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랑 벗긴 아기 사진을 왜 찍었을까?
홀랑 벗긴 아기 사진을 왜 찍었을까?필자가 어렸을 땐 사진관이 많았다. 당시만 해도 카메라가 귀하고, 증명(명함판)사진 백일 또는 돌 사진 등을 많이 찍었기 때문에 동네마다 한두 군데씩은 있었다.‘허바허바사장’이란 유명 사진관이 있었는데, TV광고를 할 정도였다. 돈 있는 집에선 약혼 가족 돌 사진 등을 그곳에서 찍었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가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70년까지만 해도 동네 사진관 창에는 어김없이 민망한 사진들이 뺴곡히 진열되어 있었다. 바로 홀랑 벗겨 놓은 남자 아이들의 백일 또는 돌 사진이었다. 특히 주요 부위가 잘 보이도록 다리를 떡 하니 벌리고 찍었다. (가끔은 여자 어린이들도 있었다)당시에도 필자는 그런 사진을 보면서 도대체 왜 이런 사진을 찍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필자나 형제들 가까운 친구들은 이런 사진을 찍지 않았기 때문이다.남아선호사상이 뿌리 깊었기 때문일까?귀한 아들의 귀한 부분을 자랑하고 싶었을까?남들이 하니까 그냥 따라한 걸까?문제는 가족들만 이 사진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고, 누구나 볼 수 있게 사진관 창에 진열이 된다는 점이다.사진관에서 자기들 맘대로 진열한 걸까?부모가 자랑하고 싶어서 승낙한 걸까?그런데 또하나의 문제는 그 사진이 몇 년 또는 수십 년간 두고두고 걸려있다는 점이다.아이가 커서 그 사진을 보면 부끄럽지 않을까?외국인들이 보면 얼마나 놀랬들까 싶기도 하다.이런 현상은 80년대에 사라진 것 같다. 만약 지금 그런 사진을 내건다면 당장 문제가 될 것이다.부모가 악의로 그런 사진을 찍은 건 아니었으므로, 당시 일부 사람들의 문화 정도로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세계 각지에 있었던 남근숭배 사상의 영향이었는지도 모른다. 특히 어린 남자아이의 성기를 ‘고추’라고 하면서 예쁘다는 말도 했었다.하지만 부모들의 욕심(?) 때문에 아기가 홀랑 벗겨져서 소중한 것을 내보이며 웃고 있었던 걸 생각해보면, 아기의 인권이 억압받는 것 같아 불쌍하고 안타깝게 생각된다.과거에 그런 사진을 찍었던 사람들이 당시 사진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해 진다.<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스크랩페이스북으로 보내기트위터로 보내기
성병과 치질
성병과 치질 필자가 어렸을 때 동네 벽마다 포스터들이 많이 붙어 있었다. 영화나 정부 정책 등과 관련된 포스터들은 나름 좋은 종이로 인쇄했지만, 나머지 포스터들은 종이가 작고 얇았다. 아마 습자지 종류가 아니었나 싶다. 특히 당시엔 종이와인쇄 비용이 비싼데다, 밀가루풀을 시멘트벽에 칠하고 포스터를 붙여야 하기때문에 작고 얇은 종이가 사용됐을 것 같다. 필자의 기억으론 그 포스터 중 가장 많은 종류가 ‘성병’이었다.사실 당시 필자는 그게 무슨 단어인지를 몰랐다. 그냥 무슨 병인가 싶었을 뿐이다. 게다가 신문에도 성병 관련 광고가 많았다. 특히 당시엔 의약분업이 안 된 시기라 약국에서도 광고를 했다.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성기 약국’ 광고는 항상 신문의 같은 자리에 매일 게재 되었다.사실 성병은 부끄러운 병이다. 또한 걸렸다 하면 아주 괴롭고, 조기에 치료하지 않으면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는 병이다. 필자가 논산훈련소에 입소했을 때에도 교육받은 것 중 하나가, 성병에 걸렸다 싶으면 감추지 말고 무조건 의무실에 가라는 것이었다. (물론 예방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그만큼 성병은 사람들이 참아보려고 하고 감추려다 병을 키우게 된다.좀 유사한 병이 치질이었다. 치질 포스터나 신문광고도 많았다. 치질도 당시엔 성병보단 덜하지만 역시 부끄럽게 생각했다. 특히 여성들은 더 숨기고 싶었다.지금처럼 건강식품이나 약도 없었을 시기다. 당시엔 지금보다 성병이나 치질이 더 흔했고, 치료비도 비쌌고, 정말 괴롭지만 부끄러워서 말도 못하고, 그러다 보니 병원 아닌 다른 곳에서 치료받다가 더 큰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 성병이나 치질 포스터 대부분이 전문 병원이 아닌 민간요법을 시술하는 곳에서 붙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들은 하나같이 ‘한번에 깨끗이’ 낫는다는 걸 강조했었다. 하지만 그런데를 찾았다가 병을 더 키워, 할 수 없이 더 망가진 상태에서 전문 병원을 찾는 경우도 허다했다.그런데 성병 치료 신문 광고는 이미 일제 감점기 때에도 있었다. **환 등 특효약이나 치료법 광고를 찾을 수 있다. 당시에 성병은 창궐하는데, 페니실린 계통의 약이 부족하고 워낙 비싸서 더 그런 게 아닌가 싶다.요즘은 생각하기 힘든 일이다.<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입영전야와 입영열차
