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련칼럼 | 미소가 아름다우신 시어머님을 기리며
19-04-30 11:00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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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하고 38년을 함께 한 시어머니와는 참 오랜 세월 정이 들었다.
헌신적이었던 친정 엄마의 사랑만 받고도 제대로 효도는 못하고 일찍 여읜 것이 한이 되어, 세상에 한 분 남으신 어머니에게라도 잘하고 싶었다.
시어머니는 1926년 강원도 고성에서 목사의 딸로 태어나 유아교육을 전공한 어머니에게 풍금을 배우고 유치원 교육을 받으셨고, 바른 생활과 긍정적 사고를 가진 엘리트 중 엘리트 ‘신여성’이었다.
교회와 강습소을 운영하시던 부모님을 따라 유년 시절을 보내며, 배우는 것만이 힘이라는 교육열에 학교를 졸업 후 반월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셨다. 부모님의 반일 사상과 일본인 뜻을 거역한 보복으로 전근 당한 학교에서, 경성제대를 졸업해 일찍 교감이 되셨던 아버님을 만나 결혼하셨다.
시어머니는 성품이 온화하시고 교양이 넘치는 멋쟁이에 기도도 기가 막히게 잘하시는 권사님이셨다.
처음엔 늘 여유롭고 긍정적인 사고와 교양과 품위를 지키시는 어머니를 보며, 사시는 것이 풍족하셔서 그런가 생각했었다. 그런데 얼마 후 빚보증 사고로, 사시던 커다란 저택을 아주 헐값에 매매하고 조그만 아파트로 옮기게 되었다. 아버님은 퇴직한 상태였고 오랜 세월 여유롭게 사시던 어머니가 ‘잘 적응해 내실까?’ 내심 걱정이었지만, 여전히 언성 한번 높이시는 일 없이 밝은 미소로 생활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다.
게다가 어머니는 동네가 훤해 질 정도로 눈에 ‘확’ 띄는 멋쟁이셨다.
늘 단정하게 옷을 챙겨 입으시고 스타킹에 구두를 신으시고 예쁜 모자를 쓰시면, 옷태가 장난이 아니어서 ‘엘리자베스 여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어머니는 또 손재주가 좋으셔서 지인들에게 얻어온 옷을 조금 수리해 입으시면, 귀티에 부티까지 멋쟁이로 변신하셨다. 거기에 보통 사람이 소화할 수 없는 망사로 된 긴 장갑과 모자를 쓰시면, 멋쟁이의 화룡점정이 아닐 수 없었다.
어머니와 외출을 하거나 쇼핑을 나가면 모두 딸이냐고 질문을 했다. 며느리라고 하면 한결같이 딸 인줄 알았다고 했다. 도란도란 오랜 세월 함께 하니, 딸같이 보이는 것 같아 즐거웠다.
어머니가 86세 때 아버님 구순 잔치를 기획했었다.
온 가족 빠짐없이 행사의 순서를 맡아 기도와 특송으로 예배하며 2부에 PPT 자료로 아버님 연혁과 사진 영상을 준비하고, 편지 낭독과 악기 연주 그리고 가정마다 가족창을 준비해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새롭다. 특히 어머니가 아버님께 바치는 편지를 낭독하시니 참석자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고, 찬양에 맞춰 율동하실 때는 최고의 박수갈채를 받는 무대의 주인공이 되셨다.
어머니를 훌륭한 성품으로 키워주신 어머니의 친정 어머니는 목사 사모이로 교육사업, 계몽활동, 독립운동 등 손수 ‘상록’의 얼이 되신 분이었다.
그 분은 이화여전 졸업반일 때 후배인 ‘류관순’ 열사와 공주 감옥에서 모진 옥고를 당하고, 일본 치하에서도 항일운동과 배일사상으로 농촌 계몽운동과 대한부인회 활동을 하셨다. 진취성이 강한 불굴의 여장부이며 현모양처였던 (고)‘김복희’ 할머니는, 2019년 3.1절 100주년 기념식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고 독립 유공자로 선정되셨다.
그런 부모님께 물려받은 온화한 성품을 지닌 어머니는 언제나 환한 미소로 깊은 속마음을 내주셨고, 그 사랑 덕에 친지들의 칭찬을 보약 같이 받아먹다 보니 나에겐 영광스런 며느리 자리였다.
부모님께 물려받은 가장 소중한 유산은 물질이 아닌, 잘 키워주신 인성으로 귀한 참사랑과 끊임없는 칭찬 그리고 본이 되는 삶이었던 것 같다.
~ 나의 어머니 전상서 ~
하늘나라에서 아버님과 평안하시지요?
주님 사랑으로 온전한 정신이 아니실 때까지 함께 찬양하며, 늘 환하고 예쁜 미소로 주위를 환하게 빛내셨던 어머니!
천사의 왕관처럼 빛을 내는 탐스런 하얀 머리와 한결같이 곱디고운 모습이 그리워, 결여한 글로 나마 어머니를 사모합니다.
지난날 부족한 저를 사랑해 주시고 칭찬해 주시고, 명품 가정의 며느리로 딸로 인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번 3.1절에 친정어머니께서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신 것 아시지요?
독립유공자이신 할머니와 국가 유공자이신 시아버지와 훌륭하신 친지들의 수고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묵묵히 어머니 길을 따라 걸어가겠습니다.
5월 4일 아버님 추도일에는 자녀들 모두 서울 ‘국립현충원’으로 나들이 갑니다.
(고) 전의경 권사님~ 미소가 아름다우신 나의 어머니~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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