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시장의 직접민주주의 시도에 거는 태클
유럽순방에 나선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3일(현지시간) '블록체인 마스터플랜'을 발표하며, 전자투표를 통한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주요 정책 결정 전에 시민들에게 전자투표로 의견을 물을 수 있고, 재개발·재건축 조합이나 마을 공동체 등 지역 현안 결정 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박 시장은 "시민은 서울시의 주인이자 최종 정책의 결정권자로서, 시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고 정책 입안부터 실행과정에 이르기까지 직접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정책의 완성도도 높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직접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박원순 시장의 ‘불록체인 마스터플랜’을 통해 모든 시민들이 보다 편리하게 서울시정에 참여하고 진행상황을 알 수 있으며, 쉽게 서비스를 받는다는 취지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 적용 시 문제가 없을까? 우선 서울시 정책이 포퓰리즘, 즉 인기영합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일부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시장이 장기적으로 시행해야할 사업도 많지만, 일일이 시민들의 결제(?)를 받다보면 당장 인기영합 정책만 시행하게 되고, 결국 정책의 실패나 재정의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질문 방식에 따라 얼마든지 여론 조작이 가능해진다.예를 들어 한국원자력학회 의뢰로 ‘2018 원자력 발전에 대한 인식조사’ 결과, 71.6%는 전기 생산 수단으로 원전을 이용하는 것에 찬성했고 73.2%는 원전이 전기요금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는 데 동의했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다른 민간 기관이 시행한 여론조사에는 “정부는 국민의 안전 등을 고려해 원전을 더 짓지 않는 방향으로 에너지 정책을 추진한다”는 설명이 포함됐을 때, 탈원전 정책 찬성 비율은 60.5%로 높게 나왔다. 즉 질문하는 방식이나 지문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투표할 시간이 없거나 온라인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시민들은 전자투표에서 자연스럽게 소외되므로, 그 결과가 공정하다고 할 수 없다.온라인기기에 익숙한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하거나 특히 집단행동을 할 경우, 원래 취지와는 전혀 다른 결과가 도출될 수 있다. 게다가 만약 전자투표에 의해 결정된 정책의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 그 책임은 투표한 서울시민에게 전가된다. 즉 서울시장이나 공무원들은 책임회피하기 딱 좋게 된다. 예상되는 문제점이 너무나 많은데 “시민은 서울시의 주인이자 최종 정책의 결정권자”라는 듣기 좋은 말로, 언뜻 보기엔 그럴 듯한 직접민주주의를 도입하는 것 자체가 박원순 시장의 포퓰리즘이다.더구나 박원순 시장의 주요 지지층이 젊고 온라인기기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과연 전자투표를 통한 직접민주주의 도입이 순수한 의도인지 의구심이 간다. 이와 같은 이유로 박원순 시장은 전자투표를 통한 직접민주주의 도입을 유보하기 바란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김동연 경제부총리까지 왜 쫓아냈나?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결국 물러나게 되었다.