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으나 서나
앉으나 서나 ‘서민 가수’ 현철이 지난 18일 타계했다. 1989년 가요대상을 받고 대성통곡을 하던 그가 지금도 생각난다. 오랫동안 무명가수였던 현철을 중앙 무대에 오르게 한 노래가 바로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이다. ‘앉으나 서나’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구어체)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나’라고 나온다. 그런데 ‘앉으나 서나’라는 말이 노래 때문에 유행하다 보니, 그 말 자체로 사용하기도 했다. 얼마 전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자리가 하나 비었다. 70대 노인이 그 자리에 앉으려고 다가가는 순간, 덩치도 좋은 젊은 남성 하나가 뛰어 들어오면서 그 자리에 앉아버렸다. 보는 필자가 다 민망했다. 앉아가던 자리를 양보하진 못할지언정, ‘자기만 알고 편하게만 살아온 청춘인가 보다’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필자 세대만 해도, 젊었을 땐 ‘앉으나 서나’였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도, 앉으려는 욕심 자체가 없었다. 30대 초반까지 출근 할 때 버스를 한 시간 가까이 서서 다녔는데, 전혀 힘든 줄 몰랐다. 어떤 경우엔 빈자리가 나도 다른 분들 앉으시라고, 그냥 서서 가기도 했다. 혹시 앉아가더라도, 노인들께 자리 양보는 물론이었다. 또 다른 ‘앉으나 서나’도 있었다.필자의 대학 때, 현철의 ‘앉으나 서나’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당시엔 키가 작은데 얼굴은 크고 다리가 짧은 숏다리를 ‘앉으나 서나’라고 표현했었다. 얼굴이 커서 앉아 있을 땐 몰랐는데, 막상 서니 앉은키나 선키나 별 차이가 없다는 의미다. 대놓고 얘기하는 건 아니고, ‘미팅을 나갔는데, 앉으나 서나잖아’라는 식의 뒷담화 농담식이었다.필자가 다니던 대학에 고등학교 3년 후배가 입학했었다. 키는 좀 작았지만 성격이 좋고 선배들을 잘 따랐다. 그런데 어느 날 여학생들과 어울리게 됐는데, 이 후배가 좀처럼 일어서질 않는 것이었다. 얼굴은 큰데 키가 작고 다리가 짧아서, 그야말로 전형적인 ‘앉으나 서나’였기 때문이다. 그런 걸 알고도 ‘일어나 봐’라고 했으니, 참 선배들이 못 됐다 ㅠㅠ... 철없던 시절이었다. 지금 같으면 남의 신체적 약점을 가지고 놀렸다간 큰일 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 후배는 성격이 좋은 남자였기에 웃으면서 ‘에이~ 너무 그러지 마요, 나라고 이러고 싶었겠어요’라며 웃고 넘겼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해 준 현철 가수의 명복을 빈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박세리와 장윤정
박세리와 장윤정박세리 박세리희망재단이사장은 지난 18일 서울 삼성코엑스센터에서 지난해 9월 박 이사장의 부친 박준철씨를 사문서위조 혐의로 대전 유성경찰서에 고소한 것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열고 “그동안 아버지의 채무를 여러 차례 변제해드렸지만 더는 감당할 수 없는 지경까지 왔다. 더 이상 어떤 채무도 책임지지 않겠다”고 밝혔다.아버지 박씨는 새만금 해양레저관광 복합단지 사업에 참여하려는 과정에서 박세리희망재단 도장을 위조했고, 이를 뒤늦게 알게 된 재단 측은 박씨를 고소한 사건이다.참 안타까운 상황이다.박세리 아버지는 박세리를 훌륭한 골프 선수로 키우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로 잘 알려졌던 인물이다. 덕분에 이를 본받은 박세리 키즈들이 한때 세계를 휩쓸기도 했다. 그런데 당시 박세리 아버지가 조폭 출신이라는 소문이 있었고, 너무 나대면서 평가가 엇갈리기도 했었다. 