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과 청은 누구의 역사인가?
금과 청은 누구의 역사인가?얼마 전에 ‘금나라의 시조는 신라 출신’이라는 얘길 들었다.신라가 망할 즈음에 신라인(마의태자 또는 왕실 주요 인사라는 설도 있다)들이 만주로 건너가 여진인들과 함께 세운 나라가 ‘금나라’라는 것이다. 그래서 국호도 신라의 주요 성씨인 금(金)으로 사용했다고 한다.금나라의 정사인 『금사』 「세기(世紀)」에는 금나라 시조에 대해 "금나라 시조의 이름은 함보(函普)인데, 처음에 고려(高麗)에서 왔다."고 적었다. 당시 중원 왕조들은 한반도의 국가를 통칭하여 '고려'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았으니, 신라를 고려로 불렀을 가능성이 크다.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에서는 금나라의 국호인 '금(金)' 자체가 신라의 국성인 '김(金)'씨에서 유래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또한 완안부의 시조 함보가 신라에서 왔다는 점을 강조하며, 금나라와 청나라(후금)의 뿌리가 신라에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송나라 사신으로 여진에 다녀왔던 홍호(洪皓)가 쓴 『송막기문(松漠紀聞)』에는 "여진의 추장은 신라 사람이다."라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봐서, 당시 여진족 내부에서도 그들의 지배층이 신라 계통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음을 시사한다.또한 발해가 멸망한 후 흩어졌던 여진족이 다시 뭉친 금나라의 건국 초기, 금나라를 세운 아구다는 발해인들에게 "여진과 발해는 본래 한 집안이다(女眞渤海本同一家)"라고 선언했다. 그들 사이에 공유되는 혈통적 공감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주장이었다.그러면 금나라도 발해처럼 우리 역사일까? (중국은 발해는 물론 고구려도 그들의 역사라고 주장하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역사학자들은 발해와 금나라는 다르다고 한다.우선 발해는 우리 역사에서 명확한 '고구려의 계승자'다. 대조영을 필두로 한 고구려 유민들이 건국을 주도했으며, 스스로 일본에 보낸 국서에 '고려(고구려) 국왕'임을 명시했다. 또한 고구려 특유의 문화와 관제 시스템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비록 피지배층인 말갈(여진)족이 다수였으나, 이들은 고구려 시대부터 한 울타리에서 생사를 함께했던 이들이었으므로, 발해는 고구려의 강역과 정신을 계승한 한국사의 당당한 한 축(남북국 시대)으로 정의한다.하지만 금나라는 좀 다르다. 금은 신라의 혈통적 뿌리는 인정할 뿐, 국가 정체성은 '여진(완안부)'에 두었다. 이후 여진 고유의 풍습을 유지하면서도 점차 중원(송)의 문화를 흡수해 가며, 한민족과 점점 분리되어갔다.하지만 여진(말갈)족은 동이족이나 고조선 또는 부여 시대에도 크게 보면 모두 같은 민족이나 구성원이었고, 고구려와 발해 시대에도 같은 백성들이었다. 따라서 생활문화와 언어가 같거나 아주 비슷했다고 한다. 대표적인 게 온돌이다. 삼국시대인 쪽두글 형태였는데, 이를 여진은 ‘항(炕)’이란 형태에서 ‘금’나라까지 이어졌다. 또한 활쏘기, 매사냥 등이 이어져 왔고, 언어의 유사성은 고려시대까지 지속되었다. 즉 고구려와 신라가 통역 없이 뜻이 통했던 것처럼, 고려와 여진 사람들 간에도 뜻이 통했다고 할 정도라고 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촌’ 정도의 민족적 동질성은 있었던 것 같다. 금나라 멸망이후 만주에서 일어난 금(후금)은 금나라의 계승자임을 자처했다. 하지만 이때의 후금은 여진의 언어와는 변화가 생기면서(조선의 말도 변화가 생겼다) 언어가 전혀 통하지 않게 되었다.또한 후금이 조선을 침략하면서, 조선은 완전히 만주족에게 등을 돌리게 된다. 만주족을 원수로 생각하며, 약간이라도 남아 있을 지 모르던 민족적 우대감마저 완전히 자취를 감춘다.하지만 그건 당시 조선인들 생각이고, 현대의 우리는 생각이 다를 수 있다.바로 “여진(만주)족이 남이가?” 하는 생각이다.또한 같은 민족끼리도 싸우는 경우는 아주 많다. 하지만 멀리 동이족까지 넓히지 않더라도, 최소한 고조선 시대부턴 같거나 비슷한 언어와 문화를 가진 한 나라의 백성이었다. 