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끝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3년 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남부 팔렘방 인근 마을에 사는 16세 소년 슬라멧이 자신의 친할머니와 동갑인 71세의 로하야 할머니와의 결혼을 발표해 언론의 화제를 모았다. 당연히 슬라멧 부모의 반대는 거셌지만, 아들이 자살소동까지 벌이자 결국 결혼을 승낙했다. 그 부부는 당시 TV에 출연하기도 했다.3년 전 두 사람은 같은 지역에 살면서 우연히 서로를 알게 돼 사랑에 빠졌고, "두 사람은 만약 한 사람이 죽으면 따라 죽겠다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3년이 지난 최근 현재 74세 아내와 19세 남편이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행복하다고 발언해 다시금 화제가 되고 있다. 55세 나이 차이가 나는 연상연하 부부가 4년째 함께 살고 있다.일각에서는 70대의 로하야가 상당한 부자일 것이란 소문이 돌았지만, 로하야는 생계가 어려울 정도로 가난한 할머니였다. 남편은 아내를 부양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열심히 한다고 한다.사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간혹 비슷한 보도가 나오긴 하지만 남편이 10대인 경우는 처음이고, 결혼 후에도 계속 잘 사는지 확인되진 않는다.16세 소년은 왜 할머니한테 사랑에 빠졌을까?71세 할머니는 왜 손자뻘 아기(?)한테 사랑을 느꼈을까?일반인의 상식으로 보자면 몇 가지 추측을 할 수 있다. (너무 냉정할지 모르지만)우선 할머니 입장에선 손해 볼 게 없다. 자신을 도와주고 잘 대해 준다. 말벗도 되어주고, 경제적 도움도 준다.그런데 소년 입장이 좀 애매하다.자신을 손자처럼 따뜻하게 대해 주어서 고마웠을 수 있다. 또한 한창 성(性)에 눈을 뜨고 호기심이 많을 때, 할머니가 충족시켜줘서 만족했는지도 모른다.그러나 이런 추측은 그야말로 추측일 뿐이다,그 부부는 정말로 서로 사랑하고 있는데, 일반인의 눈으로는 이해를 못 할 수 있다.하지만 걱정되는 건 앞으로 십 년 후, 남편은 20대 후반의 한창 창창하고 건장한 청년이 되는데, 아내는 80대 더 쪼그랑 할머니가 되어도 계속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게다가 아내가 고령으로 병이 들어도, 죽을 때까지 20대 남편이 변심하지 않고 수발들며 부양할 수 있을까?본인이 선택한 인생이니, 후회하지 말고 잘 살기 바랄 뿐이다.<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알랭 들롱도 세월엔...
알랭 들롱도 세월엔... ‘세계 최고의 미남’으로 불렸던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86)이 안락사를 결정했다. 알랭 들롱은 2019년 뇌졸중으로 수술을 받은 뒤 스위스에서 노년을 보내고 있는데, 스위스는 안락사가 허용된 국가라고 한다.알랭 들롱은 정말 미남이었다,60년대에서 80년대 초까지 미남의 대명사로 통했다. 특히 그의 파란 눈동자는 과히 압권이었다. 연예인을 그리 좋아하지 않던 필자의 누나도 알랭 들롱의 판넬을 사다 걸어 놓을 정도였다. 필자도 알랭 들롱이 출연한 영화를 보면서, 같은 남자지만 정말 매력있고 잘 생겼다고 생각했었다.알랭 들롱은 잘 생긴 외모만큼 여성 편력이 심했다고 한다.알랭 들롱은 1964년 비밀리에 나탈리와 결혼해 아들 앙토니를 출산했지만, 1969년 이혼했다. 유일한 결혼이었다. 알랭 들롱 주변엔 언제나 수 많은 여성들이 꼬였고, 알랭 들롱에게 잘 보이려고 서로 알랑 방귀를 뀌였을테니 굳이 결혼할 필요를 못 느꼈을 수 있다.하지만 천하의 알랭 들롱도 세월을 피할 수는 없었다.최근 사진을 보니 아름답던 외모는 사라지고 파란색 눈동자만 남았다.