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탁칼럼 | 앉으나 서나
24-09-06 12:10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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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으나 서나
‘서민 가수’ 현철이 지난 18일 타계했다. 1989년 가요대상을 받고 대성통곡을 하던 그가 지금도 생각난다. 오랫동안 무명가수였던 현철을 중앙 무대에 오르게 한 노래가 바로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이다.
‘앉으나 서나’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구어체)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나’라고 나온다. 그런데 ‘앉으나 서나’라는 말이 노래 때문에 유행하다 보니, 그 말 자체로 사용하기도 했다.
얼마 전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자리가 하나 비었다. 70대 노인이 그 자리에 앉으려고 다가가는 순간, 덩치도 좋은 젊은 남성 하나가 뛰어 들어오면서 그 자리에 앉아버렸다. 보는 필자가 다 민망했다. 앉아가던 자리를 양보하진 못할지언정, ‘자기만 알고 편하게만 살아온 청춘인가 보다’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필자 세대만 해도, 젊었을 땐 ‘앉으나 서나’였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도, 앉으려는 욕심 자체가 없었다. 30대 초반까지 출근 할 때 버스를 한 시간 가까이 서서 다녔는데, 전혀 힘든 줄 몰랐다. 어떤 경우엔 빈자리가 나도 다른 분들 앉으시라고, 그냥 서서 가기도 했다. 혹시 앉아가더라도, 노인들께 자리 양보는 물론이었다.
또 다른 ‘앉으나 서나’도 있었다.
필자의 대학 때, 현철의 ‘앉으나 서나’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당시엔 키가 작은데 얼굴은 크고 다리가 짧은 숏다리를 ‘앉으나 서나’라고 표현했었다. 얼굴이 커서 앉아 있을 땐 몰랐는데, 막상 서니 앉은키나 선키나 별 차이가 없다는 의미다. 대놓고 얘기하는 건 아니고, ‘미팅을 나갔는데, 앉으나 서나잖아’라는 식의 뒷담화 농담식이었다.
필자가 다니던 대학에 고등학교 3년 후배가 입학했었다. 키는 좀 작았지만 성격이 좋고 선배들을 잘 따랐다. 그런데 어느 날 여학생들과 어울리게 됐는데, 이 후배가 좀처럼 일어서질 않는 것이었다. 얼굴은 큰데 키가 작고 다리가 짧아서, 그야말로 전형적인 ‘앉으나 서나’였기 때문이다. 그런 걸 알고도 ‘일어나 봐’라고 했으니, 참 선배들이 못 됐다 ㅠㅠ... 철없던 시절이었다.
지금 같으면 남의 신체적 약점을 가지고 놀렸다간 큰일 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 후배는 성격이 좋은 남자였기에 웃으면서 ‘에이~ 너무 그러지 마요, 나라고 이러고 싶었겠어요’라며 웃고 넘겼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해 준 현철 가수의 명복을 빈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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