지금 중국엔 만주족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중국에 흡수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아 있는 만주족들의 가슴에 불을 지핀 영화가 있었는데, 바로 한국의 ‘남한산성’(사진)이란 영화다. 영화 남한산성에선 후금 사람들이 만주어를 쓴다. 중국에선 모든 사극에 현대의 중국어를 사용하는데, 한국영화에서 만주어를 듣고 크게 감동했다고 한다. 원나라가 중국의 역사가 아니듯, 금과 청 역시 만약 중국 영토에서 분리된다면 그땐 중국의 역사가 아니다. 즉 금과 청은 여진족의 역사이고, 여진족은 과거 한민족과 같은 백성이었다. 만약 고구려나 발해가 지속되었다면, 지금은 한 민족과 국민으로 융합되었을 것이다.따라서 같은 문화와 언어를 가졌던 여진(만주)족의 역사를 우리 또는 사촌의 역사로 연구하고, 국사 교과서에도 언급하면 어떨까 싶다.중국의 동북공정에도 대항할 겸...<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한의(침)의 위력
한의(침)의 위력 두주일 전 쯤, 아침에 일어나는데 허리 오른쪽이 뭉친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갈수록 증상이 심해졌다. 허리를 어느 이상 구부리기 힘들고, 특히 허리를 펼 때 통증이 심해졌다. 정형외과 병원에 가서 허리에 주사 맞고 물리치료 하고 약도 받아 먹었다. 약을 다 먹었는데 증상이 남아서 더 받아 먹고 있었다. 전체 비용으로 8만원이 넘었다. 그런데 병원에 처음 간지 열흘쯤 지난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이전보다 통증이 훨씬 심해졌다. 다니던 병원이 사무실 근치라 병원까지 가기도 그렇고 하다가, 문득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아볼까’하는 생각이 났다.한의원도 과잉진료를 하는 곳이 많아서, 열심히 검색한 후 가까운 곳에 위치한 ‘**경희한의원’을 찾아 갔다. 한의사는 “혈액순환이 문제다”라고 말하며, 희한하게 손에 주로 침을 놓고 발에 좀 놨다. 맞고 나선 잘 몰랐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좋아지는 게 느껴졌다. 이틀 후 또 방문해서 침을 맞았더니, 그 다음 날엔 다 나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좋아졌다.진료비도 한 회에 1만원씩, 2회 총 2만원으로 저렴했다. 정말 실력과 양심이 모두 있는 의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요즘 그 수가 점점 줄고 있는 한의원의 상황이 생각났다.한의원이 줄어들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보약’을 지어 먹지 않기 때문이다. 홍삼이나 건강식품 또는 흑염소 같은 대체재가 등장했고, 한약에 농약이 들어 있다는 설이 퍼지면서 급속히 줄었다. 또한 자동차보험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비급여 항목이 많아 실손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등의 이유도 있다. 그래서 한의대 입시 경쟁률도 과거에 비해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한편 서양에선 특히 침술에 대한 연구가 한창이다.하버드와 매사추세츠 공대(MIT)의 신경과학적 접근 방식을 연구하고, 미국 국립보건원(NIH): 수조 원의 예산을 들여 보완대체의학센터(NCCIH)를 운영하며 침술의 과학적 근거를 수집하고 있다. 그런데 누구나 침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건 사실이다.침을 놓고 돌리거나 깊게 넣는 경우가 있고, 어느 부위는 정말 아프기도 하다. 맞고 나서 10~20분 정도 있어야 한다. 기분 나쁘게 우리하기도 하다. 특히 젊은이들은 겁먹고, 안 가려 한다. 거부감은 좀 있지만, 효과는 만점이다. 이렇게 훌륭한 침술과 한의가 우리나라에만 쇠퇴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한의학계에서는 바늘 없는 레이저 침, 통증을 획기적으로 줄인 극미세 침, 디지털 센서와 결합한 스마트 침술 등, 시각적 공포를 제거한 기술로 젊은 세대의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려는 시도를 할 계획이라고 한다. 한의학의 발전과 국민 의식 전환을 기대해 본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대통령의 실수?
