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과 고려인
조선족과 고려인 조선 후기부터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새로운 삶의 터전을 개척한 한국인들. 약 100년 전 소련 연해주 지방의 한국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하면서(사진), 지금의 조선족과 고려인으로 나뉘게 됐다. 현재 그 수는 조선족 약 180만명, 고려인 약 50만명 정도로 추산한다. 그 뿌리는 같지만 살아온 환경이 다르다보니, 한국인 입장에선 조선족과 고려인들은 한국을 보는 인식에 차이가 크다. 우선 조선족들은 스스로 ‘중국인’이라고 생각한다. 말만 한국어를 하고 있는, 중국의 수 십 개 소수 민족 중 하나일뿐이다. 또한 중국식 교육으로 인해 중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이 강하고, 마음 속으론 한국을 업신여긴다. 반면 고려인들은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생각하고, 한국은 언젠가 돌아가야 할 고향처럼 생각한다. 그 지역에선 중산층 이상으로 살아서인지,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이 있다. 다만 한국어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게 흠(?)이다. 한국에 대한 인식과 성장 배경이 다르다 보니, 그들을 고용하는 한국인 입장에선 두 집단의 차이가 크다. 우선 조선족에게 한국인은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중국과 수교 후 많은 한국인들이 중국 내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 말이 통하는 조선족들을 많이 채용했다. 최소한 ‘같은 동포’이므로 믿을 만 하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기대와 다르게 많은 조선족들은 한국인 사업가를 탈탈 털어먹었고, 털린 한국인들은 거지가 되어 도망치듯 귀국해야 했다.지금도 현장에서 중국인 노동자들은 관리자가 보면 열심히 하는 척 하다, 관리자가 안 보이면 슬슬 놀다시피 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약속한 기간 중 갑자기 다른 일터로 가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어차피 나와 관계 없는 나라이고, 돈을 더 벌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게다가 조선족들은 트집을 잡는 식의 불만이 많고, 태업이나 이직 등 단체 행동을 하기도 한다.물론 조선족이라고 다 그런 건 아니다. 하지만 위의 사례는 실화이고, 실제 필자 주변에서 위와 같은 하소연을 자주 한다. 반면 고려인들은 소련의 정통(?) 사회주의 교육을 철저히 받아서인지, 곧이곧대로 열심히 일한다. "주인이 없어도 정해진 양은 다 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계약 기간 등 약속도 잘 지킨다. 고려인들은 가족 단위로 입국하는 경우가 많고, 한국을 자신의 나라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인 고용주 입장에선 신뢰가 간다. 말이 잘 안 통하는 게 아쉽지만, 대부분 어려운 작업이 아니므로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심지어 젊은 남성 고려인들은 군대에 가더라도 한국인이 되고 싶어 한다. 이와 같이 고용주들은 가급적이면 고려인을 선호한다.현재 한국에는 '고려인 동포 합법적 체류자격 취득 및 정착 지원을 위한 특별법'(약칭 고려인 특별법)이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더 실질적인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예를 들면 '성실 노동자' 전용 장기 체류 비자(F-4 플러스), 즉 근무지에서 고용주의 추천을 받거나 장기 근속한 고려인에게 가족 초청권이나 영주권 취득 요건을 대폭 완화해주는 제도가 필요하다. 또한 산업 현장 중심의 '실전 한국어 교육'도 필요하다. 나아가 '양심적인 노동자가 우대받는 법'으로 한 단계 더 진화하여, 계산적인 이기주의를 부리는 자들이 아닌,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동포들이 한국 경제의 주역이 되도록 이끌어야 한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도로 색깔 유도선의 효과
