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는 뭘 하고 있나?
총리는 뭘 하고 있나?얼마 전 새 정부가 세제개편안을 발표했다.그 중 하나가 다주택자 종부세 감세였다. 문재인 정부 이전으로 되돌린다고 했다. 하지만 많은 국민들은 부자 감세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물론 주택 수 보다 가격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바뀐다고 했다. 하지만 예를 들어 강남에 세 채를 가진 다주택자 세금이 내년에 3억 6500만원으로 책정될 계획이었지만, 9,025만원만 내면 되게 된다고 한다. 무려 63.5%가 줄어드는 것이다.너무 심한 것 아닌가?그런데 지난 주 교육부는 너무나 갑작스럽고 황당한 계획을 발표했다.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6세에서 5세로 낮추겠다는 것이다. 관련된 학부모들은 난리가 났다. 어린 나이엔 한 두 달 차이로 신체와 학습능력 지능 등의 차이가 큰데, 그 차이를 억지로 더 벌리게 되기 때문이다. (교사의 문제나 추가 재원 확보 등은 차지한다) 게다가 대학 입학과 취업 땐 더 심한 경쟁을 하게 된다.그런데도 박순애 교육부 장관은 사전에 어떤 조사나 연구도 없이, 일방적으로 일정까지 발표하고 나서 이제부터 논의를 시작하겠단다.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인가?교육이야말로 ‘100년 지 대계’인데, 하루 아침에 안을 뚝딱 만들어 대통령 임기 내에 시작하겠다니, 이러니 ‘윤 정부 지지율이 폭락하지’라는 생각이 든다. 대학교 총학생회 운영도 이보단 낫겠다.그런데 이런 일련의 사태에서 너무나 조용한 인물이 있다.바로 한덕수 총리다.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한덕수 총리를 내정하고, 책임 총리제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선인 자신은 경륜이 짧으니, 비록 호남 출신의 과거 진보 정부 총리였지만 자신의 약점을 커버해줄 적임자라고 추켜세웠다. 한덕수 총리가 사실상 내각을 조각할 것처럼 얘기도 했다. 이때만 해도 국민적 반응이 좋았다.하지만 말뿐, 어떤 장관들을 한덕수 총리가 추천해 임명됐는지 모르겠다. 오리려 지금은 장관이 대통령을 독대하고 업무 보고를 하고 있다.책임 총리라고 했던 한덕수 총리의 역할을 어디로 갔나?윤 정부는 경험 많은 분을 총리에 '바지총리'로 앉혀 놓고, 그 총리를 패싱하며 아마추어 선무당들끼리 노닥거리고 있다.만약 한덕수 총리가 정말 책임총리처럼 일했으면, 지금 같은 엉성한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총리가 국정을 챙기기 보단, 국회 등에서 방패막이만 하고 있다.윤 대통령은 무슨 생각일까? 윤핵관 탓일까?그리고 한덕수 총리는 늘그막에 총리 자리에 연연하고 싶을까?<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보듬어야 할 청년들
보듬어야 할 청년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사람끼리 어울려,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이래서 사람에게 가장 무서운 것 중 하나가 ‘외로움’이다. 소설 ‘로빈슨 크루소’처럼 홀로 외딴섬에 갇혀 오래 사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먹고 살기 고달프고, 외로움에 스스로 목숨을 끊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런데 외딴섬이 아니라 지금 이 사회에서 수많은 사람들 속에 항상 외로움과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독거노인들이다. 그런데 독거노인들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의 결과이므로, 덜 억울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보도에 의하면 보육원 출신의 청년 두 사람이 잇달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그 중 한 사람은 보육원 관계자에게 "돌봐주는 사람이 없어 너무 힘들다"며 외로움을 호소했었다고 한다. 