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련칼럼 | 공간의 미학
18-09-07 09:47페이지 정보
좋아요 4개 작성자 묻는다일보 조회 5,308관련링크
본문
청소하고 치우며 살림하는 세상의 모든 주부 일상이 이렇게 고귀한 품위를 선사해 줄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해 본 적 없는데 요즘 공간에 빠져있다.
우리 집에 와 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참 짐이 많네요!’였다. 치우고 싶은데 살림 서투르고, 시간과 일에 치이다 보니 바쁜 핑계로 널어놓기 일쑤였고, 버려야 할 물건은 아깝다는 생각에 잔뜩 쌓아놓고 살았다.
어느 날 백내장 수술하고 몸조리하던 중 구석구석에 너저분한 것들과 먼지덩이가 굴러다니는 것이 보여 착잡해하던 차 병문안 온 막내 동생이 대청소를 해준다고 싱크대 물건 모두 끌어내고 잠시 스캔을 뜨더니, 체계적으로 분류하여 종류별로 나누고 라벨 붙여 서랍식 수납을 하니 ‘척척’ 제 집 찾아 들어가듯 멀끔해졌다. 그러면서 불필요한 물건들이 한없이 나오는데, 나누거나 기부하거나 혹은 버리란다.
살림에 무신경하다 보니 서랍 속으로 들어간 물건들은 까맣게 잊어버려, 수십 년 지난 상비약부터 색조 화장품, 건강식품, 비타민, 참기름, 들기름, 간장, 식초, 후추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식품들과, 언젠가 쓸려고 모아둔 1회용 용기와 플라스틱도 한 더미이다. 식용유, 행주, 치약, 샴푸, 이불, 베개, 화장품, 수건, 냄비, 그릇, 양말, 구두, 옷, 핸드크림 물건들이 포화 상태가 되어도 잘 모르다가, 정리정돈으로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지니 살짝 여유가 느껴진다.
발가락 골절로 반 깁스하고 눈도 회복 중이라 구경만 했는데, 평소 느껴보지 못한 작은 기쁨이 한 가득 채워지며 정리된 곳은 바라만 보아도 흐뭇해지니, 이 대대적인 프로젝트를 통해 평소 느껴보지 못한 최소 요소로 최대 효과를 이루는 미니멀리스트의 긍지를 가지고 즐거운 일상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몸조리하는 동안 집 지키며 이 방 저 방 물건 모두 뒤적이며 정리하고, 청소하고, 수납하고, 버리고, 나누는 일을 시작했다. 나름 정리하고 신이 나서 사진 찍어 막내에게 보내면 다 장롱 안으로 싱크대 속으로 서랍장 안에 집어 넣으란다.
“전자렌지 꺼내 그 공간에 식품을 넣고, 안 쓰는 김치 통은 서랍으로 이용하고, 라벨을 붙여 한 눈에 들어오게 하고, 어쩌구 저쩌구..” 왕 잔소리..
집중하며 정리하다 보니 수십 년 모아 놓은 영수증만 5박스 나왔다. ‘쯧쯧!’
우산은 이곳저곳에서 50개가 나와 깜짝 놀랐다. 30개는 새 우산, 20개는 쓰던 우산, 일일이 펴보고 고장 난 우산 10개는 과감히 버리고, 새 우산은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니 모두들 좋아라 한다. 새 후라이팬도 8개나 나와 우리 것 교체하고, 나머지는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니 그 기분도 짭짤하다.
‘짜짠~’ 며칠 후 신발장 정리 시작!
수십 년 된 예쁘긴 한데 발이 엄청 불편한 신발들 정리하고, 낡은 신발은 고칠 것인지 버릴 것인지 결정하니 신발장이 훤해졌다.
장롱 속 수 십년 된 이불은 황색 봉투에 과감히 넣으며 자세히 보니, 엄청 낡고 헤지기도 했으니 알뜰하게 살아 온 것은 분명했다.
뭘 버리느냐가 아니라 뭘 남기느냐가 문제였다.
이 많은 물건 중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았으니, 삶에서 중요한 것을 잊고 살았던 것 같다. 필요해서 남기기로 한 것은 더 소중하게 간직하고, 추억이 담긴 물건은 사진을 찍어 남기고, 1주일, 1개월, 3개월, 6개월, 1년 기간으로 분류해 정해진 기간이 지나도 쓰지 않는 물건은 과감하게 버리는 것으로 정하면, 버려도 버리는 것이 아닌 것같이 마법처럼 집이 정리되지 않을까?
지금껏 무지하게 살았지만 이제 아쉬움은 털어내고 미련은 닦아내어, 진정 중요한 것만 남기는 쉬운 것 같으면서 어려운 일들을 도전한다.
드디어 집을 단순화하는 심플 라이프가 눈앞에 다가왔다.
‘와우~ 나도 심플 라이프 스타일로 살아보는 거야?’
미니멀 (단순한 삶)이 평범한 생활 속 양식을 아주 간단히 만들며 공간을 구성하니, 형상화되는 매력 속으로 빠지며 행복의 온도는 최상으로 올라간다. 공간 정리의 기본 원칙인 나누기는 깨끗이 정리정돈 하는 것뿐 아니라, 자신 생활에 윤택을 맛보게 하며 타인 삶도 배려하고 베푸는 정신을 실천하게 하는 매력이 있어 물건 나눌 때 기쁘고, 즐겁게 가져가면 완전 신이 난다.
정리 수납만으로도 공간은 2배로 넓어 보이고, 어지럽고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생각을 풀어내니 소소한 운치와 힐링은 배가 된다. 변화 없던 공간이 규율, 질서, 관리에 따라 심플한 인테리어가 만들어지고, 하우스 헬퍼의 직무는 변화와 성장의 두루마기를 입힌다.
오늘은 전등 갓의 먼지를 제거하고 화단 나뭇잎을 정리하며 사랑을 주니, 꽃들이 몽우리 맺으며 살포시 고개 들어 올린다. 집안이 정리되니 외출할 때 옷매무새를 더 신경 쓰게 되고 물건도 하나를 사면 두 개를 버린다는 마음으로 구입하게 되니, 마음까지 청소한 것처럼 깔끔해져 걱정 근심은 사라지고, 살림살이 물건마다 가치를 부여하니 지루했던 일상이 ‘살살’ 다가와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물건 정리하기 전 먼저 소비를 제한하고 분류하고 정돈한 다음, 보기 좋게 미관을 고려하고, 기능을 생각해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비움의 미학이 심플한 환경을 만들고 일정한 공간을 구성하며 실내 공간을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에구구~ 겨우 치웠는데 예전처럼 또 늘어놓게 되는 이 현실은 어찌할꼬?’
가까운 지인이 정리 디자이너 양성 과정을 공부한다고 자랑하며 알려 준 노하우가 많은 도움이 되었고, 바쁘다고 밖으로만 돌다 광명 찾은 눈과 발가락 골절로 병문안 온 동생이 대청소를 해주어 환골 탈퇴한 새 생활을 만나게 되니, 뜻밖의 거대한 솔루션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것같이 한동안 정신없이 바빴다.
“막내~ 검사하러 와야지! 거하게 밥 쏠게~ 언니가 요즘 신바람 났어!”
살림의 고수들이 보면 웃을 일이지만 하수가 평생 고이 모셔 왔던 물건을 과감히 버리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인데, 난생 처음 버리고 비우고 나누고 정리하며 조금 넓어진 공간에서 진한 만족과 뿌듯함을 느끼며, 생에 가장 긴 시간 행복에 취해 누구나 잘하고 있는 소소한 일상을 벌여놓고 ‘헤벌레’한다.
전체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