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과 청은 누구의 역사인가?
얼마 전에 ‘금나라의 시조는 신라 출신’이라는 얘길 들었다.
신라가 망할 즈음에 신라인(마의태자 또는 왕실 주요 인사라는 설도 있다)들이 만주로 건너가 여진인들과 함께 세운 나라가 ‘금나라’라는 것이다. 그래서 국호도 신라의 주요 성씨인 금(金)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금나라의 정사인 『금사』 「세기(世紀)」에는 금나라 시조에 대해 "금나라 시조의 이름은 함보(函普)인데, 처음에 고려(高麗)에서 왔다."고 적었다. 당시 중원 왕조들은 한반도의 국가를 통칭하여 '고려'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았으니, 신라를 고려로 불렀을 가능성이 크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에서는 금나라의 국호인 '금(金)' 자체가 신라의 국성인 '김(金)'씨에서 유래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또한 완안부의 시조 함보가 신라에서 왔다는 점을 강조하며, 금나라와 청나라(후금)의 뿌리가 신라에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
송나라 사신으로 여진에 다녀왔던 홍호(洪皓)가 쓴 『송막기문(松漠紀聞)』에는 "여진의 추장은 신라 사람이다."라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봐서, 당시 여진족 내부에서도 그들의 지배층이 신라 계통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음을 시사한다.
또한 발해가 멸망한 후 흩어졌던 여진족이 다시 뭉친 금나라의 건국 초기, 금나라를 세운 아구다는 발해인들에게 "여진과 발해는 본래 한 집안이다(女眞渤海本同一家)"라고 선언했다. 그들 사이에 공유되는 혈통적 공감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주장이었다.
그러면 금나라도 발해처럼 우리 역사일까?
(중국은 발해는 물론 고구려도 그들의 역사라고 주장하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역사학자들은 발해와 금나라는 다르다고 한다.
우선 발해는 우리 역사에서 명확한 '고구려의 계승자'다. 대조영을 필두로 한 고구려 유민들이 건국을 주도했으며, 스스로 일본에 보낸 국서에 '고려(고구려) 국왕'임을 명시했다. 또한 고구려 특유의 문화와 관제 시스템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비록 피지배층인 말갈(여진)족이 다수였으나, 이들은 고구려 시대부터 한 울타리에서 생사를 함께했던 이들이었으므로, 발해는 고구려의 강역과 정신을 계승한 한국사의 당당한 한 축(남북국 시대)으로 정의한다.
하지만 금나라는 좀 다르다. 금은 신라의 혈통적 뿌리는 인정할 뿐, 국가 정체성은 '여진(완안부)'에 두었다. 이후 여진 고유의 풍습을 유지하면서도 점차 중원(송)의 문화를 흡수해 가며, 한민족과 점점 분리되어갔다.
하지만 여진(말갈)족은 동이족이나 고조선 또는 부여 시대에도 크게 보면 모두 같은 민족이나 구성원이었고, 고구려와 발해 시대에도 같은 백성들이었다. 따라서 생활문화와 언어가 같거나 아주 비슷했다고 한다.
대표적인 게 온돌이다. 삼국시대인 쪽두글 형태였는데, 이를 여진은 ‘항(炕)’이란 형태에서 ‘금’나라까지 이어졌다. 또한 활쏘기, 매사냥 등이 이어져 왔고, 언어의 유사성은 고려시대까지 지속되었다. 즉 고구려와 신라가 통역 없이 뜻이 통했던 것처럼, 고려와 여진 사람들 간에도 뜻이 통했다고 할 정도라고 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촌’ 정도의 민족적 동질성은 있었던 것 같다.
금나라 멸망이후 만주에서 일어난 금(후금)은 금나라의 계승자임을 자처했다. 하지만 이때의 후금은 여진의 언어와는 변화가 생기면서(조선의 말도 변화가 생겼다) 언어가 전혀 통하지 않게 되었다.
