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선진국
최후의 선진국대한민국은 많은 신기록을 가진 나라다.‘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 ‘식민지배를 받다가 선진국이 된 유일한 나라’(식민지배를 받다 지배국보다 더 잘살게 된 첫 나라 – 1인당 GDP 기준),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이 된 첫번째 나라’ 등, 타이틀이 참 많기도 하다. 자원 없는 작은 국토에 인구도 많지 않은 한국은, 어떻게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이 되었을까?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교육열과 풍부한 인적 자원, 수출주도형 경제정책, 산업 고도화, 강력한 정부의 주도와 신속한 실행력, 토지개혁 등이다. 많은 중진국과 후진국들은 한국을 모델로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꿈꾼다. 하지만 보기엔 쉬운데, 막상 하려니 안 된다. 왜 안될까? 우선 배가 불러서, 즉 ‘자원이 많아서’이다.한국은 아예 아무것도 없다 보니, 처음부터 외국으로 나가야 먹고 살 수 있었다.하지만 필리핀, 아르헨티나, 브라질 같은 나라들은 자원과 농업 생산력이 풍부했다. 어떤 나라들은 땅만 파면 석유나 다이아몬드가 나오고 하니, 굳이 리스크를 감수하며 제조업이나 첨단 산업에 도전할 이유와 열정이 적었다. 하지만 원자재 가격이 폭락할 때마다 국가 경제 전체가 휘청이는 악순환이 반복되었고, 산업 경쟁력은 사라지며 1차 산업에 머물게 되었다. 가장 근본적인 것 중 하나는 국가 지도층과 관료의 부패다.많은 개도국의 독재자나 특권층은 국가의 부와 원조 자금을 해외 비밀계좌로 빼돌리고 사치를 부렸다.하지만 한국 정부는 대기업에 특혜를 주는 대신 "글로벌 시장에서 성과(수출 실적)를 내라"는 조건을 걸었다. 정경유착의 대가로 얻은 자금도 철강, 조선, 전자 등 미래 산업을 위한 대규모 시설 투자로 재투입되며, 부패 속에서도 '생산 시설'이라는 국가적 자산은 남았다.심지어 군부독재정권이 들어서도 “수출 주도 경제 발전”은 일관되게 밀었다. 또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196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은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수입을 막고 국산품을 쓰는 '수입대체 산업화'에 집중했다는 점이다. 이렇게 국내 시장이 보호되니 기업들은 기술을 개발할 필요 없이 안주했고, 결과적으로 글로벌 시장에선 경쟁력이 전무했다.하지만 한국은 처음부터 미국, 유럽 등 가혹한 글로벌 시장에서, 세계 최고의 제품들과 직접 부딪히며 살아남아야 했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위와 같이 “열심히 잘했다”라는 과정이외에도 중요한 요인이 있다. 바로 당시의 환경 즉 ‘시운(時運)’이다. (운 즉 기회를 잡는 것도 능력이긴 하다) 한국이 한창 크던 1960~80년대에 중국은 마오쩌둥 체제 아래에서 문화대혁명 등을 겪으며 폐쇄적인 공산주의 경제 체제에 머물러 있었다.만약 당시에 중국이 문화대혁명으로 역행하지 않고 엄청난 규모와 저임금 노동력으로 세계 시장에 진출했다면, 한국의 초기 경공업(섬유, 신발, 가발 등)과 중화학공업은 시작하기도 전에 무너졌을 것이다.중국이 개혁개방을 선언하고 본격적으로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한 것은 1990년대 이후였다. 한국은 약 30년의 시간 동안 기술을 축적했고, 중국이 본격적으로 치고 올라올 때쯤에는 이미 고부가가치 첨단 산업으로 한 단계 도망갈 수 있었다. 한편 미국과 유럽은 제자리 내지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1970~80년대 유럽과 미국은 인건비가 가파르게 오르고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철강 조선 화학 자동차 같은 중화학공업을 자국 내에서 유지하기 힘들어졌다. 나아가 먹고 살만 한 서구 노동자들은 거친 공장 일을 기피하기 시작했다.