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혼자 원맨쇼 하나?
윤 대통령 혼자 원맨쇼 하나?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수능에 대한 발언을 하면서 교육계와 수험생 들이 난리 났다. 윤 대통령이 수능에서 ‘킬러 문항’과 비문학 지문을 없애라는 지시를 했기 때문이다. 사교육을 줄이기 위함이라고 한다. 필자가 교육 전문가가 아니므로 이에 대해 왈가왈부 할 수는 없다.하지만 수능을 불과 5개월 앞둔 상황에서 갑자기 대통령 말 한마디에 교육부 담당 국장이 잘려나가고, 수능을 주관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사임했다는 것은 정상적이 아니다.게다가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대통령이 상당히 깊이 있게 고민하시고 연구하셨다”며 "진짜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순간 필자는 귀를 의심했다. 이게 뭔 말인가?대통령이 과거에 교육 관련 수사를 몇 번 했다고 교육 전문가가 되었다?그럼 경제 사범 수사 몇 번 하면 경제 전문가가 되나?거꾸로 교육 전문가이자 교육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진짜 많이 배울 정도라면, 교육 전문가나 장관으로서 자격 미달 아닌가?정말 ”아부야 뭐야?“라는 말이 튀어 나온다. 윤 대통령의 스타일에 문제가 크다.만약 윤 대통령이 수능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거나 개선하고 싶다면, 사전에 담당 장관인 교육부 장관과 협의한 후 장관의 입에서 그런 얘기가 나와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은 그에 힘을 실어 주면 된다.그런데 회의 석상에서 갑자기 대통령이 문제를 던지고, 당정이 그 뒤를 받치고 해결하는 모양새가 한두번이 아니다.이는 정치 경험이 없는 초짜 대통령이기 때문도 있지만, 평소에 본인이 뭐든 앞장서 혼자 다 해야 한다는 스타의식(?)이나 우월감 때문이 아닌가 싶다. 대통령은 본인이 튀는 것보다, 그 정부의 팀웍과 결과가 중요하다.전장에서 장수가 무조건 ‘나를 따르라’ 하며 앞장서지 않고, 뒤에서 참모들과 함께 작전을 짜고 지시해야 하는 것과 같다.그런 입장에서 볼 때 윤 대통령은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허문도의 ‘언론 개혁’이 생각나는 이유
허문도의 ‘언론 개혁’이 생각나는 이유필자가 어렸을 때 한 어른한테 ‘커서 절대 되어선 안 될 3가지 직업’에 대한 얘길 들었었다. 3가지는 바로 정치인(국회의원)과 경찰 그리고 기자다. 이들은 앞에선 국민과 정의를 찾지만 뒤에선 국민을 협박하고 뇌물을 받아먹는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물론 당시 얘기다.그중 기자는 한때 지성과 양심의 표상이었다. 우선 아무나 기자가 될 수 없었고, 상당한 지식 수준이 필요했다. 기자는 독재 정부에 어느 정도 맞추 줄 수 밖에 없는 상황도 있었지만, 독재에 맞서 나름 역할을 하려 노력했다. 그래서 한때 다수의 기자들이 국회의원 등 정치권으로 영입되기도 했었다.하지만 그런 기자는 중앙지 등 일부 신문이었고, 특히 지방이나 지역에선 소위 ‘사이비 기자’들이 넘쳐났다, 그들은 약점을 잡아 기사화하겠다며, 뇌물(촌지)이나 광고를 달라고 협박을 일삼았다. 대부분 그런 기자들은 급여가 아예 없이, 따오는 광고 등의 일부를 가져갔다.이런 신문이 늘어나면서 국민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일부 신문들을 강제로 폐간을 시킨 파격적인 조치가 단행되었다. 바로 전두환 시절, 허문도가 중심으로 추진한 ‘언론 개혁’이었다. 신아일보 같은 반정부적 신문사가 폐간되는 등 엄청난 언론 탄압이었지만, 엉터리 신문 때문에 피해를 봤던 일부 국민들은 환호하기도 했다.지금은 신문사가 정말 많다. 인터넷 신문만 4천개 정도 된다. 유사한 유튜브까지 넘쳐난다.그만큼 경쟁이 심하다 보니, 다수의 언론사들은 과거의 행태로 돌아갔다.