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키가 커졌다는데...
한국인 키가 커졌다는데... 필자는 지하철로 출퇴근을 한다. 14개 정거장을 지나므로 가급적 앉아서 가려 한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바뀐 게 있었다. 바로 지하철 좌석의 수가 7개에서 6개로 줄어든 것이다. 7개였을 때엔 비좁다고 느낀 적이 많았는데, 6개로 줄면서 좌석이 커지니까 확실히 편안해 졌다. (대신 앉을 수 있는 확률은 그만큼 낮아졌다) 좌석이 커진 이유를 몰랐는데 이번에 알게 되었다. 국가기술표준원이 한국인 성인 6천 8백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인체 치수 결과를 발표했는데, 한국인의 평균 키는 남성 172.5 센티미터, 여성 159.6 센티미터였다. 40여 년 전 실시한 1차 조사 때보다 남성은 6.4 센티미터, 여성은 5.3 센티미터 커졌다. 게다가 남성 47%가, 여성은 23% 가까이 비만의 범주에 포함됐다.즉 국민들의 체격이 커지니까, 그에 맞춰 지하철 좌석의 크기도 커졌다는 얘기다. 위 조사는 성인 즉 20~69세 국민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이므로, 20대 젊은이들만 따로 떼어놓으면 훨씬 더 클 것이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편에 속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필자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남자의 경우 177~178 센티미터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183~4 센티미터라고 한다. 키 얘기가 나오니 70년대 축구 국가대표 선수 중 김재한 선수가 생각난다.당시 김 선수의 키가 190 센티미터 정도였다. 다른 대표선수들이 보통 160~170대였으니, 축구선수로는 굉장히 컸다. 농구 선수와 비교해도 큰 편이었다. 그는 이회택, 박이천, 차범근, 김진국 등 당시로는 꽤 우수한 선수들과 함께 경기를 했다. 그래서 나온 작전이 ‘포스트 플레이’다. 김재한 선수를 골문 근처에 세워 놓고 좌우에서 센터링을 하면, 김재한 선수가 헤딩으로 골을 넣거나 공을 떨어트려 슛 찬스를 만드는 단순한 작전이다. 김재한 선수는 발재간은 없었다. 그는 오로지 헤딩만 생각했는지, 무릎쯤 오는 공도 머리로 들이 빋았다. 어쩌다 발로 골을 넣으면 그게 화제가 될 정도였다. (현재 대한축구협회 상근 부회장) 우리 국민들의 키와 체격이 커졌다니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세계 식량난에 대비해 인류 전체가 키와 체격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듣고 보면 그도 그럴듯하다. 키와 체격이 커지는 게 일하거나 보기에는 좋지만, 인류 전체의 미래를 보면 꼭 반가운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미래의 일이다. 이미 커진 키와 체격을 줄일 수는 없지 않은가? <묻는다일보 배재탁 ybjy0906@naver.com>
우크라니아 국민들을 존경합니다
우크라니아 국민들을 존경합니다지난 해 전 세계인들은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당시 아슈라프 가니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은 탈레반이 공격을 개시하자 가장 먼저 해외로 도망갔다. 아프간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이 있는 대통령이 부정부패로 개인 재산만 축적하다가, 여러 대의 트럭에 달러를 싣고 도주해버렸다고 한다. 정부군은 무기를 보린 채 미리 도망갔고, 탈레반은 교전조차 없이 수도를 함락했다.미군이 철수하는 공항에 아프간인 수 만명이 몰려 이룩하는 비행기에 매달렸다가 떨어져 사망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아비규환이었다. 