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② - 나쁜 점
똥 ② - 나쁜 점 예전 사람들은 지금에 비해 똥과 친했다. 하지만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다. 살기 위해선 똥을 안 눌 수 없는데, 똥을 잘 누는 게 중요했다. 당시엔 마땅한 변비약도 드물어, 변비로 치질이 걸리면 방법이 없었다.화장실에서 힘을 주다가 뇌출혈 등으로 쓰러져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지금도 가끔 발생하다) 특히 예전엔 화장실이 외부에 있다 보니, 겨울엔 용변 그 자체가 공포였다.왕이나 황제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러시아 황금기를 이끈 여제 예카테리나 2세는 1796년 화장실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져 다음 날 사망했다.일본의 제103대 고쓰치미카도 천황은 치질과 복통으로 고생하던 중,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 뇌출혈로 쓰러져 즉사했다.나아가 푸세식 화장실에서 나무 받침을 사용했는데, 나무가 부러지거나 미끄러지면서 똥에 빠져 죽는 경우도 있었다.여기서도 왕이나 황제라고 예외가 아니었다.《좌전》의 기록에 따르면 중국 춘추시대 진나라 경공은 갑자기 배가 아파 화장실에 갔는데, 그만 발을 헛디뎌 똥 구덩이에 빠져 익사하고 말았다. 사람들이 똥을 두려워하는 건 똥 자체의 독성때문이다.예전엔 가끔 사람이 똥 구덩이에 빠지기도 했는데, 살아 나오더라도 똥독에 올라 죽거나 오랫동안 고생했다. 그리고 고약한 냄새는 아무리 씻어도 정말 오래 간다. 이런 독성을 이용해 똥을 무기로 사용하기도 했다.공성전을 할 때 똥을 던져 넣어 상대를 위축시키거나, 이질 콜레라 등 전염병을 옮기기도 했다. 또한 화살이나 창 등에 독대신 똥을 묻혀 적에게 상처를 입히면, 치료가 매우 어려웠다.똥 무기는 임진왜란에서도 사용되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행주대첩이었고 한다. 똥을 오래 발효시키거나 끓여서, 화살촉에 발라 쏘거나(분화살) 성벽 위에서 바가지로 직접 부었다. 똥물에 화상을 입으면 똥독으로 상처가 썩어들어 갔다. 당시 일본군 기록에는 조선군의 이 지독한 공격에 대해 "지독한 냄새와 뜨거움 때문에 고통스러웠다"는 식의 내용이 남아있다.또한 화약이나 화살은 소모품이고 귀했지만, 똥은 어디서나 계속 만들어지는 '무한 리필 무기‘이기도 했다. 세월이 한참 흘러 수세식 화장실이 보급되고, 똥을 비료로 사용하지 않고, 채변검사도 없어졌으며, 길거리 개들도 사라졌다. 환경이 깨끗해지면서, 사람들은 똥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본인의 똥도 용변 직후 가차없이(?) 씻겨 내렸다.이렇게 똥에 대한 거부감은 점점 커졌고, 사용처는 사실상 없어졌다. 그러다 보니 역으로 가끔 남의 집 대문에 사람들이 극혐하는 똥을 뿌리는 ‘똥 테러’ 사건이 발생하곤 한다.그런데 최근엔 아예 이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등장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MBN 보도에 의하면, 경찰은 사람의 대변 등을 이용해 사적 보복을 대신 해주는 범죄 조직을 수사 중이라고 한다. 운영자는 텔레그램방에서 일명 ‘특공대’를 모집한 뒤 돈을 주고 범행을 지시했는데, 전국 각지에서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대문에 인분을 칠한 것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초인종을 누른 뒤 약을 올리듯 유유히 빠져나가기도 하고, 어떤 두 남성은 집 앞에서 직접 용변을 보고 대변을 모아 던지는 엽기적인 행각을 벌였다. 운영자는 1건당 80만~100만 원, 한 달에 700만~1000만 원을 주겠다며 특공대원을 모집했다. 옛날에나 무기로 사용하던 똥이었는데, 상황이 바뀐 요즘에도 똥을 무기처럼 테러로 사용하는 걸 직업으로 하는 사람까지 생겼다. 오래 살다보니 못 볼 걸 다 본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혁명, 또 다른 독재의 시작?