또한 후금이 조선을 침략하면서, 조선은 완전히 만주족에게 등을 돌리게 된다. 만주족을 원수로 생각하며, 약간이라도 남아 있을 지 모르던 민족적 우대감마저 완전히 자취를 감춘다.
하지만 그건 당시 조선인들 생각이고, 현대의 우리는 생각이 다를 수 있다.
바로 “여진(만주)족이 남이가?” 하는 생각이다.
또한 같은 민족끼리도 싸우는 경우는 아주 많다.
하지만 멀리 동이족까지 넓히지 않더라도, 최소한 고조선 시대부턴 같거나 비슷한 언어와 문화를 가진 한 나라의 백성이었다.
지금 중국엔 만주족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중국에 흡수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아 있는 만주족들의 가슴에 불을 지핀 영화가 있었는데, 바로 한국의 ‘남한산성’(사진)이란 영화다. 영화 남한산성에선 후금 사람들이 만주어를 쓴다. 중국에선 모든 사극에 현대의 중국어를 사용하는데, 한국영화에서 만주어를 듣고 크게 감동했다고 한다.
원나라가 중국의 역사가 아니듯, 금과 청 역시 만약 중국 영토에서 분리된다면 그땐 중국의 역사가 아니다.
즉 금과 청은 여진족의 역사이고, 여진족은 과거 한민족과 같은 백성이었다. 만약 고구려나 발해가 지속되었다면, 지금은 한 민족과 국민으로 융합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같은 문화와 언어를 가졌던 여진(만주)족의 역사를 우리 또는 사촌의 역사로 연구하고, 국사 교과서에도 언급하면 어떨까 싶다.
중국의 동북공정에도 대항할 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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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중국은 발해는 물론 고구려도 그들의 역사라고 주장하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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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역사학자들은 발해와 금나라는 다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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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우선 발해는 우리 역사에서 명확한 \u0027고구려의 계승자\u0027다. 대조영을 필두로 한 고구려 유민들이 건국을 주도했으며, 스스로 일본에 보낸 국서에 \u0027고려(고구려) 국왕\u0027임을 명시했다. 또한 고구려 특유의 문화와 관제 시스템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비록 피지배층인 말갈(여진)족이 다수였으나, 이들은 고구려 시대부터 한 울타리에서 생사를 함께했던 이들이었으므로, 발해는 고구려의 강역과 정신을 계승한 한국사의 당당한 한 축(남북국 시대)으로 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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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하지만 금나라는 좀 다르다. 금은 신라의 혈통적 뿌리는 인정할 뿐, 국가 정체성은 \u0027여진(완안부)\u0027에 두었다. 이후 여진 고유의 풍습을 유지하면서도 점차 중원(송)의 문화를 흡수해 가며, 한민족과 점점 분리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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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하지만 여진(말갈)족은 동이족이나 고조선 또는 부여 시대에도 크게 보면 모두 같은 민족이나 구성원이었고, 고구려와 발해 시대에도 같은 백성들이었다. 따라서 생활문화와 언어가 같거나 아주 비슷했다고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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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대표적인 게 온돌이다. 삼국시대인 쪽두글 형태였는데, 이를 여진은 ‘항(炕)’이란 형태에서 ‘금’나라까지 이어졌다. 또한 활쏘기, 매사냥 등이 이어져 왔고, 언어의 유사성은 고려시대까지 지속되었다. 즉 고구려와 신라가 통역 없이 뜻이 통했던 것처럼, 고려와 여진 사람들 간에도 뜻이 통했다고 할 정도라고 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촌’ 정도의 민족적 동질성은 있었던 것 같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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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금나라 멸망이후 만주에서 일어난 금(후금)은 금나라의 계승자임을 자처했다. 하지만 이때의 후금은 여진의 언어와는 변화가 생기면서(조선의 말도 변화가 생겼다) 언어가 전혀 통하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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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또한 후금이 조선을 침략하면서, 조선은 완전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