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탁칼럼 | <묻는다 칼럼> 종편채널, 뭐하는 채널인가?
17-12-21 15:10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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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KBS 전아나운서 정미홍이란 사람이 영부인에 대해 근거도 없는 막말을 했다고 한다. 사실 그녀가 누군지도 몰랐고, 또 그런 말을 했거나 말거나 그녀가 뭐라고 떠들든 일반인들은 별 관심도 없다. 그런데 황당한 건 이런 가십거리도 안되는 얘기를 주제로, 종편채널에 여러 명의 전문가(?)들이 출연해 나름 진지하게 토론을 했다는 것이다.
일단 종편채널이 뭔지 잠깐 살펴보자.
케이블, 위성, IP TV 같은 뉴미디어(지금은 New라고 하기엔 다소 어색하지만 생겨날 당시엔 지상파 방송과 구별하는 의미에서 그렇게 통칭했다)에는 다양한 PP(Program Provider - 흔히 말하는 채널)가 있는데 전문채널이 기본이다. 즉 영화, 드라마, 스포츠, 보도 등 어떤 정해진 장르에 대해서만 방송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종합 편성 채널은 장르에 관계없이 보도를 포함한 모든 장르의 프로그램을 방송할 수 있다. 책임 있는 방송을 해야 하므로 보도와 종합편성채널은 방송통신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일반 채널들은 자격요건만 갖추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등록’제이다.) 종편채널은 지상파 방송에 버금가는 능력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승인을 받는 조건으로 자본금 3,000억원 이상을 확보해야 했다. 그에 따라 종편채널로 4개(JTBC, TV조선, MBN, A채널)가 승인을 받았고 2011년 12월 1일 개국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우선 종편채널이 너무 많다는데 있다.
원래 종편채널을 승인하는 배경으로 지상파를 견제할만한 다양성 및 언로 확보와 양질의 콘텐츠 생산 등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리고 당시 업계에서는 2개 정도가 승인을 받을 거라 예상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업계에선 ‘누군 주고 누군 안주면 뒷감당이 어려워서’라는 얘기를 많이 했다) 5개 업체 신청에 한국경제만을 제외한 4개 업체에 승인을 해줬다. 그러다 보니 자연 시청률과 광고수주 경쟁이 치열해 질 수 밖에 없었다. 더구나 종편채널이 보도를 무기로 광고주를 공략하면서, 다른 채널들의 광고 예산은 줄어들고, 광고주들은 계획에도 없는 광고를 헌납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고수입이 기대치에 못 미치다 보니 프로그램 제작비를 줄여야 했다.
뉴미디어(케이블, 위성 IPTV)를 보면 재방송이 많다. 그런데 종편채널의 경우는 재방송의 비율을 제한하고 있다. 제작비가 적게 들어가는 프로그램을 방송해야 했다. 그래서 나온 편법이 제작비가 적게 드는 보도, 시사 프로그램 비중을 높이는 것이다. 이마저도 전체 방송시간의 일정 비율(약 25~30% 이내)을 초과하면 안된다. 여기서 또 편법이 나온다. 주로 낮 시간대는 보도 시사로 때우고, 시청률이 낮은 밤이나 새벽 시간엔 재방송으로 때우는 것이다. 특히 이 시간대의 시청자들이 오후에 별로 할 일이 없거나 일하면서 습관적으로 TV를 켜 놓는 노년층과 소규모 자영업자들이다. 종편채널들은 경험을 통해 이 시간대의 시청자들 입장에서 자극적인 소재를 놓고 토론(?)을 하면, 시청률이 어느 정도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애초에 기대했던 양질의 콘텐츠보다는 점점 돈 적게 드는 보도 시사 (주로 토론)프로그램으로 채워졌다.
2017년 10월 19일 편성표를 보자.
4개 종편채널의 보도 시사 프로그램은 평균 385분으로 전체 방송시간의 27%이다. (보도 시사에 대한 기준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다소 다를 수는 있다) 그런데 문제는 07시부터 밤01시까지 사람들이 주로 시창하는 시간대만 보면 36%로 올라간다. 더욱 놀라운 건 JTBC는 14:30부터 익일 00:30까지 10시간(600분) 중 95분을 빼곤 죄다 보도 시사프로그램이고(썰전까지 포함했다), A채널은 10:40부터 20:20까지 9시간 40분(580분) 중 3시간을 빼곤 보도 시사 프로그램이다. MBN은 15:30부터 20:30까지 5시간 동안 내내 보도 시사프로그램이고, 보도 시사 프로그램의 원조격이었지만 재승인 논란에 놀란 TV조선은 최근 대폭 개편하면서 13시부터 22시까지 9시간(540분) 중 330분으로 그나마 보도 시사 프로그램의 비중이 낮아졌다
전체적으로 보면 한마디로 오후 시간에는 모든 종편채널들이 보도 시사 프로그램을 방송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말이 보도 시사프로그램이지, 대부분 소위 ‘전문가(예를 들면 국회의원 보좌관을 했던 사람이나 변호사를 정치전문가라고 모셔온다)’란 사람 몇 명이 모여 잡담하는 수준이다. 편성표를 보면 알겠지만 프로그램 자체 시간도 80~90분이 기본이고, 이 토론이 끝나도 또 저 토론이 이어지므로 사실상 프로그램의 차이는 거의 없다. 뉴스에서도 토론을 하므로 그냥 계속 토론이다.
때워야 하는 시간은 많은데 뚜렷한 이슈가 늘 발생하는 게 아니다보니, 다룬 걸 또 다루거나, 되지도 않은 ‘정미홍 막말’ 같은 것을 놓고 마치 대단한 것처럼 토론들을 해댄다. ‘정미홍’ 입장에선 노이즈 마케팅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면서, 유명세를 타려는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즉, 종편채널 스스로가 이런 사람들의 홍보매체로 전락해 버렸다.
문제는 시청자들이 전형적인 Yellow Journalism(독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흥미 위주의 선정적 기사를 보도하는 행태를 일컫는 ‘황색 저널리즘’) 형태인 함량 미달의 토론을 보면서, 그에 동조하게 되고 경중을 못 가리며 세뇌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정미홍’이란 사람이 마치 대단한 사람이고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라는 생각을 가지게 될 수 있다. 몰라도 될 것을 쓸 데 없이 침소봉대하고, 일부 시청자들이 듣고 싶어 하는 얘기만 말하고, 여론을 왜곡하는 것은 진정한 언론이 아니다.
또한 지금 종편채널은 보도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광고시장에서도 많은 문제를 유발시키고 있다.
정부와 방송통신위원회에 묻는다.
“종편채널들이 처음 기대했던 수준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승인 당시 기대했던 양질의 콘텐츠가 얼마나 생산되고 있는가?”
“이런 저급한 종편채널들을 계속 놔둘 것인가?”
종편채널은 분명 언론이다. 언론에는 사회적 책임이 뒤따른다.
깜도 안되는 주제를 놓고 얼치기 전문가들이 모여 잡담식의 토론을 하면 그것은 무책임이다. 전파(사실 전파만으로 방송되는 건 아니지만 옛날 방식으로 한 얘기다) 낭비에, 편향된 여론 형성이나 여론 조작 내지 왜곡을 하는 심각한 문제이다. 더구나 이젠 종편채널들이 스스로 개선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의지도 없다.
이젠 방송통신위원회가 공정한 심사를 통해 과감히 ‘재승인 탈락’이라는 칼을 빼들어 몇 개의 종편채널부터 없애야 할 때이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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