도로 색깔 유도선의 효과 십 여 년 전, 가족들을 태우고 강북 강변도로에서 운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도로에 이상한 선들이 나타났다. 어느 방면으로 가는 지 유도해 주는 선이었다. 색깔도 다양했다. 처음엔 어리둥절 유치해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몇 번 따라가다, 보니 세상에 편했다. 이후 내비게이션에서도 “**방면으로 가시려면 OO색 선을 따라가세요”라는 말이 나왔다. 특히 생소한 길에선 큰 도움이 되었다. 처음엔 외국 어디선가 에서 들여온 건 줄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초로 발명한 것이다.발명한 주인공은 윤덕선 한국도로공사 차장이다. 윤 차장은 교통이 혼잡한 곳에서 어떻게 하면 사고를 줄일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집에서 초등학생 딸이 크레파스로 스케치북에 선을 긋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2011년 5월 테스트로 가장 사고가 않은 곳 중 하나인 영동고속도로 안산 분기점에 유도선을 처음 도입했다. 그런데 불과 6개월간 교통사고 발생 건수가 무려 최대 88%나 감소했다. (2011년 통계 기준) 이후 전국으로 확산하자 고속도로 나들목에 유도선을 칠하면 사망 사고 감소 효과가 약 47%, 서울 시내 주요 교차로에 색깔 유도선 도입 후 교통사고 발생 건수가 평균 50%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확연한 효과를 내지만 투입된 비용은 페인트 비용에 불과해, 가성비가 아주 훌륭하다. 이러한 공로로 윤덕선 차장은 2024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지금은 외국인들이 신기해 하고, 외국에서도 벤치마킹을 하기 위한 문의가 많다고 한다. 국가나 공공기관 차원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수용하는 건 결코 쉽지 않다. 과거 경부고속도로를 비롯 LNG 버스를 도입할 때나 청계천 사업도 반대와 우려를 무릅쓰고 참 어렵게 이루어 냈다. 하지만 몇 년 후 그 결과는 ‘그때 안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할 정도로 상상 이상이다. 혁신은 쉽지 않다. 하지만 혁신을 수용할 수 있는 나라가 좋은 나라이고, 그 혁신들로 지금의 한국이 존재한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ar.com>
‘빨리빨리’ 문화
‘빨리빨리’ 문화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상 깊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빨리빨리’ 문화다. 그들은 ‘빨리빨리’ 문화가 우리나라 경제 산업 발전에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 입을 모은다. ‘신속 정확’은 산업 현장을 비롯해, 우리나라 어디에나 ‘구호’처럼 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빨리빨리’는 아니었던 것 같다. 특히 왕족이나 양반들은 걸음걸이부터 느릿느릿이었다. 그들에게 ‘빨리’는 체통 없는 행동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빠귀었다. 아마도 경제발전을 이루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경영자 입장에선 시간을 단축해야 비용이 절감됐다. 노동자 입장에선 ‘신속하고 정확하게’가 스스로 ‘성실하고 능력 있음’을 입증할 수 있고, 그 결과 임금을 더 받거나 승진할 수 있었다. 게다가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군대 문화가 합쳐지면서,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노력을 집중하게 되었다..자연스럽게 더 나은 제품 서비스 능력을 제공해야 살아남다 보니, 이젠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까지 갖추게 되었다. 