그 사람이 극단적 선택을 하자, 그의 친구가 충격을 받고 뒤를 이었다. 사실 보육원을 나오면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이 모든 걸 혼자 알아보고 결정해야 하니 힘들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겪는 외로움은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을 것이다. 이들은 태어나서 보육원에서 자란 게 죄라면 죄다. 부모와 사회의 잘못이지, 본인들이 잘못한 건 하나도 없다. 독거노인들과 다른 점이다.이런 청년들이 매년 2,500명 정도가 배출된다. 건강하고 건전하게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야 할 귀중한 사회적 자산이다. 그런데 현재 보육원에서 퇴소한 청년들은 지자체에서 최소 500만원의 정착지원금을 지급하고, 정부가 5년간 월 35만원의 자립수당을 지급한다고 한다. (이 금액을 올릴 계획이라고 하지만) 사회에 대해 아무 경험도 없는 이들에게 이 금액은 너무 적다. 최소한 사회에 적응할 기간 동안만이라도, 주거를 포함한 어느 정도의 생계비를 지급해야 한다. 정부에선 이들을 돕는 정책으로 자립멘토단 '바람개비 서포터즈'를 운영하고 무료 심리상담을 3개월간 제공하지만, 실질적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즉 주거나 취업같이 사회에 빨리 적응하고 정착할 수 있는 실용적 지원방안이 절실하다. 한때 어른들과 사회에서 버림받아 외롭게 시작하게 된 청년들을, 이제는 사회가 따뜻하게 보듬어 훌륭한 사회인으로 자리 잡게 도와줘야 할 때이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부모의 뻔뻔함도 자식 앞에선
부모의 뻔뻔함도 자식 앞에선얼마 전 황당한 사건이 있었다.경기도 동탄의 한 아파트에 입주민이 지난 9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베란다 앞 공용잔디에 물놀이 시설을 설치한 일이다. 그는 아파트 단지 내 공용공간에 대형 에어바운스 수영장과 높은 미끄럼틀 그리고 천막까지 쳤다. 완전 물놀이 공원을 만들었다. 집에서 긴 호스를 연결해 물을 가득 채우고 아이들을 놀게 했다.당연히 부근에 사는 입주민들과 관리사무소에서 항의하고 철거를 요구했지만, 뻔뻔하게도 “기다리라”며 요지부동이었다. 게다가 물을 버리는 과정에서 잔디가 손상되고 하수구도 막혔다.이런 뻔뻔한 사람이 있나? 많은 공분을 샀다.그런데 그 입주민이 사과의 글을 게시했다."한 부모의 무지한 행동으로 인해 전국 인터넷 카페, 포털사이트에 불명예스러운 내용으로 게시돼 입주민의 공분을 산 점, 아파트의 명예를 실추시킨 점에 대해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며 정말 정중하게 사과했고, 하수구와 잔디의 원상복구도 약속했다.그런데 그렇게 뻔뻔했던 사람이 갑자기 어떻게 이렇게까지 돌변했을까?바로 사과문에 나와 있다.“부모의 잘못된 행동으로 아이들에게는 큰 상처가 됐고, 등교를 무서워할 정도로 아이들이 힘들어하고 있다”라는 점이다.즉 자녀들을 위해 무리하게 물놀이 시설을 했다가, 그것 때문에 자녀들이 학교 친구들로부터 심하게 놀림을 당한 것이다.요즘 보도를 보면 친부모가 자녀를 학대했다는 사건이 많이 등장한다.하지만 이는 극히 일부일뿐, 자녀들을 사랑하고 잘 키우려는 부모가 대부분이다. 사실 필자가 어렸을 때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부모가 자녀를 학대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어느 정도는 당연시 했고, 무지했기 때문이다.필자가 어렸을 때 부모들은 ‘자식 가진 죄인’이란 말을 자주 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부모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다는 의미다.이번 동탄 아파트 사건을 보니, 부모의 뻔뻔함도 자식 앞에선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터키’ 하면 생각나는...