일부 언론 발표에 의하면 그동안 박세리가 번 돈 약 300억원을 모두 탕진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내가 널 키웠으니, 네 것은 곧 나의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박세리 사건을 보니 장윤정 어머니와 가족 사건이 떠 오른다.약 10년 전인 2013년 장윤정은 TV프로그램인 <힐링캠프> 작가와의 사전 인터뷰에서 '2013년 2월경 그동안 통장을 관리하던 어머니와 남동생이 멋대로 그녀가 10년간 벌어온 돈을 모두 탕진하는 바람에 오히려 빚만 10억 원이 생긴 걸 알았다'는 사실을 작가들 앞에서 밝히며 붉어진 사건이다. 당시 장윤정은 ‘행사의 여왕’이란 타이틀에 걸맞게, 한번 행사 출연료가 1500~2000만원이라고 했었다. 그러니 하루에 1억원 버는 건 쉬운 일이었다. 따라서 얼마나 많이 벌었는지 가늠이 안 될 정도였다. 장윤정은 가족이므로 믿고 관리를 맡겼다. 하지만 어머니와 아들만 신나게 돈을 썼고, 장윤정은 결국 모두 포기하고 도경완 아나운서와 결혼하며 연을 끊었다.필자도 자식이 둘이지만, 자식이 잘되면 그만이지 그 덕을 저렇게까지 보려 하진 않는다. (좀 나눠주면 땡큐지만)하지만 앞의 두 부모는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하면서, ‘네 돈은 다 내 돈’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두 부모는 처음 자식을 키울 때, ‘얘를 잘 키워서 그 돈을 내가 다 먹어야지’라고 생각했을까?자식이 잘 못 하면 부모 망신시키지만, 요즘은 부모들이 자식 망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 같다. 자식 노릇을 잘해야 하지만, 부모 노릇도 잘해야 한다.<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아이큐는 역사상 세계 최고지만
아이큐는 역사상 세계 최고지만 한국인 김영훈 씨(35)가 아이큐(IQ·지능지수) 276을 기록하며 역사상 가장 높은 IQ를 가진 사람이 되었다.세계마인드스포츠위원회(World Mind Sports Council, WMSC)는 홈페이지를 통해 "한국인 김영훈(YoungHoon Kim)이 지난 7월 세계기억력대회(World Memory Championships)에서 IQ 276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한국기록원을 통해 IQ 최고 기록 보유자로 공식 인증받은 김 씨는 초고지능단체 메가소사이어티(Mega Society)의 유일한 한국인 회원이기도 하다. 세계천재인명사전(World Genius Directory)과 기가소사이어티(GIGA Society)에도 아이큐 전 세계 1위로 등재됐다. 미국 매거진 '리더스 다이제스트(Reader's Digest)'에서도 아이큐 전 세계 1위로 이름을 올렸다. 김 씨는 현재 노벨상 수상자 7명을 포함해 하버드대, 예일대, 프린스턴대 등 세계 최고 명문대 교수 100명 이상이 가입돼있는 세계지능협회(USIA) 설립자 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말이 IQ 276이지, 웬만한 사람 두 명 합한 IQ보다 높다. 듣도 보도 못한 수치다. 얼마나 머리가 좋을지 상상이 안 간다. 김영훈 씨 같은 사람은 참 좋을 것 같다. 한 번만 훑어봐도 모두 기억을 하니, 공부하는데 얼마나 쉬웠을까? 그러면 그의 직업은 뭘까?과학자나 교수?....일 거라 짐작하겠지만 작년 말까지 목사 후보생이었다.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인문·사회 서적을 읽고 무신론과 유신론의 싸움이라는 걸 느껴 목사 후보생이 됐다"고 말했다. 흠.... 뭐지?물론 그는 당시 "고지능자와 천재는 다른데 주변에서 저를 천재라고 오해한다. 마치 초능력자처럼 무엇이든 잘할 것이라는 오해가 있다"고 말했다. 자신은 천재가 아니란 얘기다. 김 씨 말대로 목사가 되어 훌륭한 업적을 쌓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상 가장 좋다는 머리를 가지고 기왕이면 국가와 사회 나아가 인류 발전을 위해 기여하는데 머리를 썼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예수님도 그 머리를 인류를 위해 쓰라고 하셨을 것 같다.