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사람들‘ 유감
’성난 사람들‘ 유감얼마 전 넷플릭스에 ‘성난 사람들’이란 드라마가 올라왔다. 주연과 감독이 모두 한국계라고 해서 시청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뭐가 뭔지 도무지 재미가 없었다. 10분 정도 보다가 껐다.그런데 며칠 후 ‘이성진 감독(43)과 스티븐 연을 비롯해 한국계 제작진이 대거 참여한 ‘성난 사람들’이 지난달 15일(현지 시간) 열린 제75회 프라임타임 에미상 시상식에서 미니시리즈·TV영화 부문 작품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등 8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라는 기사를 봤다.필자는 순간 ’아, 내가 뭔가 착각했나 보다‘ 앞 부분만 보다 만 걸 후회하며 다시 ’성난 사람들‘을 켰다.그런데 아무리 참고 참으며 열심히 들여다 봐도 도무지 뭔 스토리인지 모르겠고, 재미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필자가 성났다. 결국 꺼 버렸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보도가 나왔다.’2일 에미상 수상 이후 처음으로 한국 언론들과 화상으로 만난 자리에서 스티븐 연은 극 중 연기한 한인 이민자 2세 대니에 대해 “우리 모두가 가진 여러 모습의 수치심을 집약한 인물”‘이라며, ‘작품을 통해 특히 한국 시청자분들과 깊이 연대하고 공감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라고 말했다는 내용이다.순간 ‘응? 뭐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나도 한국 시청자인데 연대나 공감이 전혀 가지 않았다.왜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여서, 다른 이민자들의 생각에 공감을 하는 모양이다.하지만 이민한 경험이 없는 필자나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겐 연대하기 힘든 스토리에 공감이라곤 전혀 할 수 없는 상황들이었다.미국과 한국의 문화적 차이라고 밖엔 설명할 수 없나 보다.<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나훈아와 남진
나훈아와 남진 ‘가황(歌皇)’(누가 붙여준 별명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떤 언론에선 그렇게 불렀다) 가수 나훈아(77·본명 최홍기)가 데뷔 58년만에 '마지막 콘서트' 계획을 발표하며 사실상 가요계 은퇴를 시사했다.나훈아는 27일 소속사를 통해 공개한 '고마웠습니다!'라는 제목의 편지에서 "긴 세월 저를 아끼고 응원해줬던 분들의 박수와 갈채는 제게 자신감을 더하게 해줬고, 이유가 있고 없고 저를 미워하고 나무라고 꾸짖어 주셨던 분들은 오히려 오만과 자만에 빠질뻔한 저에게 회초리가 되어 다시금 겸손과 분발을 일깨워줬다"며 "박수칠 때 떠나라는 쉽고 간단한 말의 깊은 진리의 뜻을 저는 따르고자 한다"고 적었다.참 말도 잘한다. 하긴 수 많은 명곡들의 작사 작곡까지 했으니... 어쨌든 가요계에서 ‘라이벌’ 하면 이 둘을 빼놓을 수 없다. 바로 남진과 나훈아다.나훈아는 1947년생으로 1966년 <천리길>로 데뷔했다.남진은 1945년생으로 1965년 <서울 플레이보이>로 데뷔했다. 비슷한 연배에 비슷한 시기에 대뷔해, 조금 과장을 섞으면 70년대 한국 가요계를 한때 반분할 정도였다. 그런데 사실 당시엔 남진이 더 인기가 있었다. 원래 영화배우를 준비하던 만큼, 잘생긴 외모에 쇼맨십도 꽤 있었다. ‘동양의 엘비스 프레슬리’라며 엘비스 흉내를 내기도 했었다. 그러던 중 1971년 나훈아가 테러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사람들은 “배후에 남진”을 얘기했지만, 사실이 아닌 걸로 드러났다. 나훈아는 1976년 7살 연상의 탑 여배우 김지미와의 동거를 발표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6년 후 결별함)2008년에 “야쿠자에게 성기 절단을 당했다”는 루머가 돌자 나훈아는 스스로 기자회견을 자청해선, 테이블 위에 올라가 “바지를 30초간 내려 보일까요?”하며 루머를 한방에 잠재우기도 했다.나훈아가 1987년 발표했던 ‘땡벌’을 가수 강진이 찾아와 자신이 부르도록 허락해 줄 것을 애걸하자 선뜻 허락했고, 그 하나로 강진은 평생 먹고 살게 되었다. 나훈아는 싱어송라이터(발표곡 중 30% 정도가 자작곡이라고 함)이면서도 신비주의를 고집한 가수다. 