그는 2019년 수술 직전 “나이 든다는 건 끔찍하다”며 “우리는 나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평생 그렇게 대접받으며 자유롭게 살아온 그가, 막상 늙고 관심에서 멀어지고 여자들도 떠나가고 이젠 병을 얻어 죽으려 하니 얼마나 아쉽겠는가?필자는 올해 환갑이다.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면 자식 나서 키운 것 말곤 별로 한 게 없다. 알랭 들롱과는 비교할 수도 없다. 그래서 그런지 언제 죽어도 아쉬운 건 없다.이럴 땐 ‘평범한 인생이 죽을 땐 아쉬운 게 없어 더 낫다’는 소시민적 생각이 들며, 스스로를 위로한다.<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윤석열 당선인에게 바란다
윤석열 당선인에게 바란다.한국갤럽이 이번 대선에 투표한 유권자 10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11일 발표한 ‘20대 대선 사후 조사’에 따르면, 윤 후보에게 투표했다고 밝힌 423명 중 39%가 ‘정권 교체’를 이유로 들었다. 즉 ‘윤 후보가 좋아서’가 아니라 ‘기존 정권이 싫어서’하는 의미다.거기에 0.7% 최소표 차이로 당선된 데에는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가 결정적이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단일화가 여권의 결집을 더욱 촉발했을 수 있다’는 의견을 냈지만, 필자는 1% 이상의 효과는 보지 않았을까 싶다.즉 윤석열 후보는 현 정부가 워낙 못 한 데 대한 반대 급부와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로 간신히 승리했다는 의미다.따라서 윤 당선인은 앞으로 더욱 겸손하게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이에 윤 당선인에게 (남들이 안 하는) 필자만의 몇 가지를 당부하고자 한다.첫째, 전 정부를 무조건 부인하고 적폐로 모는 일에 집중하면 안 된다. 문 정부의 가장 큰 과오가 그것이었다. 잘한 건 이어가며, 미래 지향적 정책을 펼쳐야 한다.둘째, 검찰 개혁을 완성해야 한다.많은 국민이 우려하는 ‘검찰 공화국’이 되지 않도록, 검찰에 힘을 지나치게 실어 줘서는 안된다. 윤 당선인이 검찰총장에 임명됐을 때 검찰 개혁의 적임자란 평가를 들은 바 있다. 검찰 개혁은 많은 국민이 원하는 것이므로, 검찰총장 출신인 윤 당선인이 검찰의 문제점을 제대로 개혁해야 한다.셋째, 광화문 시대를 여는 게 꼭 필요한가 재고하기 바란다.문재인 대통령도 광화문시대를 연다고 했다가 못했다. 가장 큰 이유가 경호다. 청와대에 묻혀 있으면 세상 돌아가는 것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지리적 거리보다 더 무서운 게 ‘人의 장막’이다.넷째, ‘인사가 만사’라는 교훈을 새기기 바란다.이미 윤 당선인은 성별 지역별 안배보다 오로지 실력만으로 인재를 발탁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하나 덧붙이자면, 코드 인사는 반드시 배제해야 한다는 점이다. 문 정부가 못했던 이유가 바로 ‘코드 인사’때문이다. 윤 당선인도 선거에 있어 그동안 공로에 연연하지 말고, 특히 윤핵관 출신들을 멀리하기 바란다.마지막으로 ‘오로지 국민만 보고 가겠다’는 초심을 잃지 말기 바란다.무슨 일을 하려면 언제나 시간과 과정이 필요하다. 마음이 급하더라도 좀 더 멀리 보고, 무엇이 국민과 국가에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는지만 보고 나가기 바란다.지금은 50% 득표도 못 얻은 대통령이지만, 임기가 끝날 땐 성공한 대통령으로 박수받고 떠나는 대통령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국민의힘 지방선거 필패(必敗)?
