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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다 유전 대(對) 환경 ① - 연산군의 부모 26-09-03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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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 대() 환경 - 연산군의 부모

 

사람에게 유전이 중요한지, 아니면 환경이 중요한지에 대한 논쟁은 끝이 없다.

다만 유전과 환경 모두 사람을 결정짓는 데 중요한 요소임은 틀림없다는 생각이다.

유전과 환경의 영향에 대해 얘기하게 된 계기는, 다름아닌 폭군 연산군에서 비롯됐다. (이하 내용은 역사적 사실과 필자의 사견을 혼합한 것이니, 토 달지 마시길...)

 

예종이 즉위 12개월 만에 불과 20세 젊은 나이로 요절한 후, 조카인 성종이 13(1469)에 왕위에 올랐다. 당시 성종의 나이가 너무 어려, 할머니 정희왕후가 수렴청정을 했다.

성종에겐 이미 첫 부인인 공혜왕후가 있었는데, 한명회의 딸이었다. (성종은 원래 3순위였으나, 권력자였던 장인 한명회와 정희왕후의 합작으로 보위에 올렸다는 설이 있다)

공혜왕후는 어린 나이에 왕비가 되었음에도 아버지 한명회와 달리(?), 시어머니와 할머니 등 왕실 어른들을 극진히 모셨다. 후궁들에게도 질투를 하지 않고 옷감을 나눠주는 등, 인자한 성품으로 궁중의 칭송을 받았다.

하지만 성종이 즉위 후 수년이 지나도 공혜왕후에게서 아이가 생기지 않자, 왕실의 후사를 잇는다는 명목으로 1473(성종 4, 17) 후궁들을 간택해 입궁시켰다. 이때 후궁(숙의)으로 들어온 인물 중 한 명이, 바로 훗날 연산군의 어머니가 되는 (폐비) 윤씨였다.

 

우선 성종의 외모에 대해 실록에서는 '미풍의(美風儀) 준정(峻整)'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용모가 아름답고 풍채가 훤칠하며 당당하다"는 뜻이다. 성종은 관대하고 온화한 성품에 어울리는 훤칠한 호남형 외모로, 조선 양반 사회에서 생각하는 '덕을 갖춘 군주의 용모'에 딱 맞았다.

실록에 따르면, (폐비) 윤씨는 성종에게 "전하의 용모가 아름다우시니, 훗날 나이 들어 늙으시면 반드시 여색을 탐하고 후궁을 바치려는 자들이 몰려들 것입니다"라고 직접 말할 정도였다.

 

한편 성종은 밤과 낮이 완전히 다른 인물이었다.

낮에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경연에 참석하며 유교적 삶을 살았다. 하지만 밤만 되면 술과 여색으로 밤을 지샜다. 18세가 되던 해 할머니 정희왕후의 수렴청정이 끝나고 친정을 시작하면서, 성종은 왕으로서 권력을 행사함과 동시에 벌써부터 후궁을 적극적으로 늘려갔다.

 

오죽하면 실록에는 성종이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거나 후궁의 처소에만 머무르는 것을 두고, 신하들이 "전하께서 여색을 너무 가까이하여 건강을 해치실까 두렵다"라며 간언하는 기록이 수차례 등장한다고 한다. 성종은 결국 12명의 부인(왕비 및 후궁)에게서 28명의 자녀(1612)를 두었을 만큼, 역대 조선 국왕 중 손에 꼽힐 정도로 여색을 많이 밝힌 임금이었다.

성종은 재위 25년간 유교적 모범 군주(도학군주)’를 지향하여 매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경연(학문 토론)과 학문과 정사에 매달렸지만, ‘왕실의 후사를 잇는다는 명목으로 술과 여색을 매우 즐겼다. 이는 과도한 정사 스트레스와 더불어 몸의 면역력을 떨어뜨리고 만성 피로와 종기를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어, 결국 만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그럼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의 외모는 어땠을까?

성종실록에는 윤 씨의 외모에 대해 "용모가 아름다워(미색, 美色) 왕의 은총을 독점했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또한 성종이 반대를 무릅쓰고 후궁이었던 윤 씨를 두 번째 왕비(계비)로 맞아들인 것을 볼 때, 상당한 미모와 매력의 소유자였음을 알 수 있다. (만약 주변의 의견에 따라 정식으로 다른 계비를 맞이했으면, 조선의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윤씨는 중전이 됐으면, 임금이 만날 다른 후궁들과 주색잡기를 해도 모르는 척 했어야 했다.

기록에 따르면 폐비 윤씨는 다른 후궁들을 극도로 질투하고 감정의 기복이 매우 컸는데, 성종과 다투다 그만 용안(왕의 얼굴)에 손톱자국을 내는 엄청난 사건을 일으키게 된다. 이로써 윤 씨는 졸지에 폐비된다.

이렇게 윤 씨의 아들 연산군이 불과 생후 4개월 만에 어머니와 격리되고, 4세 때 어머니가 사약을 받고 죽는 비극을 맞으며 역사의 풍랑을 예고했다.

(생후 4개월이라면, ‘윤 씨는 산후 우울증을 겪고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참 아까운 일이다.)

 

<다음에 계속>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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