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이상한 식품
우리에겐 이상한 식품 우리는 음식에 진심인 민족이다.독성이 있어서 외국에선 절대 먹지 않는 음식을 조리하여 독성을 제거한 후 즐겨 먹는다. 대표적인 식품이 고사리와 쑥 그리고 옻나무 등이다. 봄나물의 대명사인 달래 냉이 씀바귀 역시 독성이 있지만, 우리 민족은 잘 조리해 먹는다. 도토리 역시 독성이 있어서 외국에선 다람쥐나 돼지 먹이로 생각하는데, 우리는 이마저 제거하는 기술을 습득해 묵을 만들어 아주 맛있게 먹는다. 나아가 미더덕이나 깻잎까지 먹는 걸 본 외국인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다. 과거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했을 때, 현지인들은 고려인들이 곧 모두 죽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먹을 게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민족인 고려인들은 산과 들에서 현지인들은 잡초라고 생각했던 나물을 캐서 먹고 버텼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음식에 진심인 민족이지만, 잘 먹지 않은 식품이 있다. 바로 ‘토마토’다. 토마토는 17세기 초(조선 광해군 시절)에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실학자 이수광이 지은 《지봉유설》에는 토마토가 '남만시(南蠻柿, 남쪽 오랑캐 나라의 감)'라는 이름으로 처음 기록되어 있다. 고추 감자 고구마와 비슷한 시기다. 당시에는 식용보다는 관상용이나 약용으로 쓰였다고 한다. 맛이 생소하고 기르기 까다롭지 않다 보니,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인 잡초처럼 취급받았다. 이게 좀 이상하다. 먹을 게 부족해 구황식물이 한창 보급되던 시기에, 토마토가 천대받았다는 게...그후 본격적으로 식탁에 오르기 시작한 건 1900년대 초반에 서양의 개량 품종들이 들어오며 농가에서 재배를 시작하면서라고 한다.현대에 들어서 토마토에 비타민과 라이코펜 성분이 항암과 노화 방지에 좋은 성분이 풍부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건강식의 대명사가 되었다. 또한 방울토마토, 대추방울토마토, 스테비아 토마토(단마토), 흑토마토 등 다양한 품종의 토마토를 취향에 맞게 골라 먹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면 토마토는 과일일까, 채소일까?일단 과일이라 하면 그 자체를 먹는 데 목적이 있다. 하지만 채소라 하면 요리 재료의 일부로 사용하는 특징이 있다.필자가 국민학교 다닐 때, 실과시간인가 자연시간에 토마토를 ‘채소’라고 배웠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왜 채소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선생님께 여쭤봐도 뚜렷한 대답없이 그냥 외우란다. 미국에선 토마토를 생물학적으론 과일이지만 요리학적으론 식품이라고 한단다. 외국에선 파스타 소스나 스튜 등 토마토를 많은 요리에 사용하기 때문이다. 즉 외국에선 음식 재료로 사용하는 토마토를 우리나라에선 식품 재료보다는 주로 건강 음식으로 먹는다. 음식에 진심인 민족에게 거의 없던 사례다. 우리나라에선 요리에 자주 사용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채소라고 ‘우기는’ 게 맞나 싶다. 즉 외국에서 채소라니까 그냥 우리도 채소라고 할뿐이다.그래서 요리에 진심인 민족에게, 토마토는 상당히 예외적인 식품이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종기와 고약 ① - 종기
