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 혁명, 또 다른 독재의 시작?
26-03-05 10:54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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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또 다른 독재의 시작?
역사상 많은 혁명이 기득권 타파를 외쳤으나, 권력을 잡은 혁명 세력은 스스로가 새로운 ‘철벽 기득권’ 즉 ‘독재’의 길을 택했다.
프랑스 혁명의 혼란 속에 스스로 황제가 된 나폴레옹은 유럽 전체를 전쟁터로 만들었다.
노동자 해방을 외쳤던 볼셰비키는 러시아 혁명을 성공시켰으나,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감시 체제와 대숙청을 통해 가장 지독한 독재를 낳았다.
반외세와 반독재를 기치로 내걸었던 쿠바 혁명에서도, 카스트로 형제간 권력 세습으로 이어지며 반세기 넘는 장기 집권의 늪에 빠졌다.
이렇게 혁명은 언제나 ‘해방’을 약속하며 시작되지만, 종종 그 끝은 이전보다 더 지독한 ‘억압’ 즉 ‘독재’로 귀결되곤 한다.
1979년 이란 혁명은 다른 혁명보다 더욱 충격적이었다. 세속적인 이데올로기 대신 ‘신의 권위’ 즉 ‘신정’으로 회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신정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요즘 시대에 신정이라니? 놀랍기만 하다.
하메네이 체제에서 정책 실패나 부패에 대한 비판은 정치적 반대가 아닌 ‘신의 섭리에 대한 도전’즉 ‘신성 모독’으로 간주되었다. 이는 비판 세력의 입을 막는 가장 강력한 정신적 가스라이팅이 되었다.
또한 신앙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창설된 혁명수비대는 현재 이란 경제의 절반 이상을 장악한 거대 카르텔이 되었다. 이들에게 혁명 정신은 사라진 지 오래며, 오직 자신들의 지분과 이권을 지키기 위한 ‘경제적 독재’만 남았다.
최고 지도자가 통제하는 130조 원(일각에선 그것의 두 배라고 주장하기도 한다)나 되는 천문학적 비자금 ‘세타드(Setad)’는 국민을 위해 쓰인 적이 없다. 오직 정권 유지와 감시망 구축을 위한 자금으로 쓰이며 ‘종교를 이용한 축재’의 표본이 되었다.
특히 하메네이 사후 차남 모즈타바가 후계자로 떠오른 현상은 이란 혁명의 마지막 남은 신념마저 벗겨냈다. 팔레비 왕조의 세습을 비난하며 세워진 공화국이 다시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주는 모습은, 이들이 말한 혁명이 결국 ‘주인만 바뀐 독재’였음을 자인하고 있다.
즉 차남 모즈타바의 후계 세습 시도는 종교적 필요가 아닌, 하메네이 가문의 부정 축재를 은폐하고 혁명수비대의 이권을 영속시키기 위한 기득권 세력의 생존 전략일 뿐이다.
이란인들은 묻고 있다. “누구를 위해 혁명을 했는가?”
이란인들이 봉기하기에 충분한 명분이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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