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련칼럼 | 적자생존
18-11-12 16:52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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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적자생존’이란 말은 영국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스펜서가 1864년 ‘생물학의 원리’라는 저서에서 생존 경쟁의 원리에 대한 개념을 간단히 함축해 처음 사용한 말로,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생물이나 집단만이 살아남는다’는 의미를 가진 단어이다.
그러나 이번 글 속의 ‘적자생존’은 학문적 깊은 의미가 아니고 약간은 넌센스와 코믹한 뜻으로 적어 보았다.
어느 날 남편이 “적자생존 뜻이 뭔지 알아? 요즘은 적는 자만이 살아남는데!”라며, 메모 잘하라고 장난스럽게 던진 조크가 마음에 ‘확’ 와 닿았다.
오래 전 아침, 오후 약속을 체크하고 일에 집중하다 보니 약속을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문득 생각 나, 순간 너무 황당하고 깜짝 놀라 얼굴까지 시뻘겋게 달아올라 허겁지겁 달려간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깜빡이의 전초전이었다.
가끔씩 약속을 잊는 경우가 생겨나기 시작하며 대충하던 메모를 집중하였고, 지금은 메모하고 확인하는 것을 습관처럼 생활화 하였다. 까먹지 않기 위해 시작한 메모지만, 언제부터인가 매 순간 새로운 정보를 기록하고 스케줄 관리를 하며 삶의 동반자가 되니 은근 든든하다.
‘짧은 연필이 긴 기억보다 낫다’라는 말처럼, 생각보다 좋은 아이디어, 발상, 추억들을 오래 기억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아침잠에서 깨었을 때 떠오르는 아름다운 시상이나 가끔 반짝 떠오르는 기막힌 문장을 바로 메모해 놓지 않으면 하얗게 잊어버리고 마는 경우를 종종 경험하며, 메모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고 메모 준비를 철저히 하게 되었다. 귀한 단어와 멋진 문장은 얼른 메모해 정리하면 귀중한 자료가 되고 창의적 아이디어가 만들어지기도 하니, 재료가 될 수 있는 메모를 많이 확보하는 것은 귀한 자산이며 든든한 조력자가 되기도 하였다.
메모가 귀찮을 때도 있지만, 하루를 마무리 하다 보면 잘못된 실수를 점검하게 되고 반성하면서 색다른 아이디어와 만나기도 한다. 정리된 수첩을 펼쳐보면 하루의 일과와 생각이 고스란히 쌓여, 옛 생각은 엊그제 일처럼 다가와 작은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여 추억의 책으로 변신하기도 하였다.
노트북과 스마트폰이 활성화되면서 손으로 메모하는 것이 불편하기도 하였지만 디지털화된 스마트폰 활용법이 미숙하여 스마트폰 메모가 순간 날아갈 때도 있어, 스마트폰과 메모장에 아날로그적 메모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 이제는 매년 적어놓은 다이어리가 수 십 권이 되고, 칼럼 자료도 다이어리에서 가끔 찾아 쓰니, 습관화된 메모 정리는 이미 효과를 보고 있는 셈이다.
적자생존 시대에는 환경에 잘 적응하는 사람만이 살아남는다고 하는데 치열한 삶 속의 메모는 어쩜 환경에 잘 적응한 사람의 아이디어 뱅크가 아닐까?
얼마 전 미동부와 캐나다 여행을 갔을 때도 메모장과 볼펜은 필수였고, 가이드의 설명도 조각조각 메모하며 다녀와 3페이지로 정리해 보관해 두었다. 아름다운 대자연과 산뜻한 공기와 함께 했던 좋은 사람들과의 추억을 고스란히 마음속 깊이 담아 적어 두었으니, 언젠가의 칼럼 재료가 될 것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 들어있는 ‘메모의 기술’처럼, 일본인들은 메모를 꼼꼼히 잘하고 효과도 많이 본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일이다. 메모를 생활화하는 일본은 모든 것이 자료화 되어 있어 우리보다 앞서 가는 부분도 있고, 개인이나 기관이 기록하는 자료들이 문화로 꽃피우기도 한다.
일본의 세계적인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가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고등학교 1학년부터 본인이 해야 할 일들을 ‘만다라트’ (소망을 이뤄주는 마법의 상자)라고 부르는 계획표를 통해 목표를 설정했고 꾸준히 작성한 결과,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일본 프로야구 구단뿐만 아니라 메이저리그 팀까지 입단 제의를 받게 되며 2년 만에 자신의 계획된 꿈을 모두 이루게 된다. 이후 ‘만다라트’ 계획표는 목표에 대한 생각을 키워주고 꿈을 이루며 심신이 안정되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로 유명해졌다.
‘만다라트’ 계획표는 중심 칸에 핵심 목표를 작성하고 둘러싼 8개 칸에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8가지 중간계획을 적는다. 한 칸 한 칸 메워가다 보면 뭔가 막연했던 미래가 정리되는 느낌이 들고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꿈과 목표가 이루어지기도 하니, 여러 생각이 체계적으로 정리되며 계획된 목표와 소망을 이뤄주는 마법의 상자는 인생의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 선생 역시 철저한 메모 왕 이었다고 한다.
다양한 분야에서 600여 권의 저술을 남긴 바탕에는 성실성과 함께 수시로 메모하는 습관이 있었으며, 그것을 항상 분류하는 일을 습관화 하여 18년 유배생활 동안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를 집필하였다.
“동트기 전에 일어나라.
기억은 흐려지고 생각은 사라진다.
머리를 믿지 말고 손을 믿어라.”
2017년 개관된 청주시 기록관은 역사적 기록물을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보존하여 후대에 안전하게 전승하고자 만든 기록 체험 홍보관이다. 개관이후 국가기록원을 비롯하여 문화재청, 충북교육청, 정선군청 등 전국에서 벤치마킹 시찰단이 다녀갔다고 하니 기록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는다.
메모에는 정보를 수립하는 메모와 생각을 정리하는 메모가 있다.
그러나 메모를 자기만의 지식으로 만들고 지혜로 연결시켜 발전시키려면 본인만의 생각을 꾸준히 만들어가며, 외부로부터 얻은 정보와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모아 훌륭한 공간으로 만들어야 지식이 지혜로 이어질 수 있다.
개인의 경험, 다양한 생각, 판단, 분석이 더해져 만들어진 정보가 목적에 맞게 사용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 지식이고 관련된 모든 재료와 종합적으로 전체 상황을 고려하여 지식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을 지혜라고 할 수 있는데, 가끔은 많은 정보를 모아놓고 이미 지식을 모두 얻었다고 착각할 수 있으니 메모할 때 생각까지 정리해 놓으면 기대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잘 모르고 시작한 메모의 습관은 나의 계발서가 되었고, 많은 추억과 정보를 공유하다 보니 폭 넓고 윤택한 사고를 가지게 되어 문득 감사한 마음에 부족한 메모 경험을 나열하며 다시 점검해 본다.
‘적는 자는 생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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