대통령의 실수? 이재명 대통령 지난달 28일 국무회의에서 “한국어 교육이나 힌디어 교육 그 사업에 좀 투자를 하시죠. 내가 정말 황당하더라고요. 아니, 14억, 15억 되는 인구 언어를 하는 사람이 그렇게 없을 수가 있어요 우리나라에”라는 발언을 했다.순간 “어? 좀 이상하다, 뭔가 잘못 됐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는 힌디어만 사용하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현재 주류라고 할 수 있는 북부의 힌디어는 인도 인구의 약 44%만 모국어로 사용하며, 제2외국어까지 합쳐야 전체 인구 중 절반이 좀 넘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인도는 세계에서 언어를 가장 이해하기 힘든 나라다.우선 인도는 땅이 넓다. 남한의 33배다. 게다가 히말라야 산맥, 데칸 고원, 울창한 정글 같은 지형적 장벽 때문에, 각 지역이 서로 고립된 채 수천 년 간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켰다. 사람들이 섞이지 않으니 언어도 각자 생기고 발전해, 인도 헌법이 인정한 공식 언어만 22개에 실제로 쓰이는 언어는 무려 1,600개 이상이라고 한다.특히 남북의 언어 차이가 심해, 완전히 다른 나라 언어 수준이다. 북부는 인도-아리아어족으로 힌디어, 벵갈어, 펀자브어 등 (유럽 언어와 먼 친척)이 있고, 남부는 드라비다어족으로 타밀어, 텔루구어 등 (북부 언어와 완전히 다른 독자적 계통)으로 나뉜다. 최근 비영어권 세계 1위를 한 인도 영화 ‘다시 서울에서’는 남부지방의 타밀어로 제작되었지만, 인도 전역에서 흥행한 게 화제를 모을 정도다.그래서 말이 다른 지역의 인도인끼리는 영어로 또는 힌글리시(영어를 섞은 말)로 의사소통을 한다. 역설적으로 영국의 식민지배가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해주었다. 그만큼 인도인들은 영어를 공용어로 유창하게 한다. 그러면 이재명 대통령은 인도에 대해 몰라서 그렇게 얘기했을까?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추측을 해볼 수는 있다.이재명 대통령이 인도를 방문해서 모디 총리와 만났는데 힌디어와 영어로 이중 통역을 해야 했다. 왜냐하면 인도 모디 총리는 영어를 잘함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힌디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모디는 "인도는 힌두교도의 나라이며, 힌두교도의 언어인 힌디어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힌디어를 써서 지지층인 북부 힌두교도들에게 "우리가 주류다"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주는 정치적 행위이기도 하다. 또한 영어를 '식민 지배의 잔재'로 규정하고, 인도의 자부심을 세우기 위해 의도적으로 영어 사용을 피하는 모습을 연출하는 것도 있다. (하지만 다른 지역 사람들은 힌디어 사용에 심한 반감을 표출하고 있다) 그러면 ‘국내 외국어대학교에선 인도어를 가르치는 곳이 없나?’하는 의문이 든다. 그래서 한국외국어대학교 인도어과 홈페이지를 찾아 봤다.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우리 인도어과는 한국과 인도 간의 활발한 교류를 주도해 나갈 ‘인도 전문가’ 양성을 목표로 인도의 실질적인 국어인 힌디어를 비롯해 산스크리트어, 우르두어등을 교육함은 물론, 인도의 풍부한 어문학과 심오한 사상, 다양한 문화와 사회, 독특한 정치와 경제 등의 폭넓은 지식을 함양하도록 교육하고 있습니다”힌디어 하나만도 힘들텐데, 이거저거 다 배운단다. 즉 대학에서는 파니니의 문법에 기초한 아주 정갈하고 격식 있는 표준 힌디어(Shuddh Hindi)를 배운다. 하지만 인도인들은 힌디어 문장에 영어 단어를 섞어서 말하므로, 교과서에서 배운 순수 힌디어 단어를 쓰면 오히려 현지인들이 "왜 그렇게 어렵게 말해?"라고 묻는 상황이 벌어진다. 또한 북부 안에서도 지역마다 사투리가 심해서, 뉴델리에서 배운 힌디어가 시골 마을에선 안 통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나아가 인도 전공자들이 현지에서 가장 많이 느끼는 한계는 "말이 안 들리는 게 아니라, 상황이 이해가 안 된다"는 점이라고 한다. 