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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탁칼럼 | 뽀이와 레지

24-01-31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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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0개 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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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이와 레지


며칠 전 단골 맥줏집에 갔는데 일행 중 한 지인이 웃으며 “헤이, 뽀이”라고 말했다. (큰소리로 사장님을 부른 게 아니라, 우리끼리 작게 장난으로 한 말이다) 순간 옛날 생각이 떠올랐다.


필자가 어렸을 땐 웬만한 식당이나 고급 식당엔 젊은 남성 직원들이 많았다. 그들을 “뽀이(boy)”라고 불렀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서양의 식당에서 어리거나 젊은 남성들이 서빙을 하다보니, 서양에서 전해진 문화로 생각된다. 당시엔 젊은 인구가 많았고, 시골의 젊은 사람들이 무작정 상경을 하면서 젊은 남성들의 임금도 낮았다. 게다가 초등학교나 중학교만 졸업한 ‘소년’들도 많았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뽀이”라고 부를만했다.

이렇게 뽀이는 보통 명사화 되었다. 예를 들면 “걔 요새 식당 뽀이하잖아” 라는 식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뽀이’가 자라(?) ‘젠틀맨(?)’이 된 80년대에도 “뽀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심지어 손뼉을 두 번 치면서 “헤이 뽀이”라고 큰 소리로 부르기도 했다. 이쯤 되면 ‘뽀이’는 뭔가 하대하거나 좋지 않은 직업으로 느끼게 되었고, 불리는 ‘뽀이’는 기분이 상할만했다.

그런데 식당 서빙이 남성에서 여성 특히 중년 여성으로 넘어가면서 ‘뽀이’는 자연스럽게 ‘아줌마’로 바뀌었다. (일부 유흥 음식점에서는 ‘뽀이’가 아니라 ‘웨이터(씨)’로 바뀌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민도가 높아지면서 식당에서 일하는 ‘아줌마’들은 ‘이모’로 승격되었다.


‘뽀이‘ 시절, 다방에서 여성들은 “레지(Lady)”라고 불렸다.

당시에도 커피샵 즉 다방에 꽤 많았다. 사실 원래 의미의 ’다방(茶房)‘은 말 그대로 ’찻집‘으로, 품격있는 사교의 장이자 수준 있는 사람들끼리 만나는 장소였다. 특히 명동 다방은 1920년대부터 생겨나, 1950년대 시인을 비롯해 많은 예술인들이 모이던 장소였다. ’모나리자‘나 ’동방싸롱‘ 등으로 대표되는 명동 다방은, 지성인들이 예술을 논하고 현실을 비판하던 문화 사랑방이었다.

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서울 시내의 대부분 다방은 이렇게 ’마담‘과 ’레지‘들이 사교의 장으로 운영했었다. 하지만 ’레지’들도 ’뽀이‘처럼 대우받는 직업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고 다방이 타락하면서 레지들도 타락했다. 심지어 ’티켓다방‘까지 생기며 ’레지‘는 밑바닥 직업으로 변질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커피샵으로 바뀌고 알바생이 서빙하면서, 옛날식 ’레지‘ 개념은 거의 사라졌다.


지금도 서울 어딘가엔 할일 없는 할배들이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이 던지는 농담” 따먹기를 하는 다방이 있을 것 같다. 물론 그곳엔 ’늙은 레지‘도 있을 것이다.


추억이라면 한쪽에 큰 어항이 있는 ’옛날식 다방‘에 한번쯤 가보고 싶겠지만, 마담이나 레지를 만날 생각이 도무지 들지 않는 건 이상한 일일까?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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