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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장은 ➀ - 예전엔
필자가 고등학교 졸업할 당시, 당구는 성인의 상징과 같았다. 미성년자(고등학생까지) 출입금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성인이 되는 관문을 통과하는 것처럼, 거의 모든 졸업생들은 담배와 술과 함께 당구를 시작했다. (이전부터 했어도, 공개적으로 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임)
당구장도 정말 많았다. 대로변이면 어디서나 2층의 당구장을 찾을 수 있었다. (지하엔 습기가 차서 공이 잘 굴러가지 않는다며 피했다) 누구나 워낙 흔하게 보다 보니, ※를 아예 당구장 표시라 칭하기도 했다.
당구장엔 늘 젊은 남성들로 늘 붐볐고, 담배 연기가 가득 자욱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당구에 미치는 경우도 많았다. 자려고 누우면 천장에 당구공이 왔다갔다 하며, 삼각함수를 공부한다는 농담을 했다.
하지만 공부에 매진해야 하는 재수생들까지 당구에 빠져, 재수를 망치는 경우도 흔했다.
당시에도 일본식 용어가 많았다. 마세이 오시 히까끼 무시 가라꾸 등 발음이 맞는지도 모르고 엉터리라도, 그런 단어를 말하면 마치 뭐라도 된 듯 여겼다. 지금은 쓰리 쿠션을 많이 하지만, 예전엔 주로 사구를 쳤는데 마지막은 쓰리 쿠션 또는 뱅크샷(가라꾸)으로 마무리해야 게임을 이길 수 있었다.
당구장 한쪽에는 꼭 도박을 하는 사람들이 한 테이블 정도 있었다. 무슨 용도인지는 모르겠지만 화투패까지 들었다 놨다하는데, 눈빛이 다른 손님과는 확연히 달랐다. 돈이 걸리면 그렇게 되나 보다.
당구장에서 주문해 먹는 짜장면은 참 맛있었다. 여의도 같은 오피스 타운의 당구장에서는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에 당구장에서 짜장면으로 점심을 해결하며 겸사겸사 당구하는 모습도 많았다.
당시엔 당구 전용 장갑이 없어서, 작업용 목장갑을 끼거나 석회가루를 묻혔야 했다. 석회가루도 처음엔 석회가루가 들어 있는 주머니가 많았는데, 어느 순간 석회 덩어리가 등장해 그걸 만지면 석회가루가 손에 묻어나며 가루 날림을 줄여줬다. 당구를 하고 나면 당연히 석회 가루가 옷에도 묻었다. 초크 가루까지 합쳐져, 본의 아니게 당구를 쳤다는 표시를 냈다.
필자가 처음 당구장을 갔을 때만 해도 당구공이 두 가지였다. 국산공(코스모스공/막공)과 고급 벨기공이다. 게임 가격도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벨기공이란 건 ’벨기에공‘ 즉 벨기에에서 제작되어 수입한 공이란 뜻이었다. 제미나이에게 물어보니, 벨기에의 당구공 제조 전문 기업인 아라미스(Aramith / Saluc 사)에서 제작한 고품질 당구공을 의미한단다. (지금도 전세계 대표 당구공이라고 한다) 이후 빠른 속도로 모든 당구공이 벨기공으로 바뀌며, 굳이 구분을 하지 않아도 벨기공이 당연한 것이 됐다.
<다음에 계속>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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