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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다 유전 대(對) 환경 ② - 연산군 26-09-04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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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 대() 환경 - 연산군

 

역대 최악의 폭군이라고 하는 연산군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일단 생김새부터 일반적 예상과 다르다.

조선 후기 문신 이덕형의 죽창한화에는 어린 시절 연산군을 직접 본 노인의 회상이 실려 있는데, "얼굴빛은 백옥처럼 희고 수염이 적었으며, 키가 크고 마른 체형에 눈가에 붉은 기운이 있었다"라고 나온다.

연산군일기에는 한양에 올라온 시위군(호위병)이 연산군을 보고 "임금이 허리와 몸이 가늘어서 위엄이 없다"고 사석에서 뒷말을 했다가, 의금부에 잡혀간 기록이 있다고 한다.

즉 덩치가 크고 듬직한 체구를 선호했던 당시 조선 기준에서는 연산군이 너무 마르고 하얗다는 이유로 위엄이 적다고 여겼고, 붉은 눈가와 미끈한 체형 그리고 뽀얀 피부가 요즘 아이돌급 외모였음이 여러 기록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즉 키는 아버지 성종을 닮아 컸는데, 얼굴이나 체격은 어머니 윤씨를 닮아 희고 가늘었다는 얘기다. 폭군이라 해서 무지막지한 외모를 생각했지만, 실제론 여성스러운 외모의 완벽한 사이코패스 스타일이었다.

 

19세에 즉위한 연산군은 초기엔 유교적 성군의 모습을 갖추려 애썼다고 전한다. ‘연려실기술에는 "즉위 초에는 모두 영명(英明)한 임금이라 칭송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다. 아침마다 신하들과 정사를 논하는 조회에 성실히 참석했고, 유학을 공부하는 경연에도 착실히 임했으며, 세종·성종 대의 유산인 각종 서적 편찬 사업을 이어받아 마무리했다.

또한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그의 시문(詩文)을 보면, 시적 감수성과 문학적 재능이 뛰어났다고도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지 성종으로부터 물려받은 기질이 슬슬 나오기 시작한다.

우선 호색한(好色漢)’ 성종의 피를 물려받아, 즉위 초기부터 후궁을 두거나 궁궐 안에서 연회를 열고 기생을 불러 즐겼다. 여기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성종이 밤마다 술 마시고 여자를 밝히던 모습을 봐온 가정교육도 한몫했을 것이다.

게다가 늘 어머니의 사랑이 부족했던 애정 결핍의 연산군이었다. 노비 출신에 여러 번 시집을 가고 자식까지 둔 기생 장녹수에 눈이 멀어 버린다. 장녹수는 연산군보다 10살 정도 연상이었는데, 연산군의 결핍을 아이처럼 달래주기도 하고 때로는 응석을 받아주며 독점적인 총애를 얻었다.

이에 더해 연산군은 내시 몇 명만 데리고 비구니들의 거처인 정업원에 몰래 들어가 음행을 저지르기에 이른다.

 

한편 연산군은 왕권을 견제하려는 언관(사간원·사헌부·홍문관 3) 및 사림파와의 갈등이 지속적으로 누적되었다. 연산군은 남의 간섭을 받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이는 어머니 윤 씨의 참지 못 하는성품을 물려받은 게 아닌가 싶다.

결국 쌓이고 쌓이던 불만은 무오사화(1498)라는 불리는 대대적으로 숙청사건을 일으킨다.

 

나아가 연산군이 어머니 폐비 윤씨에 대한 전말을 알고 난 이후엔 완전히 정신줄을 놓으며 미치광이가 된다. 갑자사화(1504)라는 무자비한 복수극을 벌이는가 하면, 채홍사를 만들어 흥청망청 놀다가 결국 중종반정(1506)으로 폐위되고 만다.

 

연산군은 강화도로 유배되어서도 못돼먹은 성질을 다스리지 못하다가, 불과 두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31세였다. 고작 31년 동안 참으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

 

요약하면 연산군은 외모에 있어, 키는 아버지를 닮고 체형과 얼굴은 어머니를 닯았다. 여색을 밝힌 건 아버지 성종의 유전과 가정환경 모두의 영향을 받았으며, 참지 못하는 기질은 어머니 윤 씨로부터의 유전이었다. 장녹수에게 빠진 건, 어머니가 없었던 환경 탓이라고 본다.

전체적으로 볼 때 연산군은 유전적 기질이 약간 더 많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광해군의 경우엔 환경적 요인이 더 커 보인다.

광해군은 후궁의 아들로 태어나, 임진왜란 발발 후 갑자기 세자에 책봉된 후 목숨을 걸고 전국을 돌며 분조를 이끌었다. 이후 선조로부터의 엄청난 핍박을 견딘 후 보위에 오르지만, ‘적자영창대군과의 갈등으로 압박을 받는다. 영창대군을 죽인 후에는 역모와 암살의 위협속에서 살았다. 이렇게 평생 다져진 마음(?)때문에, 폐위 후에도 18년이나 더 살았다.(향년 만 66세로 장수했다) 그동안 아들 부부와 아내가 먼저 사망하고, 온갖 멸시를 받으며, 병자호란을 지켜봤다. 적장자로 태어나 온실에서만 자랐던 연산군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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