이렇게 서구 선진국들이 비워낸 제조업 자리를 한국이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포항제철을 짓고, 현대중공업이 조선소를 세운 타이밍이 바로 전 세계적으로 '제조업 공급 부족'과 '공급망 다변화'가 일어나던 시점과 정확히 일치했다.여기에 미국이 제공한 지정학적 특혜도 결정적이다. 미국은 아시아에서 공산주의 확장을 막기 위해 한국과 대만 같은 전초기지를 반드시 성공적인 자본주의 모델로 키워야 했다. 미국은 한국산 제품에 대해 관세를 낮추고 시장을 활짝 열면서, 한국 정부가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수입 장벽을 치는 것은 묵인해 주었다. 냉전이 끝난 지금의 글로벌 무역 규정(WTO 체제 등) 하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특혜였다. 현재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꿈이라도 꾸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브라질 같은 나라들은, 중국 인도 유럽 한국 일본 등을 제치거나 비슷해야 가능하다.그런데 그 나라들에게 그런 수준의 기업이 하나라도 있거나, 최소한 생길 가능성이 높을까? 쫓아갈 만하면 남들은 이미 저 앞에 달아나 버리는 상황이다.즉 이젠 과거의 한국처럼 하더라도 선진국이 될 수 없는 상황이란 의미다. 이렇게 한국은 주어진 기회(운)를 실력과 성실과 열정으로 잡으며, 지금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최후의 선진국’이 될 수 있었다. 국운(國運) 역시 ‘운 7, 기 3’인가 보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서울시민을 호구로 알았나?
서울시민을 호구로 알았나? 서울특별시는 ‘특별한’ 시다.600 여 년을 이어온, 신흥 강국 대한민국의 수도이다. 국가 주요 권력기관은 물론, 주요 기업과 최고 수준의 각종 시설 등 거의 모든 면에서 고르게 잘 갖춰진 세계적 도시다. 자연스럽게 일자리도 많다. 따라서 서울특별시에 사는 시민도 특별해야 한다. 타고 난 게 특별한 게 아니라, 특별해야 자격이 주어진다. 그것은 바로 ‘돈과 의지(자부심)’다.위의 것들을 누리고 그 안에 살려면, 우선 비싼 거주비와 생활비를 감당해야 한다. 같은 급여를 받아도, 서울 사는 보람으로 다른 불편을 참고 감내한다. 그 이유 중엔 대통령 국회 대법원 등이 모여 있는 수도에서 ‘함께 산다’는 자부심도 한몫한다.그런데 갑자기 청와대와 국회를 다른 곳으로 옮기겠다고 하면, 힘들지만 자부심으로 ‘서울살이’를 해 온 서울 시민의 마음은 어떨까? 그동안 정부는 이미 비대한 서울의 기능을 축소하고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한 작업을 계속해 왔다. 충분히 공감하고, 그런 측면에서 최근 해수부와 HMM 본사 이전까지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서울에 있어야 할 산업은행을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부산으로 이전하고, 세종시에 대통령 집무실 건설을 서두르라고 한다면?서울 시민은 ‘이러다가 빈껍데기만 남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한 생각을 하게 된다. 서울시민으로 열심히 살아왔을 뿐인데, 이젠 ‘특별하게‘ 호구되는 느낌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예상을 깨고 오세훈 후보가 당선됐는데, 필자는 그 이유 중 하나로 ’껍데기만 남기는 서울‘ 정책을 들고 싶다이는 두드러진 교차투표로 나타났다.즉 상당수의 사람들이 구청장은 민주당 후보를 뽑아놓고, 시장은 오세훈 후보를 선택한 이유라고 본다. 예를 들어 영등포구 구청장 선거에서는 민주당 후보가 국민의힘을 8,685표 차로 이겼지만, 시장 선거에서는 오세훈 후보가 민주당 정원오 후보를 8,190표 차로 앞섰다. 심지어 정원오 후보는 홈그라운드인 성동구에서 51.21%를 얻으며 간신히 과반을 확보하긴 했으나, 기존의 민주당 지지세가 훨씬 약해졌다. 그 사이 세종시민들은 신났다. 