입영전야와 입영열차필자 학창시절엔 군 복무기간이 꽤 길었다. 복무기간이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줄고 대학 때 교련 혜택을 받았지만, 흔히 ‘3년’이라고 말했다. 피 끓는 나이에 군에서 3년 동안 흔히 “*뺑이 친다‘라고 생각했다. 구타에 훈련에 형편 없는 식사에... 정말 군대 가기 싫었다.따라서 군 입대 전날엔 친구들과 함께 대폿집이나 방석집에 모여 밤새 죽어라 술을 마시며 노래했다. (필자가 입대하던 1984년엔 이런 문화가 사라진 것 같다) 밤새 술 마시며 수도 없이 절규하듯 부르는 노래가 1977년 발표된 최백호의 ’입영전야‘다.”아쉬운 밤 흐뭇한 밤 뽀얀 담배 연기둥근 너의 얼굴 보이고 넘치는 술잔엔 너의 웃음이....“그러다가”자~ 우리의 젊음을 위하여 잔을 들어라~“ 하면서 술잔을 들었다필자 또래라면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 군 입대를 앞둔 착잡했던 심정이 생생하게 기억날 것이다.그런데 시간이 흘러 1990년이 지나면서 ’입영전야‘는 김민우의 ’입영열차 안에서‘로 바뀐다, (김민우는 1990년 이 노래를 발표한 뒤 실제 입대하여 더 유명해진 노래다)”어색해진 짧은 머리를 보여주긴 싫었어손 흔드는 사람들 속에 그댈 남겨두긴 싫어...“입대하는 청년들의 인식도 바뀌었는지, 낭만적인 발라드 풍의 노래로 바뀐 것이다.지금은 군 복무기간도 짧아지고, 입대하기 전날엔 친구들과 모이기보다 가족과 함께 지내고 입대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도 모르겠다.위의 두 노래 중 필자는 ’입영전야‘가 훨씬 와 닿는다.군에 가기 전에 솔직한 심정을 쥐어짜는 목소리로 노래하는 게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왜냐하면 필자가 꼰대이기 때문이다.<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윤 대통령 혼자 원맨쇼 하나?
윤 대통령 혼자 원맨쇼 하나?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수능에 대한 발언을 하면서 교육계와 수험생 들이 난리 났다. 윤 대통령이 수능에서 ‘킬러 문항’과 비문학 지문을 없애라는 지시를 했기 때문이다. 사교육을 줄이기 위함이라고 한다.필자가 교육 전문가가 아니므로 이에 대해 왈가왈부 할 수는 없다.하지만 수능을 불과 5개월 앞둔 상황에서 갑자기 대통령 말 한마디에 교육부 담당 국장이 잘려나가고, 수능을 주관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사임했다는 것은 정상적이 아니다.게다가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대통령이 상당히 깊이 있게 고민하시고 연구하셨다”며 "진짜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순간 필자는 귀를 의심했다. 이게 뭔 말인가?대통령이 과거에 교육 관련 수사를 몇 번 했다고 교육 전문가가 되었다?그럼 경제 사범 수사 몇 번 하면 경제 전문가가 되나?거꾸로 교육 전문가이자 교육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진짜 많이 배울 정도라면, 교육 전문가나 장관으로서 자격 미달 아닌가?정말 ”아부야 뭐야?“라는 말이 튀어 나온다.윤 대통령의 스타일에 문제가 크다.만약 윤 대통령이 수능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거나 개선하고 싶다면, 사전에 담당 장관인 교육부 장관과 협의한 후 장관의 입에서 그런 얘기가 나와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은 그에 힘을 실어 주면 된다.그런데 회의 석상에서 갑자기 대통령이 문제를 던지고, 당정이 그 뒤를 받치고 해결하는 모양새가 한두번이 아니다.이는 정치 경험이 없는 초짜 대통령이기 때문도 있지만, 평소에 본인이 뭐든 앞장서 혼자 다 해야 한다는 스타의식(?)이나 우월감 때문이 아닌가 싶다.대통령은 본인이 튀는 것보다, 그 정부의 팀웍과 결과가 중요하다.전장에서 장수가 무조건 ‘나를 따르라’ 하며 앞장서지 않고, 뒤에서 참모들과 함께 작전을 짜고 지시해야 하는 것과 같다.그런 입장에서 볼 때 윤 대통령은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다.<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실종된 개는 살아 돌아왔는데...