정부군과 일부 고위 장교는 탈레반에 의해 처형됐고, 현재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은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필자를 비롯해 이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했다.“저럴 것 같으며 목숨을 걸고 탈레반과 싸웠어야 하지 않았나?”불과 6개월 후 이번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아프간에서 충격을 받은 세계인들은 러시아군이 3~4일이면 우크라이나를 장악할 것이라 생각했다.하지만 우크라이나는 달랐다.우크라이나 질렌스키 대통령은 미국의 ‘해외로 대피하라’는 권유를 뿌리치고, 결사 항전을 독려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군인과 국민들의 저항도 거세다. 한 섬에 있던 200명의 우크라이나 젊은 장병들은 러시아의 투항 요구를 거부했다가 공격을 받아 전멸했다. 러시아 탱크의 진격을 막기 위해 목숨을 바쳐 다리를 폭파한 군인도 있다. 십 여 만명의 시민이 자원 입대하고, 어떤 젊은 부부는 일부러 결혼을 앞당겨 한 후 각자 전쟁터로 향했다고 한다. 심지어 시가전에 대비해 무기가 없으면 화염병으로 싸운다며, 화염병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이런 강력한 저항을 예상하지 못했던 러시아와 푸틴이 당황하기 시작했다.모든 이에게 감동을 주고 있고, 전세계에선 반전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다.필자는 지난해 12월 13일 ‘3차대전은 우크라이나?’라는 제목의 칼럼을 올린 바 있다.‘원래 우크라이나는 비옥한 농토에 자영농이 많았는데, 소비에트 혁명 이후 군인들이 들이닥쳐 농토를 빼았고 농산물을 모조리 탈취해 갔다. 반항하면 단호히 처형했고, 자기가 농사짓고도 굶어 죽는 사망자만 400만명 정도다.’라는 내용이었다.우크라이나 사람들이 구 소련을 싫어하고 서방측에 가까워지려는 이유다.어쨌든 막강한 러시아를 상대로 장렬히 싸우고 있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존경심을 보낸다.한편 이런 생각도 든다.“우리나라에서 전쟁이 나면 대통령과 국민들이 도망가지 않고 장렬히 싸울까?”<묻는다칼럼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한시적 물가 상승일까?
한시적 물가 상승일까? 요즘 물가가 무서울 정도로 오르고 있다. 주로 우크라이나 전쟁때문이다. 곡물값과 에너지(원유 천연가스 등)값 상승이 주도하고 있다.우크라이나는 ‘유럽의 빵공장’이라고 할만큼 곡창지대이며 곡물 수출국이다. 2020년 전세계 수출량 기준 옥수수는 13.2%로 4위, 밀은 8%로 5위다. 밀은 러시아가 세계 1위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수출량은 전세계의 40%에 이른다.게다가 우크라이나는 이번 봄에 파종을 못하면서, 가을 수확마저 접어야 하는 입장이다. 요즘 식당이나 빵집을 가면 가격이 오르지 않은 곳을 찾기 힘들다.5~8천원 사이의 음식은 약속이나 한 듯 1천원 정도씩 올랐다. 순식간에 13~20%씩 오른 셈이다. 곡물과 에너지 값이 오르기 때문에 이해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앞으로 얼마든지 더 오를 수 있다는 게 문제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종료되면 식품이나 음식 가격이 제자리를 찾을까?그동안 밀 가격이 오르면 어김없이 라면 등 가공식품이나 짜장면 등 음식값이 올랐다. 하지만 밀 가격이 내렸다고 해서 가공식품이나 음식값이 내린 경우는 보지 못했다. 물론 밀값만 찔끔 내리고 다른 요소들이 모두 인상되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채솟값처럼 수요 공급에 따라 가격이 오르내리거나, 원윳값이 내리면 국내 기름값도 내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이렇게 가공식품이나 음식 가격은 하방 경직성이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곡물과 에너지 가격이 6개월에서 1년 정도 후엔 제자리(물가 상승률 정도는 빼고)로 돌아왔다고 가정해 보자.그러면 가공식품이나 음식 가격이 내려갈까?필자는 아니라는데 손들고 싶다. 어디까지 오를지 모르지만, 가장 오른 가격으로 고착될 가능성이 크다. 