청와대와 국회가 온다면 세종시가 행정수도를 넘어 사실상의 수도가 되는 것 아닌가?이번 세종시장 선거 결과를 봐도 입증된다.지난번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최민호 후보가 52.83%의 득표율로 당선됐었지만, 이번 지방선거에선 더불어민주당 조상호 후보가 61.03%의 지지율로 격차를 벌이며 당선됐다. 선거 때만 되면 등장하는 ’서울 등골 빼먹기‘.일천만 서울 시민들을 호구로 생각해서, 서울은 탈탈 털어 빈껍데기만 남겨도 되는 도시라고 생각하나? 서울 시민들이 ‘보수화되고 있다’라고 생각하기 전에, 그 이유를 잘 살펴야 한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지난달 24일 연쇄 강진이 덮친 베네수엘라에서, 지진 발생 8일 만에 40대 남성이 구조됐다는 소식이 전세계에 타전됐다. 구조팀은 콘크리트를 파내는 등 작업을 하는 100시간 동안, 남성에게 음식과 물을 공급했다고 한다. 이 남성이 구조돼 지상으로 올라오는 순간, 전세계에서 온 구조대원들이 환호하고 박수를 치는 등 기쁨을 나눴다 한다. 이 소식을 보니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생각난다. (사진)고작 8일 버틴 건, 한국에선 기적으로 쳐 주지도 않는다. 당시 한국인 최명석 씨는 11일째, 유지환 씨는 13일째, 박승현 씨는 무려 16일 만에 구조됐다. 게다가 이들에게 별도의 음식과 물을 제공한 적도 거의 없었다. 한국에선 이 정도는 돼야, 기적이란 명함을 내민다. (구조되었던 세 사람은 TV 등에 출연하며 유명세를 타기도 했고, 의남매를 맺어 자주 소통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유명세에 따른 부담감과 트라우마로 인해, 언론과의 접촉을 피한 채 조용히 살고 있다고 한다.) 농담처럼 얘기했지만, 사실 부끄러운 얘기다.얼마나 날림으로 지었길래, 멀쩡한 고급 백화점이 지진도 아니고 스스로 무너지다니. 국민적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해외에선 이를 보고 얼마나 한심하게 생각했을까 싶다. 어쨌든 당시 모든 방송사가 삼풍백화점 뉴스에 매달리며, 가끔 있었던 기적 같은 생존 소식은 성난 국민들에게 그나마 위안 거리가 되었다 수많은 인명 피해를 낸 삼풍백화점의 이준 회장은 '업무상 과실치사상죄' 등이 적용되어 법정 최고형에 가까운 징역 7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또한 징역형과 별개로 피해 유가족 및 부상자들에 대한 보상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이준 회장 일가의 사재와 삼풍그룹의 모든 계열사 자산이 서울시에 의해 압류 및 매각되었다. 이로 인해 삼풍그룹은 완전히 공중분해 되었다.교도소에서 복역한 이준 회장은 2003년 4월에 7년 6개월의 형기를 모두 채우고 만기 출소했다. 출소 당시 이미 당뇨, 고혈압, 신장병 등 지병을 앓고 있었으며, 출소한 지 불과 6개월 만인 2003년 10월 향년 80세로 사망했다. 돈에 눈이 멀어 안전을 무시했던 자의 최후다.한편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덕을 본 경우도 있었다.당시 현장에서 생방송을 진행하던 MBC TV 정동영 앵커는 유명세를 타며, 이후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 인지도를 쌓았다.또한 마침 근처를 지나던 YTN 기자가 특종 보도를 하면서, 당시 개국한 지 얼마 안됐던 케이블TV와 YTN을 홍보하는 데 일등 공신이 되었다. 베네수엘라 지진의 구조 활동을 보며, 갑자기 생각났던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이야기였다.아울러 베네수엘라에서 기적같은 구조 소식이 연이어 들려오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남미 교과서에서의 한국