종기와 고약 ① - 종기 필자가 어렸을 적엔 종기가 흔했다. 필자도 여러 번 고생했다. 당시 가장 손쉬운 치료법은 충분히 곪을 때까지 기다렸다 손으로 짜는 것이었다. 아프긴 해도, 대개 이렇게 낫고 끝났다. 옛날엔 종기가 정말 많았는데, 우선 깨끗하지 못한 환경 탓이 컸다. 목욕도 자주 안 하고, 옷도 자주 갈아입지 않았다, 더구나 영양상태도 지금만 못하여서, 면역력이 떨어진 것도 한몫했다. 종기는 신분의 고하를 가리지 않았다.아니 어찌 보면 임금님들이 더 고생을 많이 했고, 종기로 죽기도 했다. 그 이유로 과중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와 복장 때문이었다. 일은 많은데, 비단과 무명 등으로 옷을 겹겹이 입었다. 하지만 더워서 땀이 비 오듯 해도, 한 나라의 왕이 옷을 벗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목욕을 자주 한 것도 아니다. 그러니 세균이 증식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 만들어졌다. 특히 당시 왕들은 잘 먹지만 운동은 하지 않아, 당뇨도 많고 면역력이 형편없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항생제도 없고, 발달된 외과적 수술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조선의 역대 임금 중 네 명이 종기로 인해 사망에 이르기도 했다. 제5대 문종은 즉위 전부터 종기로 고생했는데, 세종의 삼년상을 치르며 몸이 약해진 상태에서 등에 난 거대한 종기(등창)가 악화되어 재위 2년 만에 승하했다. 종기만 치료했어도, ‘왕과 사는 남자’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제9대 성종은 배와 등에 난 종기가 원인이 되어 38세의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 성종이 종기만 잘 치료했어도, 연산군이란 폭군은 없었을 수도 있다.제17대 효종은 얼굴에 난 종기를 침으로 찔러 고름을 뽑아내려다, 혈관을 건드리는 의료 사고로 인해 과다출혈로 급서했다. 당시 치료를 맡았던 어의 신가귀는 노안으로 눈이 침침하고 수전증으로 손이 떨렸다고 한다. 결국 침을 잘못 찔러 침 끝이 혈관을 깊게 찔렀고, 효종은 쏟아지는 피를 멈추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과다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이 사건으로 신가귀는 교수형에 처해졌다.제22대 정조는 평소 다혈질적인 성격과 과로로 인해 등에 종기가 자주 났다. 결국 이 종기가 전신으로 퍼지고 혼수 상태에 빠지면서 세상을 떠났다. 정조가 종기를 잘 스렸다면, 조선 후기 세도정치도 없었고 우리나라의 역사가 바뀌었을 수도 있다. 이외에도 제7대 세조는 피부병으로 아주 고생하다가 기적적으로 치유되긴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야사에 의하면 세조의 꿈에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가 나타나 "내 아들(단종)을 죽였으니 네 놈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며 세조의 몸에 침을 뱉었고, 그 자리에 종기가 생겨 온몸으로 퍼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면 고약을 사용하면 되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종기가 흔했던 옛날에 고약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효과있는' 고약은 이 당시의 약이 아니라 의외로 근세에 들어와 만들어진 약이다. 고약에 대해선 다음 편에...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똥 ② - 나쁜 점
똥 ② - 나쁜 점 예전 사람들은 지금에 비해 똥과 친했다. 하지만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다. 살기 위해선 똥을 안 눌 수 없는데, 똥을 잘 누는 게 중요했다. 당시엔 마땅한 변비약도 드물어, 변비로 치질이 걸리면 방법이 없었다. 화장실에서 힘을 주다가 뇌출혈 등으로 쓰러져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지금도 가끔 발생하다) 특히 예전엔 화장실이 외부에 있다 보니, 겨울엔 용변 그 자체가 공포였다.왕이나 황제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러시아 황금기를 이끈 여제 예카테리나 2세는 1796년 화장실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져 다음 날 사망했다.일본의 제103대 고쓰치미카도 천황은 치질과 복통으로 고생하던 중,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 뇌출혈로 쓰러져 즉사했다.