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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위한 투자
미래를 위한 투자 요즘 반도체를 비롯한 한국 산업의 진격을 보고 있자면, 가끔 가슴이 웅장해지곤 한다.이는 우리나라 산업의 경쟁력이 우위에 있음을 방증하기도 한다.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대표적인 사례가 저렴한 전기요금이다. 특히 일본과 비교하면 더욱 차이가 난다. 1970년대에 들어서 한국은 급격한 산업화로 전력 수요가 폭증했는데, 전기를 보낼 때 ‘송배전 손실률’이 무려 30%에 달했다. 발전소를 아무리 지어도 전기의 3분의 1이 길바닥에서 증발하는 셈이었다.이때 한국 전력 산업의 아버지라 불리는 한만춘 박사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220V 전압 승압을 정부에 제안했다. 전압을 높이면 같은 전력을 보낼 때 에너지 손실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산업화의 천재’ 박정희 대통령은 (언제나 그랬듯이) 주변의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들었지만 미래를 보고 투자를 시작한 것이다. 승압 사업을 시작할 때가 한국은 전기 보급을 한창 시작과 맞물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 사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973년에 시작된 '배전 승압 사업'이 사업은 국가 전역의 전력 인프라를 완전히 바꾸는 거대한 작업이었기에 무려 32년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되었으며, 2005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전국적인 승압이 완료될 수 있었다. 그 결과 한국은 송배전 손실률을 3.5%대까지 떨어뜨리며, 세계 최고 수준의 전력 효율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은 단순히 전력망이나 전력 설비만 바꿔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자의든 아니든 모든 국민이 동참해야 했다. 따라서 1990년대만 해도 집집마다 변압기(트랜스)가 몇 개씩 있었고, 2000년대 초까지 신축 건물엔 110V 콘센트가 같이 설치되기도 했다. 심지어 가전제품의 경우 110V와 220V를 선택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모델들이 출시되었다. (제품 가격은 당연히 올라간다) 반면 일본은 정반대였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에 성공했고, 그 덕분에 1970년대 이미 전 국가에 100V 기반의 전력망과 가전제품이 촘촘히 보급되어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이 '너무 일찍 이룬 성공'이 덫이 되었다.일본 전력업계도 200V대로의 승압이 효율적이라는 것을 진작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1억 명이 넘는 인구와 수억 대의 가전제품, 전국의 모든 전신주와 변압기를 뜯어고치는 비용은 국가 예산을 통째로 쏟아부어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지금도 100V를 사용하는 일본은 상대적으로 비싼 전기료를 부담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유럽과 대비된다.유럽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폐허간 된 상태에서, 1950년대부터 220V를 채택하며 재건했다. 일본도 마찬가지로 폐허를 복구하면서 승압할 기회가 있었다. 다만 그냥 안주했을 뿐이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갑작스런 특수를 누리면서, 기회를 놓쳤을 수도 있다. 어쩄든 인공지능(AI), 데이터 센터, 전기차(EV)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첨단 산업 시대가 도래하면서, 100V는 일본 경제의 목을 죄고 있다.가장 치명적인 것은 전기차(EV) 보급이다. 글로벌 표준인 220V 기반의 완속 충전기는 밤새 차를 세워두면 완충이 되지만, 일본의 가정용 100V 콘센트로는 하루 종일 꽂아두어도 충전이 불가능하다. 결국 일본 소비자가 전기차를 사려면 주차장까지 고압선을 새로 까는 별도의 대공사를 해야 한다. 이 장벽은 일본의 전기차 전환을 늦췄고, 일부 일본 자동차 기업은 전기차 생산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무엇보다 노후화된 100V 배전망을 유지하기 위해 일본 전력회사들이 지불하는 비효율 비용이 고스란히 기업용 전기요금 단가에 녹아있어, 일본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한국보다 2.5배에서 3배 가까이 비싸다.따라서 빅테크 기업의 초거대 데이터 센터와 반도체 공장 유치에서도 한국이 우위를 점한다. 약 50년 전, 미래를 내다보는 과감한 인프라 투자와 결단이 지금의 기술 패권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자산이 되었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월드컵 유니폼에 없는 색은?