대부분 지역이나 지방 그리고 인터넷 신문사 기자들은 정식 급여가 아예 없거나 약간의 기본급만 받고, 나머진 인센티브다. 기자가 광고나 협찬을 따오면, 절반을 가지는 구조다. 기자가 영업사원인지 뭔지 구별이 안된다. 그러니 사실에 입각한 제대로 된 기사가 나올 리 만무하다. 관공서나 기업 출입 기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돈을 따내야 하고, 실제 관공서나 기업들은 이들을 위한 예산을 따로 준비해 놓기도 한다.당연히 지자체나 관공서 또는 기업에 대해 우호적인 기사가 나올 수밖에 없다.(다만 김영란법 등으로 현금이 오가는 촌지는 많이 줄었다)이런 신문사들은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정론지’라고 주장한다. ‘삶은 소대가리가 웃을 일’이다.언론은 장사고, 기자가 영업하는 시대다. 언론이나 기자들에 대한 믿음도 없다.필자도 ‘묻는다일보’를 운영하고 있지만, 어떤 때에는 허문도처럼 ‘가혹한 언론 개혁’을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러시아 용병 반란은 ‘쇼’였을까?
러시아 용병 반란은 ‘쇼’였을까? 지난 토요일(24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 러시아의 용병 와그너 그룹이 반란을 일으켜 모스크바로 진격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순간 필자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졌다. 그 전쟁으로 인해 우크라이나는 물론 전세계가 피해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모스크바까지 불과 200km를 남기고, 하루 만에 와그너 그룹의 프리고진이 물러서면서 일단락되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군의 사기와 푸틴 대통령의 리더십에 상처가 났다고 하고, 한편에선 그를 만회하기 위해 푸틴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더 공세를 취할 것이란 전망도 내놨다. 하지만 이쯤에서 의문이 남는다.프리고진이 당장은 면책을 받고 벨라루스로 이동(사실상 도망?)했지만, ‘푸틴에게 찍히면 결국 죽는다는 걸 알텐데’ 하는 점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 프리고진이 반란(스스로는 ‘정의의 행진’이라고 했지만)을 일으킨 이유가 뭘까? 필자의 비전문가적 상상을 해봤다.가장 큰 문제는 ‘돈’이 아닌가 싶다. 용병은 순전히 돈을 위해 싸운다. 그런데 약속한 돈을 안 주거나 약속이 달라지면?이미 러시아 국방부에 대해 비난을 쏟아냈던 프리고진이다. 무기 지원 등의 이유를 댔지만, 사실은 ‘돈’을 포함해 에둘러 표현했을 수 있다. 따라서 용병 내부에 불만이 쌓이고, 자칫 본인 생명의 위기를 느꼈을 수도 있다. 이럴 때 쓸 수 있는 적절한 카드는 외부의 적을 만들어 그를 공격하는 것이다. 따라서 실제로 모스크바를 공격하려 한 게 아니라, 프리고진이 당장 용병들의 불만을 달래며, 자신은 따로 도망쳐 살 궁리로 저지른 ‘쇼’가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러시아 내부 방어선이 이렇게 쉽게 뚫릴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만큼 용병이 무섭다는 뜻이기도 하다. 용병은 전투력이 좋기도 하지만, 방어를 맡긴 용병이 적으로 돌아서면 막기 힘들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가장 좋은 예가 서로마 제국을 멸망시키고 이탈리아의 왕이 된 ‘게르만 용병대장 오도아케르’다. ‘일일 천하’에 그친 프리고진의 반란이 아쉽지만, 한편 그들이 진짜 모스크바로 진격했으면 민간인을 포함해 얼마나 많은 사상자가 났을지 모를 일이다. 반대로 프리고진이 용병들에게 정말 모스크바 침공을 명령했으면, 용병들이 돈 안 되는 일에 목숨을 걸고 그의 말을 들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고위공직자와 국회의원 신고재산을 보니...
