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der banner1 header banner2
  • 커뮤니티 문답방 · 전문가문답방
    사이트 내 전체검색
전체기사

전체기사

추천명소 | 산도 마음도 타들어 간다

22-03-08 08:43

페이지 정보

좋아요 0개 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 765

본문

산도 마음도 타들어 간다

  

강원도 산불이 나흘째다.

지금까지 산림 16천여 헥타르가 잿더미가 됐는데, 서울 크기의 1/4이나 된다고 한다. 불에 탄 집도 수백 가구에 이르고, 인근 국도는 한때 불길이 되어 버렸다.

필자의 산이나 나무는 아니라도, 너무나 안타깝다. 그동안 이런 산림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정성을 들여왔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다. 하지만 필자가 어렸을 때엔 나무가 없는 민둥산이 훨씬 더 많았다.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민둥산이 많아졌다. 일제의 수탈과 모든 것을 산()에 의존해야 하는 민초들 때문이었다. 그래서 1949년 처음 식목일이 지정되었다. 하지만 한국전쟁은 전국의 거의 모든 숲을 민둥산으로 바꿔버렸다. 폭격은 물론 잔당이나 빨치산 또는 공비를 소탕하기 위해 산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결국 전쟁 후 남은 건 민둥산들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61년에 산림법 제정으로 범국민 조림 정책이 시행되고, 식목일은 2008년까지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필자 역시 고등학생 시절 서울 어딘가 산에 가서 나무를 심은 적이 있다. (라떼 얘기)

필자가 어렸을 땐 산마다 산림녹화또는 산림보호라는 단어가 곳곳에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학교에선 산림의 중요성에 대해 가르쳤다. 지금도 홍수 방지와 용수 공급’ ‘산사태 예방’ ‘나무 등 산림 자원 제공’ ‘맑은 공기등을 외우다시피 했다.

식목일 노래도 자주 불렀다. ‘산에 산에 산에다 나무를 심자~ 산에 산에다 옷을 입히자~’

 

식목일이 가까워지면 방송에서도 나무나 묘목 심는 법을 안내했다. 묘목의 경우 구덩이를 20cm 정도 깊이로 파고, 묘목 뿌리를 충분하게 넣고 흙을 덮은 후 밟아 주는데 묘목을 살짝 당기면서 꾹꾹 밟으라고 한 기억이 지금도 난다.

국민(초등)학교 다닐 때엔 식목일에 나무를 심는 대신 화단 정리를 했다. 각 반마다 조그만 화단을 지정 받았다. 그러면 학생들이 꽃씨나 묘목을 구해다 심고 물을 주고 가꿨다. 모두 나무와 숲의 중요성을 몸으로 느끼고 배웠다.

식목일엔 대통령이 나서서 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공무원을 비롯한 많은 지역민들이 전국에서 나무를 심었다. 이렇게 나무 심고 가꾸기를 40여 년간 지속적으로 해오면서, 우리나라 산은 울창한 숲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생존 능력은 강하지만 꿀 말고는 쓸모없는 아카시아나무를 심었다가, 유해수종이라 해서 베어내고 다시 다른 나무를 심는 시행착오도 있었다. 마침 식목일이 한식이라 성묘 가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성묘 갔다가 (식목일에) 불을 내서 지탄을 받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1970년대 언젠가 유한킴벌리가 처음 우리나라에 고급 티슈인 크리넥스를 생산해 판매를 하면서 인기를 끌었는데, 당시 표어가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여서 좋은 호응을 얻었다. 티슈의 원료가 펄프(나무)인 만큼, 매년 우리나라에 수십만 그루의 나무를 심는다는 캠페인이었다.

 

그렇게 정부 주도지만 모든 국민이 그렇게 열심히 정성들여 가꾼 숲이다.

그런 아까운 숲이 방화나 실화로 타들어 가는 모습을 보니, 이를 보는 필자의 마음도 국민들의 마음도 새까맣게 타들어 간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추천 0

전체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