나아가 푸세식 화장실에서 나무 받침을 사용했는데, 나무가 부러지거나 미끄러지면서 똥에 빠져 죽는 경우도 있었다.여기서도 왕이나 황제라고 예외가 아니었다.《좌전》의 기록에 따르면 중국 춘추시대 진나라 경공은 갑자기 배가 아파 화장실에 갔는데, 그만 발을 헛디뎌 똥 구덩이에 빠져 익사하고 말았다. 사람들이 똥을 두려워하는 건 똥 자체의 독성때문이다.예전엔 가끔 사람이 똥 구덩이에 빠지기도 했는데, 살아 나오더라도 똥독에 올라 죽거나 오랫동안 고생했다. 그리고 고약한 냄새는 아무리 씻어도 정말 오래 간다. 이런 독성을 이용해 똥을 무기로 사용하기도 했다.공성전을 할 때 똥을 던져 넣어 상대를 위축시키거나, 이질 콜레라 등 전염병을 옮기기도 했다. 또한 화살이나 창 등에 독대신 똥을 묻혀 적에게 상처를 입히면, 치료가 매우 어려웠다.똥 무기는 임진왜란에서도 사용되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행주대첩이었고 한다. 똥을 오래 발효시키거나 끓여서, 화살촉에 발라 쏘거나(분화살) 성벽 위에서 바가지로 직접 부었다. 똥물에 화상을 입으면 똥독으로 상처가 썩어들어 갔다. 당시 일본군 기록에는 조선군의 이 지독한 공격에 대해 "지독한 냄새와 뜨거움 때문에 고통스러웠다"는 식의 내용이 남아있다. 또한 화약이나 화살은 소모품이고 귀했지만, 똥은 어디서나 계속 만들어지는 '무한 리필 무기‘이기도 했다. 세월이 한참 흘러 수세식 화장실이 보급되고, 똥을 비료로 사용하지 않고, 채변검사도 없어졌으며, 길거리 개들도 사라졌다. 환경이 깨끗해지면서, 사람들은 똥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본인의 똥도 용변 직후 가차없이(?) 씻겨 내렸다. 이렇게 똥에 대한 거부감은 점점 커졌고, 사용처는 사실상 없어졌다. 그러다 보니 역으로 가끔 남의 집 대문에 사람들이 극혐하는 똥을 뿌리는 ‘똥 테러’ 사건이 발생하곤 한다.그런데 최근엔 아예 이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등장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MBN 보도에 의하면, 경찰은 사람의 대변 등을 이용해 사적 보복을 대신 해주는 범죄 조직을 수사 중이라고 한다. 운영자는 텔레그램방에서 일명 ‘특공대’를 모집한 뒤 돈을 주고 범행을 지시했는데, 전국 각지에서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대문에 인분을 칠한 것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초인종을 누른 뒤 약을 올리듯 유유히 빠져나가기도 하고, 어떤 두 남성은 집 앞에서 직접 용변을 보고 대변을 모아 던지는 엽기적인 행각을 벌였다. 운영자는 1건당 80만~100만 원, 한 달에 700만~1000만 원을 주겠다며 특공대원을 모집했다. 옛날에나 무기로 사용하던 똥이었는데, 상황이 바뀐 요즘에도 똥을 무기처럼 테러로 사용하는 걸 직업으로 하는 사람까지 생겼다. 오래 살다보니 못 볼 걸 다 본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한국인의 체형 ① - 키
한국인의 체형 ① - 키 요즘 젊은(19 또는 20세 기준) 남성 평균 신장이 174.5~175.5cm라고 한다. (자료에 따라 차이가 있음) 아시아에서 이스라엘과 함께 가장 큰 편이다. 키도 크지만, 다리도 길어졌다. 체형이 서구형으로 바뀌었다. 예전 노인들을 보면 키가 아주 작고 다리는 짧은데, 한국인들은 어쩌다 이렇게 바뀌었을까? 사실 한국인들은 원래 키가 크고 체격이 건장한 서구형이었다,영국의 지리학자이자 여행가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 여사는 1894년부터 1897년까지 네 차례 한국을 방문하고 쓴 저서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rs)』에서, 한국인의 외모와 기질에 대해서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명성황후의 시의(侍醫)였던 릴리어스 언더우드(Lillias Underwood)는 한국인들이 매우 정중하고 예의 바르며, 특히 지배층뿐만 아니라 일반 민중들도 체격이 좋고 인상이 밝다고 말했다.윌리엄 그리피스(William Griffis)는 저서 『은둔의 나라 한국』에서 한국인의 외모를 인종학적으로 분석했다. 