고위공직자와 국회의원 신고재산을 보니...어제와 오늘 고위공직자와 국회의원 재산 신고 내역이 발표되었다. 신고 재산이 고위공직자는 평균 19억원대 국회의원은 25억원대였다. 신고 내역이 그러하니 실제론 그보다 더 많을 것이다. 이래저래 누락되었거나 부동산의 경우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이다.이를 보니 필자는 그동안 뭘 하고 살았나 싶다.그동안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았다. 아내는 ‘파란만장’하다고 말한다. 물론 고위공직자나 국회의원이면 나름대로 성공한 사람들인데, 평생을 ‘성공’하고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아온 필자가 그들보다 재산이 더 많기를 바랄 순 없을 것 같기도 하다.그런데 얼마 전 사회에서 알게 된 후배와 저녁을 같이 했다.그는 필자에게 정말 부럽다고 했다. ‘아내와 가족이 있고, 다들 잘살고 있고, 게다가 예쁜 손녀까지 있으니 다 갖춘 거 아니냐’고 말했다. 생각해보니 그 말도 맞다. 별 걱정거리가 없고 손녀 얘기할 때마다 웃음이 넘치니, 나름 행복한 게 맞는 것 같다. 다만 스스로 자주 못 느낄 뿐이다.그런 생각을 하면서 출근하는 길에 아파트 담 밑에 핀 잡초들을 보게 되었다. (사진)한 줌도 채 안 되는 흙에서도 잡초들은 저렇게 악착같이 생을 유지하며 자라고 있다. 저들에게 더 많은 흙이 있으면 좋긴 하겠지만, 오히려 지금에 만족하면서 그대로 유지하길 바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필자에게 재산이 더 많으면 좋겠지만, 환갑이 넘은 나이에 남에게 손 안 벌리고 최소한의 품위 유지라도 한다면 된 거 아닌가 싶다.그래,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오늘은 ‘작은 것에 만족하며, 큰 걱정거리 없음에 행복하자’라고 생각하며 씩씩하게 발걸음을 재촉했다.<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퇴폐의 시대
퇴폐의 시대파주시가 금년 내에 집창촌인 용주골을 폐쇄한다고 발표했다.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퇴폐의 시대’라 할 만큼 지극히 퇴폐적 문화가 지배했다. 시골 도시 할 것 없이 기차역 인근엔 집창촌 또는 그와 비슷한 지역이 있었다. 서울만 해도 청량리역 서울역 용산역 영등포역이 대표적이었다. 역이 아니더라도 웬만한 동네 특히 대학이 있는 동네엔 소위 ‘방석집’이 모여 있었다. 필자가 어릴 때 살던 흑석동 중앙대 근처엔 ‘연못시장’이란 곳이 있었다.하긴 정부가 나서 매춘에 앞장서기도 했으니, 일반 국민들에게 뭐라 할 수도 없었다. 미군을 상대로 한 기지촌 여성들은 매주 성병 검사를 받고 ‘보건증’을 소지해야 했고, 일본인을 상대로 한 ‘기생관광’ 접객녀들에겐 매춘 허가증과 다름없는 ‘접객원 증명서’를 발급했다. 정부는 이들에게 ‘외화 벌이 애국자’라며 선동하기도 했다.당시 대학생들은 공부를 정말 안 했다. ‘왕대포’라고 써 있는 대폿집에선 유행가를 열창하는 대학생들로 붐볐다. 그 틈 한가운데엔 ‘니나노 아가씨’가 젓가락 반주로 노래를 선창했고, 대학생들은 그 노래를 따라 불렀다. 쉬지 않고 노래를 이어가야 실력 있는 ‘니나노 아가씨’였다.특히 지역 유지 자식인 지방 학생들은 이런저런 핑계로 돈을 받아내 술집에서 탕진하기도 했다. 그런 ‘니나노집’은 흑석동에선 70년대 초반쯤 사라졌다. 반정부 시위가 한창 심할 때였다.80년대에는 포르노 영화가 급속도로 퍼졌다. 비디오 가게마다 빌려주고 여관(모텔)마다 틀어줬다. 하지만 80년대 말 단속이 심해지자 갑자기 사라졌다.필자가 생각할 때 가장 퇴폐적인 시기는 1990년 전후다.88올림픽 직후 우리나라 경제는 큰 호황을 맞았다. 고깃집마다 ‘미친듯이 고기를 먹어대는’ 사람들로 붐볐고, 유흥업소가 난립했다. ‘즉석 불고기’집도 있었고, 스탠드바도 우후죽순처럼 늘었다. 일부 업소에선 심지어 ‘홀딱쇼’ 까지 했다.당시엔 ‘쇼’ 또는 ‘묘기’ 하는 방석집도 있었는데, ‘붓글씨’나 ‘계란포’ 같은 신기한(?) 