필자는 몇 달 전 칼럼에서 김동연 부총리가 경제 정책을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장하성 정책실장이 주도하는 소위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 대폭인상 내지 분배 중심의 정책으로 자본주의가 근간인 나라 경제가 휘청거리지만, 그나마 관료 출신 김동연 부총리는 그에 반대하는 입장을 여러 번 보였다. 김 부총리는 지난 7일 국회 예산결산위서 현재 경제가 위기 아니냐는 질문에 “위기는 경제가 아닌 정치적 의사결정”이라는 발언을 해 사실상 위기의 원인은 청와대 즉 문재인 대통령과 장하성 정책실장에게 있음을 에둘러 표현했다.사실 경제에 있어서는 김동연 부총리가 경제 수장인데 일개 청와대 실장이 나서 경제를 끌고 가는,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었다. 필자는 장하성 실장의 퇴출(?)을 원했으나 김동연 부총리가 동시에 물러나게 된데 대해 매우 유감스럽고 안타깝게 생각한다. 사실 김동연 부총리는 그야말로 흙수저 출신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열심히 공부해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부총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리고 누가 정권을 잡느냐에 관계없이 경제 분야에 중용되어 왔던 실력파 관료다. 그래서 그런지 영국 학자 출신인 장하성 실장과는 다르게 가난한 사람과 서민들의 어려움을 잘 알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과 장하성 실장이 경제를 망쳐 놨는데 이에 반대각을 세운 김동연 부총리는 힘 한번 못 쓰고 뒷처리만 하다가 물러났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소득주도성장에 매몰된 문재인 정부와 코드가 맞지 않아서라 생각된다. 그럴 거면 왜 김동연 부총리를 발탁해서 그 자리에 앉혔는지 모르겠다. 또한 장하성 실장에 대한 비난은 곧 정책 실패를 의미하는데, 사람만 바꿔서 소득주도성장을 계속 밀어 붙이겠단다. 어쨌든 이젠 자유한국당에서 “문재인 정부의 잘못된 경제 정책에 반기를 들다 쫓겨난 대어(大魚)”라 판단하고 영입하려 하는데,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절대 뺐길 수 없다는 입장으로 “(김동연 부총리를) 무슨 자리이라도 앉혀놔야 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김동연 부총리가 분명 인물은 인물인데, 문재인 정부에서 제대로 활용을 못해 안타까울 따름이다. 김동연 부총리의 향후 행보가 궁금해진다. <한국인권신문 편집국장 배재탁 ybjy0906@naver,com>
“내면이 아름다운 배우가 되고 싶어요”
오산하동덕여자대학교 공연예술학 학사수정노인종합복지관 근무현) 화상 with Us, 노비따스 홍보대사 Q: 어릴 때 꿈이 배우였나?A: 어릴 땐 의사나 선생님, 가끔은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정말 우연히 친구가 계원예고에 시험 보러 가는데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 갔다가 나도 그냥 시험에 응시했는데, 나는 합격했고 친구는 떨어졌다. 예고에선 특기를 보기 때문에 사전에 상당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런데 난 연기를 공부한 적도 없고, 더구나 특기는 없었다. 시험관이 특기가 뭐냐고 질문하는 데 없다고 했더니 왜 왔냐고 하더라. 그런데 합격해서 나도 깜짝 놀랐다. Q: 집에서는 적극 지원해 주셨나?A: 전혀 그렇지 않다. 그때엔 만약 계원예고를 가지 않게 되면 1년을 쉬어야, 즉 재수를 해야하는 상황이어서 할 수 없이 보내주셨다. 처음엔 공부를 계속해서 교수가 되거나 연출을 하려고 했는데 연기가 가장 잘 맞았다. 처음 입학했을 땐 연기 공부가 전혀 안되어 있어서 고생을 좀 했는데, 졸업 작품 할 땐 주인공을 맡을 만큼 실력이 늘었다. Q: 학교 다닐 때 친했던 사람이 있나?A: 탤런트 소유진 선배랑 정말 친했다. 나는 소유진 언니를 정말 좋아했고, 많이 의지했다. 나는 예고에 입학했지만 연예인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집에서 TV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도 늘 할 말이 없었는데, 유진 언니가 많이 도와줬다. 