남미 교과서에서의 한국 필자가 어릴 적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 <김찬삼의 세계여행>이다.김찬삼 교수는 1958년부터 시작해 1970년대 말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세계를 여행한 한국 최초의 전문 여행가다. 그의 세계여행기는 여러 차례에 걸쳐 발간되었는데, 갈수록 두껍고 화려하고(흑백에서 컬러로 발전) 고급스러워졌다. (사진) 인기도 많아 웬만한 집에도 꽂혀 있을 정도였다.당시엔 해외 여행을 꿈도 못 꾸고 외국에 대한 자료나 정보도 크게 부족했던 시절이라, <김찬삼 세계여행>은 어린 마음을 설레게 만들고 외국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김찬삼 교수가 해외여행을 시작한 1960년대 전후만 해도, 한국은 세계 최빈국이고 거의 알려지지도 않았다. 그러니 돈 없는 여행자의 고생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김찬삼 교수가 생소했던 남미를 처음 방문한 시기가 1961년이다. 당시 에콰도르나 페루, 칠레의 출입국 관리소 직원들은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이라는 나라 자체를 몰랐다. 국경을 넘을 때마다 "스파이 아니냐", "밀항자 아니냐"며 몇 시간씩 독방에 갇혀 취조당했다. 심지어 한국 여권을 처음 본 현지 관리들이 여권을 가짜라고 무시하며 집어던지거나, 입국을 거절해 국경 근처 뙤약볕 아래서 며칠씩 노숙하며 사정해야 겨우 통과할 수 있었다.에콰도르나 페루의 도심을 걸을 때면 현지 아이들이나 청년들이 몰려와 동양인을 비하하며 놀리거나, 심지어 돌을 던지는 일도 있었다. 칠레 등지에서 밤에 너무 춥고 배가 고파 민가의 문을 두드리며 "마당에서 잠만 자게 해달라", "물을 좀 달라"고 청했을 때,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문을 쾅 닫아버리거나 개를 풀어 쫓아내는 서러운 홀대를 수없이 겪었다. 그런데 지금의 남미는 대한민국을 모르는 사람이 없고, 한국인을 너무나 사랑하게 바뀌었다.심지어 에콰도르 고등학교 교과서에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직지)'이 대대적으로 수록되어 있으며, 도합 14개 교과서에 한국의 발전상이 상세히 담겨 있다고 한다.특히 직지에 대해선 무려 12페이지에 걸쳐 아주 비중 있게 다루어졌다.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한 교과서에는 직지가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된 현존 세계 최초의 서적, 2001년 유네스코(UNESCO) 세계기록유산에 등재, 독일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약 80년 앞서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를 발명했다는 등의 구체적인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한국보다 더 자세하다!)이외에도 9학년 사회 교과서에는 한국이 1945년 식민지배 종식 이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으나, 현재는 엄청난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는 스토리가 담겨 있다. 또한 세계 수소차 판매량 1위(현대자동차), 전국을 2시간대로 연결하는 고속열차(KTX), 5G 스마트폰의 대중화(삼성전자), KAIST의 인공지능 로봇 연구 등이 과학·물리 교과서에 예시로 쓰인다. 나아가 한국의 영화나 유명 생존 게임(배틀그라운드 등)을 통한 문화적 영향력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사실 남미에선 정도의 차이일 뿐, 공통적 현상이다.칠레는 남미에서 가장 먼저 한국과 FTA(자유무역협정)를 체결한 국가인 만큼, 교과서 속 한국은 '경제적 파트너'이자 '선진 도시'로 등장한다. 특히 칠레 지리 교과서 내 세계지도에서 '일본해' 단독 표기 대신 '동해(Mar del Este)'가 단독 또는 병기하는 성과를 거뒀다.페루의 교과서에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자원이 전혀 없는 나라가 오직 '인적 자원(교육)'과 '수출 주도형 산업'만으로 어떻게 글로벌 IT·자동차 강국이 되었는지 그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텍스트와 도표가 실려 있다. 이렇게 남미의 교육계에서는 전쟁의 폐허를 딛고 교육과 기술 발전을 통해 선진국으로 도약한 한국을 '가장 이상적인 롤모델'로 보고 있다. 김찬삼 교수가 홀대받으며 눈물 흘리던 시기로부터 60년 만에 이루어진 일이다. (2003년 작고)감격스럽다.대한민국 만세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밥(쌀)의 민족