혁명, 또 다른 독재의 시작? 역사상 많은 혁명이 기득권 타파를 외쳤으나, 권력을 잡은 혁명 세력은 스스로가 새로운 ‘철벽 기득권’ 즉 ‘독재’의 길을 택했다. 프랑스 혁명의 혼란 속에 스스로 황제가 된 나폴레옹은 유럽 전체를 전쟁터로 만들었다.노동자 해방을 외쳤던 볼셰비키는 러시아 혁명을 성공시켰으나,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감시 체제와 대숙청을 통해 가장 지독한 독재를 낳았다.반외세와 반독재를 기치로 내걸었던 쿠바 혁명에서도, 카스트로 형제간 권력 세습으로 이어지며 반세기 넘는 장기 집권의 늪에 빠졌다.이렇게 혁명은 언제나 ‘해방’을 약속하며 시작되지만, 종종 그 끝은 이전보다 더 지독한 ‘억압’ 즉 ‘독재’로 귀결되곤 한다. 1979년 이란 혁명은 다른 혁명보다 더욱 충격적이었다. 세속적인 이데올로기 대신 ‘신의 권위’ 즉 ‘신정’으로 회귀했기 때문이다.그리고 그 신정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요즘 시대에 신정이라니? 놀랍기만 하다. 하메네이 체제에서 정책 실패나 부패에 대한 비판은 정치적 반대가 아닌 ‘신의 섭리에 대한 도전’즉 ‘신성 모독’으로 간주되었다. 이는 비판 세력의 입을 막는 가장 강력한 정신적 가스라이팅이 되었다.또한 신앙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창설된 혁명수비대는 현재 이란 경제의 절반 이상을 장악한 거대 카르텔이 되었다. 이들에게 혁명 정신은 사라진 지 오래며, 오직 자신들의 지분과 이권을 지키기 위한 ‘경제적 독재’만 남았다.최고 지도자가 통제하는 130조 원(일각에선 그것의 두 배라고 주장하기도 한다)나 되는 천문학적 비자금 ‘세타드(Setad)’는 국민을 위해 쓰인 적이 없다. 오직 정권 유지와 감시망 구축을 위한 자금으로 쓰이며 ‘종교를 이용한 축재’의 표본이 되었다. 특히 하메네이 사후 차남 모즈타바가 후계자로 떠오른 현상은 이란 혁명의 마지막 남은 신념마저 벗겨냈다. 팔레비 왕조의 세습을 비난하며 세워진 공화국이 다시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주는 모습은, 이들이 말한 혁명이 결국 ‘주인만 바뀐 독재’였음을 자인하고 있다.즉 차남 모즈타바의 후계 세습 시도는 종교적 필요가 아닌, 하메네이 가문의 부정 축재를 은폐하고 혁명수비대의 이권을 영속시키기 위한 기득권 세력의 생존 전략일 뿐이다. 이란인들은 묻고 있다. “누구를 위해 혁명을 했는가?”이란인들이 봉기하기에 충분한 명분이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제2차 산림녹화 사업이 필요하다
제2차 산림녹화 사업이 필요하다 북한을 탈출해 대한민국으로 온 주민들은, 오자마자 보이는 모든 것에 놀란다. 시간이 좀 지나 정신을 차리고 난 후, 또 놀라는 것 중 하나가 ‘숲이 울창한’ 산이다. 북한에도 산이 많지만, 거의 대부분 민둥산이다. 나무를 연료로 사용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민둥산이 참 많았다. 오죽하면 4월 5일을 식목일이자 공휴일로 지정해, 전국민이 나무를 심었다. 필자도 동원되어 나무를 심은 기억이 있다. 수 십 년의 노력 끝에 ‘산림녹화’에 성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성공한 유일한 개발도상국’이란 타이틀을 받게 되었다. 과거 해방과 전쟁을 거친 대한민국에서의 산은 휴식의 공간이 아닌 '수탈과 생존'의 현장이었다. 일제강점기의 무분별한 벌목, 전쟁의 포화, 그리고 무엇보다 지독한 가난이 산을 망가뜨렸다. 연탄이나 가스가 없던 시절, 북한처럼 산의 나무는 추운 겨울에서 유일한 땔감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나무가 사라진 산은 비만 오면 흙탕물을 쏟아내는 홍수의 진원지가 됐고, 등산은 꿈도 못 꾸었다. 