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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탁칼럼 | 수박 삼각형 따기

22-11-02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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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0개 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 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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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삼각형 따기


지난 토요일 마트에서 수박을 하나 사 왔다. 품종은 모르지만 생긴 건 길쭉하고 시꺼먼데, 속은 노란 수박이다. 일반 수박을 사면 남아서 결국 버리게 되므로, 상대적으로 작은 이 수박을 선택했다.

그런데 맛이 형편 없었다. 분명히 겉에는 당도 11이란 반짝이 스티커가 붙어 있어서 믿고 샀다가 그만 변을 당한 것이다. 환불을 하고 싶었지만, 들고가기 귀찮아서 참았다.

따보고 살 수도 없고... 하는 순간 어릴 적 생각이 났다. (또 ‘라떼’ 얘기임)


요즘은 품종 개량과 하우스 재배로 대부분 수박이 기본은 하지만,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맛있는 수박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 당시엔 리어카나 과일가게 혹은 좀 큰 구멍가게에서 수박을 팔았는데, 한쪽에 잘 익은 수박 하나를 견본으로 전시해 놓고 한 쪽 먹으라고 권요하기도 했다. 거기에 있는 수박이 다 그렇게 맛있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손님은 수박이 잘 익었는지 맛있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그래서 삼각형 따기를 했다. 과도로 수박 일부를 삼각형 모양으로 따서 확인하는 방법이다. 손님은 따낸 삼각형 조각을 먹어 보기도 했다. 특히 엄마나 아빠를 따라간 아이는 그거 한쪽 먹는 게 그렇게 좋았다.

그런데 삼각형 모형으로 따는 건 상인이었다. 상인은 가장 잘 익은 부분에서 삼각형을 따냈기 때문에, 막상 가져가면 속았다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가끔은 손님이 ‘거기 말고 여기를 따 봐라’하며 잘 안 익었을 것 같은 부분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었다. 이럴 때 상인은 남감해졌다. 상인이 호기롭게 땄다가 상태가 좋지 않자 다른 데를 따고 또 따며, 결국 못 팔게 된 경우도 봤다.


온전한 수박은 주로 물에 담가 식혔다. 당시엔 집에 냉장고가 없거나, 있어도 아주 작아서 수박을 냉장고에 넣어 식힐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시골집에선 우물이나 펌프로 물을 담아 수박을 담갔다. 도시 가정집에선 마당에 있는 커다란 양동이나 수돗물을 받아두던 시멘트 수조에 담가 식혔다.

하지만 삼각형 따기를 한 경우엔 수박을 물에 담그지 못하므로,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그냥 썰어 먹거나, 돈이 좀 더 들어가고 귀찮아도 화채를 만들어 먹는 방법이다.

물론 그냥 먹어도 맛있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기분이 좋으신 날엔 얼음 화채를 만들어 먹었다.

그러려면 우유나 사이다 그리고 얼음이 필요했다. 그 심부름은 늘 막내인 필자의 몫이었다. 다행스럽게 바로 앞 구멍가게에서 얼음을 팔았다. 어른 주먹 두 개 만한 크기 얼음 한 개를 20원 주고 사면, 짚으로 묶어 줬다. 필자는 빨리 먹고 싶은 마음에 그 얼음을 들고 한걸음에 달려왔다.


지금 같으면 수박을 칼로 쉽게 깍두기 썰듯 썰면 그만인데. 왜 그랬는지 당시엔 숟가락으로 일일이 파냈다. 그래야 화채가 더 맛있다고 했다. 어머니가 수박을 대충 파내시고 나면, 기다렸던 필자는 남은 부분을 깔끔히 파먹었다.

화채를 다 먹은 후에도 필자는 남은 얼음까지 입에 물고 시원함을 끝까지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러면 어머니는 밤에 자다 오즘 싼다고, 꼭 잠들기 직전에 화장실을 보내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여름밤의 꿈 같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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