쇼나 묘기를 선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묘기의 내용은 민망해서 올리지 못함)당시엔 술 마시고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택시 잡기가 힘들었다. 택시 기사들은 따블 정도 불러야 태워줬고, 심지어 ‘따따(따따블)’을 부르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흥청망청’하던 시대는 결국 IMF로 향했다.다시 돌아가, 집창촌이 사라진 건 이 시기(IMF) 이후다.사회적 인식도 높아지고 정부의 단속도 있지만, 사실 결정적인 건 ‘개발’ 때문이었다. 집창촌 건물주들은 개발되는 게 훨씬 더 이익이었기 때문에 스스로 문을 닫았다. 이렇게 청량리(588)나 영등포 집창촌은 완전히 다른 지역으로 바뀌었다.이런 얘기들은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그동안 못 먹고 못 놀았던 한풀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IMF를 계기로 국민들이 정신 차리면서 ‘퇴폐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지금은 먹을 것도 많고 즐길 것도 많다 보니, 그 시대엔 어쩌다 그러고 살았나 싶기도 하다.<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젊어져서 좋아? 어려져서 싫어?
젊어져서 좋아? 어려져서 싫어? 지난 6월 28일부터 만나이가 적용되기 시작했다.어떤 뉴스에선 앵커가 ‘나이가 젊어져서 좋다’는 식의 얘기도 했다. 과연 좋기만 할까? 아내(할머니)가 우리 나이로 4살인 손녀에게 ‘이제부턴 3살이다’라고 얘기하자, 손녀가 ‘아냐, 아냐’라며 펑펑 울었다고 한다. 이유는 엄마가 ‘5살 되면 초콜렛도 먹을 수 있고, 몇 살 되면 뭐도 먹을 수 있고...’ 등의 약속을 했는데, 더 멀어지기 때문이란다. 실제로 유치원 아이들 중 많은 수가 싫어했다고 한다.하긴 손녀에세 ‘나중에 뭐가 되고 싶어?’라고 물으면 첫 대답이 ‘어른’이다. 아이들은 나이를 빨리 먹고 싶어 한다. 그래야 하고 싶은 걸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필자도 그랬었다. 빨리 나이 먹어, 어른이 되고 싶었다.오죽하면 ‘아빠 언제 어른이 되나요...’라는 히트곡도 있었다. ‘아빠 말씀’이라는 노래인데, 최불암의 나레이션이 인기였던 외국곡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엔 ‘고등학교 졸업=어른(성인)’인 경향이 더 컸다. 어른이 되면 우선 머리를 기를 수 있고, 영화관 등 입장 금지 구역도 없어진다. 술 담배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게다가 당시엔 애들이 하도 많다 보니, 어른 입장에선 아이들이 귀찮기도 했다. 오죽하면 시장의 뱀장수들도 그랬다. ‘비얌이야 비얌. 딱 한 번만 잡사 봐....’라는 말에 사람들이 모이고 뱀장수의 언변에 귀를 기울이며 웃는데, 그때 뱀장수가 꼭 하는 말이 있었다. “애들은 가라” 당시 애들은 도움이 안 되는 존재이고, 어디 가나 별 환영을 받지 못했다. 하긴 당시엔 아이 혼자 또는 애들끼리 식당에서 밥 사 먹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요즘처럼 패스트푸드 점에 아이들끼리 가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막상 어른이 되면 어린 생각처럼 좋지만은 않다. 아니 어릴 때가 그립다.어릴 땐 책임이 없고, 하라는 대로 하고 주는 대로 먹으면 된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 책임을 져야 하고,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그래서 애들을 보면 이렇게 얘기 한다.“어릴(너희) 때가 좋은 거야~”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