인플레이션이나 스태그플레이션의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사실 이런 물가 상승은 필자가 성인이 된 후 처음인 것 같다.그래서 지금의 물가 상승이 너무나 무섭게 느껴진다. 이젠 생존을 위해, 먹는 거라도 아끼는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동안 먹던 걸 그리고 먹고 싶은 걸 못 먹는 건 참으로 서럽다.글로벌 시대를 사는 소시민의 안타까운 자화상이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대도’도 한낱 도둑일 뿐
‘대도’도 한낱 도둑일 뿐한때 '대도(大盜)'로 불렸던 조세형이 출소 후 한 달여 만에 또 절도를 저지르다 경찰에 붙잡혔다. 하지만 대도는 무슨 개뿔. 일개 도둑일뿐인 조세형은 84살 나이에, 이번에 구속되면 17번째로 철창신세를 지게 된다.조세형은 1982년 구속돼 15년 수감생활을 마친 뒤 선교활동을 하며 새 인생을 시작하는 척했지만, 결국 도둑질을 계속 저질러 왔다. 그동안 16번이나 교도소를 들락거렸다.조세형은 1980년 전후 사회 고위층만을 상대로 절도 행각을 벌여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다. 당시 국민들은 조세형이 털었던 물건들을 보고 ‘(사회 고위층 피해자들이) 얼마나 해 처먹었으면, 저런 대단한 물건들이 집에서 쏟아져 나왔겠나?’ 하는 생각과, 함께 통쾌함(?)을 느꼈다. 피해자들이 자기 것이라고 주장을 못 할만한 상황이기 때문이다.게다가 조세형은 ‘도둑질은 하되 절대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는 나름대로의 철학(?)을 가지고, 들키면 그냥 달아났다고 한다. 그래서 일반 좀도둑과는 다르게 ‘大盜(대도 – 큰 도둑)’이란 별명이 붙여졌다.하지만 도둑은 도둑이었다. 출소 후에도 ‘제 버릇 개 못 주고’ 도둑질을 꾸준히 이어 왔다. 열심히 일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자신의 특기(?)를 살려 이집 저집을 털었다. 하지만 이번엔 사회 고위층만 턴 게 아니었다. 대도는 결국 좀도둑으로 전락했다.80년대만 해도 CCTV 같은 게 없어서 도망가기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평생을 도둑질 외길 인생을 걸어오며, 도둑질에 이골이 난 조세형도 번번이 잡혔다.84살 나이로 출소한 지 한 달만에 도둑질하다가 또 잡힌 조세형.‘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맞나 보다.<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연탄’하면 떠오르는 - ① 연탄재
‘연탄’하면 떠오르는 - ① 연탄재필자가 오후에 자주 찾는 곳이 인현시장이다. 사무실에서도 가깝고 비교적 식사가 저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연탄 기부 배너를 보게 되었다. (사진 참조) 요즘 연탄 한 장에 800원이란 사실도 알게 되었다.불현듯 어렸을 때 연탄 생각이 났다. (또 ‘라떼’ 얘기임)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거의 모든 가정이 연탄을 땠다. 연탄으로 요리도 하고, 겨울에 방도 덥혔다. 보통 연탄을 사용하는 온돌식이었다. 당시엔 기름값이 워낙 비쌌고, 도시가스도 없었기 때문이다. 보일러가 있어도 대개 연탄 보일러였다.그런데 연탄을 사용하는 게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연탄은 부피가 커서 광(창고) 같은 공간이 있어야 했다. 물에 약해서 비를 맞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12월 초 쯤 김장과 함께, 연탄을 100장 이상 광에 채워 넣어야 월동 준비가 끝났다. 게다가 아궁이마다 하루에 한두번씩 연탄을 갈아 줘야 해서, 겨울에 어머니들은 꼭 잠자다 한번 깨서 연탄을 갈아줘야 했으니 얼마나 힘드셨을까 싶다.그런데 연탄재도 큰 문제였다. 시인 안도현은 ‘너에게 묻는다’라는 제목으로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라는 유명한 시를 남겼지만, 사실 연탄재는 정말 쓸모가 없었다.