따라서 전공학생들은 힌디어만 파기보다 '영어+힌디어+인도 문화 지식'을 섞어, 인도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인도어과에서 이런저런 것들을 다양하게 배우는 이유이기도 하고, 거꾸로 인도어를 전공해도 막상 인도에 가면 대화가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인도어엔 ‘통역대학원’조차 없다. 따라서 이재명 대통령의 “14억, 15억 되는 인구 언어를 하는 사람이 그렇게 없을 수가 있어요”라는 발언은 틀린 얘기다. 하지만 인도어를 제대로 통역할 수 있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인도어는 언어는 물론 사상과 문화 그리고 다른 언어에 대한 이해 등 많은 경험도 필수다. 따라서 장기간의 과제와 투자로 접근해야 가능하다고 한다. 즉 기본적으로 힌디어에 능숙한 생태에서 인도에서 10년 정도 경험을 쌓아야 한다니,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현재 인도 남부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기본적으로 영어로 소통하고, 현지인들을 통해 현지어로 대화한다.게다가 인도엔 언어는 물론, 카스트제도와 지역 등 계층과 차별도 많다.그만큼 인도는 어려운 나라다. <묻는다이롭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유급의 이유가...
유급의 이유가... 한국을 비롯, 세계 어느 나라에도 초중고 학생의 유급은 있다. 그러면 우리나라 초중고 학생들의 유급 이유 1위는? 학업 부진?미적응?다니기 싫어서?폭력이나 사법처리?......안타깝게도‘정신건강’이다.느꼈겠지만, 어른들이 만든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초경쟁 사회’에서 기인한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집계한 작년 1학기 초·중·고 유급 학생은 총 576명으로, 이 가운데 123명(21.5%)의 유급 사유가 ‘정신건강’이었다. (2위 학교 부적응 114명, 3위 유학 99명, 4위 미인가 대안교육 60명 등) 한국의 유급률은 사실 0%에 가깝다. 이는 학교나 학부모나 학생의 유급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법정 출석 일수인 수업일수의 3분의 2 이상 출석해서 앉아만 있어도, 유급을 시키진 않으려고 한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유급은 출석일수가 부족해서인데, 학교에 출석하지 않는 이유가 ‘정신건강’ 때문이 가장 많다는 얘기다.하지만 한국의 학부모와 학생들은 초·중·고 생기부(학교생활기록부)에 '정신과' 관련 기록이나 장기 질병 결석이 남는 것을 '인생이 망가지는 일'처럼 두려워한다. 따라서 ‘정신건강’ 때문에 유급하는 것보다, 차라리 자퇴를 선택한다. 따라서 실제 정신건강으로 인한 유급은 위 수치보다 많을 것이. 이는 한국 학생들의 유급률이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이나 유럽 등 외국의 초·중·고 학생들도 정신건강 때문에 문제다. 미국 소아과학회와 어린이병원협회가 "아동·청소년 정신건강 비상상황"을 선언했을 정도다. 하지만 서구에서 아동·청소년의 정신과 치료는 '다리가 부러져 깁스를 하는 것'과 같은 과정으로 받아들여진다. 또한 아이가 입원 치료를 받으면 학교가 앞장서서 시험을 유예해 주고, 과제량을 줄여주며, 치료 기간을 공식 출석으로 인정해 유급을 막아준다. 만약 오랫동안 입원치료를 해서 유급이 되더라도, 이상하게 보는 시선과 우려는 없다.(오히려 유급이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주요 과목 낙제 등 학습능력 부족이나 미달이다) 우리나라 어린 학생들이 심적으로 이렇게 고통받고 있다.어른들이 못나게 굴어서, 어린 학생들이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기고, 증상이 심해져 유급하거나 자퇴한단다.어른 중 한 사람으로서 참 미안하다. 국민적 인식변화와 함께,진정한 ‘참교육’을 시전해야 한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우리나라에서만 심는 가로수?