나는 마음이 여려서 다른 배우들에게 늘 기가 눌렸는데, 유진 언니는 멘탈도 강해 부럽고 멋있어 보였다. 소유진 언니는 학교 다닐 때도 유명했다. 예쁘고 성격도 좋고 리더십이 강했다. 그리고 정말 통이 컸다. 나는 한 번도 유진 언니가 남에게 얻어먹는 걸 본 적이 없다. 언제나 남에게 사주고 베풀었다. 어떤 사람은 백종원 씨랑 결혼해서 시집을 잘 갔다고 하지만, 그런 것도 다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이 되는 사람이라야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유진 언니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다. 유진 언니는 나에게 최초를 많이 해준 언니다. 나는 화장을 잘 안하는데 최초로 나에게 화장품 선물을 해줬고, 고3때 최초로 강남역에 불려 나가, 최초로 프렌치 레스토랑에 데려가 격려해 줬다. 남자 친구는 없었지만 든든하고 친절한 남자친구처럼 멋있었고, 또 언니는 없지만 친언니나 그보다 더 친한 가족 같은 언니로 많이 의지했다. 언니에게 직접 대놓고 고마움을 표시 못했는데, 이 자리를 빌려 정말 고마웠다는 얘길 하고 싶다. “소유진 언니의 도움이 컸다.소유진 언니는 참 통이 컸다“ Q: 데뷔는 어떻게 했나?A: 2006년 KBS <연어의 꿈>이란 미니시리즈 특집극으로 데뷔했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 20대 중반에 데뷔했기 때문에, 그 당시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좀 늦은 편이었다. 오디션에 응시해 주연으로 발탁되었다. Q: 시작이 운이 좋았던 모양이다.A: 나는 시작엔 참 운이 좋았다. 보통 아침드라마로 시작해 주말드라마를 거쳐 미니시리즈를 하게 되는데 나는 바로 미니시리즈 주인공이 되었으니 말이다. 영화 <악마를 보았다>도 그렇다. 배우들이 같이 일하고 싶은 인기 감독인 김지운 감독님한테 캐스팅되어, 이병헌 최민식 주연이었는데 이병헌의 약혼녀 역할이었다. 편집이 많이 되어서 그렇지 원래는 주연급에 가까웠었다. 보통 이런 역할을 맡기 전에 단역이나 독립영화부터 출연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영화에서도 바로 인기 감독과 스타 배우들 속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았다. Q: 뮤지컬도 했던데?A: 뮤지컬도 몇 편 했는데 그 역시 모두 주인공이었다. 가수 송창식 선생님의 <담배가게 아가씨>란 노래를 소재로 창작 뮤지컬을 만들었는데, 내가 최초의 주인공이었고 그래서 많이 힘들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공연하는 그 뮤지컬을 보면, 내가 처음에 했던 행동이나 아이디어를 지금 배우들도 똑같이 한다. 내가 처음 했던 게 이렇게 전수된다는 게 신기하고 뿌듯하기도 하다.또 <진짜 진짜 좋아해>란 뮤지컬에선 박해미 선배 등 유명 기성 뮤지컬 배우들과 같이 했는데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처음엔 참 운이 좋았다.거의 모든 작품에서 주인공을 했다.“ Q: 음반도 낸 걸 보니 노래도 잘하나 보다.A: 음반 얘긴 창피해서 정말 하고 싶지 않다. 대학 다닐 때 압구정동에서 우연히 <세시>란 잡지에서 사진을 찍어 잡지에 실었는데, 기획사에서 보고 연락이 왔다. 당시엔 내가 뮤지컬을 좋아해서 그랬는지, 기획사에서 음반을 내자고 해서 얼떨결에 12곡 실은 음반을 냈다. 그 당시엔 가수가 뜨려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뭔가를 보여줘야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나는 도무지 말 한마디 못하겠어서, 나는 가수로는 안 되겠고 배우가 맞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기획사 사장님께 미안하다. 이젠 가수나 뮤지컬을 꾸준히(?) 안 해서 녹이 슬어 노래를 못 부른다. Q: 처음엔 정말 잘나갔나 보다.A: 송혜교를 모델로 하던 모 건설사 CF도 찍고 하면서 처음 시작 땐 모든 게 나름 원하는대로 잘 풀렸다. Q: 그런데 처음엔 잘나가다가 왜 활동이 뜸하게 됐나?A: 제일 큰 이유는 소속사를 잘못 만났기 때문이다. 좋은 작품 다 놓치다보니 자꾸 움츠려 들었다. 