그런데 외국인 입장에서 ‘빨리빨리’ 문화를 어떻게 생각할까?세계 최고 속도를 자랑하는 인터넷(통신) 택배 의료 행정 등은 물론 안경 제작까지, 외국인들은 감탄하며 칭찬이 이어진다. 하지만 외국인들 일부는 적응하지 못하는 문화가 있다.바로 ‘식당’ 문화다.유럽이나 남미에선 점심시간이 보통 1~2시간이라고 한다. 대화하면서 천천히 먹는 게 습관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먹으면 쫓겨난다. (짜장면 한 그릇 먹으면서 두 시간 동안 수다를 떨면, 주인 입장에선 뭐가 남을까 싶다) 우리나라에선 점심시간이 보통 1시간이고, 실제 식당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은 30분 내외다. 음식이 느리게 나오면, 빨리 달라고 보채기 마련이다. 오죽하면 입구나 식탁에 있는 키오스크로 주문하고, 탁자 옆에 있는 수저통에서 식사를 위한 사전 세팅까지 미리 한다. 그후 음식이 나오면, 대화는 중단한 채 코 박고 열심히 먹고 끝내야 한다. 그래야 남은 시간 동안 커피를 테이크아웃 하든 양치를 하든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대신 대화와 여유 있는 식사는 저녁에 한다. 맛집을 가든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하든, 동료나 지인들과 대화하며 천천히 먹는다. 이렇게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 할 땐 집중해서 ‘빡세게’ 하고, 끝나면 편하게 쉰다. 그래서 외국인 입장에선 달라 보이는 모양이다. 우리나라에서 오래 생활하다 본국으로 돌아간 외국인들 다수는 한동안 적응을 못 한다고 한다. 너무 느리기 때문이다. 택배는 기본이 며칠이고, 서류하나 떼는데도 며칠 걸리고, 인터넷도 느리고, 병원 진료 받으려면 기본이 며칠이고, 안경 하나 맞추는데 2주 걸리고... 물론 ‘빨리빨리’ 문화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빨리빨리’ 문화에서 살다 보면, 성격이 급해지고 본인도 모르게 스트레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빨리빨리’ 문화에 절어 있다 보니 이게 당연한 것같고, 느리게는 답답해서 스트레스 받아 오래 못 살 것 같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반품 미(未)회수 환불’ 반대!
‘반품 미(未)회수 환불’ 반대! 디지털타임즈 보도에 따르면 쿠팡이 다음 달 10일부터 마켓플레이스(오픈마켓) 상품을 대상으로, 회수하지 않고도 반품을 승인하는 '셀프 환불' 정책을 도입한다. 고객이 문제가 있다고 상품 사진을 올리면 반품 여부를 판단해 즉각 '미회수 환불'하는 방식이다. 소비자가 문제의 상품을 환불 처리만 하면 ‘환불해드릴테니, 그냥 쓰세요’라고 한다니, 언뜻 들으면 ‘좋다’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문제점이 참 많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악질 소비자 즉 '블랙 컨슈머'가 늘어날 것은 자명하다. 일반 고객을 상대하는 비즈니스라면 언제나 악질 소비자 때문에 골치다. 지금도 쿠팡이나 마켓컬리처럼, 신선식품의 경우 사실상 이런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점을 악용한 사례가 있다. 지난 3월 3일 보도에 따르면 쿠팡 로켓프레시 이용자인 20대 여성이 2023년 11월부터 약 4개월간 1683회 주문·반품을 반복해 약 3,185만원을 취득했다가, 결국 사기 혐의로 기소되어 징역 8개월·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만약 쿠팡이 이런 제도를 도입한다면 다른 쇼핑몰 역시 비슷한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 그러면 여기저기를 넘나들면서 타 나지 않게 고의 반품을 저지르는 ‘범죄’를 적발하기란 더욱 어렵게 된다. 또한 쿠팡이 직매입 상품을 넘어 오픈마켓 판매자 상품까지 미회수 환불 정책을 실시하는 것은 대부분 중소상인인 판매자들의 이익을 심각하게 저해하게 된다. 사실 오픈 마켓 판매자에게 가장 타격이 큰 게 반품이다. 그런데 반품도 안 되고 악질 소비자가 늘어난다면, 이중으로 손해를 보게 된다.