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 | 아시안게임 ➀ - 예전에
26-09-16 10:06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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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 ➀ - 예전에
2026 아이치 나고야 아시안게임이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일부 구기 종목으 경우 예선은 이미 진행 중이다.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아시안게임의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 올림픽에선 메달을 거의 못 땄지만, 아시안게임에선 성적이 좋았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이 참가하기 전까진 일본의 독무대였는데, 한국은 1954년 마닐라 1966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종합 2위의 성적을 거둘 정도였다.
특히 당시엔 체제 선전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선수들을 육성하고 국민에게도 적극 홍보했다. 메달을 딴 선수들은 카퍼레이드를 했다.
국민들도 아시안게임 성적에 관심이 컸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기를 생중계하지 못해서 뉴스 속보로 메달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TV 뉴스 도중, 앵커가 갑자기 “또 금입니다!”라고 외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온 국민이 “금메달이래!” 하며 환호했다.
1986 서울아시안게임은 88올림픽의 리허설 성격이 컸다. 또한 TV에서만 보던 큰 대회를 대한민국 서울에서 개최한다는 것만으로도, 국민들은 충분히 감격할만 했다. 예전엔 복싱에서 금메달을 많이 땄는데,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선 복싱 전종목 석권을 하기도 했다. (지금은 ‘쌍팔년도’ 얘기가 됐지만)
특히 1986년 아시안게임에선 남자 탁구 경기(단식, 복식)가 압권이었다. 결승에서 세계 랭킹 1위권의 중국 선수들을 이기는 장면이 워낙 강렬해서, 지금도 국민들 기억에 남아 있다. (사진) 전 국민이(?) 이 중계를 보며 한국 선수들이 득점할 때마다 함성을 질러, 온 동네가 들썩일 정도였다. 86아시안게임에선 한국의 금메달 수가 중국과 딱 1개 차이가 나며, 대회 내내 열광의 도가니로 몰고 갔다.
한편 88올림픽을 위해 선수들을 미리 집중 투자 육성한 덕에, 1986 서울아시안게임 직전인 1984년 LA올림픽에서 한국이 금 6개 은 6개 동 7개로 종합 10위를 기록하는 놀라운 성과를 냈다. 이전까지만 해도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양정모 선수가 ‘운 좋게’ 레슬링 자유형 62킬로그램급 금메달을 딴 게 유일한 금메달이었기 때문에, 한 대회에서 금메달을 6개나 딴 건 정말 엄청난 사건이었다. (소련이 불참한 것도 약간의 도움이 됐을 수 있지만)
이후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을 거치며, 국민들의 눈높이가 슬슬 올라가기 시작했다.
중국이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이후에도 한국의 아시안게임 성적은 대체로 좋았디. 1998년 방콕 대회부터 2002년 부산 2006년 도하 2010년 광저우 2014년 인천 대회까지 무려 5회 연속으로 일본을 제치고 종합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투기 종목에서 메달을 쓸어 담던 한국은 힘이 빠지기 시작했고, 올림픽에 눈높이가 맞춰진 국민들의 아시안게임에 대한 관심은 예전만 못하게 줄었다. 그래서인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과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2023년 개최)에선 종합순위 2위 자리를 일본에 내어주었건만, 국민들은 별 반응이 없었다.
<다음에 계속>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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