특히 연예계에선 멘탈이 강하지 않으면 버티지 못한다. 그런데 멘탈이 약하고 버티지 못한 나에게 회의감이 들었다. 연예인은 다른 사람들과 늘 비교를 당하고 또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직업인데, 난 늘 상대방의 기에 눌리고 상처받으면서 일이 두렵고 보람을 느끼지 못했다. “일이 줄고 나에게 회의감이 들었다.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서 직원으로 일했다.“ Q: 사회복지사 일은 어떻게 하게 됐나?A: 일이 줄고 나 스스로 회의감이 들면서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모르겠고 가슴은 메마르고 텅 비어갔다. 그때 신부 수녀님의 도움으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게 되었다. 나는 사회복지사, 노인심리상담사, 심리상담사 이렇게 세 가지 자격증이 있다. 그렇게 자격증을 따서 노인종합복지관에서 2년 정도 직원으로 일했다. 내가 어릴 때부터 연예인이 꿈이었으면 사회복지사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쨌든 배우가 되었고, 배우가 된 이상 봉사하는 배우가 되고 싶었다. 내 롤 모델은 오드리 햅번이다. 그녀는 화려한 생활을 뒤로한 채 아프리카 오지에 가서 어린이들을 돌봤다. 돈은 누구나 쉽게 기부할 수 있으나, 현장에서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하는 건 쉽지 않다. 지금까지 배우보다 사회복지사 일을 더 많이 했고, 그걸 바탕으로 새로운 배우가 되려 한다. Q: 배우가 사회복지사 직원으로 일하는 게 쉽지 않았을텐데?A: 어떤 분들은 “배우인데 모든 걸 버리고 직장생활을 하나?”라고 말씀하신 분들도 있었다. 사실 배우보다 직장생활이 그렇게 힘든지 몰랐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밤늦게까지 거의 똑같은 생활을 반복했다. 그러나 거기에도 또 다른 인간관계가 있었고, 주로 노인 분들을 응대하면서 지혜도 배우고 사랑도 받았다. 나는 사회복지사로 활동했던 시간이 배우로서 어떤 작품을 한 것보다 유의미했다고 생각한다. 배우 중에 사회복지사나 직장생활의 경험이 있는 배우는 별로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사회복지사로 활동한 기간이 단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Q: 사회복지사 활동을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A: 우선 내가 사회복지사 활동을 하면서 나 스스로가 힐링이 되었다.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사람들에게 잠깐 와서 폼만 잡고 가는 게 아니라, 그들과 함께 오랜 시간을 지내다 보니 텅 빈 마음이 충만해지고 스스로 들었던 회의감이 자존감으로 바뀌었다. <월간 인권>도 소외된 사람들의 편에서 얘기하는 잡지라 인터뷰에 흔쾌히 응했고, 지금도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있다.내가 노인분들을 많이 대하다 보니 젊었을 때 잘나갔거나 못나갔거나 나이 들면 다 똑같더라. 그래서 잘 늙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난 평생을 봉사하는 배우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생활이 그렇게 힘든 건지 몰랐다.사회복지사 활동으로 내가 힐링되었다.“ Q: 가장 최근에 한 작품은?A: 2016년 한중합작 웹드라마 <매매폰>이었다. 중국에선 상당히 인기를 끈 작품인데, 한국 배우로는 내가 유일하게 출연했었다. 2015년에 독립영화 한 편 찍었었고, 2016년이 마지막 작품이니 내가 봐도 배우로서의 활동을 별로 안했다. Q: 요즘도 사회복지사 활동을 하고 있나?A: 얼마 전에 그만 두었고 지금은 ‘화상 with Us'란 단체의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화상을 입었지만 정상적인 사회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단체다. 또 미혼모를 위한 ’스텔라의 집‘에서 신부님을 도와 일하고 있다. 