밥(쌀)의 민족 우리가 흔히 하는 인사 중 하나가 “밥 한번 먹자”다. 유래나 이유가 어떻든, 그만큼 밥에 진심이라는 얘기다. 오죽하면 “모든 힘은 밥심에서 나온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그러면 밥의 원료인 쌀(벼)을 가장 먼저 재배한 곳은 지금의 어디일까?바로바로..대한민국이다.(필자도 이 걸 알고 깜짝 놀랐다) 과거엔 ‘벼농사는 중국 장강 유역에서 시작했다’가 정설처럼 되어 있었는데, 1994년 청주 소로리 공사 현장에서 볍씨가 130여 개 발견되면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사진)이 볍씨들을 서울대와 미국 애리조나대 등 세계 최고 기관에 보내 탄소 연대를 측정한 결과, 최대 15,000년 ~ 17,000년 전의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중국의 기록보다 무려 3,000년 이상 앞선 전 세계 최고(最古) 기록이다.특히 단순히 오래된 야생 벼가 아니라, 인간이 직접 기르는 '야생에서 재배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특징'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어 고고학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한다.영국 BBC가 이를 긴급 보도했으며, 세계적인 고고학자 콜린 램프류(Colin Renfrew) 교수의 유명 고고학 교과서(Archaeology: Theories, Methods and Practice)에도 소로리 볍씨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로 공식 등재되었다.즉 한국이 전 세계 쌀 문화와 벼농사 기원의 시조일 수 있음을 증명한 발견이 바로 ‘소로리 볍씨’다. 이를 알리고 보존하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 마을인 청주 소로리에 선사박물관이 들어설 계획이다. 벼농사의 원조답게, 한국은 역사적으로도 꾸준히 벼농사 즉 쌀농사에 많은 힘을 기울여 왔다.하지만 장인정신으로 무장한 일본의 쌀 품종 개발이 무섭게 성장했다. 일본은 1950년대부터 '고시히카리'와 ‘아키바레(추청)’ 같은 명품 품종을 개발했고, 한국 식탁도 이들이 오랫동안 점령했다.1970년대 한국은 양을 많이 수확하기 위해 대량 생산용 '통일벼'를 대대적으로 심었다. 하지만 통일벼는 푸석하고 찰기가 없어 맛이 떨어졌다. 이때 소득이 늘어난 대도시 소비자들이 "돈을 더 주더라도 맛있는 밥을 먹겠다"며 찾기 시작한 게 바로 일본쌀이었다. 특히 경기도 이천이나 여주 등에서 ‘아키바레’를 많이 재배하면서, "임금님표 이천쌀 = 아키바레 = 최고급 쌀"이라는 공식이 만들어지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한국은 ‘밥(쌀)의 민족’답게 판도를 뒤집었다.우선 품종 개량부터 시작했다. 정부와 농촌진흥청은 품종 개량을 꾸준히 진행해, 2020년대를 기점으로 경기 이천, 여주 등 전국의 유명 쌀 주산지에서 아키바레와 고시히카리가 거의 퇴출당했다.또 하나의 사건은 압력밥솥 개발이다. 고압, 초고압, 유도가열(IH) 등 온갖 첨단 기술을 동원해 "가마솥에서 갓 지은 듯한 윤기 나는 찰진 밥맛"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밥솥 기술은 우리나라가 독보적이고, 특히 중국 관광객들이 많이 사가는 주요 품목이기도 하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밥(쌀, 벼)는 늘 한국이 세계를 선도해 왔다.그래서 지금도 한국인은 ‘밥심’이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손석희가 주범인가?