‘터키’ 하면 생각나는... 형제의 나라 ‘터키’가 유엔으로부터 국호변경 승인을 받아, 지금은 유엔 공식 문서에 터키 대신 ‘튀르키예’가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6월 24일부터 한국어 표기를 ‘튀르키예’로 공식 변경했다. 터키(Turkey)는 영어 단어로 칠면조를 뜻하며, ‘겁쟁이 패배자’ 등 뜻으로 통하는 속어로도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래 자신들의 국호인 ‘튀르키에’라고 부르고 싶었던 이유다. 사실 ‘튀르키에’는 2002년 월드컵 이전만 해도 우리나라와 별 관계 없는 나라로 생각했었고, 잘 알지도 못했다. 기껏 공부 좀 한 사람들이 아는 것은 ‘한때 세계 최강국이었던 오스만투르크의 후예’라는 정도였다. 이후 2002년 월드컵 당시 한국전쟁 참전국인 (당시)‘터키’에서 ‘형제의 나라‘라고 하면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지금은 관광 명소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전에 터키란 나라의 이름만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바로 ’터키탕‘ 때문이었다. 터키탕은 표면적으로는 남성을 여성이 목욕시켜주는 곳이었다. 어릴 적 필자가 처음 그 얘길 들었을 때 ’남자 목욕을 왜 여자가 시켜 주지?‘라는 순진한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터키탕은 우리나라에 구석구석 널리 퍼져 있었다. 그 유래에 대해 ’터키에선 이렇게 한다더라‘라는 얘기가 설득력 있게 퍼졌다. 왜냐하면 과거 로마제국에 퇴폐와 향락이 넘쳐났 듯, 로마제국 이상의 영토를 갖고 있던 세계 최강 오스만투르크에도 비슷한 문화가 있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고 한다. 이슬람 국가인 터키에는 ’하맘‘ 즉 우리나라로 치면 ’세신사‘(때밀이) 목욕문화는 있지만, 퇴폐와 향락 즉 매춘과는 전혀 관계가 멀다는 것이다. (퇴폐적 터키탕은 일본에서 발생해 우리나라로 전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은연 중에 ’터키는 퇴폐와 향락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한국 사람들이 터키사람을 만나면 꼭 퇴폐적 터키탕에 대해 물었고, 그때마다 터키사람들은 이를 설명하느라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이를 알게 된 터키는 1996년 7월 주한터키대사관을 통해 대한민국 정부에 "터키에서 매춘굴을 한국관이라고 하면 당신들 기분 좋습니까?"라고 따지며, 공식적으로 시정을 요구해 왔다. 미안했던 우리 정부는 터키탕에 단속을 벌였고, 잠시나마 터키탕은 ’증기탕‘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명맥을 유지했다. 하지만 이후 성매매에 대한 단속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며, 지금은 최소한 겉으로는 사라졌다. 당시에도 ’6.25 전쟁 당시 많은 도움을 준 터키에 대한 모독이며, 당장 바꾸자’라는 신문 논평이 나오기도 했으니, 터키탕 사건은 정말 미안한 일이었다.국호를 튀르키에로 부르기 시작한 만큼, 터키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잘못된 기억도 빨리 사라지기 바란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대한민국엔 이제 파란불은 없다
대한민국엔 이제 파란불은 없다 신호등에 빨간불이 들어오면 서야 한다. 그러면 언제 갈 수 있을까? 파란불? 아니다. 바로 ‘녹색불’이다. 요즘 신호등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내 버튼을 누르면 “녹색불이 켜졌습니다. 거나가도 좋습니다”라는 안내가 나온다. 즉 공식 명칭이 파란불이 아니라 녹색불인 것이다. 생각해보면 필자가 ‘국민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사회시간에 제일 먼저 배운 게 신호등이다. ‘빨간불 서시오, 파란불 가시오, 노란불 돌아가시오’라고 배웠다. (지금은 노란불은 점멸등으로만 사용되지만, 당시엔 화살표가 아닌 노란불을 사용했다) 그리고 실제 신호등 색도 파란색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20년 전쯤부터 신호등이 여러 개의 전구를 합친 형태로 바뀌면서, 녹색으로 바뀌지 않았나 싶다. (정확한 것은 아님) 그게 국제적 기준인가 보다. 하긴 녹색불을 사용하면서 파란불이라고 부르면, 우리말을 조금 아는 외국인은 파란불이 들어오지 않아서 평생 길을 못 건널 수도 있다.하지만 지금도 언론에서 ‘우리나라 수출은 파란불’이란 식의 기사를 쓰는 걸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직도 파란불이란 인식이 강하다. 사실 우리나라에선 녹색을 파랗다고 표현해 왔다. 특히 나무나 풀을 보고는 파랗다고 말했다. 그러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청녹 색맹이라 그랬을까? 그건 아니다. 자연 속에 살던 일반 백성들은 하늘과 강 그리고 산과 들, 즉 자연은 모두 파랗다고 부른 것 같다. 그럼 녹색이라 초록색의 우리말은 무엇일까? 