우리나라에서만 심는 가로수? ’가로수‘ 하면 어떤 나무가 제일 먼저 떠오를까? 필자에게 ‘가로수’ 하면 플라타너스가 생각난다. 근데 이건 옛날 논네들 얘기란다.플라타너스는 공해 흡수 능력이 모든 나무 중 최상위권이며, 여름철 도심 온도를 낮춰주는 '천연 에어컨' 역할도 훌륭하다.하지만 단점도 크다. 우선 봄철 잎 뒷면의 털이나 열매의 가루가 호흡기 질환이나 알레르기를 일으킨다. 또한 너무 빨리 크게 자라서 상가 간판을 가리고 가로등을 가리는 등의 민원이 많아 가지치기를 아주 자주 해줘야 하는데, 이때 발생하는 비용과 인력이 만만치 않다. 따라서 신규 식재는 줄었지만, 이미 심어진 나무들의 생존력이 워낙 막강하기 때문에 많은 것처럼 느낀다고 한다.가로수 랭킹 상 과거엔 1~2위였으나, 지금은 5~6위로 밀려났다. 그러면 우리나라 가로수 랭킹 1위는?예상했듯, 벚나무다. 봄철 관광 효과가 커서 최근 몇 년 사이 1위로 올라섰다고 한다.2위 역시 예상했든, 은행나무다. 가을이면 정말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한다. 하지만 냄새때문에 조금씩 밀리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 예상하기 어려운 다크호스, 오늘의 주인공 랭킹 3위는?요즘 최절정기로, 탐스러운 흰색 꽃으로 뒤덮인 가로수.게다가 가로수로는 우리나라에서만 심는 나무는? 바로바로요즘 새로운 가로수로 주목받으며 급속히 보급되고 있는 ‘이팝나무’다.(참고로 랭킹 4위는 느티나무다) 필자도 언젠가 이팝나무를 처음 보고 ‘이런 나무가 있었나“ 하면서, 가로수로 심어진 것에 신기해한 적이 있었다. 실제 이팝나무가 가로수로 심어지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초라고 한다. 이팝나무는 아름답기도 하지만, 잎의 표면 구조가 미세먼지를 붙잡는 데 탁월해 가로수로도 적합하다. 하지만 싹을 틔우기 힘들어서 번식이 힘들었다. 씨앗을 심어도 싹이 트는 데 보통 2년이 걸리는데, 국내 연구진과 묘목 업계는 발아기간을 1년으로 단축시키는 기술을 발전시켰고 동시에 여름철 고온다습한 기후와 겨울의 혹한을 모두 견디는 품종을 개발했다.이렇게 이팝나무를 세계에서 유일하게 가로수로 식재에 성공한 나라가 되었다. 특히 청계천 복원 사업(2005년) 당시 청계천 주변에 이팝나무를 많이 심으면서 '세련된 도심 가로수'라는 이미지가 강해졌다. 게다가 전주나 대구 등 지방 도시들이 이팝나무 가로수길을 명소화하며, 전국적인 유행을 선도했다.전주에선 매년 5월 1일 전후에 ’전주이팝나무축제‘를 연다. (사진) 이팝나무의 이름은 꽃이 마치 흰쌀밥(이밥 - 북한에선 지금도 ’이밥‘이라고 함) 을 연상시켜 ’이밥나무‘라고 부르다 변형된 것이라고 한다. 이팝나무는 중국이나 일본 등 다른 나라에도 있지만, 외국에선 조경수로만 심어진다고 한다.앞으로는 이팝나무를 좀 더 사랑스러운 눈으로 봐야겠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고려시대의 목욕 문화
고려시대의 목욕 문화 사람들은 현재를 기준으로 과거를 판단하는 오류를 자주 저지른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과거에서 현대로 올수록, 문화가 발전해왔다고 막연하게 생각한 것이다. 즉 삼국시대보다 고려시대가, 고려시대보다 조선시대가 문화적 측면에서 발전해 왔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런 편견을 깨는 계기가 있었다. 얼마 전 유튜브에 올라온 내용때문이다.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고려도경> 얘기다.1123년 고려를 방문했던 ‘문명국’ 송나라에서 사신으로 온 ‘지식인’ 서긍(徐兢)이 남긴 여행기인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사高麗圖經)》 즉 고려도경에는 고려를 경험하고 놀라는 내용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목욕’ 문화다. <고려도경>에는 고려인들은 청결함을 중시하여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반드시 목욕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여름철에는 남녀가 유별하지 않고 시냇가에서 함께 목욕을 하기도 했는데, 서긍은 이를 보고 다소 놀라워하며 "중국 사람들은 때가 많고 더럽다며 비웃는다"라고 적었다. 