본인이 설립하고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세계지능협회(USIA) 회원들도 노벨상 수상자 7명에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대학교의 교수들이다. 그러면 정작 김 씨 본인은 그들보다 높은 IQ를 가지고도 그들처럼 인류 발전에 기여할 생각은 들지 않을까? 본인 말대로 아이큐만 높지 천재는 아니라서? 김영훈 씨는 단지 남들로부터 머리 좋다고 인정받고 부러움을 사는 게 삶의 목적인지 모르겠다. 인터넷에서 확인해 보면, 김 씨는 지금까지 머리 좋다는 확인받으러 세계를 다니며 대회에 참가하고, 머리 좋다는 단체의 회원이나 회장을 맡으며 살아왔다. 하지만 프로필 상 별다른 직업이 없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대학원 상담코칭학전공 석사과정 (MA) 재학 중이지만, 어떤 고등학교에 다녔는지에 대한 내용은 없다. 묘기 대행진 같은 '영재발굴단' 같은 프로그램에나 출연해 암기력 좋은 걸 확인하고 자랑하는 걸로 끝났다. 그러면 공부는 IQ 만큼은 잘하지 못했다는 건가? 물론 자기 인생 자기 맘대로 살겠다는데 뭐라 할 수는 없다. 또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지 모른다.어쨌든 그가 아무리 역사상 세계 최고의 IQ를 갖고 있다고 해도, 별로 존경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 좋은 머리를 다른 사람이 가지고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독빈대
독빈대 요즘 빈대 때문에 난리다. 우리나라 뿐만아니라 외국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빈대 옮을까 무서워, 지하철 의자에도 앉지 않는다고 한다. 사라진지 몇 십년만에 빈대의 귀환이다. 지난 수십년 동안 우리는 ‘빈대’라는 단어를 ‘유해 곤충 빈대’라기 보단, ‘빈대붙는다’라는 의미로 더 자주 사용했던 것 같다. 빈대를 본 적이 없는 요즘 젊은이들은 더 그럴 것 같다.혹시 해서 국어사전을 찾아봤더니... 있다!<빈대붙다: 그저 남에게 빌 붙어서 공짜로 무엇이든 해결하려는 사람을 이르는 말> 빈대 얘기를 하다 보니 고등학교 시절에 ‘독빈대’라는 별명을 가진 동창이 생각난다. 그에게 ‘독빈대’라는 별명이 처음부터 있었던 건 아니었다. 원래는 ‘왕빈대‘였다. 하지만 빈대 붙는 수법이 갈수록 악랄(?)해져, ’독빈대‘로 바뀌었다.필자는 ’독빈대‘ 동창과 같은 반을 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친하지 않았지만, 그의 명성이 워낙 자자해 알게 되었다. 친구들이 매점에서 짜장면이라도 사 먹고 있으면, 독빈대는 어떻게 알고 어디선가 나타나선 ’한 젓가락만’ 하고는 젓가락을 빼앗아 반 정도를 한입에 털어 넣고 유유히 사라졌다. 이런 경우가 워낙 잦다 보니, 친구들은 뭘 사 먹으려 하면, 주위를 살피며 겁부터 먹었다.독빈대는 점심 도시락도 싸오지 않고 젓가락만 들고 다닌다고 했다. 밥이 많아 보이는 친구한테선 밥을 빼앗고, 반찬을 여기저기서 빼앗아 먹는 건 기본이었다. 당시만 해도 친구가 반찬 좀 가져간다고 화를 내면 ‘쪼잔하다’는 얘기를 듣던 시절이라, 빈대 붙기 좋은 분위기였다. 사실 ‘독빈대’가 친구들의 기피대상이 되면서까지, 악착같이 빈대붙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집안 형편이 아주 좋았다면, 그렇게까지 빈대붙지는 않았을 것 같긴 하다. 어쨌든 독빈대를 하려면 남의 눈치에 전혀 신경쓰지 않고, 남이 먹던 음식도 잘 먹어야 가능하다. 한 시대를 풍미하던 전설의 독빈대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독빈대’라 불릴 정도로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만의 목표 달성을 위해 일했다면 나름 제법 자리 잡고 살 것 같다. 갑자기 ‘독빈대’의 근황이 궁금해진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여자라서 부러울 때
