. 그런데 이럴 때 문제가 되는 게 한 쪽의 인권 보호가 타인의 권리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경우다.대표적인 경우 중 하나가 학생인권과 교권의 충돌이다.요즘 교사들의 인기가 크게 떨어지는 이유 중 하나가 지나친 학생 존중에 따른 교권의 침해다. 걸핏하면 학부모가 찾아와 문제를 삼거나, 심지어 교사를 폭행하기도 한다. 교사의 정당한 지시를 학생들이 교묘히 따르지 않아도 강제할만 한 방법이 별로 없다. 학생들은 학교 선생님을 우습게 생각하게 된다.그런데 비슷한 경우가 또 있다. 바로 교도소다.사회적 약자를 보호한다며 재소자 인권 보호를 강조하다 보니, 재소자들이 교도관 보기를 우습게 안다. 교도관을 폭행하거나 커피 심부름 시키는 일도 있다. 트집을 잡아 여기저기 민원을 넣기도 한다. 그러면 교도관들은 일단 힘들어진다. 제도를 약용하는 것이다.특히 일부 악질 재소자들은 교도관들의 공포의 대상이다. 연쇄살인마 유영철은 교도관 상습 폭행자다. 더이상 처벌받을 게 없으니 맘 놓고(?) 행패를 부린다. 얼마 전 어떤 보도에 따르면 어떤 재소자가 자해하거나 이물질을 먹고 외부 병원치료를 받는데, 그 과정에서 교도관을 폭행했다고 한다. 하지만 재소자에게 수갑을 채우려 해도 절차와 과정이 복잡해 함부로 수갑도 못 채운단다.교도소에서 할 수 있는 징벌은 고작 독방 수감 정도. 하지만 문제를 일으킨 재소자는 그렇지 않아도 비좁은 곳에서 벗어난다며 독방을 좋아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이러니 교도관들은 때리면 맞는 수 밖에 없고, 자해해서 치료한 치료비는 모두 정부가 세금으로 부담한다.이쯤 되면 도대체 누가 약자인지 헷갈린다.인권을 논할 때에도 공정과 정의가 우선이다.규정을 어기고 타인의 인권을 침해했을 때 강력하게 징벌하는 제도가 절실하다.재소자의 교도소 내 범행에 따라 재판을 거쳐 형기를 늘이는 방법을 없을까 싶다.아울러 유영철 같은 악질 사형수들의 사형 집행을 강력히 촉구한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유인태가 틀렸다
유인태가 틀렸다 야당 원로인 유인태 전 국회사무총장이 윤 대통령의 취임 1주년인 9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의원들의 공부 모임인 '국민공감'에서 강연을 했다. 유 전 사무총장은 그 자리에서 "우리나라처럼 소위 선진국이라는 나라에서 국회의원 초선 비율이 이렇게 많이 바뀌지 않는 나라는 없지 않냐"며 "훌륭한 사람들을 모셨지만 왜 4년이 지나면 몹쓸 사람이 되는 것이냐. 참 비극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 발언은 틀렸다.요즘 초선의원들은 경력이나 학력은 과거 의원들에 비해 업그레이드 됐을지 몰라도, 인성은 거꾸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단적인 예가 김남국 의원이다.김 의원은 변호사 출신으로, 국회의원이 되기 전부터 가난한 척 거짓말을 했다. 돈이 없어 라면으로 세끼를 때우고, 하루 한 끼로 버티는 날도 있다고 했다. 변호사가 돈이 없어서?그런 그는 국회의원이 되자마자 누가 봐도 불법으로 의심되는 코인 거래에 몰빵했다. 문제가 되자 민주당을 탈당해 조사를 회피했고, ’정치 탄압‘ 어쩌구 하면서 거래 자료 제출은 거부하고 있다. 이런 초선의원이 훌륭한 사람인가? 사실 김남국 의원만의 문제가 아니다.국민의힘은 초선의원들이 앞장서 윤대통령 옹호에 나섰고, 더불어민주당은 초선의원들이 밀어붙여 검수완박법을 통과시켰다. 즉 과거엔 초선의원이 4년 지나면서 나쁜 물이 들었지만, 지금은 나쁜 물이 든 상태에서 국회의원 배지를 다는 시대로 바뀌었다. 오로지 권력만을 탐하는 저질의 인성을 가진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되는 식으로, 상태가 더 나빠진 것이다. 따라서 그런 나쁜 사람들은 공약이나 정치적 신념은 온데간데없고, 국회의원이 되자마자 사익만을 추구하는 정치 모리배나 ’사꾸라‘가 되어 버린다. 내년 총선에도 다수의 초선 후보들이 등장할 것이다.누가 나쁜 사람인지 미리 알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잘 따져볼 일이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왜 그렇게 때리고 돈을 뜯었을까?