그는 한국인을 보고 "동양인이라기보다 오히려 유럽인의 골격에 가깝다"고 평했다. "일본인은 작고 민첩하며, 중국인은 육중하고 둔해 보이지만, 한국인은 그 중간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훨씬 더 잘생겼다."고 기술했다. 한국인의 체격이 좋았던 건 ‘많이 먹어서’였다. 밥을 고봉으로 먹었는데, 외국인들은 그 엄청난 식사량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당시 서양인 남성의 평균 신장이 168cm정도 였으니, 한국인들의 신장도 비슷했을 것이란 추측이 든다. 하지만 이후 한국인들의 키는 사정없이 작아졌다. 그러면 한국인들은 어쩌다 그렇게 쪼그라들었을까?한마디로 ‘잘 못 먹어서’다.구한말 ‘삼정의 문란’ 등으로 굶는 게 일상이 되고, 이후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으로 경제가 피폐해졌다. 키나 체격은 영양상태와 비례하는데, 수 십 년 지속되면서 키는 작아지고 체형은 볼품없어졌다. 하지만 경제가 살아나고 영양상태가 좋아지면서 다시 키가 커졌다. 즉 원래 서구인들과 비슷한 체격이었는데, 잘 먹다 보니 원래의 유전적인 큰 키와 건장한 체형 그리고 롱다리로 대표되는 서구형 체형이 되살아 난 것이다. 서양을 무조건 흠모하는 게 아니라, 체형으로 볼 때 서구인들이 좋은 건 사실이다. 젊은이들의 체형이 좋아져서 흐뭇하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한국인의 체형 ② - 얼굴 크기
한국인의 체형 ② - 얼굴 크기 예전 노인들은 키는 작고 다리도 짧지만, 얼굴은 컸다. 어제 키에 대한 글을 올렸는데, 해당 수 십 년 간 키는 점점 작아졌지만 머리 크기는 그대로였던 모양이다. 약 20 여 년 전 배우 고 남궁원 씨를 봤는데, 정말 얼굴이 커서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영화나 사진으로만 보던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하긴 최근 모델 출신 배우인 이정재 씨가 스타워즈에 출연했을 때, 서양인 상대 배우들과 키는 비슷해도 얼굴이 훨씬 커서 충격을 받기도 했다. (이정재 씨가 72년 생이니, 요즘 젊은이들과는 차이가 있다)어쨌든 동양인들이 서양인들에 비해 얼굴이 상대적으로 큰 건 사실이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한국인의 얼굴은 상당히 작아졌다.과거에는 질기고 딱딱한 거친 음식(조, 수수, 뿌리채소, 마른 반찬 등)을 많이 섭취했지만, 현대에 들어서며 부드러운 음식 위주의 식단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턱 근육을 덜 쓰게 되면서 턱뼈와 근육이 덜 발달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하관이 갸름해지는 경향이 생겼다. 나아가 턱뼈 자체도 작아지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또한 딱딱한 음식을 먹을 때 발생하는 힘은 턱뿐만 아니라, 이를 지탱하는 광대뼈(관골)의 발달에도 영향을 준다. 부드러운 음식을 먹으면서 광대뼈 주변의 골격 발달이 억제되어, 얼굴의 가장 넓은 부위가 매끈해진 것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원인은 머리형의 변화다.과거에는 아이를 키울 때 베개에 똑바로 재우는 경우가 많았지만(이 과정에서 뒤통수가 납작해지며 얼굴이 옆으로 퍼짐), 요즘은 옆으로 재우거나 두상 관리에 신경을 쓰는 부모들이 많아진 것도 두상 변화에 한몫한다. 즉 과거 한국인은 앞뒤가 납작하고 옆으로 넓은 단두형(Brachycephalic) 두상이 많았지만, 최근 세대로 갈수록 앞뒤 짱구 형태인 장두형(Dolichocephalic) 혹은 그 중간 형태가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앞에서 보면 과거에 비해 얼굴이 작아 보인다. 상대적 요인도 있다.키가 커지다 보니, 상대적으로 얼굴이 작아 보이는 것도 있다. 이렇게 해서 한국인들은 점점 서구화된 체형과 얼굴 형태를 가지게 되었다.그래서 남성은 1979년 평균 6.8등신에서 현재 약 7.4등신으로, 여성은 1979년 평균 6.7등신에서 현재 약 7.3등신 바뀌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다들 훤칠하고 늘씬하니, 보기가 참 좋다.잘 먹고 잘 사니, 인물도 살아난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