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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다 의사가 제 병 못 고친다 26-07-24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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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제 병 못 고친다

 

의사가 제 병 못 고친다라는 속담이 있다. 실제 의사들이 병에 걸려 고생하거나 죽는 걸 보면, 남을 고치는 것과 자신을 돌보는 건 분명 다른가 보다.

 

이 속담에 딱 맞는 인물이 있다. 바로 조선 제22대 왕 정조 임금이다. 오죽하면 건강하던 정조가 48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갑자기(?) 사망하자, 독살설까지 생겨날 정도다.

 

정조는 조선 임금들과 달리, 문무를 겸비한 인물이었다.

활을 50발 쏘면 49발을 과녁에 명중시켰다.(이순신 장군이 50발 쏘면 43발 정도 맞췄다고 한다) 마지막 50번째 발은 항상 과녁을 멀리 벗어나게 쏘고 나서, "지나치게 가득 차면 군자로서 겸손하지 못한 법이다(만즉손)"라며 말할 정도였다.

또한 정조는 조선 최고의 무예 교과서인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를 편찬토록 했는데, 이 책을 만들 때도 무예 동작 하나하나를 직접 검토하고 "이 칼 쓰기 동작은 실전성이 떨어진다", "이 창술은 이렇게 수정해라"라며 직접 감수할 정도로 무예에 뛰어났다.

 

그런 정조는 의학에도 뛰어난 지식을 가졌다.

정조는 세자 시절, 할아버지인 영조가 승하하기 전까지 약 10년 동안 직접 영조의 약시중(시탕)을 들었다. 단순히 약을 나르는 것이 아니라, 왕의 맥박과 대소변 상태, 증상을 관찰하고 의관들과 처방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 과정에서 진맥의 비결과 탕약 이론을 연구하며, 높은 수준의 실전 의학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그 결과 정조는 자신의 시문과 업적을 정리한 <홍재전서>(사진)수민묘전(壽民妙詮)’이라는 독자적인 의학 서적을 남길 정도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문제였다.

 

우선 정조는 평생을 당파 싸움의 압박 속에서, 독살과 암살 위험에 시달렸다. 만성 스트레스 상태에, 하루 3~4시간만 자며 국정을 돌보는 지독한 일벌레였다. 술로도 신하들을 이기려 했다. 그러니 건강한 젊은 군주도,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특히 정조를 가장 괴롭힌 것은 등과 목 뒤에 난 종기였다. 당시의 의학 수준으로 종기는 목숨을 위협하는 무서운 질병이었다. 결국 종기가 악화되면서 패혈증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문제는 정조가 어의(임금의 의사)들의 진단과 처방을 아예 불신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의관들에게 호통을 치며, 자신이 직접 약재의 종류와 분량을 바꾼 적도 부지기수였다. 사망 직전 증상이 극도로 악화되었을 때에도, 정조는 몸에 무리를 주는 강한 약재 '연훈방(수은 연기를 쐬는 치료)'이나 기력을 과하게 끌어다 쓰는 처방을 고집했다. 그래서 수은 중독을 급사의 원인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조선 최고라는 어의가 이런저런 할 일이 많은 임금보다 의학 실력이 떨어졌을까? 당시 어의는 임금이 병으로 죽으면 같이 죽거나 유배 갈 정도로, 책임이 막중한 자리였다. 만약 임금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않고 어의 맘대로 하다가, 임금이 변이라도 당하면 그 책임을 어찌 지겠나?

즉 어의가 실력이 없어서 임금 말을 들은 게 아니라, 임금 말이기 때문에 죽지 못해 들어줄 뿐이었다.

하지만 정조 임금은 이런 상황을 눈치채지 못하고, 자신의 실력을 과신했다.

 

즉 정조는 더 살 수 있었는데, 본인이 너무 똑똑하고 남을 믿지 못해 세상을 일찍 떴을 수 있다.

차라리 정조가 의학지식이 없어 어의가 하라는 대로 했으면, 더 오래 살아서 향후 조선에 망조가 들지 않았을지 모른다.

 

때론 리더는 적당히 똑똑한 게 나을 수도 있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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