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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탁칼럼 | 도배하는 날

23-10-30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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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0개 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 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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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배하는 날


필자 출근길 옆엔 상가 폐지 버리는 곳이 있다. 거기엔 ‘도배지 버리지 마시오’라고 씌어 있다. 요즘 도배지엔 종이 이외에 다른 것들이 많이 첨가 되는 모양이다.


요즘은 한 번 도배하면 특별한 경우가 없는 한, 십 년 정도는 그냥 산다. 그리고 도배를 직접 하는 경우도 드물다.

하지만 필자가 어렸을 때엔 도배는 연례 행사였다. 특히 옛날 집엔 천장이나 벽에 비가 새는 경우가 많았다. 가끔은 쥐들이 오줌을 많이 싸서 색이 누렇게 변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방문이 창호지 문이었기 때문에 이래저래 뚫어지다 보니, 새로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필자가 초등학교 시절엔 어머니가 하숙을 하셨기 때문에, 도배해야 할 방이 많았다.


도배하는 날은 아침부터 바쁘다. 도배를 하려면 일단 기존 벽지를 뜯어내야 한다.

그런데 천장 벽지를 뜯으면 몇 년간 묻혀있던 온갖 더러운 것들, 특히 쥐똥과 쥐털 가끔은 쥐 시체까지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그때는 쥐가 흔해서였는지, 그렇게 더럽다는 생각은 안 했던 것 같다. 그냥 묵묵히(?) 빗자루로 쓸어 담았다. 밤마다 쥐들이 운동장처럼 천장을 뛰어다녀서, 친숙하게 생각(?)했기 때문인가 보다.


시멘트벽에 벽지를 그냥 붙이면 떨어진다. 그래서 초벌로 신문지를 붙여 말린 후 벽지를 붙였다. 보통은 오전에 밀가루 풀을 쑤고(오공 본드가 등장한 건 70년대 중반 이후다) 벽지 뜯고 신문지 초벌로 붙이고 나서, 점심 먹고 오후에 도배지를 붙였다. 가족이 총동원이 되어야 했다. 특히 천장은 서너 사람이 의자를 징검다리 처럼 놓고 머리 위로 벽지를 올려 붙였다. 가족들이 모여 빗자루로 쓸어가며 붙이다 보면, 한편으론 재미있기도 했다.

하지만 도배를 대충하는 건 아니었다. 틈이 없이 도배지를 꼼꼼하게 붙여야 했다. 연탄가스가 새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방문은 창호지를 뜯어낸 후 우선 문틀을 물로 씻었다. 붙어 있는 남은 창호지까지 긁어내야 했다. 그리고 창호지에 밀가루 풀을 발라 문틀에 붙였다. 문틈엔 문풍지도 달았다. 풀칠하는 붓이 없어서 구둣솔로 풀을 발랐다.


사실 힘든 일이었는데 당시엔 그리 힘든 줄 몰랐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고, 어른처럼 일꾼으로 인정받는 것 같아 나름 재미도 있었다. 어려서 그랬나 보다. 환갑이 넘은 지금은 못할 것 같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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