손석희가 주범인가? 항간에는 최근 JTBC 사태에 대해, 근본 원인과 책임이 손석희 전 JTBC 사장에게 있다는 설이 돌고 있다.그 내용은 이렇다. 우선 삼성과 중앙그룹의 관계를 보자.중앙그룹(JTBC 모회사) 회장 홍석현은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아내인 홍라희 여사의 친남동생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홍석현 회장은 '외삼촌'이고, ’문제적 인물‘ 홍정도 부회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외사촌 동생이다. 즉 두 그룹은 ’사촌 그룹‘이라 할 수 있다.종편채널 출범 이후 어려움을 겪던 JTBC가 승부수를 띄웠는데, 바로 손석희 사장의 영입이었다. 손 사장을 중심으로 보도부문을 강화하되, 보도부문에 대해선 손 사장에게 전권을 주는 형식이었다.한창 보도부문이 성장하던 이때, 마침 터진 사건이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이었다. 손석희 사장이 이끄는 JTBC는 특종을 마구 쏟아내며 시청률을 신나게 올리던 중,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연루 의혹을 제기했고 이는 결국 이 회장의 구속과 실형으로 이어졌다.‘사촌 그룹’에게 배신감을 느낀 삼성전자는 모든 광고를 중단했으며, 이후 삼성의 영향력 아래 있던 기업들 역시 광고를 중단하거나 줄였다. 공식적인 수치는 아니지만 이렇게 줄어든 광고비는 연간 500억원 정도로 추산되며, 광고 중단이 본격화된 2018년부터 최근까지 약 8~9년간 누적된 순수 광고 손실액만 도합 5,000억 원 정도라는 계산이 나온다. JTBC는 그나마 국정농단 보도 직후인 2017년과 2018년에는 뉴스룸의 엄청난 화제성과 드라마 《SKY 캐슬》 등의 흥행으로, 2018년까지는 삼성 광고의 빈자리를 다른 광고로 흑자를 내며 잘 버텼다.하지만 보도 파급력이 점차 가라앉고 삼성을 따라 다른 대기업들도 JTBC 광고 집행을 눈치 보며 광고를 줄이자, 2019년에 곧바로 -254억 원의 적자, 2020년 182억원 적자, 2021년 191억원 적자를 냈고, 부채총계는 2018년 1,387억 원에서 불과 몇 년 만에 3,200억 원을 넘어서며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손석희 책임론’은 당시 손석희 사장이 없었거나 눈치껏 적당히 했으면, JTBC가 이렇게 허망하게 무너지진 않았을 것이란 주장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마찬가지’라는 반론도 있다.JTBC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2011~2013년) 시청률은 0%대에 머물며 '종편 퇴출 1순위'로 꼽혔다. 매년 수백억 원의 적자를 내며 고사 직전이던 방송사를, 2013년 손석희 사장이 부임하면서 단숨에 신뢰도 1위 언론사로 끌어올렸다. 특히 2016년 국정농단 보도 당시 JTBC 뉴스룸 시청률은 10%를 넘나들며 지상파를 압도했다. 이때 쌓인 브랜드 가치 덕분에 《SKY 캐슬》, 《부부의 세계》 같은 대작 드라마들이 JTBC로 몰렸고, 협찬과 다른 대기업 광고를 유치해 흑자를 내며 황금기를 누릴 수 있었다.만약 손석희 사장이 없었거나 봐주기식 보도를 했다면, 당시 JTBC의 황금기는 없었을 것이고, 지금 시점에선 비슷한 결말을 맞이했을 것이란 얘기다. 즉 손석희 사장은 사장으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이다. 게다가 손석희 사장이 물러난 이후 대체할 만한 콘텐츠 개발이 없었던 것이 문제였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넷플릭스, 유튜브 등 OTT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TV 본방 사수 문화가 완전히 붕괴됐고, TV 광고시장은 반토막이 나버렸다. 나아가 콘텐츠 수요가 급증하면서 제작비 역시 폭등했다. 손석희 사장과 관계없이, 어차피 지금의 결과는 비슷할 것이란 얘기다. 즉 삼성 광고가 있었다면, 지금쯤 ‘간신히 구조조정을 하며 버티는 수준'은 되었을 수 있다. 하지만 손석희 사장과 관계 없이, 미디어 시장 자체가 무너지는 구조적 적자 자체를 완벽히 막아내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는 게 반론의 요지다. 더욱 결정적인 것은 JTBC의 ’콘텐츠 사업과 수입‘을 오너 가족회사 SLL로 빼돌려 JTBC를 더욱 부실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완전 자본잠식에 빠질 때까지 단기 사채 돌려막기로 연명하면서도, 결정적으로 7천억 원대 중계권 무리수를 던진 사람은 JTBC와 중앙그룹의 오너다. 즉 예상했으면서도 손석희 사장을 감쌌고, 미디어 대전환기 속에서 전략 수립에 실패하고 방만한 경영을 일삼다가, 결국 JTBC를 망가트린 진짜 주범은 JTBC와 중앙그룹의 실제 경영진 즉 ’오너‘일 뿐이다. * ’삼성의 구원투수 등판 설‘도 있긴 한데...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