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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명소 | 그리운 옛날 짜장면

24-01-08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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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1개 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 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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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옛날 짜장면

 

그룹 GOD의 노랫말에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라는 대목이 있다. 어머니도 짜장면이 먹고 싶지만 돈이 없어서 자식에게만 사 먹이고, 정작 본인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다는 얘기다.

 

짜장면은 우리 세대에겐 뗄레야 뗄 수 없는 음식이다.

짜장면은 1800년대 말, 인천에 들어온 중국인 노동자들에게 간편하게 먹이기 위한 음식에서 시작되었다는 게 정설로 되어 있다. 하지만 현지화되면서 당시 중국음식점이 어느 정도 수준이 있었던 것처럼, 짜장면 역시 수준이 좀 있던 음식으로 발전했다.

필자가 어렸을 때엔 외식거리가 별로 없던 시절이라, ‘외식하면 짜장면이었다. 필자가 국민학교 졸업한 날에도 짜장면을 먹었다. 그 시절 짜장면은 큰맘 먹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어릴 적 짜장면은 정말 맛있었다. 거기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본다. (필자 개인 생각임)

우선 가격이 비쌌다. 1960년 중반부터 정부가 가격통제(정가제)를 실시했는데, 그 대상 중 하나가 짜장면이었다. 당시엔 짜장면 가격이 설렁탕과 같았다. 지금 가격으로 환산하면 1만원은 족히 된다는 의미다. 만 원이 넘는 짜장면이면, 얼마나 좋은 재료가 들어갔을까? 돼지고기도 듬뿍 들어가고, 심지어 호박이 들어가기도 했다.

또 수타면을 사용했다. 반죽부터 면 뽑기까지 손으로 하니, 단가는 올라가지만 면은 쫄깃쫄깃 정말 맛있었다.

게다가 재료를 볶을 때,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쇼트닝을 사용했다. 나쁜 게 맛있는 것처럼, 그래서인지 고소한 맛이 있었다.

그리고 중국음식점인지라, 화교들이 운영했다.

 

예전의 중국음식점은 지금처럼 서민의 음식점보단 좀 품격이 있는 편이었다. 군만두의 경우 지금은 공장에서 만든 걸 사서 튀기고, 서비스로 한 접시씩 제공하지만, 당시엔 고급(?) 포장 음식이었다. (당시엔 포장이 가능한 음식이 별로 없었다). 야끼만두(군만두)도 식당마다 만들어, 맛이 달랐다. ‘야기만두 포장해 주세요라고 주문하면, 아주 얇은 나무 도시락(벤또)에 담아 포장지로 싸서 고무줄로 묶어 줬다. 나름 품격을 갖춘 셈이다.

중국음식점에서 일하는 점원들은 배달까지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나이 어린 소년들이 때 묻은 손으로, 손님들에게 팔각형 도자기 컵에 따뜻한 물을 가져다준 기억도 난다.

 

그런데 어쩌다 짜장면 신세가 바뀌었을까?

가장 큰 이유는 가격 통제를 하다보니 재료의 수준이 떨어진 데 있다. 지금 일반 짜장면은 양파 대부분에 감자 조금 들어간 정도다. 게다가 인건비 때문에 수타면을 할 수도 없다. 쇼트닝을 사용하지 못한 지도 오래 됐다.

결정적인 건 짜장면의 원조인 화교들이 떠났기 때문이다. 정부가 화교 자본의 성장을 막고자 실시한 정책 때문에, 70~80년대에 많은 화교들이 중국(대만)으로 돌아갔고, 그들 대부분은 중국음식점을 하고 있었다. 중국음식점을 중국인이 아닌 한국인이 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음식의 맛도 더욱 한국화되었다. 특유의 맛이 없어진 계기다

 

그러면 옛날식 짜장면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없을까?

충무로역 근처에 동회루라는 음식점이 있었다.(사진) 가격은 약간 비싸지만 수타면에 좋은 재료를 사용해서, 옛날 짜장면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화교가 운영했다. 필자도 가끔 지인을 모시고 가기도 했다. 손님도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2년 전쯤 어떤 이유인지 문을 닫았다.

참으로 안타까웠다.

 

지금도 옛날 짜장면을 판다고 하는 식장이 있지만, 진정한 옛날식은 아니다.

기름기가 잘잘 흐르는 그야말로 옛날식 짜장면이 먹고 싶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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