최근엔 ’노비따스‘란 음악학교의 홍보대사 활동도 시작했다. Q: 인생에 멘토나 스승이 있다면?A: 이외수 선생님이다. <크크섬의 비밀>이란 시트콤에서 이외수 선생님이 치매에 걸린 아버지 역할을 맡으셨고 나는 딸이었다. 나는 누구한테 살갑게 하거나 아부(?) 같은 걸 못하는 성격인데, 이외수 선생님께서 착하게 보셔서 수양딸을 삼겠다 하셨고, 지금까지 수양딸로서 잘 지내고 있다.이외수 선생님은 연세가 70이 넘으셨는데도 항상 열정이 넘치신다. 그 에너지가 정말 부럽다. 사람들은 대개 진실과 마주하기를 꺼려한다고 하는데, 선생님은 진실의 힘을 믿는 그런 면에 나에게 항상 용기를 주시고 힘을 주신다. 아버지와 딸 역할의 인연에 감사하고, 정말로 아버지 같으시다. 언제나 나를 믿어주심에 내가 착해지는 것 같다.특히 이외수 선생님이 이번에 남예종예술실용전문학교 학장님으로 취임하셨으니, 학생들을 좋은 길로 인도하고 훌륭한 인재로 키우실 거라 믿는다. “이외수 선생님은 용기와 힘을 주신다.나는 선생님의 수양딸이 되었다.“ Q: 결혼 생각은 없나?A: 지금 교제 중인 남자는 없지만, 결혼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지금은 누군가가 내 마음속에 들어올 자리를 만들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준비가 다 되고 그 자리에 맞는 사람이 나타나면 결혼할 것이다. Q: 배우 활동을 다시 하게 됐는데 계획이나 마음가짐은
적자생존
‘적자생존’이란 말은 영국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스펜서가 1864년 ‘생물학의 원리’라는 저서에서 생존 경쟁의 원리에 대한 개념을 간단히 함축해 처음 사용한 말로,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생물이나 집단만이 살아남는다’는 의미를 가진 단어이다.그러나 이번 글 속의 ‘적자생존’은 학문적 깊은 의미가 아니고 약간은 넌센스와 코믹한 뜻으로 적어 보았다. 어느 날 남편이 “적자생존 뜻이 뭔지 알아? 요즘은 적는 자만이 살아남는데!”라며, 메모 잘하라고 장난스럽게 던진 조크가 마음에 ‘확’ 와 닿았다.오래 전 아침, 오후 약속을 체크하고 일에 집중하다 보니 약속을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문득 생각 나, 순간 너무 황당하고 깜짝 놀라 얼굴까지 시뻘겋게 달아올라 허겁지겁 달려간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깜빡이의 전초전이었다. 가끔씩 약속을 잊는 경우가 생겨나기 시작하며 대충하던 메모를 집중하였고, 지금은 메모하고 확인하는 것을 습관처럼 생활화 하였다. 까먹지 않기 위해 시작한 메모지만, 언제부터인가 매 순간 새로운 정보를 기록하고 스케줄 관리를 하며 삶의 동반자가 되니 은근 든든하다. ‘짧은 연필이 긴 기억보다 낫다’라는 말처럼, 생각보다 좋은 아이디어, 발상, 추억들을 오래 기억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아침잠에서 깨었을 때 떠오르는 아름다운 시상이나 가끔 반짝 떠오르는 기막힌 문장을 바로 메모해 놓지 않으면 하얗게 잊어버리고 마는 경우를 종종 경험하며, 메모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고 메모 준비를 철저히 하게 되었다. 귀한 단어와 멋진 문장은 얼른 메모해 정리하면 귀중한 자료가 되고 창의적 아이디어가 만들어지기도 하니, 재료가 될 수 있는 메모를 많이 확보하는 것은 귀한 자산이며 든든한 조력자가 되기도 하였다. 메모가 귀찮을 때도 있지만, 하루를 마무리 하다 보면 잘못된 실수를 점검하게 되고 반성하면서 색다른 아이디어와 만나기도 한다. 정리된 수첩을 펼쳐보면 하루의 일과와 생각이 고스란히 쌓여, 옛 생각은 엊그제 일처럼 다가와 작은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여 추억의 책으로 변신하기도 하였다. 노트북과 스마트폰이 활성화되면서 손으로 메모하는 것이 불편하기도 하였지만 디지털화된 스마트폰 활용법이 미숙하여 스마트폰 메모가 순간 날아갈 때도 있어, 스마트폰과 메모장에 아날로그적 메모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 이제는 매년 적어놓은 다이어리가 수 십 권이 되고, 칼럼 자료도 다이어리에서 가끔 찾아 쓰니, 습관화된 메모 정리는 이미 효과를 보고 있는 셈이다.