국민의힘 지방선거 필패(必敗)? 윤석열 당선인이 취임도 하기 전에 나라를 시끄럽게 만들고 있다.집무실 이전 문제 때문이다.‘국민만 보고 가겠다’고 공언했던 윤 당선인은 2/3의 국민들이 반대하는 집무실 이전을 밀어붙이고 있다. 필자도 반대다. 가장 큰 이유는 예산과 안보다.청와대라는 대통령 직무에 가장 적합하게 만든 장소를 두고, 굳이 다른 집을 얻어 나가겠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국방부와 합참 등 다른 부대들의 연쇄 이동과 국민의 불편도 감수해야 한다.물론 대통령이 일을 잘하기 위해 집무실을 옮기겠다는데, 그 정도 비용은 감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충분한 검토와 준비 기간이라는 게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는 집무실 이전과 관련한 예산 신청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집무실 이전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 새 정부 출범 이후 천천히 하라는 의미다.그러자 윤 당선인은 현재 당선인 사무실에서 집무를 시작하겠다고 한다. 이게 뭔 똥고집인가? 그렇다면 현재 당선인이 사용하는 건물부터 경호를 위한 수리를 해야 한다. 이 돈은 어디서 나오나?그 많은 경호 인력과 청와대에서 일할 사람들은 어디에 있나? 윤 당선인은 국민들에게 청와대를 돌려드리겠다고 하지만, 돌려달라고 한 국민은 없다. 만약 다음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일하겠다면, 그동안 들어간 비용과 새로 들어갈 비용은 또 어떻게 되나? 일단 청와대로 들어간 후 준비해서 집무실을 옮기는 게 맞다.당선인의 ‘한 번 들어가면 못 나온다’는 말을 들으니, 항간에 떠도는 무속인 얘기가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윤 당선인의 고집만큼 여론은 등을 돌리고, 약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의 승리도 멀어지고 있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산도 마음도 타들어 간다
산도 마음도 타들어 간다강원도 산불이 나흘째다.지금까지 산림 1만6천여 헥타르가 잿더미가 됐는데, 서울 크기의 1/4이나 된다고 한다. 불에 탄 집도 수백 가구에 이르고, 인근 국도는 한때 불길이 되어 버렸다.필자의 산이나 나무는 아니라도, 너무나 안타깝다. 그동안 이런 산림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정성을 들여왔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지금은 ‘산=숲’이다. 하지만 필자가 어렸을 때엔 나무가 없는 ‘민둥산’이 훨씬 더 많았다.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민둥산이 많아졌다. 일제의 수탈과 모든 것을 산(숲)에 의존해야 하는 민초들 때문이었다. 그래서 1949년 처음 식목일이 지정되었다. 하지만 한국전쟁은 전국의 거의 모든 숲을 민둥산으로 바꿔버렸다. 폭격은 물론 잔당이나 빨치산 또는 공비를 소탕하기 위해 산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결국 전쟁 후 남은 건 민둥산들이었다.이를 해결하기 위해 1961년에 산림법 제정으로 범국민 조림 정책이 시행되고, 식목일은 2008년까지 공휴일로 지정되었다.필자 역시 고등학생 시절 서울 어딘가 산에 가서 나무를 심은 적이 있다. (또 ‘라떼 얘기’임)필자가 어렸을 땐 산마다 ‘산림녹화’ 또는 ‘산림보호’라는 단어가 곳곳에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학교에선 산림의 중요성에 대해 가르쳤다. 지금도 ‘홍수 방지와 용수 공급’ ‘산사태 예방’ ‘나무 등 산림 자원 제공’ ‘맑은 공기’ 등을 외우다시피 했다.식목일 노래도 자주 불렀다. ‘산에 산에 산에다 나무를 심자~ 산에 산에다 옷을 입히자~’식목일이 가까워지면 방송에서도 나무나 묘목 심는 법을 안내했다. 묘목의 경우 구덩이를 20cm 정도 깊이로 파고, 묘목 뿌리를 충분하게 넣고 흙을 덮은 후 밟아 주는데 묘목을 살짝 당기면서 꾹꾹 밟으라고 한 기억이 지금도 난다.국민(초등)학교 다닐 때엔 식목일에 나무를 심는 대신 화단 정리를 했다. 각 반마다 조그만 화단을 지정 받았다. 그러면 학생들이 꽃씨나 묘목을 구해다 심고 물을 주고 가꿨다. 모두 나무와 숲의 중요성을 몸으로 느끼고 배웠다.식목일엔 대통령이 나서서 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공무원을 비롯한 많은 지역민들이 전국에서 나무를 심었다. 