월드컵 유니폼에 없는 색은? 어제(20일) 월드컵 대회가 끝났다.여러 경기를 보다보니 선수들 유니폼이 눈에 들어왔는데, 갑자기 뚱딴지같은 생각이 들었다. ‘선수들 유니폼엔 왜 회색이 없지?’ 흔히 보고 생각하는 무지개색 ‘빨주노초파남보’와 ‘흑백’ 모두 유니폼에서 찾을 수 있었다. 실생활에선 회색 옷을 자주 입는다.그런데 유독 월드컵 선수들의 유니폼엔 회색이 없다! 예전에도 못 본 것 같다.(골키퍼가 가끔 은회색이나 밝은 회색을 입는 경우는 있었던 것 같다)대개 국가대표 선수들의 유니폼엔 국기에 사용되는 색을 이용한다. 따라서 국기에 회색을 사용하는 경우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국기 안의 그림이나 문장에 아주 약간 들어가는 건 제외) 그래서 회색이 국기에 없는 이유를 제미나이에게 물어봤다.국기의 가장 근본적인 목적은 "멀리서도 아군과 적군을 쉽게 구별하는 것"인데, 국기가 회색이라면 흐린 하늘이나 연기 속에 깃발이 묻혀 보이지 않게 되기 때문이란다. 특히 유니폼은 눈에 강렬하게 띄어야 하므로, 원색(빨강, 파랑, 노랑)과 확실한 무채색(흰색, 검은색)의 대비를 기본으로 한단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보니, 유니폼에 갈색(Brown)도 없는 것 같다. (국기에서도 못 본 것 같았다)또 제미나이에게 물어봤다.실제 이번 월드컵의 국가대표 선수들 유니폼에 갈색은 없다고 한다.국기에도 스리랑카를 제외하면, 갈색은 사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극히 일부 제외) 전통 문장학에서 갈색은 '흙' ' 가난' '쇠퇴' 등 다소 무겁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고, 잔디밭(초록색) 위에선 칙칙하고 몸이 무거워 보이는 시각적 효과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제미나이는 보라색과 분홍색을 합쳐, 4대 기피 색상이라고 추가했다.하지만 한국팀이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보라색 유니폼을 입었고,(무궁화를 연상시킨 색이라고 하는데, 처음 본 것 같다) 여자 월드컵에선 가끔 분홍색 유니폼을 입는다. (제미나이도 완벽하지 않아서, 무조건 믿으면 안된다) 그만큼 흔하지 않다는 의미일 게다. 월드컵 대회가 끝나서 아쉬운가, 별 걸 다 쓰고 있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방통대에 가는 이유
방통대에 가는 이유 방통대가 1982년 2월 15일에 설립됐으니, 벌써 44년이나 지났다. 당시엔 대학에 못 간 사람들이 많았고, 처음엔 그들을 위한 교육에 치중했었다. 그러다 보니 초기에 방통대에 대한 인식은 썩 좋진 않았다. 어떤 정치인은 “밥통대나 가라”라며 조롱했다가, 비난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방통대의 위상은 전혀 다르다.특히 학부의 경우 성적 미달이나 경제적인 이유로 일반 대학에 진학을 못 해서, 할 수 없이 방통대에 다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위의 이유를 제외하면, 요즘은 대개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이유로 다닌다. 우선 학구열이 높은 은퇴자들이다.노인대학(요즘은 실버 또는 시니어 아카데미라고 한다) 갈 바엔, 방통대에 가겠다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알아서 공부하고 연구한다. 방통대의 수만 권의 전자책(e-book)과 오디오북을 교보도서관 앱 등을 통해 무료로 대출해 볼 수 있다. 과제물 작성이나 개인 연구를 할 때 유료 논문 플랫폼(DBpia, RISS, KISS 등)의 학술 자료와 논문을 전액 무료로 다운로드하고 열람할 수 있다. 또한 정식 국립대학교 대학생(모바일 학생증 발급)으로서, 전국 거점 국립대(서울대, 부산대, 경북대, 충남대 등) 도서관 및 열람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두번째는 전공 교육과 학위가 필요한 사람들이다.필자의 처제는 경제학 석사로 KDI에 재직하다, 아들 키우느라 퇴직했었다. 그 아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하자, 같이 공부하겠다며 평소에 관심이 있던 유아교육을 전공하기 위해 방통대에 진학했다. 그 아들의 수능이 끝나면서, 유치원 선생님으로 취업했다. 지금도 힘들지만, 만족스럽게 잘 다니고 있다. 세번째가 중요한데, 중소기업 사장이나 직원들이 회삿돈으로 입학하거나 프리랜서 또는 강사들이 재학하는 경우다. 특히 영상이나 디자인 또는 설계나 컴퓨터 등과 관련된 직종들이 많다.재학생이 되면 위에 언급한 혜택은 물론, 연간 최소 150만 원 이상 투입되는 <MS오피스 + 노션 + 캐드> 최신 버전은 모두 무료에 어도비만 60%나 할인가로 이용할 수 있다.