적자생존 시대에는 환경에 잘 적응하는 사람만이 살아남는다고 하는데 치열한 삶 속의 메모는 어쩜 환경에 잘 적응한 사람의 아이디어 뱅크가 아닐까? 얼마 전 미동부와 캐나다 여행을 갔을 때도 메모장과 볼펜은 필수였고, 가이드의 설명도 조각조각 메모하며 다녀와 3페이지로 정리해 보관해 두었다. 아름다운 대자연과 산뜻한 공기와 함께 했던 좋은 사람들과의 추억을 고스란히 마음속 깊이 담아 적어 두었으니, 언젠가의 칼럼 재료가 될 것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 들어있는 ‘메모의 기술’처럼, 일본인들은 메모를 꼼꼼히 잘하고 효과도 많이 본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일이다. 메모를 생활화하는 일본은 모든 것이 자료화 되어 있어 우리보다 앞서 가는 부분도 있고, 개인이나 기관이 기록하는 자료들이 문화로 꽃피우기도 한다.일본의 세계적인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가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고등학교 1학년부터 본인이 해야 할 일들을 ‘만다라트’ (소망을 이뤄주는 마법의 상자)라고 부르는 계획표를 통해 목표를 설정했고 꾸준히 작성한 결과,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일본 프로야구 구단뿐만 아니라 메이저리그 팀까지 입단 제의를 받게 되며 2년 만에 자신의 계획된 꿈을 모두 이루게 된다. 이후 ‘만다라트’ 계획표는 목표에 대한 생각을 키워주고 꿈을 이루며 심신이 안정되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로 유명해졌다. ‘만다라트’ 계획표는 중심 칸에 핵심 목표를 작성하고 둘러싼 8개 칸에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8가지 중간계획을 적는다. 한 칸 한 칸 메워가다 보면 뭔가 막연했던 미래가 정리되는 느낌이 들고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꿈과 목표가 이루어지기도 하니, 여러 생각이 체계적으로 정리되며 계획된 목표와 소망을 이뤄주는 마법의 상자는 인생의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 선생 역시 철저한 메모 왕 이었다고 한다.다양한 분야에서 600여 권의 저술을 남긴 바탕에는 성실성과 함께 수시로 메모하는 습관이 있었으며, 그것을 항상 분류하는 일을 습관화 하여 18년 유배생활 동안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를 집필하였다. “동트기 전에 일어나라. 기억은 흐려지고 생각은 사라진다.머리를 믿지 말고 손을 믿어라.”2017년 개관된 청주시 기록관은 역사적 기록물을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보존하여 후대에 안전하게 전승하고자 만든 기록 체험 홍보관이다. 개관이후 국가기록원을 비롯하여 문화재청, 충북교육청, 정선군청 등 전국에서 벤치마킹 시찰단이 다녀갔다고 하니 기록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는다. 메모에는 정보를 수립하는 메모와 생각을 정리하는 메모가 있다.그러나 메모를 자기만의 지식으로 만들고 지혜로 연결시켜 발전시키려면 본인만의 생각을 꾸준히 만들어가며, 외부로부터 얻은 정보와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모아 훌륭한 공간으로 만들어야 지식이 지혜로 이어질 수 있다. 개인의 경험, 다양한 생각, 판단, 분석이 더해져 만들어진 정보가 목적에 맞게 사용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 지식이고 관련된 모든 재료와 종합적으로 전체 상황을 고려하여 지식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을 지혜라고 할 수 있는데, 가끔은 많은 정보를 모아놓고 이미 지식을 모두 얻었다고 착각할 수 있으니 메모할 때 생각까지 정리해 놓으면 기대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잘 모르고 시작한 메모의 습관은 나의 계발서가 되었고, 많은 추억과 정보를 공유하다 보니 폭 넓고 윤택한 사고를 가지게 되어 문득 감사한 마음에 부족한 메모 경험을 나열하며 다시 점검해 본다. ‘적는 자는 생존한다?’