이는 결국 비용 증가로 이어지고, 판매자와 양심적인 소비자에게 부담이 전가된다. 멀리 보면 양심적인 시민의식을 쇠퇴시키는 사회적 문제도 야기할 수 있다.일 년 전 쯤 필자의 집으로 오배송된 찹쌀떡 세트가 도착했다. 반품하기 위해 쿠팡으로 연락했더니 “그냥 파기하라”고 해서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다. 또 한번은 마켓컬리로 주문을 했는데, 다른 상품이 배송된 적이 있었다. 교환을 위해 연락했더니 역시 “누락된 상품을 새로 보내드릴테니, 오배송 상품을 그냥 폐기해 달라”고 해서 역시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한편에선 갑자기 사악한 생각이 들었다. ‘문제를 삼으면 공짜로 먹으라네!’나름 양심적으로 산다는 필자에게도 이렇게 시험에 들게 하는데, 좀 덜 양심적인 사람들은 얼마나 대 놓고 가짜 반품을 많이 하겠는가?특히 사진을 조작한다던가 사진으로 알기 어려운 흠을 잡으면, 이를 파악할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이 없다. 게다가 문제의 소비자가 외국인이라면 ‘한탕’ 하고 돌아가 버리면 그만이다. 가짜 반품은 분명 ‘범죄’인데, 누구나 범죄를 쉽게 저지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는 것이다. 즉 한 기업의 정책 하나가 시민들을 ‘범죄의 유혹’에 빠트릴 수 있다는 얘기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는 말처럼, 다른 범죄로 이어질까 두렵다. 따라서 중소상공인들과 양심적인 소비자 그리고 시민사회를 위해서라도, 이런 제도는 도입하지 말아야 한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구국의 기업인 정주영
구국의 기업인 정주영 HD현대가 19일 울산 HD현대중공업에서 1974년 첫 선박을 인도한 지 반세기만의 세계 최초로 5000척의 선박을 건조·인도하는 기념 행사를 개최했다. HD현대는 1974년 1호선인 26만톤급 초대형 유조선 '애틀랜틱 배런호'를 시작으로 이번 필리핀 초계함 디에고 실랑함까지 총 68개국 700여 개 선주사에 선박을 인도했다. 실로 대단한 업적이다.배를 만들어 본 적도 조선소도 없던 나라가, 불과 50년 만에 세계 최초로 5,000척의 선박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것도 최근엔 벌크선 같이 손쉬운 배는 중국이 건조하고, 우리나라는 LNG운반선이나 군함 등 고부가가치 선박에 집중하고 있다. 이 일을 보니 고 정주영 회장이 생각난다.설계도와 500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보여주고 "우리는 영국보다 300년 앞서 철갑선을 만들었다"라며 추천서를 받아냈고, "우리가 지금 조선소는 없지만 배를 계약해 주면 그걸로 돈을 빌려 조선소를 지은 뒤 배를 만들어 주겠다"라며 첫 선박의 발주를 받아냈다. 노력을 하니, 행운도 따랐던 것이다. 사실 정주영 회장은 다른 그룹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경유착에서 좀 비껴난 재벌이다. 오히려 할 만한 사업체가 없다 보니 정부가 무리한 사업을 맡기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정주영 회장은 ‘안 되면 되게 하라’라는 뚝심과 창의적 발상으로 어려운 일들을 성공으로 이끌며, 자신의 실력을 입증하고 키워왔다. 정 회장의 첫 기업인 현대건설은 소양강댐 경부고속도로 등 국책사업은 물론, 중동으로 나가 엄청난 외화를 벌어들인 우리나라 산업화의 일등 공신이자 애국기업이다.또한 현대자동차를 설립해 국내 최초로 완성차를 만들고 자체 엔진까지 개발하며, 지금 세계 굴지의 자동차 기업이 되는 초석을 다졌다. 그외에도 하이닉스의 전신인 현대전자, 아산병원, 대북사업 등 우리나라를 현재에 있게 만든 그나큰 업적을 이루었다. 정주영 회장 하면 첫 번째로 떠오르는 게 ‘도전정신’이다.어떤 직원이 안 된다는 반응을 보이면, 정 회장은 “임자, 해 보긴 해 봤어?”라고 답했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필자에게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기업인 한 사람을 물으면, 주저 없이 고 정주영 회장을 꼽는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