가정에서 배출되는 쓰레기의 대부분이 연탄재였다. 간혹 쓸데가 있었는데, 겨울에 눈이 왔을 때 모래 대용으로 빙판이나 계단에 부숴서 뿌리는 정도였다. 그 많은 연탄재는 정부 입장에서도 골칫거리였다. 언젠가 연탄재를 이용해 벽돌을 생산하는 기술이 개발되었다는 뉴스가 있었으나, 흐지부지된 것으로 보아 아마도 생산성이나 품질에 문제가 있었던 듯하다.70년대 중반 이후 중앙난방을 하는 아파트가 많아지고 가스 보일러가 보급되면서 연탄은 사라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지금도 수만 가구가 연탄을 사용하고 있는데, 대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로 차도 못 들어가는 비좁은 길에 집에 산다. 그래서 연탄 배달 자원봉사자들이 고마울 수밖에 없다.어쨌든 새까만 연탄이 불을 때고 나면 허옇게 변해서 버려지는 것이, 사람도 검은 머리가 허옇게 변하면서 쓸모없이 되어 가는 게 닮은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이 든다.<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연탄’하면 떠오르는 - ② 연탄가스
‘연탄’하면 떠오르는 - ② 연탄가스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날씨가 추워지면 난방을 위해 아궁이에 연탄을 때야 했다. (그 당시엔 “때다‘라는 표현을 썼다) 그런데 연탄을 땔 때 발생하는 연탄가스가 가장 큰 문제였다. 연탄가스는 연탄이 제대로 연소가 되지 못해 발생하는 일산화탄소다. 심하면 사망에 이르거나 뇌 손상을 입기 때문에 정말 조심해야 했다. 사람들은 연탄을 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연탄가스를 잘 막는 수밖에 없었다. 연탄가스는 주로 방바닥과 벽 사이의 작은 틈에서 들어오기 때문에, 특히 구석구석을 장판지로 꼼꼼히 붙여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보이지 않는 틈으로 가스가 새들어와, 연탄가스의 피해를 안 겪어 본 사람이 드물 정도였다. 필자도 10살 쯤에 한번 가스를 맡아서(당시엔 ’중독‘이란 표현보다 ’맡았다‘ 또는 ’마셨다‘는 표현을 썼다) 하루 종일 머리가 띵했던 적이 있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다고 했다. 정확한 통계는 모르겠지만, 연탄가스 사망자는 주변에서도 가끔 발생하는 흔한 일이었다.그러던 어느 날 신문에 관련 기사가 대서특필했다. ’동치미 국물‘ 또는 ’김칫국물‘이 연탄가스에 특효라는 보도였다. 연탄가스를 맡고 위중한 사람이 동치미 국물을 마시고 나았다고 하자, 여기저기서 이를 입증하는 보도도 뒤따랐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입증은 되지 못했다.그런데 희한하게 대입 수험생들이 대입 시험 직전에 연탄가스를 맡는 경우가 많았다.평소에 공부를 잘하는 학생인데 운이 없게 연탄가스를 맡아서 시험을 잘 못 봤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뻥‘이었다.당시의 어머니들은 자식들이 공부 잘하는 게 자랑이었다. 만약 초등학교 때 반에서 10등 정도 하는 학생이 어쩌다 한번 시험에서 반에서 3등 정도 하면, 그의 어머니는 주변에 ’우리 애가 반에서 3등 안에 든다‘고 자랑한다. 문제는 평소엔 10등 정도 하는 그 학생이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대개 석차가 20등 밑으로 점점 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이미 주변에 얘기해 놓은 게 있어서, ”요즘도 공부 잘하지? 반에서 3등 안에 든다며?”라는 질문을 받으면 자존심 상 “그렇다”고 얘기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학 시험 결과가 나오면 ’그 전날 연탄가스를 마셔서 시험을 잘 못 봤다‘라고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어쨌든 연탄과 함께 연탄가스도 사라졌다.대개 뭔가 사라지는 건 아쉽지만, 연탄재와 연탄가스는 전혀 아쉽지 않고 반갑기만 하다.<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