김구 선생의 소원
지난 6월 26일은 백범 김구 선생의 서거 69주년 되는 날이다.임시정부의 주석으로 취임하여 한국 광복군을 결성한 후 국내 정진작전을 도모했으나 일제가 항복함에 따라 시도조차 하지 못한 채 실패했다. 이 후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를 신탁통치 하였고 김구 선생은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남북협상에 참석하고자 평양 땅을 밟기도 하였다.그러나 불과 1년 뒤 19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안두희의 총탄에 맞아 서거하였다.통일 민족국가의 수립과 자주적 평화 통일 운동은 결실을 맺지 못했고 그 결과 한반도는 70여년 가까이 분단의 상태가 고착되었다. 2018년 4월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6월에는 북미 정상이 만났다.후속 조치로 한미연합훈련 연기, 미군 유해 송환, 이산가족 상봉, 남북 철도 연결을 위한 회의등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는 70여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여전히 미,중,일,러 등의 이해 관계가 얽혀 있고 남한은 반공 이데올로기로 인한 갈등도 존재한다. 남북한만의 결단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은 서글픈 현실 속에 있다. 그럼에도 희망을 품어 본다.한반도에 진정한 봄이 올 것인가. 온 민족이 염원하는 평화와 번영이.김구 선생이 그토록 염원하던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과 평화 통일이.우리의 미래 세대는 어떠한 나라에서 살게 될 것인가.우리는 역사를 쓰고 있다.
어떤 지식인이 문재인 정부 퇴진을 요구하나?
지난 26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문재인 퇴진과 국가수호를 위한 320인 지식인선언 준비위원회원들이 문재인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들은 문재인 정권을 반역정권으로 규정하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것을 촉구했다.보수단체 인사 100여명이 참석한 이날 회견에서 이들은 "문재인 정권이 자유와 국가를 파괴하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의 퇴진을 요구했다. 또한 이들은 ▶남북군사합의서 비준 즉각 철회 ▶대북제대 국제공조 동참 ▶탈원전 정책 추진 즉각 중단 등을 요구했다. 그 중심엔 선언문을 낭독한 도태우 변호사가 있었고, 준비위원 명단엔 김문수 자유한국당 의원 등이 있었다. 이번 지식인 명단(보안을 위해 일부만 공개했다고 함)을 보면 한마디로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 인사들이다. 그런데 지난 거의 10년간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뭐 잘한 게 있다고, 지금의 문재인 정부가 국가를 파괴할 만큼의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나?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부분의 국민의 뜻에 합치하여 건국 이래 최초로 탄핵 당하고 교도소에 들어가 있는 대통령 아닌가? 박근혜 전 대통령과 함께 했던 사람들이 자칭 ‘지식인’이라 하며 문재인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는 건 뻔뻔스러움까지 느껴지는 억지다. 물론 그들의 주장엔 탈원전 정책 중단이나 임금 폭등으로 인한 영세상공인의 고통 등 필자의 의견과 같은 맥락에 있는 내용도 있다. 사실 필자도 문재인 정부의 실정에 대해 많은 비판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320인’ 안에 들어갈 만큼의 지식인이 아니라 그런지 몰라도, 필자의 비판은 “잘하라”는 얘기지 “그만 둬라”까지는 아니다. 이제 시작한 지 고작 1년 반 된 정부다.문재인 정부가 사퇴할 만큼의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으니, 아직은 더 두고 봐야 할 시기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우리도 당했으니 너희도 당해봐라”라는 식의 무차별적 공격은 반감을 사기 쉽다. 문재인 정부가 퇴진할 만큼 또는 나중에라도 교도소에 갈 만큼의 잘못이 있는지는 더 지나 봐야 한다. 오히려 문 정부의 퇴진을 논하기 전에 발전적인 비판과 극우보수 세력의 자기반성이 먼저다. <한국인권신문 편집국장 배재탁 ybjy09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