이렇게 나무 심고 가꾸기를 40여 년간 지속적으로 해오면서, 우리나라 산은 울창한 숲으로 바뀌기 시작했다.생존 능력은 강하지만 꿀 말고는 쓸모없는 ‘아카시아’ 나무를 심었다가, 유해수종이라 해서 베어내고 다시 다른 나무를 심는 시행착오도 있었다. 마침 식목일이 한식이라 성묘 가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성묘 갔다가 (식목일에) 불을 내서 지탄을 받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1970년대 언젠가 ‘유한킴벌리’가 처음 우리나라에 고급 티슈인 ‘크리넥스’를 생산해 판매를 하면서 인기를 끌었는데, 당시 표어가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여서 좋은 호응을 얻었다. 티슈의 원료가 펄프(나무)인 만큼, 매년 우리나라에 수십만 그루의 나무를 심는다는 캠페인이었다.그렇게 정부 주도지만 모든 국민이 그렇게 열심히 정성들여 가꾼 숲이다.그런 아까운 숲이 방화나 실화로 타들어 가는 모습을 보니, 이를 보는 필자의 마음도 국민들의 마음도 새까맣게 타들어 간다.<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감독이 이렇게 중요하다
감독이 이렇게 중요하다 24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9차전에서 밴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팀이 이란을 2-0으로 꺾었다. 경기를 압도하면서 거둔 완벽한 승리였다. 11년 이란전 무승에서 탈출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로써 한국은 이란을 상대로 최근 4경기 무패(1승 3무) 행진을 이어가게 됐다. 사실 한국팀 최정예 대표팀을 꾸리지 못했다. 주전 좌우 풀백 홍철 이용과 '벤투의 황태자'로 불렸던 황인범이 부상으로, 윙어 정우영 김진규 나상호 백승호가 코로나19 확진으로 명단에서 빠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 선수를 포함한 모든 선수들이 벤투 감독의 축구 철학을 잘 공유하면서 경기력에 이상이 없었다.사실 벤투 감독은 처음 부임했을 때만 해도 별 성과가 없었다. 하지만 그의 철학이 점점 팀에 녹아들며, 한국 축구대표팀은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축구는 선수들이 하는 건데 감독이 뭐가 중요한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당시엔 누가 감독을 하던 별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감독이 축구팀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 1호는 박종환 감독이다. (최근 좋지 않은 모습으로 방송에 출연해 몹시 안타깝다) ‘독사’ 박종환 감독은 선수들을 이끌고 1983년 U-20월드컵에 출전해 4강을 달성하며 전국민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이때 ‘붉은 악마’란 말이 탄생했다. 박 감독은 대회가 고지(高地)인 멕시코에서 열리는 걸 대비해 선수들에게 마스크를 착용하고 훈련을 시기까지 했다. 게다가 6가지 공격 전술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승승장구했다. 박 감독은 우물안 개구리였던 한국 축구도 세계에서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그 다음에 나타난 출중한 감독은 뭐니뭐니 해도 ‘히딩크’다.히딩크 감독도 처음엔 프랑스와 체코팀에게 5:0으로 져서, 별명이 한동안 ‘오대영’이었을 정도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나라 축구인들은 모두가 축구 선진국 선수들에 비해 ‘기술’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지만, 히딩크 감독은 ‘체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피지컬 전문 트레이너를 데려와 체력 훈련을 집중적으로 했다. 그렇게 1년간 단련한 뒤 우리나라는 월드컵 4강에 올랐다. 히딩크 감독 덕에 우리나라 축구팀은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제 역대 10번째, 연속 9번째 월드컵에 진출하는 대한민국이다.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 벤투 감독이 좋은 성적을 내주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