서긍의 기록은 당시 고려인들이 송나라 사람들과 비교해도 훨씬 더 깨끗하고 위생적인 생활을 영위했음을 보여주는 사료다. 당시 고려인들은 위생을 교양의 척도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불교적 영향을 받아 "몸을 깨끗이 하는 것이 마음을 닦는 것"이라는 사상이 일상에 깊게 뿌리 박힌 영향도 있었던 것으로 본다.목욕 외에도 손을 자주 씻는 습관이 있었는데, 특히 식사 전이나 외출 후 등 수시로 손을 씻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러면 여름엔 그렇다 쳐도, 겨울에도 목욕을 자주 했을까?그래서 찾아봤다.고려시대는 불교가 국교였기에 사찰의 역할이 컸는데, 사찰은 단순히 종교 시설이 아니라 지역 사회의 문화적 중심지였다. 사찰에는 대형 가마솥에 물을 데울 수 있는 시설이 있었고, 신도나 마을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욕실(浴室)이 마련되어 있었다고 한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목욕을 시켜주는 것을 큰 공덕으로 여겼기 때문에, 겨울에도 따뜻한 물로 씻을 수 있었다.또한 상류층이나 부유한 민가에서는 집안에서 목욕을 해결했다. 나무로 만든 커다란 욕조에 물을 데워 붓는 방식으로 전신 목욕을 했다.고려의 왕들과 귀족들은 겨울철에 온천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이 대목에서 갑자기 일본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이렇게 고려시대엔 겨울에도 아침에 일어나면 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아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런데 조선시대엔 오히려 거꾸로 갔다.유교 국가인 조선은 '신체노출'을 극도로 꺼려, 옷을 다 벗고 물속에 들어가는 전신 목욕보다는 세수, 발 씻기, 머리 감기 등 부분적으로 씻었다. 집안에 별도의 목욕탕이 없었기 때문에, 방 안에서 대야에 물을 받아 수건에 적셔 몸을 닦아내는 '탕건(盪巾)' 방식으로 씼었다.여름에도 물가에서 발만 담그는 '탁족(濯足)'이 양반들의 선비 정신을 기리는 풍류라 생각했다.임금조차 물에 몸을 담그기보다 궁녀들이 따뜻한 물을 적신 수건으로 왕의 몸을 구석구석 닦아드리는 방식이었다. 온천은 치료 목적으로만 행했다.그러니 조선사람들은 얼마나 더러웠을까? 조선 임금들은 연이어 피부병이나 종기로 고생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최근 인골(人骨) 분석이나 고병리학(Paleopathology)을 통한 과거의 질병을 연구 결과도 있다.고려시대 고분에서 출토된 인골을 분석하면 영양 상태나 만성 질환을 알 수 있는데, 현재까지의 연구로는 고려인들이 조선인들에 비해 영양 상태가 비교적 양호했다는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영양 상태가 좋으면 피부 면역력도 높기 마련이다. 어쨌든 고려시대 사람들에 비해 조선시대 사람들은 훨씬 더럽고 피부병이 더 심했을 것 같다.즉 알고 보니 고려시대 사람들이 조선시대 사람들보다 더 깨끗하고 위생적이며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렇게 필자의 막연한 편견은 가차없이 깨져버렸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