필자가 알기엔 광고 한번 출연하지 않았고, 방송에도 자주 등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까지 꾸준히 신곡을 발표하며, 지금까지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터프한 외모에 체력관리도 잘해, 나이에 비해 언제나 열정적인 공연을 선보였다. 이번 마지막 공연에선 티켓 구하기가 아주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반면 남진은 80년대 이후 인기가 시들해졌다. 지금은 대형 단독 공연은 꿈도 못 꾸고, 전립선 건강식품 광고에도 출연하고 있다. 한때 라이벌이었던 두 가수의 노년은 이렇게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졌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묘기 대행진’과 달인
‘묘기 대행진’과 달인필자가 어렸을 때인 1970대 언젠가 ‘묘기 대행진’이란 TV 프로그램이 있었다.‘묘기 대행진’엔 서커스 같은 묘기도 있었지만, 지금의 SBS TV ‘생활의 달인’에 출연할 말한 인물들이 출연했었다. 예를 들면 ‘주산왕’ 또는 ‘주산 9단’ 같은 사람들이다. (주산에 대해선 한번 올린 바 있으므로 넘어감)그야말로 ‘생활의 달인’들도 출연했는데 지금은 사라진 직업이나 작업들이다.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가 ‘우편 소인 찍는 우체국 직원’이다.편지에 우표를 붙이거나 관제엽서를 우체국에 보내면, 소인을 찍어 우표를 확인하고 재사용을 막는 과정이 있다. 이를 위해 많은 우편물(편지나 엽서)을 잘 늘어놓고, 파이프 담뱃대 같은 소인도장으로 박자에 맞추듯 소인을 찍었다. 그런데 소인 도장에 잉크를 묻혀야 하므로, 스탬프 찍고 우편물에 소인을 찍으므로 말발굽 같은 소리가 났다. 관객들은 신기해서 박수를 쳤다. 지금은 기계로 한다.은행원들도 가끔 출연했다. 이들은 돈을 세러 나왔다. 지금이야 돈 세는 기계를 사용하지만, 당시엔 일일이 돈을 세야 했다. 그래서 ‘얼마나 지폐를 빨리 세는가’를 묘기 삼아 보여줬다. 한 번에 다섯 장씩 세기와 낱장 세기 등의 묘기였다. 나아가 한 번에 100장 집기도 보여줬다. 순전히 느낌으로만 정확히 100장을 집어내는 묘기였다. 지금은 순식간에 기계가 다 해 준다.수타면의 달인도 출연했던 것 같다.손으로 면을 아주 가늘게 뽑아서 바늘귀를 통과시키는 묘기다. 지금은 수타면 자체가 거의 없고, 유명 중국음식점에서도 기계면을 사용한다. 가끔 있는 수타면 음식점에선 대개 중국인들이 면을 뽑는다. 상당히 고된 일인가 보다.이렇게 그 프로그램이 인기가 있다 보니, 지금도 사람들은 가끔 ‘묘기 대행진’이란 말을 쓴다. 아니, ‘묘기 대행진’이 보통명사화 된 것 같다.지금은 ‘생활의 달인’으로 발전(?)했지만, 왠지 옛날의 ‘묘기 대행진’이 더 대단한 느낌이었다. 당시엔 볼 거리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하지만 TV에서나 유튜브에서나, 지금은 달인이 넘쳐 나는 세상이다.<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모으기의 나라
모으기의 나라국가가 경제적으로 어려울수록, 독재국가일수록 국민들에게 ‘모으기’를 시킨다. 대표적인 경우가 북한이다. 주민들에게 걸핏하면 ‘쇠’ 같은 걸 모으라고 한단다.‘모으기’하면 대한민국이 뒤질 수 없다.IMF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은 세계적으로도 신화처럼 남아있다. 금이 전혀 생산되지 않는 한국이 대량으로 금을 수출하면서, 세계 금값이 갑자기 내렸을 정도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홍수 등 자연재해가 발생하거나 연말이면 꼭 성금을 거뒀다. 그 돈이 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지만, 학생이나 기업은 의무적으로 내야 했다. 학교마다 할당량이 있다고 했다. 돈이 없어 못 내는 학생들은 야단을 맞기도 했다.그런데 ‘돈’ 뿐만 아니라 북한처럼 다른 것도 거뒀다.쌀 모으기가 대표적이다. 흰 쌀을 편지봉투에 담아 냈다. 편지봉투 하나면 얼마 안 되는 것 같지만, 당시 한 반의 학생 수가 90명 정도였으니 상당량의 쌀이 모였다.또 필자가 국민학생 시절엔 ‘쇠 모으기’도 했었다. 학생 1인당 2~3kg 정도를 모아가야 했다. 갑자기 쇠를 모으려니 쉽지 않았다. 지금처럼 통조림이나 캔이 흔하던 시절도 아니었다. 쇠를 찾아 동네를 헤매던 기억이 있다.