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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탁칼럼 | 지하철의 기억 1 - 신문

21-04-21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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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0개 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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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하철 애용자다. 

몇 십 년간 지하철을 이용하다보면 누구나 추억 비슷한 게 생긴다.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전까진 지하철과 신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지하철을 타면 다수의 사람들이 으레 신문을 펼쳤다. 신문은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동안 무료함을 달래주는데 안성맞춤이었다.


당시 지하철에서 인기 좋은 신문은 단연 스포츠신문이었다.

신문 파는 사람이 ‘**스포츠“라고 외치면서 지하철을 비집고 다녔다. 그들은 거스름돈을 미리 준비해 아주 빠르게 신문과 돈을 주고받았다. 그들 입장에선 하나라도 더 팔아야 하는, ’시간이 돈‘이었기 때문이다.


첫 스포츠신문은 1969년 창간된 일간스포츠로, 그 인기가 가히 폭발적이었다. 한국일보사가 발행했는데, 한국일보는 적자지만 일간스포츠로 먹고산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였다. 이후 스포츠서울이나 스포츠조선 스포츠투데이 스포츠동아 등이 줄지어 등장하기도 했다.


당시 스포츠신문의 꽃은 만화였다.

일간스포츠가 인기를 끈 데에는 고(故) 고우영 화백이 그린 만화의 힘이 컸다.

고우영 화백의 수호지 삼국지 가루지기 등 연재만화는 잇달아 큰 인기를 끌었다.

그 이후 발행된 스포츠신문들 역시 만화에 주력했다. 만화가 얼마나 인기를 끄느냐가 발행부수와 광고를 좌우할 정도였다. 어떻게 생각하면 애들만 보는 만화가 아닌, 성인이 보는 만화의 기반이 이 때가 아닌가 싶다.

스포츠서울에선 1999년 강주배 작가의 ‘용하다 용해(주인공: 무대리)’는 직장인들의 애환을 코믹하게 그려 큰 인기를 끌었다. 또한 ‘반금련뎐’이나 이현세 만화 등 다소 선정적인 만화가 늘었다.


그러나 이렇게 전성기를 누리던 스포츠신문들이 한방에 훅 가는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무가신문의 등장이다.

2002년 메트로를 필두로 포커스 등 여러 무가신문이 등장하며 스포츠신문을 밀어냈다. 무료신문이기 때문에, 굳이 돈을 주고 사야하는 스포츠 신문을 선택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무가신문들은 만화에 더욱 집중했다. 심지어 어떤 신문을 기사보다 만화 위주로 편집을 하기도 했다. 지하철 화물칸엔 보고난 신문들이 쌓였고, 그걸 모아 파는 사람들도 생겼다.

무가신문이 인기를 얻자 광고가 많아지면서 점점 두꺼워져 갔다. 나중엔 심지어 겉장(표1, 표2, 표3, 표4)을 광고로 도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무가신문의 인기도 한방에 훅 갔다.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무가신문 조차 집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스포츠신문이나 일부 지하철 무가신문만이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그 신문들에서 종사하던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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