오프라인에서도 정식 대학생 신분이기 때문에 나이에 상관없이 학생 할인이 적용된다. 예를 들어 아이패드, 맥북, 갤럭시 탭 등을 정가보다 약 10~20%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고, 신학기 이벤트 때는 사은품 혜택도 동일하게 받는다. 게다가 방통대 학생들은 모두 국가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고궁(경복궁 등), 일부 박물관 및 뮤지컬 등 문화 공연에서 대학생 할인을 받고, 심지어 KTX 및 SRT 청소년·대학생 특가 할인도 대상이 된다. 등록금은 원래 학기당 35만원이지만, 한 과목만 등록하면 최소 금액인 학기당 10만원 정도만 내면 학생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등록만 하고 스스로 유급되거나 학과를 바꿔가며, 평생 ‘학생’ 회원권으로 알뜰하게 활용할 수 있다. 그럼 방통대는 어떻게 이런 장사(?)를 할 수 있을까?재학생 수가 10만 명에 이르러 규모의 경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일 년이면 수 백 억원의 등록금에, 국가 지원금도 받는다. 또한 재학생과 졸업생 수가 많아서, 정치권에서도 이들을 무시할 수 없다. 이쯤 되면 슬슬, 방통대에 관심이 커지지 않는가?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일본 인프라의 한계
일본 인프라의 한계 한국과 일본을 여행해 본 외국인이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있다. 일본은 지하철을 비롯한 대중교통이 너무 복잡하고 불편하고 비싸다는 점이다. 이는 일본은 지금도 협궤 철도가 많기 때문이다.일본은 1870년대 근대화 시기, 철도 초기 건설 당시 비용 절감과 빠른 완공을 위해 국제 표준(1,435mm)보다 좁은 1,067mm의 협궤를 선택했다. 궤도가 좁다 보니 열차의 크기와 무게에 제한이 생겨, 대량 운송이나 고속 주행에서 표준궤에 비해 불리한 점이 많다.뒤늦게 표준궤로 바꾸려 시도하기도 했으나, 이미 전국에 깔린 방대한 노선과 터널, 교량, 역사 등 관련 시설을 모두 개조해야 하는 막대한 비용 문제로 실현되지 못했다.이로 인해 지금도 일본 JR 화물은 국제 표준인 20피트나 40피트 컨테이너를 그대로 싣고 달리기 어려워, 자체 제작한 12피트 소형 컨테이너를 주로 사용한다. 이렇게 국제 규격 컨테이너를 일반 철도로 운송하는 데 제약이 있어, 별도의 화물 열차나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등의 문제가 존재한다. 지하철 역시 표준괘와 협괘를 같이 사용하면서, 복잡하고 불편하다.일본의 지하철은 도시마다, 혹은 같은 도시 안에서도 노선이 만들어진 시기와 '직결 운행(서로 다른 회사의 노선을 연결해 달리는 것)' 여부에 따라 궤간을 결정했다. 도쿄 메트로의 긴자선, 마루노우치선처럼 초기 건설된 노선이나, 사철(민간 철도)과 연결해야 하는 노선들은 표준궤를 사용한다. 반면 일본의 국철(현 JR)이 협궤를 사용하기 때문에, JR 노선과 선로를 공유하거나 열차를 그대로 통과시켜야 하는 노선들은 협궤를 채택했다. (예: 도쿄 메트로 치요다선, 토자이선 등) 게다가 운영 주체가 서로 다르고 환승의 개념이 없다. 따라서 환승 시 별도의 운임을 지불해야 하는 등, 불편하기 짝이 없다.이렇게 일본 철도는 표준궤와 협궤를 병행사용 하면서, 막대한 비용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긴다.일제 강점기 때 왜 일본은 조선에 저렴한 협궤가 아닌, 표준궤를 처음부터 깔았을까? (극히 일부 구간 제외)운 좋게도 첫 철도인 경인선 부설권을 얻어낸 사람이 미국의 개발업자 제임스 R. 모스(James R. Morse)였기 때문이 크다. 미국은 자국에서 표준궤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경인선도 자연스럽게 표준궤로 설계하고 미국산 철도 자재와 기관차(모굴형 증기기관차)를 들여왔다.이후 일본은 본국처럼 협궤를 고려했지만, 이미 경인선이 표준궤로 놓인데다 향후 중국(만주)으로의 진격까지 계획해서 표준궤를 선택했다. 당시 중국과 만주 일대의 철도는 이미 표준궤로 건설되어 있었다. 따라서 전쟁 물자와 군대를 대량으로, 그리고 빠르게 만주 전선으로 보내려면 수송력이 큰 표준궤가 필수적이었다. 즉 처음부터 일본은 대륙 침략을 염두에 두고, 조선을 침략하고 계획한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당시 일본이 표준궤로 건설한 덕에, 해방 이후 한국 철도가 그대로 발전하는 바탕이 되었다. 정작 일본 본국은 협궤 철도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데 말이다. 