이에 한국 정부는 유엔의 도움을 요청했다. 유엔개발계획(UNDP)는 1960년대 말부터 70년대까지 "치산녹화" 기술을 전수하고, 대규모 자금과 전문가를 파견했다. 당시에 UNDP는 여러 개발도상국을 지원하고 나무를 심었지만, 활착율이 10%도 안됐다. 이에 비해 한국은 100%에 가까운 활착률을 기록하자, UN 조사단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본 그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흙 한 줌 없는 포항 영일지구의 생(生) 돌산에 사람들이 직접 흙을 지고 날라 구덩이를 파고 나무를 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풍에 쓰러질까 봐 나무 하나하나에 지지대를 세운 그 '독한 정성'은 서구 전문가들의 상식을 완전히 파괴했다. 이런 성공의 배경엔 여러가지 요인이 있었다.가장 큰 요인은 정부의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지원과 관리 등이다. 일단 척박한 민둥산에서도 잘 자라는 아카시와 리기다소나무부터 심었다. 또한 정부는 1973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치산녹화 10년 계획'을 시행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헬기를 타고 지방을 시찰할 때, 산이 조금이라도 붉게(벌거숭이로) 보이면 해당 지역 군수를 질책할 정도로 집요했다.한편에선 연탄을 보급하며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지 않도록 했다. 나무를 베었다간 형사처벌 되었다.심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리도 중요했다. 그래서 경상도 공무원은 전라도로, 전라도 공무원은 경상도로 보내 서로의 성과를 감시하게 했다. 이렇게 산림 녹화가 완성되었다,예전에 심었던 아카시 나무는 이제 유실수나 목재수로 바뀌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소나무를 많이 심다 보니 화재와 재선충에 너무 취약하다는 점이다. 지금도 전국에서 발생하는 대규모 산불과 재선충의 피해가 막심하다. 어떻게 가꿔온 숲인가?이참에 산불과 재선충을 예방하는, 제2차 산림녹화 사업을 전개해야 한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예하예술학교
경계선지능과 학교폭력 피해학생들을 위한 배움과 치유의 공간인 예하예술학교의 설립을 위한 노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은 구청장님! 수고하셨습니다. 향후 재정 및 운영은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지요?앞으로도 소외받는 약자들을 위한 배려가 있는 따뜻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 주시기 바랍니다.물론 3선에 도전의사가 있으시겠죠?
휘경 2동 고도제한
쫌 오래된 일이긴 한데... 진행중인가 궁금해서요배봉산 군사기지 때문에 휘경 2동만 고도제한 있어서건물을 증축할수가 없었는데고도제한 철회 청약이 채택된걸로 아는데그후로 진행이 어떻게 되었나요??한 3년전인데 아직도 진행사항을 모르겠네요...
중랑구 거주하는사람입니다
중랑구에 산지 오래됫는데 발전한다는 느낌이 없네요...학생때부터 쭉 살았는데... 어떠한일을 하시는건가요선거때 제시하신 공략은 잘 이행하시는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