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정보
좋아요 0개 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 7관련링크
본문
세종 시대 과학은 세계 최고였다!
조선 세종대왕이 신하를 시켜 ‘일 년의 길이’를 쟀다. "1년은 365.2425일"이라고 계산했다. 현대 과학으로 정한 지금의 일 년과 얼마나 차이가 날까? 불과 0.0004일 차이라고 한다.
당시 일식도 미리 예측 계산을 했는데, 실제와 얼마나 차이가 났을까? 1447년 《칠정산》으로 예측했던 일식 기록을 국내 연구진이 최첨단 슈퍼컴퓨터와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천문 프로그램을 통해 검증해 본 결과, 예측 오차가 단 1분에 불과했다.
(당시에 일식을 도대체 어떻게 미리 예측했을까?)
바로 교과서에서 배웠던 ‘칠정산 내외편’ 얘기다. 대충 천문학과 관련되었다고만 배웠지, 이렇게 대단한 업적인 줄은 몰랐다.
당시 조선은 중국의 달력을 빌려 쓰고 있었다. 하지만 달력의 기준점이 중국 베이징이었기 때문에, 한양(서울)에서의 해 뜨고 지는 시각이나 계절이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백성들의 농사가 최우선이었던 시절이라, 세종대왕은 우리에게 맞는 역법을 만드는 결단을 내렸다.
당시 중국의 역법을 따르지 않고 독자적인 달력을 만드는 것은 ‘자주 독립’으로 비춰지며, 중국 황제의 권위에 도전하는 위험한 정치적 행위였다. 하지만 세종은 목숨을 걸고 비밀리에 이 프로젝트를 추진했고, 1444년 이순지·김담 등의 천재 과학자들과 함께 마침내 조선 고유의 역법서인 《칠정산》을 완성했다. 이로써 조선은 중국, 아라비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독자적 역법을 가진 천문 강국이 되었다. 유럽도 못 한 일이었다.
15세기 유럽이 달력의 오차를 잡지 못해 쩔쩔매다 1582년이 되어서야 겨우 개정한 '그레고리력'의 핵심 수치를, 조선은 이미 138년 전인 1444년에 완성해 사용하고 있었다.
《칠정산 내편》은 기존 동양의 역법을 철저히 한양의 위도와 경도에 맞춰 재계산했다. 반면 《칠정산 외편》은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이던 아라비아의 천문학을 도입해, 고등 기하학과 삼각함수(구면삼각법)로 행성의 궤도를 풀어냈다.
헐~ 말만 들어도 머리가 어지러워 진다.
정확한 수식을 만들려면 정밀한 데이터가 필수다. 경복궁에 세워진 거대 천문대 '간의대'에서는 15세기형 조준경이라 할 수 있는 간의(簡儀)와 혼천의(渾天儀)를 통해 매일 밤 별들의 좌표를 분(?) 단위로 측정했다. 또한 거대한 자의 원리를 이용한 규표(圭表)로 태양 그림자의 길이를 밀리미터(?) 단위로 계측하여 24절기를 정확히 잡아냈다. 장영실이 만든 자동 물시계 자격루는 관측 데이터에 오차 없는 표준시 역할을 했다.
1604년 은하계의 거대한 별이 폭발한 '케플러 초신성'이라는 천문학상 획기적인 사건이 있었다. 이름만 ‘케플러’일 뿐, 당시 서양 천문학의 아버지 요하네스 케플러조차 기상 악화로 데이터를 놓쳤었다. 하지만 조선의 관측관들은 《칠정산》의 노하우와 관측 기구를 활용해 무려 7달 동안 매일 밤 정밀한 좌표와 밝기 변화로 기록해 두었다. 이 덕분에 지금도 현대 천문학계는 케플러 초신성에 대한 기록으로 활용하고 있다.
탄성이 절로 나오는 업적이다.
우리 과학이 유럽과 중국을 훨씬 앞섰다는 데 대해 자부심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이랬던 조선이 나중에 갈수록 망가졌다. 한심하기에도 충분하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전체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