최근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그만큼 ‘국가 산업 경쟁력의 약화’에서 기인한고 볼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인프라에 근본적으로 세 가지 문제가 있다고 한다.며칠 전 글을 올렸던 100V 전력, 디지털화의 실패, 그리고 ‘협궤철도’다. 이를 우리나라와 대비하면, 일본은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는 게 입증된다. 미래를 위해 바꾸지 못하고 안주했던 ‘협궤 철도’나 이전에 언급했던 ‘220V 승압 실패’로, 지금도 일본 산업은 많은 비용을 추가로 지불하고 있다. 일본이 쇠락하는 게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의사가 제 병 못 고친다
의사가 제 병 못 고친다 “의사가 제 병 못 고친다”라는 속담이 있다. 실제 의사들이 병에 걸려 고생하거나 죽는 걸 보면, 남을 고치는 것과 자신을 돌보는 건 분명 다른가 보다. 이 속담에 딱 맞는 인물이 있다. 바로 조선 제22대 왕 정조 임금이다. 오죽하면 건강하던 정조가 48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갑자기(?) 사망하자, 독살설까지 생겨날 정도다. 정조는 조선 임금들과 달리, 문무를 겸비한 인물이었다. 활을 50발 쏘면 49발을 과녁에 명중시켰다.(이순신 장군이 50발 쏘면 43발 정도 맞췄다고 한다) 마지막 50번째 발은 항상 과녁을 멀리 벗어나게 쏘고 나서, "지나치게 가득 차면 군자로서 겸손하지 못한 법이다(만즉손)"라며 말할 정도였다. 또한 정조는 조선 최고의 무예 교과서인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를 편찬토록 했는데, 이 책을 만들 때도 무예 동작 하나하나를 직접 검토하고 "이 칼 쓰기 동작은 실전성이 떨어진다", "이 창술은 이렇게 수정해라"라며 직접 감수할 정도로 무예에 뛰어났다. 그런 정조는 의학에도 뛰어난 지식을 가졌다.정조는 세자 시절, 할아버지인 영조가 승하하기 전까지 약 10년 동안 직접 영조의 약시중(시탕)을 들었다. 단순히 약을 나르는 것이 아니라, 왕의 맥박과 대소변 상태, 증상을 관찰하고 의관들과 처방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 과정에서 진맥의 비결과 탕약 이론을 연구하며, 높은 수준의 실전 의학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그 결과 정조는 자신의 시문과 업적을 정리한 <홍재전서>(사진)에 ‘수민묘전(壽民妙詮)’이라는 독자적인 의학 서적을 남길 정도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문제였다. 우선 정조는 평생을 당파 싸움의 압박 속에서, 독살과 암살 위험에 시달렸다. 만성 스트레스 상태에, 하루 3~4시간만 자며 국정을 돌보는 지독한 일벌레였다. 술로도 신하들을 이기려 했다. 그러니 건강한 젊은 군주도,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특히 정조를 가장 괴롭힌 것은 등과 목 뒤에 난 종기였다. 당시의 의학 수준으로 종기는 목숨을 위협하는 무서운 질병이었다. 결국 종기가 악화되면서 패혈증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문제는 정조가 어의(임금의 의사)들의 진단과 처방을 아예 불신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의관들에게 호통을 치며, 자신이 직접 약재의 종류와 분량을 바꾼 적도 부지기수였다. 사망 직전 증상이 극도로 악화되었을 때에도, 정조는 몸에 무리를 주는 강한 약재 '연훈방(수은 연기를 쐬는 치료)'이나 기력을 과하게 끌어다 쓰는 처방을 고집했다. 그래서 수은 중독을 급사의 원인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조선 최고라는 어의가 이런저런 할 일이 많은 임금보다 의학 실력이 떨어졌을까? 당시 어의는 임금이 병으로 죽으면 같이 죽거나 유배 갈 정도로, 책임이 막중한 자리였다. 만약 임금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않고 어의 맘대로 하다가, 임금이 변이라도 당하면 그 책임을 어찌 지겠나? 즉 어의가 실력이 없어서 임금 말을 들은 게 아니라, 임금 말이기 때문에 죽지 못해 들어줄 뿐이었다. 하지만 정조 임금은 이런 상황을 눈치채지 못하고, 자신의 실력을 과신했다. 즉 정조는 더 살 수 있었는데, 본인이 너무 똑똑하고 남을 믿지 못해 세상을 일찍 떴을 수 있다.차라리 정조가 의학지식이 없어 어의가 하라는 대로 했으면, 더 오래 살아서 향후 조선에 망조가 들지 않았을지 모른다. 때론 리더는 적당히 똑똑한 게 나을 수도 있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