왜 그렇게 때리고 돈을 뜯었을까?약 5개월 전 강원도 속초고등학교에서 한 교사가 학생 30 여 명에게 엎드려뻗쳐 자세를 취하도록 체벌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학교 측으로부터 아동학대 가해자로 속초시청에 신고됐었다. 해당 교사는 급식 과정에 문제가 발생해서 단체 교육을 위해 1분 정도 하는 시늉만 했다고 말했다.웃픈 현실이다.요즘 애들한테 ‘라떼’ 야기를 하면 꼰대 소릴 듣겠지만, 필자 학창 시절에 이정도는 그야말로 순수한 훈육이자 교육이었다.요즘 ‘더 글로리’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면서 학폭과 함께 교폭(교사 폭력)이 재조명되고 있다.‘20년 전에 나를 죽을 만큼 패던 교사를 한번 보고 싶다’‘촌지 안 갖다 바친다고 학생들을 한 방에 모아놓고 무지막지하게 때리던 여선생에게 묻고 싶다’이런 식의 얘기들이 인터넷에 올라왔다.필자가 학교 다닐 때 ‘안 때리는 선생님’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대다수의 선생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학생들을 때렸다. 영화 ‘친구’의 첫 장면(교사가 이 핑계 저 핑계로 학생들을 손으로 때리는 장면)이 남 얘기가 아니었다. 어떤 교사는 학생들을 때리는 걸 즐기는 것 같았다. 결코 사랑의 매가 아니었다.게다가 ‘돈 받아 먹는’ 담임 선생은 거의 다였다. 어떤 선생은 대놓고 돈을 밝혔다.말은 ‘촌지(寸志)라고 했는데,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1. 속으로 품은 작은 뜻. 2. 마음이 담긴 작은 선물. 3. 어떤 사람에게 잘 보아 달라는 뜻으로 건네는, 약간의 돈‘이라고 되어 있다. 돈 받아 먹는 선생은 1번이라고 하겠지만, 학생이나 학부모들은 3번이라고 생각했다. 즉 ’뇌물‘이었다.오죽하면 당시에 선생이 ’부모님 모시고 와‘라고 하는 말은 대부분 ’돈 갖다 바쳐‘라는 말과 같은 뜻이었다. 심한 경우엔 돈을 갖다 바치지 않는 학생들은 문제 학생 취급을 당해야 했다. 불량 학생들은 학생에게 돈 뜯고, 선생은 학부모에게 돈 뜯던 시절이었다.한때 가장 선호하는 신붓감 1등이 초등학교 교사였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당시에 서울교대 입학하기가 서울대 가기만큼 힘들었었다.왜 그랬을까? 생기는 것 즉 촌지, 아니 뇌물을 많이 받아먹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남에 있는 초등학교에 부임하려면 상당히 힘들었다고 한다. (여기서도 빽과 뇌물이 있었을 것 같다)요즘 선생들의 폭행은 많이 줄었다. (촌지가 줄었는지는 모르겠다)거기엔 교사들의 자성과 의식의 전환이 있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필자는 휴대폰과 SNS의 발전이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수 년 전 교사가 학생을 폭행하는 장면이 공개되면서 문제가 된 경우가 여러 차례 있었기 때문이다.어쨌든 제자들을 무자비하게 때리고 돈 받아 처먹던 선생들은 지금 뭐하고 있을까?그 돈으로 호의호식하던 자식들은 그 사실을 알까?지금까지 기억을 가지고 사는 학생들에게 미안하지 않을까?(갑자기 ’사죄드린다‘는 전두환의 손자가 생각난다)하지만 당시 가해 선생들은 지금 아주 쉽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그땐 다 그랬어”<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