사전을 찾아보니 ‘녹색: 파랑과 노랑의 중간색, 초록색: 파랑과 노랑의 중간색’ 둘이 똑같다. 허탈했다. 녹색의 순우리말이 없는 건지 없어진 건지 모르겠지만, 오방색에도 들어가지 않으니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자주 쓰인 색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백성들은 녹색을 파란색의 한 종류로 생각한 것 같다. 어쨌든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 자연에 대해 파랗다는 표현을 많이 사용해 왔다. 민주화 시위 때 많이 부르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가수 남진의 유행곡 “처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유한킴벌리의 유명한 캠페인 슬로건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같은 걸 생각해 봐도 그렇다. 그런데 만약 색을 정확하게 표현한다고 “솔솔 솔아 초록의 솔아”라든가 “저 녹색 초원 위에” 또는 “우리 강산 초록으로 초록으로”라고 표현한다면 뭔가 이상하다. 마치 외국인이 쓴 글처럼 말의 맛이 나지 않는다. 지금은 자연이 아닌 일반 사물에 대해선 녹색을 분명하게 구별한다. 패션이나 디자인에선 아예 ‘그린 Green’이란 영어를 더 많이 쓰기도 한다. 약 30년 전에 오전 7부터 방송하는 ‘푸른 신호등’이란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었다. 가수 서유석 씨가 특유의 목소리로 “***리포터”를 부르며 서울의 교통상황을 안내했다. 프로그램은 폐지 됐지만, 만약 다시 한다면 ‘녹색 신호등’으로 해야 맞는다.맞긴 맞는데, 왜 뭔가 약간 불편한 느낌이 드는지 모르겠다.필자가 꼰대라서 그런가 보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공처가가 되는 이유
공처가가 되는 이유한국리서치가 지난달 20∼23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결혼 만족도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에 따르면 배우자가 있는 응답자 601명에게 ‘다시 태어나 결혼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다른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가 48%로, ‘지금 배우자와 다시 결혼하고 싶다’는 28%였으며 ‘모르겠다’가 24%로 집계됐다.특히 남성은 현 배우자를 선택한 응답이 36%였으나 여성은 21%에 그쳤다. ‘다른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를 여성 52%가 선택했고, 남성은 45%로 나타났다. 혼인 기간이 길수록, 연령대가 높을수록 ‘다른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는 응답이 높게 나타났다.몇 년 전인가?필자가 아내에게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아내는 ”한 번 살아봤으면 됐지, 다음엔 또 다른 사람과도 살아봐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식의 대답을 했다. 아내는 같은 질문을 필자에게 했는데, 필자는 ”당연히 또 같이 살아야지“라는 식의 답을 했다.위의 조사결과와 아주 비슷하다.사실 필자도 다시 태어나면 다른 사람과 살아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하지만 착하고 배려심이 많은 지금의 아내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물론 사람마다 장단점이 있으므로, 다른 사람과는 안 살아봐서 모르겠지만...어쨌든 아내의 본심을 알고 나서는 조금 불쾌하기도 했지만 미안한 마음이 컸다. 필자랑 결혼해서 그리 만족하지 못한 결혼생활을 했었기 때문인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특히 남들 못지않게 돈을 잘 벌어다 주지 못했다는 자책감도 들었다. (아내의 주변 사람들은 거의 모두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그래서 작년 30주년 결혼기념일을 맞아 선물과 함께 아내에게 ‘30년 동안 살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적은 꽃바구니를 보내기도 했었다. 그 효과는 겨우 딱 하루 갔다.정년퇴직을 앞 둔 남편들이 가지는 가장 잘못된 환상이라는 게 있다.‘그동안 고생했으니, 앞으로 아내가 잘 대해주고 같이 놀아주겠지’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남편이 막상 정년퇴직을 하고 집에 있으면, 아내와 다툼만 늘어난다. 아내들은 ‘남편이 집에서 하루종일 쫓아다니며, 잔소리만 해 댄다’도 불평한다.올해 환갑인 필자가 새로운 일을 벌여, 아내의 마음을 사로잡을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집에 있지 않고 아침마다 출근해 주는 게, 손녀를 돌봐야 하는 아내를 도와주는 것이다.이래저래 남자들은 나이들수록 공처가가 되나 보다.<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