여자라서 부러울 때 남자들이 여자가 부러울 때가 있다.가장 부러운 건 군대갈 때다. 왜 이 땅에 ‘사나이로 태어나 할 일도 많다만’ 군대를 가야 하는지, 여자들이 부러울 뿐이다. 군대 말고도 여자가 부러울 때가 종종 있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비 많이 올 때다.특히 요즘처럼 폭우가 쏟아지고 길에 물이 흘러갈 때, 여자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사회적 분위기가 많이 바뀌긴 했지만, 남자들은 출퇴근할 때 양복(정장)이나 정장은 아니더라도 적당히 예의 갖춘 복장을 하는 경우가 꽤 있다.그런데 비가 많이 와서 바지가 온통 젖고 신발에 물이 들어가면 골치 아프다. 걸을 때마다 발가락 사이로 뜨뜻해진 물이 지나다니고, 신발 안이 온통 질척거린다. 사무실에 도착하면 일단 신발과 양말을 벗지만, 맨발로 있기에 민망한 경우도 있다.게다가 점심시간이나 퇴근할 때까지도 마르지 않는다. 찝찝한 신발과 양말을 도로 챙겨 신고 점심 먹으러 나가거나 퇴근해야 한다. 하루종일 기분이 찝찝하다. 반면 여자들은 비가 올 때 반바지나 치마를 입고 샌들이나 슬리퍼를 신고 출퇴근 하는 경우가 많다. 비가 아무리 와도, 젖거나 신발에 물 들어가 질척거릴 일이 없다. 사무실에 도착해도 수건이나 휴지로 닦으면 끝! 습도는 높아도, 하루종일 찝찝할 일은 없다. 옷차림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필자는 요즘 아침에 비가 많이 오면 아예 샌들을 신고 출근한다.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걱정이 없다. 복장이 자유로운 남자들은 요즘 이렇게 출퇴근하며, 구두나 운동화 신고 고생하는 남자들이 불쌍해 보인다. 그래서 복장에 신경 써야 하는 일부 남자들은 아예 샌들을 신고 구두나 다른 신발을 가방에 들고 출근하기도 한다. 신발이 비에 젖는 걸 막아주는 보호 커버도 있지만(사진), 아직 대중화되진 않았다. 아무리 복장이 자유롭다지만, 출퇴근할 때 조리를 질질 끌고 다니는 건 좀...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늙어감
늙어감 어제 TV에서 ‘고려거란전쟁’이란 드라마의 홍보 포스터를 봤다.‘장군 역을 맡은 탤런트가 또 그 사람이구나’하는 순간 갑자기 그 탤런트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태조왕건 대조영 김유신 이순신 등 사극의 주인공을 도맡아 하는 사람...필자와 동갑인 사람...인기 톱스타 여배우와 결혼한 바로 그 사람...아무리 생각해도 머릿속에서 맴맴 돌뿐, 이름이 기억 안 난다.답답해 미치겠다.30분쯤 머리를 쥐어 뜯고 나서야 겨우 생각났다.누구나 아는 이름 ‘최수종’이다. 요즘 이런 일들이 자꾸 생겨난다.지금까진 늙어가는 노화현상을 주로 약간의 체력 저화와 외모(검버섯 탈모 눈쳐짐 등)의 변화에서 느꼈는데, 최근엔 갑자기 머리의 노화를 느낀다.특히 사람이나 지역 이름이 갑자기 생각나지 않는다. 필자는 넥플릭스를 자주 시청하는데, 최근 설명하는 글이나 번역한 자막 읽기에 벅차다.불과 1~2년 전까지만 해도 쉭쉭 읽거나 문장을 통째로 사진 찍듯 읽어버렸는데, 지금은 글을 한줄한줄 읽고 있다. 심지어 자막이 긴 경우엔 다 읽지도 않았는데 자막이 바뀌기도 한다. 아, 이게 뭐지?역시 사람은 환갑이란 게 중요한 것 같다.환갑이 지나면서 점차 이런 증상이 생겼다고 본다. 그러니 특히 머리를 써야 하는 사무직 정년 연장은 정말 낭비라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앞으로 10년이 채 남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불과 10년 20년 전 나의 모습’을 생생이 기억하다 보니, 더 우울해진다. 이런 속도라면, 10년 또는 20년 후 스스로의 모습이 얼마나 초라하게 바뀌어있을지 짐작간다. 이젠 ‘나도 정말 이젠 늙는구나’라는 자탄의 소리가 절로 나온다.어떻게 하면 자식들이나 남에게 걱정이나 피해를 주기 전에, 생을 잘 마감할 수 있을까?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