실종된 개는 살아 돌아왔는데... 이번 집중호우로 피해가 막심하다. 이전과 다른 폭우라는 이유도 있고, 인재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어쨌든 인명사고는 실종 4명을 포함해 50명에 달한다. 오송지하차도 사고나 수색중 사망한 해병대원이 특히 안타깝다. 실종된 사람이 살아 돌아오면 좋겠지만, 사실 그럴 확률은 거의 없다. 그런 와중에 휩쓸려간 개가 27시간만에 돌아와 화제다.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에 집중호우가 쏟아진 지난 15일 오전 산사태로 실종됐던 개 진순이가 27시간 만에 무사 귀환했고 한다. 견주는 "어제 오전 5시에 마당에 나가보니 진순이가 돌아와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며 "마을 아래까지 떠내려갔을 텐데 집을 찾아온 게 놀랍다"고 말했다. 진순이가 실종됐던 날 권씨의 집 마당에는 빗물과 토사가 덮쳤다고 한다. 권씨는 "얼굴까지 물이 차올랐는데 소나무를 붙잡고 겨우 버텼다"며 "진순이는 이미 떠내려가고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은 실종되면 사실상 사망으로 간주하는데, 개는 살아 돌아왔다. 대부분의 동물은 물에 빠져도 머리가 물 밖으로 나오기 때문에 선천적으로 수영을 한다. 하지만 사람은 신체 구조상 그렇지 않다. 따라서 수영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도 급류에 휘말리면 꼼짝없이 당할 수 있다. 그런데 진순이를 생각해보니 별 생각이 다 든다.얼마나 멀리 떠내려갔다가 27시간 만에 돌아왔을까? 꽤 멀리 떠내려갔을텐데, 그 먼데서 집을 어떻게 찾아왔을까? 진순이는 평소에 동네방네 잘 돌아다녀 길을 잘 알까? 아주 멀리 가진 않았지만, 집을 찾아 헤메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을 수도 있다.사람이 27시간 만에 돌아왔으면 더 없이 반가웠겠지만, 반려견이라도 살아 돌아왔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진순이처럼 실종된 사람도 살아 돌아오는 일이 있으면 좋겠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아빠 찬스’ 없는 ‘못난’ 아빠가 미안하다
‘아빠 찬스’ 없는 ‘못난’ 아빠가 미안하다공공기관 등에서 직원을 뽑을 때 ‘뽑힐 사람은 이미 정해져 있고, 나머지는 들러리’라는 말이 있었다. 필자는 곧이 듣지 않았다. 옛날이면 모를까, 요즘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그런데 요즘 일이다. 필자가 바보처럼 순진하게 속아 살아왔다.선관위 직원들이 자기 자식들을 직원으로 채용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 중앙선관위 사무처의 일인자인 사무총장과 이인자인 사무차장의 자녀를 비롯해 모두 10명. 수사에 착수하면 더 나올 수도 있다. 면접 등 전형 때에도 아주 노골적으로 채점을 했으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다.선관위는 헌법기관이다. 그리고 직원들은 공무원이다.일반 국민이 공무원이 되기 위해선 엄청난 노력 끝에, 수십 대 일 이상의 경쟁을 뚫어야 간신히 합격한다. 그런데 ‘아빠 찬스’를 쓸 수 있는 사람은 공부 안 해도 된다. 그들에겐 공무원 되겠다고 죽어라 공부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우습게 보였을까?이게 무슨 민주주의 공화국인가? 이게 나라냐? 고위 공무원이면 자식들을 거저 공무원 만들어 주나?선출직 공무원을 뽑는 선거를 주관하는 선관위가 정작 자신들의 직원을 이렇게 엉터리로 뽑았다니, 개가 웃을 일이다.지금까지 나타난 채용 비리만 10건이나 되니, 일회성은 아닌 것 같다. 지금까지 관행처럼 짬짬이로 해 먹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대한민국의 어느 지표가 세계 몇 위이고 어쩌고 하지만, 이런 비리가 남아있는 것만 봐도 우리나라는 아직도 후진국이다.필자의 자식 둘이 모두 공기업에 입사했다.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힘들게 입사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보니 필자는 자식들에게 ‘못난 아빠’가 아닌가 싶다. ‘아빠 찬스’가 없어 자식들을 고생시킨 것 아닌가 하며, 죄 지은 생각까지 들기 때문이다. 국민 가슴을 멍들게 만들고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박탈감을 안겨주는 사람들을 모두 색출해 죗값을 치르게 해야 비로소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다.<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