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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탁칼럼 | 중도가 많아야 정치가 발전하지만...

23-01-19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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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가 많아야 정치가 발전하지만...


필자가 운영하는 묻는다일보 사시(社是)에 ‘정치적 이념적 중도 또는 중립을 견지한다’라고 되어 있다. 필자 역시 중도 또는 중립적 사고 방식을 가지려 노력하고 있고, 스스로 중도라고 말한다.

하지만 얼마 전 유력 언론에 ‘중도란 없다’라는 글이 올라온 적이 있다. 글쓴이는 ‘누구나 진보나 보수에 속하지, 완벽한 중도는 있을 수 없다’라며 여러 가지 근거를 나열했다. 꽤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완전하게 수긍할 수는 없었다. 실제 다수의 사람들은 선거 때마다 다른 정당의 후보를 뽑기 때문이다.


어쨌든 중도라 하면 장점이 있다. 진보든 보수는 양쪽을 모두 비판 즉 ‘모두 까기’를 자유롭게 한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진보나 보수 양쪽에서 ‘적’으로 본다. 필자는 중도라 하지만, 진보 측에선 보수라 하고 보수측에선 진보로 취급한다.


대표적 사례가 해방 직후 몽양 여운형 선생의 경우다.

여운형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이 가까워지던 1944년 조선건국동맹을 구성하여 해외 독립운동 단체들과 연계를 시도하였으며, 8.15 광복 직후 조선건국동맹의 조직을 확대하여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결성했다. 국민들 사이에선 그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고 한다. 하지만 조선건국준비위원회는 미군정의 실시로 와해되었다.

당시 여운형의 인기가 얼마나 높았는지 알 수 있는 자료가 있다.

잡지 선구(先驅) 1945년 12월호에 실린 정치지도자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다. 우리나라 최초의 대선 주자 지지도 조사 격인 ‘조선을 이끌어갈 양심적인 지도자’ 조사 결과, 1위가 여운형(33%)였고 2위가 이승만(21%) 3위가 김구(18%)였다. 그대로 간다면 여운형이 초대 대통령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좌우 대립이 격해지면서 중도 세력은 양쪽에서 ‘적’으로 규정되었다. 10여 차례의 암살 시도를 넘기다, 결국 1947년 7월 19일 극우파로 추정되는 한지근(본명 이필형)에게 암살당하게 된다.


지금처럼 진보와 보수가 극단적 대립과 충돌을 이어가는 시국일수록, 중도의 역할이 크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중도 외연 확장’ 또는 ‘산토끼 잡기’가 대표적 사례다. 즉 중도층이 많아야 누가 잘하고 못하는지 평가하고 선거 결과로 이어지므로, 충돌을 대화와 타협으로 나서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중도 언론이나 정치인은 좌나 우, 진보나 보수 양쪽에서 도매급으로 ‘적’이 될 수 있다. 아울러 극우나 극좌 추종자들처럼 극렬 지지자나 집단이 없고, 따라서 지지자들의 도움을 얻어내기도 힘들다.

즉 중도는 돈이 안 된다. 게다가 외롭고 힘들다 보니, 안 하려고 한다.


그래서 유력 정당이나 정치적 지도자가 나오기도 힘들다는 게 안타깝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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