하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모으기는 ‘오줌’이었다.필자가 중학교 다니던 시절, 어느 날 갑자기 깔대기가 꽂힌 흰색 오줌통이 등장했다. 깔대기에 잘 조준해서 소변을 봐야 했다. 사실 그 전엔 소변기가 없었기 때문에 오줌이 발에 많이 튀었는데, 오히려 더 위생적이란 느낌도 있었다. 학교는 물론 공중화장실에도 모두 오줌통이 생겼다. 다만 여성의 경우 모으기가 쉽지 않아, 남성에게만 해당되었다.오줌을 모으는 이유는 ‘유로키나제’라는 혈전 용해제를 채취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 오줌의 성분이 좋아 비싼 가격으로 해외에 수출했다. 그래서 모든 남성들은 외화벌이를 한다는 애국심으로, 오줌 모으기에 적극 참여했다. (사실은 안 할 수가 없었다)지금은 오줌을 모아 천연비료를 만들고, 환경 보호를 위해 소변 모으기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버리지 않고 모으면 좋은 게 오줌이다.<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大실망 ’파묘‘ ㅠㅠ
大실망 ’파묘‘ ㅠㅠ ‘영화 ‘서울의 봄’보다 관객 증가세가 더 가파르다‘라는 기사를 보고, 큰 기대감 속에 영화 ’파묘‘를 보러 갔다. 평일 낮이어서 그런가, 노인 관객이 아주 많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대가 커서 그런지, 너무나 실망스러운 영화였다. (관객의 취향에 따라 좀 다를 수는 있음) 최민식 유해진 등 인기 배우들이 출연했지만, 내용으로 보면 ’B급 귀신영화‘다. A급 영화인 ’서울의 봄‘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비슷한 공포 영화 ’‘곡성’에도 한참 못 미친다.영화가 끝나고 나오는 노인 관객들 표정에서도 실망감이 묻어 나왔다. ’애들 영화‘라는 시람도 있었다. ’반일 감정‘ 어쩌구 하는 기사도 엉터리다. 인정 사정 없는 잔혹한 일본 귀신이 나온다고 해서, 반일 감정을 조장한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돈 주고 보기 아까운 영화인데, 어떻게 관객들이 그렇게 몰리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감동은 없고, 마케팅이나 홍보에 당한 것 같은 찜찜한 기분만 남았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추천 드라마: 바이킹스:발할라 (Vikings:Valhalla)
바이킹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게 되는 드라마바이킹스:발할라 (Vikings:Valhalla)필자가 어릴 때부터 최근까지 궁금했던 게 한 가지 있었다. 세계 최대의 섬 그린란드가 왜 덴마크령일까 하는 의문이었다. 그린란드는 미국이나 캐나다에 가깝다. 그리고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의 전통 강국이 아닌, 우리나라(남한)의 절반도 안 되는 작은 나라 덴마크령인지 이유를 몰랐다.그러던 중 얼마 전 드라마 ‘바이킹스: 발할라’를 보고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사실 우리는 바이킹의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아는 거라곤 약탈을 일삼던 야만적인(?) 민족 정도. 우리나라와 중국을 괴롭혔던 왜구와 비슷하게, 유럽사람들은 치를 떨었다. 하지만 왜구와 다른 건 바이킹은 해외로 진출해 그곳을 개척하거나 정착했다는 점이다.세계사를 좀 기억하는 사람들은 ‘노르만(바이킹)의 대이동’ 정도를 기억한다. 필자도 이번 기회에 좀더 알게 되었다.‘바이킹(노르만)의 대이동’은 이전의 ‘게르만의 대이동’에 버금가게 유럽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바이킹은 원래 스스로 농업(경작)과 사냥, 그리고 뛰어난 항해술과 배를 가지고 어업을 하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인구가 크게 늘어났는데. 갑자기 기후가 추워지게 된다. 그래서 800년 경부터 필요한 식량 등을 외부에서 무역이나 약탈로 보충하는 한편, 해외로 이주하게 된다. 이것이 노르만의 대이동이다.빼어난 항해술을 가진 노르만(바이킹)은 1,000년경 북쪽 바다로는 잉글랜드를 지나 아이슬랜드 그린란드 그리고 북미까지 진출해서 정착한다. (하지만 북미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