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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탁칼럼 | 조침문을 떠올리며

22-05-20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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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침문을 떠올리며


* 조침문(弔針文): 유씨 부인이 남편 없이 27년간 함께 했던 바늘을 잃은 슬픔을 사람에 빗대며 애통하게 표현한 글, 국한문 혼용


필자는 얼마전에 차를 처분했다. 20년간 탔던 EF소나타다. (사진은 실제 차가 아니라, 현대자동차 제공 사진임) 그 차는 그동안 단 한번도 사고를 내지 않고, 나와 가족을 안전하게 태워줬다.

차를 바꾸지 않고 20년 동안이나 가지고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차를 쓸 일이 없어서’였다. 매년 평균 1~2천km밖에 운행을 하지 않았다. 출퇴근을 지하철로 하고 지방 갈 일이 없는데다, 웬만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차도 늙고 잔고장이 많아졌다. 아무리 운행을 적게 해도, 세금이나 보험 그리고 자동차 검사는 피할 수 없다. 즉 1km 당 운행 비용이 너무 큰 것이다.

특히 코로나 사태로 차를 팔기 전 5개월간 단한번도 운행을 한 적이 없었다.

그래도 방전을 막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은 시동을 걸어주고, 차도 털어야 했다. 눈이 오면, 얼기 전에 눈도 치워야 했다. 보통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주인을 잘못 만나서 달리지도 못하고 만날 서 있기만 하는 차가 딱해 보이기도 했다. 마침 딸이 옆 동으로 이사를 왔기 때문에, 급하면 딸네 차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

그래서 차를 팔기로 결심했다, 좋은 주인 만나길 바라면서.


중고거래 사이트를 통해 매수자가 나섰는데, 알고 보니 중고차 전문 매입자였다.

그는 이런 저런 고장을 문제 삼더니, 폐차할 경우 받을 수 있는 40만원보다 조금 더 주는 것으로 합의했다. 차 앞에서 일이십만원 가지고 다투기 싫어서였다.


열쇠를 넘기고는 차를 가져 가는 걸 차마 보지 못하고 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마당에서 키우던 개를 개장수에게 팔고 나서, 끌려가는 개를 보지 않으려는 기분이었다. (필자가 어렸을 땐 개장수가 있어서, 집에서 키우는 개를 사다 보신탕집에 팔았다) 필자는 아침에 집을 나설 때마다 차가 있던 자리를 보게 되는데, 항상 그자리를 지키던 차가 안 보여서 한동안 영 마음이 좋지 않았다.


게다가 매입자로부터 받은 서류는 ‘자동차등록 말소 통지서’였다. 주요 부품을 다 빼고 폐차했다는 얘기다. 좋은 주인 만나길 바랐는데, 죽은 것이다.

그러자 중고교 시절에 배웠던 ‘조침문(弔針文)’이 생각났다.

‘아, 생명체가 아닌 사물도 오래 가까이 하면 애정이 생기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호통재라, ‘조차문(弔車文)’이라도 지어야 할까 보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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