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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탁칼럼 | 원조 기상캐스터, 김동완 통보관

23-07-31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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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기상캐스터, 김동완 통보관


지난 토요일 (27일) 아침 일이다. 아내가 아침 8시부터 비 온다니 일찍 나서라는 얘길 했다. 일기예보로 8시라는 의미는 8시에서 9시 사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우산을 들고 나섰더니 정확히 8시 반부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요즘 일기예보는 정말 잘 맞는다.

순간 옛날 일기예보가 떠올랐다.


지금의 TV에선 기상캐스터가 출연해 컴퓨터그래픽 영상과 구름사진으로 예보를 하지만, 필자가 어렸을 때 일기예보는 기상대 공보관 발표식이었다. 재미는 물론 볼거리가 없었다.

이때 혜성처럼 나타나 온 국민을 매료시킨 인물이 바로 김동완 통보관이었다. 김동완 통보관은 1982년부터 14년간이나 MBC TV 뉴스에서 일기예보를 했다. 그는 흰 지도를 놓고 매직펜으로 고기압과 저기압 그리고 등압선을 능숙한 솜씨로 그려가며 설명했다. “일본 동쪽 해상에 북태평양 고기압이 자리하고 있고, 서해 먼바다엔 또 다른 고기압이 위치하겠습니다. 그 사이를 기압골이 지나면서...” 라는 특유의 말투와 억양으로 인기를 끌었다.

당시 MBC 뉴스데스크가 압도적 시청률을 차지했는데, 김동완 통보관의 일기예보가 한몫했음은 말할 나위 없다. (일기예보에 컴퓨터 그래픽이 등장하면서 김동완 통보관의 장기인 ‘그리기’는 사라졌다)


김동완 통보관의 인기가 높아지자 토크쇼 같은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는데, “제가 아침에 우산을 들고 출근하면, 사람들이 저를 보고 집에 다시 들어가 우산을 가지고 나왔다” 또는 “일기예보가 안 맞아 손해를 많이 봤다며 항의하시는 분들도 계셨다” 등의 대담을 나누기도 했다.


자신의 인기에 도취된 그는 방송을 떠난 뒤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낙선했다. 당시엔 소위 ‘돈선거’ 끝자락인 시절이라, 김동완 통보관은 30억원이란 거액을 탕진하며 완전히 망하고 말았다.


하지만 김동완 통보관은 일기예보를 뉴스의 한 장르로 발전시킨 장본인으로, 방송 역사에 기록될 사람임은 틀림없다. 김 통보관은 국민들에게 일기예보를 친근하고 신뢰감 있게 전달한 공로로 2010년 세계기상의 날에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갑자기 그가 아직 살아계신가 궁금해져서 인터넷을 검색해봤다.

아직 살아 계시다. (1935년생)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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